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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적 농지제도 역사는 봉1910∼1918년에 일제가 시행한 조선토지조사사업, 1950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실시한 농지개혁사업, 그리고 1994년 「농지법」 제정의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현재 농업과 농지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농지제도의 근간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이다. 이 사상은 제헌헌법에서 6공화국 헌법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경자유전의 제도화가 역설적이게도 시장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뤄진 것이다. 1948년 제헌의회는 헌법 제86조에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라고 명시했다. 이어 1949년 6월 이승만 정부는 ‘유상매입 유상분배’가 핵심인 농지개혁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앞서 미군정이 ‘유상매입 무상분배’를 추진하고 북이 1946년 5월 ‘무상몰수’ 토지개혁안을 통과시킴으로서 남쪽정부의 한계를 노출했다.
3천만 국민의 염원이었던 경자유전
당시 국민들의 염원은 경자유전에 있었다. 경향신문은 국회에 농지개혁법안 상정기사를 1면에 다루며 3천만 국민이 경자유전을 갈망한다고 제목을 뽑았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날 상정안은 토론이 길어져 산회하고 말았다.
1949년 3월11일자 경향신문ⓒ경향신문 캡쳐우리 헌법은 농지에 대해서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제121조 제1항)고 분명히 못 박고 있다. 그리고는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ㆍ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제122조)고 하여 토지재산권에 대한 국가권한을 광범위하게 부여했다. 분배된 농지의 상속이나 매매 등 소유권을 처분하는 행위도 엄격하게 제한했고, 농지의 소작·임대차·위탁경영을 금지했다.
그러나 1980년 헌법 개정은 농지임대차와 위탁경영을 허용했다.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제121조 제2항)는 내용이 헌법에 담겼다. 이로 인한 임차농지와 임차농가는 계속 늘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개헌에도 ‘소작금지’ 조항은 유지되었다. 1987년 개헌에서 “국가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경자유전’을 재확인했다.(제121조 1항) 그러나 하위 법률은 거꾸로 가기 일쑤였다. 헌법의 ‘예외조항’(121조 2항)이 문제였다. 1996년 농지개혁법이 폐지되고 농지법이 제정된 뒤 개정을 거듭했다. 지난 8월 17일 개정까지 포함 총 60여 차례 농지법 개정이 있었다. 이로 인해 예외조항이 많아져 본질이 호도되는 괴물이 되었다. 누구든 법망 사이를 오가며 사실상 농지를 무제한 소유하고 쉽게 전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90년대 무너진 경자유전 원칙
일제강점기 소작농 비율은 65%에 이르렀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 임차농지 비율은 60% 안팎을 오간다. 1990년대 들어서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더욱 급격하게 무너졌다. 1990년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이 제정되면서 영농조합법인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소작제도 금지 등의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당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농지개혁법에서 정한 경자유전이 가족 단위로 자작하는 농가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를 망가뜨리고, 농지 소유 상한을 3만㎡(9075평·3㏊)로 규정해 대지주가 나오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은 것을 훼손한 것이다.
농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농지임대차 관리방안연구 농촌경제연구원 채광석, 김홍상, 윤성은 - 2016ⓒ농촌경제연구원문제는 1950년 농지개혁법이 제정되고 난 후 1996년 농지법이 제정되기까지 44년간 농지제도와 관련된 법은 시기마다 정부마다 정책마다 따로 법을 만들어 관리해왔다. 그렇게 복잡한 법들로 필요할 때마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흔들었고 소작금지제는 무용지물이 되어갔다. 농지 관련법이 헌법과 농지개혁법을 제하고도 21개 법안으로 이루어져 농지관리의 효율적 측면이 훼손되었다. 또한, 필요할 때마다 법을 만들고 개정하기를 반복해 신자유주의 시장구조에 농업이 쉽게 편입되도록 한 것이다.
