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 커피 브랜드에 갔다가 홍보 영상을 짧게 보고 저녁에 케이블을 뒤적뒤적하니 재방을 하고 있더라. 내가 본 건 2회 끝부분하고 3회, 4회인데 드라마가 느낌이 좋아서 나름의 감상을 적어볼까해.


내가 느낀 큰 감정은 일상성과 서정성이었어.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약국 - 그러나 남주같은 약사는 없겠지 - 과 도서관이 일상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해. 남주, 여주에게 주어진 공간만큼이나 그들의 상황도 겉으로는 크게 모난 건 없어보여. 그러나 인물을 조금 더 파고들면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캐릭터의 특성이 나오게 되지.


남주를 살펴보면 그는 즉 사연있는 남자야. 가벼운 연애로 끝날 수도 있던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졸지에 애아빠가 되었지. 그래서 그는 당연히 사랑을 꿈꿀 수 있는 빛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도 그리고 타인으로부터도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딱지를 피하지 못해. 그래서 그의 심리적 행동 반경이 제한되지만 모친의 말대로 '와야하는 사랑'이 와버렸고 그는 어렵사리 용기를 내보게 되는데 역시나 현실은 녹록치 않지.


다만, 2회 마지막에서 '나는 아이가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정인이 했던 말, '유부남은 아니니 나쁜 놈은 아니네요' 이 말에 그는 이해받은 기분을 느꼈을지도 몰라.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늘 움츠려드는 마음에 한가닥 위안을 받지 않았을까.


어렵사리 품은 마음을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아이가 입원하고 그로 인해 지호는 깨닫게 되지. 자신은 남자가 아닌 애아빠라는 사실을. 그래서 정인에게 마음을 접었다고 했지만 그 마음이 그리 쉽게 접힐 리가. 친구 자리라도 한칸 허락받고 좋아하며 차를 가지러 가는 모습에서 지호도 숨 쉴 구석이 필요한 평범한 남자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정인이 태우고 가면서 내내 미소짓던 그 얼굴, 딱 오늘부터 1일 분위기 아니었니.


정인이 공룡 스티커를 폰으로 찍을 때 작가님의 내공이 상당하다고 생각했어. 애아빠인 지호는 정인의 그런 모습에서 자신의 평범치 않은 모습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끼고 편안했을테니까. 정인 입장에서는 그녀는 늘 그렇듯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려는 마음이었을테고. 둘 다 예쁘다.


남주를 살펴봤으니 여주를 살펴볼까. 정인은 자식을 맘대로 휘두르려는 아버지밑에서 제 의견을 숙이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아. 지금 만나는 남자도 결혼이 목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연인으로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지내왔던 것 같은데 애정 자체는 그리 강해보이지 않아. 어느 날, 사고처럼 지호라는 남자가 눈에 들어오고 넌지시 정인에게 마음을 내보이는 그에게 '난 결혼할 사람이 있어요'라며 선을 그어보지만 이미 마음은 지호쪽으로 흔들리고 있지.


재미있는 포인트는 정인이 자신의 마음을 혼란스러워하면서 지호에게 '친구'라는 이름의 옆자리를 허락하는 거야.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신경쓰이고 끝끝내 약국까지 찾아가는 자신이 이해되지 않지만 지호를 완전히 뚝 잘라낼 수 없는 정인이 선택한 방법, 친구. 타인에게 투명하게 보이는 정인의 변화가 정작 본인에게는 혼돈의 카오스라는 거, 이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언제나 똑부러지는 사람이라 더 그럴지도. 지호네가 도서관에 오기전에 머리를 가다듬었다가 너무 신경쓰는 자신이 맘에 안 들어 다시 살짝 흩뜨리는 장면, 이 드라마 디테일 쩔더라.


이렇게 자신의 처지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쉽지 않은 남자와 이미 마음에 큰 변화가 있음에도 아직 인정하지 못한 여자의 연애, 오랜만에 지켜보고 싶게 만드는 커플인 것 같아.


눈 내리는 밤, 지호가 정인의 연락을 받고 급히 나갈 때 빌라 층층이 켜지던 불, 약국에서 손에 꼭 쥐고 있던 종이컵... 평범한데 드라마안에서는 서정적인 느낌이 들어. 권력형 비리나 막장 드라마에 지친 나에게는 잔잔해보이지만 차곡차곡 전개되는 일상 로맨스물이 가뭄의 단비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