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전장, 끝나지 않는 수 싸움의 역사

요즘 저그들의 득세는 이미 4년여 전부터 예견된 도도한 흐름이었다.


10년 이상 철옹성처럼 여겨졌던 저그의 정석 '3해처리'는 테란의 날카로운 '선엔베 5배럭'과 '레이트 메카닉'이라는 창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맵의 변화가 테란의 선엔베를 억제하자, 테란은 '1-1-1'이라는 새로운 해답을 들고나왔다.

 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저그가 절망 속에서 꺼내든 반격의 카드는 바로 '2해처리 뮤탈리스크'였다.


본디 2해처리 체제는 테란 바이오닉의 압도적인 물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오랜 정설이었다.

 하지만 진화는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수많은 아마추어 저그 유저들은 극한의 '미네랄 부스팅'과 '턴 레이트 24'를 활용한 정교한 뮤탈 운영을 완성해 냈다.

 이를 통해 쟁취한 빠른 3가스와 하이브 테크는 기존 테란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선엔베를 봉인해 버렸고, 굳건하던 1-1-1 체제마저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저그들의 공 1업 뮤탈리스크가 기존 3해처리에 비해 오래 살아남고, 더 강력해지자 전장의 판도가 뒤집혔다.


 센터를 장악하고 마인과 베슬로 저그의 숨통을 조이며 멀티를 늘려가던 테란은, 오히려 뮤탈리스크의 기동성에 손발이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테란은 생존을 위해 과거의 유산인 'SK테란'으로 회귀해야만 했다.


하지만 SK테란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에도 테란은 혹독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저그는 오버로드로 럴커를 겹쳐 가림으로써 베슬의 흉악한 '이레디에이트'를 무력화시키는 치밀함을 보였다.

 나아가 빠른 디파일러를 앞세워 4가스를 확보한 저그는, SK테란에겐 재앙과도 같은 '울트라리스크' 체제로 너무나도 유연하게 넘어가 버렸다.


끝없는 수세 속에서도 테란은 다시 한번 해답을 모색했다.

 그들이 하늘에서 찾은 변수는 다름 아닌 '배틀크루저'였다.

 최소한의 4개슬만 유지한 채 배틀크루저를 띄워, 저그가 애써 모은 가스를 스컬지에 강제로 소모하게 만드는 이 묘수는 꽤나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저그의 응수는 빠르고 가혹했다. 

그들은 곧바로 '히럴디파(히드라+럴커+디파일러)'라는 강력한 지상군 조합으로 화답했다.

 투스타포트 베슬 체제를 위해 탱크가 턱없이 부족했던 테란에게, 완성된 히럴디파의 한 타이밍은 는 너무나도 거셌고 방어선은 다시금 무너져 내렸다.


 그렇다면 피 튀기는 현재의 메타는 어떠한가?


 이제 테란에게 이른바 '큰 입구 막기'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열 경기 중 아홉 경기가 그렇다. 

 나아가 11배럭 대신 더 가난한 '10배럭'을 선택함으로써, 가로세로 위치의 저그에게 이른 타이밍부터 마린 압박을 가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 뼈를 깎는 초반 압박은 저그에게 억지로 저글링을 생산하게 강요했고, 이를 바탕으로 테란은 선엔베 체제를 갖추어 뮤탈·저글링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는 곧 저그의 3가스를 단속하는, 테란에게 가장 전통적이고 이상적인 승리 구도의 부활이었다.


하지만 저그 역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11앞마당 후 빠른 스포닝풀'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테란의 10배럭 압박을 원천 봉쇄해 버렸다. 결국 주도권의 추는 또다시 저그에게로 기울었다. 


이것이 엎치락뒤치락하는 현 메타의 잔혹한 주소다.


벼랑 끝에 몰린 테란은 이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패를 쥐어짜 내고 있다. '생더블'로 극단적인 배를 불리기도 하고, 마린의 사업조차 생략한 채 2배럭에서 빠르게 팩토리를 올려 '발키리 한 방'을 준비하기도 하며, 정통 메카닉이나 앞마당 이후의 '발리오닉(발키리+바이오닉)' 체제까지 서슴지 않고 꺼내 든다.


이 치열한 진화의 쳇바퀴 속에서, 한때 저그의 필승 카드였던 '바깥 3해처리'는 테란의 속업 벌쳐와 발키리 조합에 의해 완벽하게 사장되었다. 

반대로 불과 3~4년 전만 해도 2해처리의 완벽한 카운터로 군림했던 테란의 '21아카데미'는 이제 저그에게 생채기조차 내지 못하는 낡은 유물이 되어버렸다.


이토록 잔혹하고도 눈부신 종족 전쟁의 끝에서, 다음 세대의 패러다임은 과연 누가 제시할 것인가.


나는 그 치열한 전장의 최전선에서 다시 한번 진화를 일궈낼 두 이름, 김지성과 이영호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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