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판석 PD “최고의 리얼리티가 최고의 판타지를 만든다.”



내가 안감독님 작품을 못놓는 이유





보통 미니시리즈는 무박 60일, 80일씩 찍지 않나. 그것도 연출 B팀, C팀까지 돌리면서. 나는 그게 맘에 들지 않는다. 작품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시선이 중요하고, 일관성이 중요하다. 한 명의 연출가가 하나의 작품을 완주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한 모든 예술은 휴머니즘을 위해 존재하는 건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이나 일상의 행복이 무시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질, 성공과 실패 이런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거라고 본다. 철저하게 쉴 시간을 주고, 잘 시간을 주고, 씻을 시간을 주고, 노닥거릴 시간을 주고. 그걸 지키는 게 첫 번째 목표다. 내가 잘 한 것은 그걸 지켰다는 거다. 그걸 자랑하고 싶다. 너무 잠을 잘 자고, 너무 맛있게 먹고, 너무 즐겁게 노닥거리면서 끝까지 해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든다.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물리적으로 공이 많이 들 수밖에 없어 보이는 작품인데. 아까 말했던 것들이다. 음악을 얼마만큼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왔을 때, 확실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 2~30초라는 식이 아니고 22초.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 실수하면 그 감각이 몸에 새겨진다. 만약 이 장면에서 엑스트라가 몇 명 필요한가? 2~30명이 아니고 22명. 이렇게 정했는데 결과적으로 부족하거나 넘치면 그게 구체적으로 몸에 각인된다. ‘이건 25명이 맞구나’라는 식으로. 그렇게 음악의 분량, 필요한 사람, 필요한 장소 등등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결과를 보면서 훈련을 쌓아 왔으니까 몸에 새겨진 게 많은 거다. 이젠 틀릴 일도 별로 없고, 시간 걸릴 일도 없고, 일이 너무 빠른 거다.

그렇듯 정교한 예측치 또한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일 텐데. 27년을 했다. 조연출 첫날부터 쌓인 게 여기까지 온 거다. 만약 처음부터 “엑스트라는 2~30명 정도?” 이런 식으로 대충대충 판단해 왔다면 10년, 100년을 해도 늘지가 않았을 거다. 한번이라도 결과에 구체적으로 책임을 져 보면 그 다음부터 같은 실수는 없다. 드라마 연출이 얼마나 복잡한가. 모든 파트에서 그렇게 하나씩 연습해 나가면 정말 정확해진다. 이다음엔 또 나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