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빈자리 꿰찬 ‘식자재마트’에 난감해진 소상공인

슈퍼마켓에 식자재마트 업태 접목한 ‘변종 식자재마트’ 급증... 관련 규제 필요성 목소리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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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헌 기자 yjh@vop.co.kr
발행2021-12-30 08:48:09 수정2021-12-30 15:45:42
08055924_11.jpg양주시에 위치한 식자재마트 자료사진ⓒ민중의소리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에서 15년째 슈퍼마켓을 운영 중인 A(62)씨는 지난 2019년 말 인근에 ‘ㅁ’식자재마트가 들어서며 매출이 크게 줄었다. 식자재마트가 생기기 전인 2018년 8천만원 정도였던 연매출은 지난해 5천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점포의 입지 조건이 좋은 편이기에 이 정도에 그쳤다. 골목 안쪽에 있는 슈퍼나 정육점, 채소가게 등의 매출은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ㅁ’식자재마트는 식자재마트라는 이름과 달리 대형마트 못지않게 다양한 상품을 취급했다. 일정금액 이상 구매시 배달까지 가능하다. 언제부턴가 동네에서 장을 보던 주민 대부분이 ‘ㅁ’식자재마트를 찾았다.”

식자재마트가 유통업계의 새로운 포식자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유통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식자재마트가 빠르게 성장하며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모양새다.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급성장한 식자재마트가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빈자리를 꿰차며 소상공인들을 위협하고 있다.

본래 식자재마트란 농·축·수산물을 직접 떼어다 식당이나 소매점들을 대상으로 저렴하게 공급하는 점포를 말한다. 하지만 최근엔 일부 점포들이 식자재 외에도 일반 마트에서 판매하는 공산품 등을 취급하며 주 소비층을 일반 고객으로까지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규모에서만 조금 차이를 보일 뿐 대형마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29070159_4.jpg대형마트 의무휴업 자료사진ⓒ뉴시스

대형마트 관련 규제 피한 ‘식자재마트’, 소상공인 생계 위협

문제는 이들 식자재마트가 관련 규제를 모두 피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마트와 SSM의 경우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시행령에 따라 전통시장 반경 1km 이내에 출점이 제한된다. 이미 있는 대형마트는 월 2회 의무휴업을 실시해야 한다.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도 금지한다.

반면 식자재마트는 이 같은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유통법에 따라 대규모점포(대형마트·SSM)는 매장 면적의 합계가 3,000㎡ 이상이거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상점만 해당한다. 따라서 규모를 3,000㎡ 이하로만 한다면 대기업이 아닌 사업자가 운영하는 식자재마트는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대부분의 식자재마트가 연중무휴인데다, 24시간 영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식자재마트의 성장세도 무섭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유통학회로부터 받은 자료를 살펴보면 2020년 9월 기준 국내 식자재마트 사업체 수는 총 1,803개다. 전체 시장은 약 9조7,513억원(2019년10월~2020년9월) 규모다. 사업체당 월평균 5억4,200여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이런 식자재 마트 점포 수는 5년(2014~2019년)새 74%나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상공인들은 식자재마트로 인해 생계를 위협당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대형 식자재마트들의 경우 대기업이 운영하는 게 아니다뿐이지 규모면에선 대형마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입점제한도 없다 보니 골목상권 깊숙이까지 들어와 소상공인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식자재마트가 오히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오 회장은 “식자재마트가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점포로 분류돼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로 선정됐다”면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수혜를 받았다. 코로나19 이전보다 오히려 매출이 더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국내 최대 식자재마트로 꼽히는 세계로마트의 경우 지난해 3,977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사상 최대 매출을 갱신했다. 직전년도(3,328억원) 대비 약 20%가량 늘어난 실적이다. 장보고식자재마트의 2020년 매출 역시 2019년(3,164억원) 대비 17% 성장한 3,770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식자재마트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임원배 회장은 “상당수의 식자재마트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면적을 3,000㎡가 조금 안 되게 한다거나, 3,000㎡가 넘는 매장을 쪼개서 운영하는 식의 꼼수가 난무하고 있다”면서 “규제를 통해 이러한 꼼수 운영을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 규제대상 면적도 1,000㎡ 이하로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식자재마트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장인수 더불어민주당 전 중앙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식자재마트 영업규제를 촉구하며 지난 3월 삼보일배 시위를 진행했다. 당시 장 부의장은 “식자재마트에 채소·과일·식품만 판매하는 줄 알았더니 실제론 공산품·생활용품 등 없는 물건이 없었다”며 “대형마트와 다를 게 없다면 대형마트에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일부 지자체의 경우 식자재마트 입점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먼저 대구시는 지난 2015년 '서민경제 특별진흥지구 지정·운영 조례'를 통해 전통시장 1㎞ 내에 식자재마트 진입을 제한했다. 조례엔 영업을 시작하기 전 사업자가 '상권영향 평가서'와 '지역협력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부산시 의회도 지난해 9월 '골목상권보호지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사업자가 '상권영향 평가서'와 '지역협력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게 주요 골자다. 또 개설지역과 시기를 예고하고 지역업체가 생산한 상품의 납품 확대, 지역 주민 고용촉진 등을 제도화했다.

04034436_3.jpg전통시장 자료사진ⓒ뉴시스

식자재유통협회 “슈퍼마켓에 식자재마트 업태 접목한 ‘변종 식자재마트’ 문제”

반면 식자재마트 업계는 이 같은 운영이 기존 슈퍼마켓 사업자들이 식자재마트 업태를 접목해 만든 일종의 ‘변종 식자재마트’라는 입장이다. 아직 이들 변종 식자재마트들에 대한 산업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관련 통계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식자재유통협회 관계자는 “제도적으로 식자재마트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변종 식자재마트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자재유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식자재마트에서 소매형 식자재마트(변종 식자재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고 40%는 하나로식자재마트나 코스트코와 같은 대형 식자재마트였다. 나머지 17% 정도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도매형 식자재마트다.

하지만 식자재마트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식자재유통협회 관계자는 “변종 식자재마트 역시 대부분이 개인 또는 소상공인 중심으로 시작해 성장해 왔다”면서 “현재도 대부분의 매장은 소상공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더군다나 요즘 온라인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식자제마트에 대한 규제를 한다고 해도 사실상 소상공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작을 것”이라며 “차라리 취약한 소상공인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과 제도가 의미 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