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이야기한대로 주말에 1-4회를 보고 왔지. 느낀 점이 있어서 정리해볼까 해.


나는 1회를 보기 전에 막연히 약국에서 술 깨는 약 먹는 장면이 첫장면이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정인이 친구네 집에서 노는 거하고 지호가 농구경기하는 장면이 스타트를 끊었더라. 보통 작가들은 첫회에 앞으로의 전개에 필요한 밑밥을 깔게 되는데 특히 처음에 보여주는 장면은 극 전체의 방향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러니 이번 리뷰에서는 드라마의 첫장면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자.


정인은 친구와 노닥거리기전에 남친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지. 마치 그저 평범한 지인에게서 온 전화처럼 받아버리는 정인을 보고 친구는 너네 중년부부같다고 해. 정인도 그에 딱히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하지 않지. 정인과 그의 남친이 언제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이미 무덤덤한 사이라는 걸 작가는 보여주는데 이는 곧 후에 나올 지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넉넉하다는 걸 의미하지.


이제 지호가 농구경기를 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코트 여기저기를 누비며 일대일 마크를 가볍게 제치고 레이업슛을 여러 차례 성공시키는 그의 등번호는 23번이야. 이 번호는 농구황제라 불린 ㅁㅇㅋ ㅈㄷ의 등번호이기도 해. 어째서 작가는 지호에게 농구황제의 등번호를 부여한 것일까. 아마도 지호의 승부욕과 그것을 받쳐주는 실력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경기가 끝나고 지호는 기석을 처음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서도 '다음에 붙으면 안 봐드릴 거예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아. 이 말은 그 다음 경기에서 실제로 이루어져 지호는 기석의 밀착 마크를 따돌리고 여러번 슛을 넣게 되지. 중간에 기석의 파울에 지호가 바닥에 나동그라지기도 하지만 이는 지호의 프리드로우 성공으로 이루어져 득점으로 연결된다.


이미 비집고 들어갈 틈이 충분한 정인의 마음에 기석이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지호를 보며 난 이 드라마의 결말이 해피일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방해요소가 될만한 것들을 이제부터 짚어보자.


이 드라마의 빌런은 총 세명으로 이사장, 교장, 그리고 기석이야. 이들은 특출난 악역이라기보다는 기성세대의 찌든 관념을 영혼 깊이 간직하고 있거나 혹은 내면이 섬세하지 않은 보통 남자 사람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어.


첫번째로 이사장을 살펴보자면 그는 기석의 아버지로 결혼은 비즈니스라고 대놓고 말하는 비호감 인물이야. 그러나 정인을 며느리감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유커플에게는 유익한 악역이지.


두번째로 교장을 보면 그는 정인 아버지로 곧 은퇴를 앞두고 노후 생활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그의 첫 장면에 노후 월 500 벌기에 대한 책이 나왔었거든. 이렇게 경제적 불안을 떠안은 그는 정인과 기석을 결혼시켜 이사장에 대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계획인 것 같아. 후에 첫째딸과 막내가 계획대로 되지 않은 걸 알았을 때 교장은 정인에게 모든 희망을 몰빵할 수 밖에 없는데 정인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엄청난 반대를 할 것 같아. 요주의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기석이를 보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인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그는 보기보다 정인을 마음에 깊게 두고 있는 것 같아. 겉으로는 낭만적이지도 않고 정성스럽지도 않지만 어쨌거나 내 짝은 정인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 무심한 듯해도 정인의 미세한 변화를 잘 알아차리고 나름의 방법으로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남자인데 이런 그가 결혼을 목전에 두고 정인을 뺏기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기석은 사랑을 잃었다는 점에서 슬퍼하기보다는 굴러온 돌에 애인을 빼앗겼다는 분노와 그 놈이 그리 대단한 놈이 아닌 오히려 불쌍한 놈이라는 점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폭발할 것 같다. 애 있는 사연 많은 남자인 지호와 정인이 사귀게 되면 기석은 모임에서 결혼할 여자 뺏긴 등신 취급을 받겠지. 과거 커피숍에서 '누가 좋아해, 그런 놈을.' 이라고 말했던 그인데 여친이 좋아하는 놈이 그 놈이면 속이 뒤집어지고 눈도 뒤집어지겠지. 정인 말로 자존심이 세다고 하니 이 드라마의 최강 빌런은 기석이 될 확률이 높다.


어쨌거나 이 빌런들을 지호가 박카스 한 박스를 모조리 마시고 커버친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남은 장애물이 있어.


그건 바로 불특정다수의 수근거림. 이것에 지호는 면역이 되어 있지만 온실속 화초처럼 무난하게 자라온 - 어쨌거나 존중을 요구하면 존중받을 수 있었던 - 정인은 큰 고통을 느낄 수 밖에 없지. 지호와 사귄다는 이유만으로 가짜 뉴스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현실, 정인에게는 큰 모험이자 낯선 아픔일 거야. 정인이 지호를 얻으려면 세상에 대해 맷집과 깡을 길러야 하는데 그게 단기간에 길러지기 쉽지 않지.


지호와 정인은 각자 상대해야 할 외부의 적이 있지만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어.


그건 교제를 시작한 뒤 힘들어 하는 정인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는 지호가 관계를 아예 끝내버리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야. 그저 호감가는 상대에게도 구경거리가 되게 하기 싫어서 찻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지호인데 정인이 자신과 사귄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되고 여기저기 입에 오르내린다고 생각해봐. 지호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사랑이 깊어지는 만큼 정인에 대한 배려도 깊어질텐데 오히려 그 배려가 사랑을 베어버리는 검이 되지 않을까.


난 지호는 정인에 대해 좀 더 이기적으로 욕심을 내줬으면 좋겠고 정인은 세상에 대한 맷집과 깡을 키우기를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