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저기……”

 

아주 작고부서질 듯 약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마유리는 또렷하게 들었다.

 

방금 그 목소리설마……

 

마유리는 소녀를 감싸던 팔을 조금 풀고멍한 얼굴로 소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소녀의 눈은 여전히 총구를 보고 있었다하지만 입술이 아주 조금 벌어졌다.

 

죽으면… 만날 수 있어?”

 

그건 분명히 소녀의 목소리였다.

 

뭐라고?”

 

병사가 되물었다.

 

죽으면…… 행복한 곳에 갈 수 있어?”

 

… 무슨 소리야?”

 

죽으면아빠 엄마를 만날 수 있어?”

 

거의 사라질 듯 작은 소리.

 

엄마를… 만날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은아이의 절규였다.

어린 소녀의.

 

그럼… 나를 죽여 줘…… 죽여 줘.”

 

그것이 그녀의 바람이었다.

태어나서부터눈에 비친 것이 지옥뿐이었던 소녀의 바람.

 

아빠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날 죽여 줘.”

 

소녀의 부모는 그녀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모를 만나고 싶어 했다.

죽은 뒤의 천국을 갈망했다.

 

제발… 날 죽여 줘……”

 

마유리의 눈물은 터져 나왔고목구멍에서는 울음이 새어 나왔다.

 

마유리는 이 맑은 눈이 보아 온 냉혹함을 떠올렸다.

이 작은 마음이 짊어진 잔혹함을.

이 작은 몸이 겪어 온 모든 폭력을.

 

그 아이가 얼마나 많은 슬픔을 겪었는지.

얼마나 많은 비참한 현실을 겪었는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삼켰는지.

 

사람은 희망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미래에 희망이 있고과거에 행복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언젠가 다시 올지도 모를 기쁨을 위해.

웃음을 위해.

 

하지만 이 아이의 과거에는 어둠만 있다절망뿐이다.

 

과거의 절망미래의 절망.

어둠에 잠긴 과거어둠에 덮인 미래.

그리고 텅 빈 현재——.

 

이 아이에게 남은 유일한 탈출구는 죽음뿐이었다.

 

마유리는 자신이 공허하다고 생각해 왔다.

이렇게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 고민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는지지금 깨달았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포기하고죽음을 바라는 소녀가 눈앞에 있는데.

 

그런데 마유리는이 아이를 껴안으며 그 체온을 느꼈다.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만약자신의 앞으로의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다면——

 

제발…… 살아 줘.”

 

마유리는 소녀를 더 꽉 껴안았다.

맞닿은 몸에서소녀의 심장 박동이 전해졌다.

 

내가 네 안을 채워 줄게……”

 

네 텅 빈 마음을.

 

내가 너에게 줄게……”

 

모든 따뜻함과기쁨을.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할게……”

 

살아갈 희망을.

 

그러니까.

 

죽여 달라는 말은 하지 마살아 줘부탁이야…….”

 

우리 같이 살자.”

 

……?”

 

마유리가 고개를 들자소녀는 처음으로 마유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 울어……?”

 

이건——

 

미안해……”

 

왜 사.과해……?”

 

똑바로 마유리를 바라보는 눈빛.

 

왜인지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그래도미안해……”

 

마유리는 다시 소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소녀가 품 안에서 살짝 움직였다.

 

미안아프게 했어?”

 

아냐…… 따뜻해……”

 

소녀가…… 웃었다.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소녀가 인간의 따뜻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마유리의 눈물이 굵은 방울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유리는 맹세했다.

 

자신의 미래를 이 아이에게 바치겠다고.

이 아이의 과거를 행복으로 채우겠다고.

이 아이의 미래를 빛으로 채우겠다고.

이 아이가 살아갈 수 있게 하겠다고.

 

마유리는 마침내 이해했다.

왜 오카베가 자신에게 지상에서 살아가길 바랐는지.

 

고마워.”

 

마유리는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오카베에게 향한 것인지이 아이에게 향한 것인지자신도 알 수 없었다.

 

고마워…… 고마워……”

 

마유리가 반복하자소녀의 작은 손이 마유리의 뺨에 닿았다.

 

울지 마……”

 

소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마유리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고마워……”

 

뺨 위의 작은 손.

마유리가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덮는 순간

 

뒤에서 거친 고함이 터졌다.

 

거기까지다이 새끼들!”

 

돌아보니그 병사가 총을 들고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마유리와 소녀가 그의 명령도 존재도 무시한 채 대화를 나누는 것이병사에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노한 병사는 총을 들고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마유리는 있는 힘껏 소녀를 끌어안았다.

 

그때 소녀도마유리를 꼭 끌어안았다.

마유리는 소녀의 손이 자신의 등을 힘있게 붙잡는 것을 느꼈다.

 

살고 싶다——

그것은 처음으로소녀가 품은 생에 대한 의지였다.

 

——부탁이야이 아이를……

 

마유리는 강하게 기도했다.

 

——살려 줘.

 

병사의 손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멀리서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마유리!”

 

루카가 공원에 도착해 가장 먼저 본 것은소녀를 껴안은 마유리와 그들에게 총을 겨누는 병사였다.

 

루카는 재빨리 총을 들어 올렸다.

 

젠장늦었어!

 

루카가 조준하기도 전에 병사가 먼저 쏠 것이다.

 

제발!

 

루카가 그렇게 기도하는 순간,

거대한 폭발음이 잿빛 하늘을 갈랐다.

 

순식간에 공원 안의 병사들이 술렁였다.

마유리에게 총을 겨누던 병사도 이상 징후의 방향으로 몸을 돌려동료들에게 달려갔다.

 

혼란에 빠진 병사들은 무전으로 상황을 주고받더니황급히 공원을 빠져나갔다.

 

모든 일은 너무도 빠르게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루카는 얼떨떨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다곧 통신을 받았다.

 

루카마유리 괜찮아?!”

 

통신기 너머로 페이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카는 그제야 이해했다방금 폭발은 페이리스 일행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루카가 정보를 얻었다면 다루들도 곧 블랙마켓 단속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 정보는 가짜였고진짜 표적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루카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완전히 적에게 끌려다녔다.

 

“……루카들려루카!”

 

아마 방금 폭발은 ‘연막이었을 것이다발키리 측 병력은 즉시 철수했다그들의 엄호 덕분에공원 사람들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괜찮아마유리는 무사해.”

 

루카는 간신히 페이리스에게 대답하면서도눈앞의 광경에 시선이 붙들렸다.

 

그곳에는모녀가 서로 껴안고 울고 있었다.

 

그래모녀였다.

 

루카는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은 복수심에 눈이 멀어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오카베가 자신에게 준 이름방인(防人)—

수호자’.

 

해야 할 것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다.

해야 할 것은 복수가 아니라 보호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것그것이 자신의 사명.

 

그리고 지켜야 할 것은지금 이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