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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래 -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조, 양(梁, 502-557년)나라 때...


양나라가 건국되자마자 태자로 책봉된 소통(蕭統)은 사후에 소명태자(昭明太子)라 추시된 인물이다.


소명태자는 매우 총명하여, 세 살 때 이미 논어와 효경을 읽었고, 다섯 살 때는 오경을 모두 독파했다고 전해진다.


성인이 된 후에는 국정에 참여하여 어진 정치를 펼쳤으며, 


개인적으로는 문장가로서도 굉장히 유명해 당대 문인들이 그의 주변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소명태자는 이 문인들과 함께 고대 주나라 시대부터 당대 양나라 때까지의 문학작품을 


문형별, 시대별로 분류해 『문선(文選)』이라는 문집을 엮었다.


문선(文選)은 육조문화를 대표하는 문집이었고, 우리나라 한문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 문선(文選)에 잡시(雜詩)편에 작자불명의 시가 있는데, 그 시는 이러하다.



去者日以疎(거자일이소)

떠난 사람은 나날이 멀어지고


來者日以親(내자일이친)

오는 사람은 나날이 친해지네


出郭門直視(출곽문직시)

성문을 나서 곧바로 바라보니


但見丘與墳(단견구여분)

보이는 것 언덕과 무덤뿐이네


古墓黎爲田(고묘여위전)

옛무덤은 뭉개져서 밭이 되고



이 시의 첫 줄을 줄인 것이 바로 '거자일소(去者日疎)' 라는 사자성어이다.


해석처럼  "친한 사람도 멀어지면 사이가 멀어진다" 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죽은 사람은 세월이 흐를 수록 잊혀지기 쉬워 인생을 되돌아보고  반성을 담아내는 표현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文選(문선) 雜詩(잡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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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래 -


삼국시대 촉(蜀)나라가 오(吳)나라를 침공(侵攻)하려던 때...


오왕(吳王) 손권(孫權)은 위(魏)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사신으로 조자(趙咨)라는 인물을 보냈다. 


위왕(魏王) 조비(曺丕)가 그를 맞아 손권(孫權)에 대하여 묻자 조자(趙咨)는, 


"총명함과 지혜로움, 어짐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계략을 가진 분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조비가 이 말을 듣고 비웃자 조자는, 


"오(吳)나라에는 백만의 군대와 천연의 험악한 지형을 가지고 있어 


두려움이 없으나 남의 나라를 침략하려 드는 촉을 혼내 주기 위해 


구원병을 청하러 온 것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조비는 짐짓 놀라 


"그대와 같은 인물은 오(吳)나라에 몇이나 있는가?"


하고 묻자, 조자는 답했다. 


"저와 같은 인물은 수레에 싣고 말로 될 정도(車載斗量)로 많이 있습니다."


조비는 조자의 이 말을 듣고 매우 감탄하여 두 나라는 군사동맹을 맺게 되었다.


삼국지(三國志)의 오서(吳書) 오주손권전(吳主孫權傳)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