<봄밤>은 어떤 시구에 나오는 말처럼 자세히 봐야 된다. 오래 봐야 된다. 그래야 이 드라마가 얼마나 예쁜지 안다. 인물들의 작은 행동 하나가, 공간의 분위기가, 스쳐 지나는 물건 하나가 전부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서 잘 살펴봐야 한다. 그것들은 대사와 사건으로 전개되는 큰 이야기의 흐름과는 별개로 풍성한 디테일을 제공한다. <봄밤>의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말을 하는 듯하다. 사람이거나 물건이거나 공간이거나 그 공간의 분위기이거나 각자가 입을 달고 저마다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떠들고 있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말하게 하는 기술이 유난히도 돋보인다.


정인이와 지호가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 정인이는 지호에게 고무줄이 있냐고 묻는다. 이런 거 밖에 없는데. 그런 거 말한 거예요. 대충 아무 고무줄을 건네받은 정인이가 대충 묶은 머리는 정인이가 '그런 걸'로 머리를 묶어도 혹은 풀어도 예쁘다는 걸 지호 앞에 보여준다. 사건 진행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 고무줄은 은연중에 지호에게 정인이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지 알려준다. 그게 고무줄이 하는 말이다.


노래방에서 지호와 정인이가 누른 같은 곡은 이상은의 <언젠가는>이다. 두 사람이 자기 세대와도 맞지 않는 옛 노래를 골랐다는 건 두 사람의 취향이 그만큼 비슷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왜 무의식중에 서로에게 끌리는지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이 된다.


정인이는 지호가 노래방에서 급히 사라져 버린 후 지호의 안부가 궁금해 약국을 찾아갔다가 그만 지호에게 들켜 당황한다. 볼 일이라도 있는 척 약국으로 들어가 얼떨결에 집어 든 게 어린이 마스크다. 아무거나 고른다고 골라도 하필 정인이에게 필요도 없는 어린이 마스크를 골랐다. 그만큼 정인이의 모든 신경이 지호와 약국 약사들의 대화에 가 있었다는 증거다. 그 후에도 마스크는 조연처럼 등장한다. 정인이는 어린이 마스크를 뜯어서 얼굴에 써보기도 하고, 무슨 기념품마냥 집에 모셔 놓았다. 결국 지호가 은우 전화를 받느라 방에 들어왔을 때 마스크는 지호의 손에 쥐어진다. 지호는 정인이가 지호에게 정신 파느라 아무렇게나 집었던 어린이 마스크를 손에 든 채, 정인이와 은우가 전화통화하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지켜보았다. 지호의 손에 어린이 마스크가 있느냐 없느냐의 작은 차이는 정인이와 은우의 통화를 바라보는 지호의 감정을 좀 더 풍성하게 뒷받침 해 준다. 지호와 정인이의 심리에 대해 노래방 선곡도 어린이 마스크도 이렇게나 해 주는 말이 많다.


할 말이 많은 건 물건들뿐만이 아니다. 공간을 채우는 분위기도 말이 많다. 공간의 분위기가 하는 말을 이해할 때 우리는 '눈치'라고 부른다. 영재와 재인이는 별다른 실마리가 없었는데도 정인이와 지호가 풍기는 묘한 분위기와 기석이 몰고 온 긴장감 속 지호의 표정만 보고도 둘 사이를 알아챈다. 영재는 재인이가 방에 못 들어가게 했고 재인이는 그런 영재를 추궁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으나 누구나 이해하고 있는 상황은 기석과 지호의 술자리에서 빛을 발했고 특히나 마지막 엔딩에서 정점을 찍었다. 지호와 기석이는 실제 주고받는 말과 전혀 다른 뜻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너 뭐 만나는 여자 있다며" "뭐 얼마나 대단한 여자길래 그렇게 숨겨" "한참 좋을 때다 지금 막 이뻐 보이고 그러겠다 그지?" "선배는 이제 안 그래요?" "아직까지 그러면 이상한 거지" "연애 오래 하셨다면서요" "그러다가 마음이 변할 수도 있잖아요" 그 밑에 깔려 있는 말들은 다르다. 나는 내 여자의 남자가 너라는 걸 알고 있으니 건들지 말라는 도발. 나는 니가 알고 있다는 걸 알지만 상관 않겠다는 도발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렇게 간접 화법으로 실컷 깔아 놓다가 직접 화법으로 한 방이 날아오면 느껴지는 파급력은 실로 대단하다.

"끊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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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이 소품과 상황으로 간접화법을 구사한다면 조연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활용한다. <봄밤>의 조연들은 관찰하고 해석하고 전달한다. 조연들은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정인이와 지호의 모습을 독점적으로 볼 수 있기에 다채로운 관점과 내부 정보를 그들의 시각으로 전달한다. "마지막 눈", " 뜻밖의 그대" 도서관 동료들은 지호를 만난 이후 미묘하게 달라지는 정인이의 감성을 언급한다. 현수는 결혼을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는 기석이의 본심을 읽어준다. 약국 선배는 영리하고 유쾌하고 패기 넘치는 사람이었던 지호의 과거를 불러낸다. 기석이의 도발을 대하는 지호의 패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미리 밑밥을 깔아 준거다.


정인이의 두 자매, 서인이와 재인이는 정인이가 처한 상황과 비교를 부르며 입체감을 돕는다. 서인이 부부의 모습은 충분한 고민과 판단 없이 떠밀려서 한 결혼이 잘못되었을 때 어느 정도까지 끔찍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예시를 보여주고 재인이와 영재의 만남은 남자와 여자가 진짜 '친구'일 때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 준다. 모두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고 지호와 정인이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해 준다.


그리하여 <봄밤>의 조연들과 배경은 주연만큼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어떤 극에서든 활용되는 장치이겠지만 이런 식의 조연과 배경의 활용은 <봄밤>에서 유독 탁월하다. <봄밤>의 간접화법은 메인 스토리와 맞물려 대사나 사건 전개로만 전달하기 어려운 깊은 감성까지도 세밀하게 전달한다. 정인이와 지호 사이 만남의 시간도 짧고 별 큰 사건도 없었는데도 그 감정선을 쫓아가는데 무리가 없는 건 <봄밤>을 이루는 모든 디테일이 전하는 심리묘사가 풍성해서다. 그러니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예쁘다. <봄밤>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