농지관련법
농지관련법ⓒ농촌경제연구원 농지관련법령 정비연구표에서 보는 것과 같이 농지와 관련된 법들은 농지개혁법 이후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개정되고 폐지되기를 거듭하였다. 이유야 국토개발이지만 그 과정에서 농지의 타용도 전용은 극심해지고 농민들은 탈 이농의 대열에 서야 했다. 많은 농지관련법령 가운데서도 농촌근대화촉진법(1970)과 농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1972.12.18.) 농지임대차관리법(1986)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의 제정 의미와 개정실태를 보면 농지의 보전과 개발 사이에 많은 갈등이 보인다. 이 갈등의 구조는 늘 개발 쪽에 손을 들어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농촌근대화촉진법(1970)은 “제1조 (목적) 이 법은 농지의 개량·개발·보전 및 집단화와 농업의 기계화에 의한 농업생산력을 증진시키고 농가주택을 개량함으로써 농촌근대화를 촉진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타 법률 내용 인용)
박정희 정권이 추구한 ‘농촌근대화’는
오히려 농촌근대화촉진법으로 인하여
부실한 재정과 방만한 운영이라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은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기점으로 주곡 증산, 농공병진을 표방했다. 토지개량사업을 위한 대규모 차관을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도입하였다. 따라서 농촌근대화촉진법은 농업생산력 증대를 추구한 박정희정권 농정방침의 결과물이었다. 이에 따라서 대규모 토지개량사업을 위한 농업진흥공사와 토지개량조합을 합병하여 농지개량조합을 설립하였다. 이는 정권의 인사개입과 거듭된 하청구조 속에서 부실한 재정을 운영하는 등 비합리적인 기관으로 변질되었다. 이는 본래 농민들의 자발적 기구로 만들어졌던 농지조합을 정부가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장기채와 과다한 인력 등 문제에 시달리며 농민들의 불만이 팽배해졌다.
박정희 정권이 추구한 ‘농촌근대화’는 오히려 농촌근대화촉진법으로 인하여 부실한 재정과 방만한 운영이라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농업생산력 증대와 농촌근대화를 위한 여러 사업에서 당사자인 농민이 소외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부의 지원과 주도가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법은 1996년 폐지 될 때까지 12차례의 개정을 거쳤다. 그만큼 부실과 운영상의 허점이 노출된 결과였을 것이다.
1979년 10월 26일 완공된 삽교천의 농지 모습(박정희는 궁정동에서 삽교천 완공기념 술자리를 벌였다가 저격당한다.)ⓒ기타‘농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1972년 12월 18일 제정)은 1973년 1월 1일 법률 제2373호로 발효되었다. “농촌의 도시화와 각종 건설사업의 추진에 따르는 농지의 잠식과 도시주변 등에 있는 농지의 유휴화로 말미암아 농업증산이 저해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처하여 앞으로 농지의 전용을 적절히 규제하여 이의 보전을 도모하고 그 이용도를 높임으로써 농업생산력의 증진에 기여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도시확장으로 비롯된 토지의 수용을 허가함으로 상대적으로 농지의 축소로 이어지는 법안이었다. 그러나 무분별한 전용이 이루어지자 급기야 “식량의 안보적 차원과 지속적인 식량자급을 통한 국민식생활의 안정을 기하기 위하여 농업생산기반인 농지의 보전이 무엇보다도 시급히 요청되고 있어 농지의 전용을 억제하고 농지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보전·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임”이라고 밝히며 농지 전용부담금을 부과하는 등 법안을 강화하는 듯 보였다.(국가법령정보센타 법률 내용 인용)
항상 농업생산성 보다는
토지생산성에 잣대를 들이대어
농지 전용은 극심해졌다.
그러나 항상 농업생산성 보다는 토지생산성에 잣대를 들이대어 농지 전용은 극심해졌을 뿐이다. 이 법 또한 1996년 폐지 될 때까지 16번이나 개정되었는데 이때마다 국토의 이용과 개발 또는 공업단지, 관광지법 등에 의해 개정되었다.
‘농지임대차관리법’(1986년 12월 31일 제정)은 법률 제3888호로 1987년 10월 1일 발효되었다. 농지임대차관리법은 “대차농지가 전 농지 면적에 비하여 차지하는 비율이 1950년 농지개혁 당시에는 8퍼센트에 불과하였으나 1985년 말 현재에는 30.5%로서 그간 매년 증가되어 온 추세이고, 총대차료가 5,095억 원에 달하여 그것이 농촌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는 실정이어서 농지임대차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입법화하여 농지임대차당사자 쌍방의 권익을 보호하고, 임차농가의 과다한 임차료의 부담을 경감하는 동시에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과 농업생산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했다. (농촌경제연구원 채광석)
그러나 이 법은 임차인을 보호하고 농지임대차를 양성화하겠다는 취지였으나 헌법상의 소작금지 조항을 무력화한다 하여 농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다. 서면계약 원칙, 최소 임대기간, 임차료상한제, 임대인의 지위승계, 계약의 갱신, 농지관리위원회 제도 등을 두었으나 실제 법과 현실의 괴리를 메울 수는 없었다. 임대차계약의 서면방식의 도입은 ‘자경(自耕)하지 않는다.’는 물증으로 남을 수 있어서 지주들의 반감을 샀다. 지주들에 의하여 임대차계약 해지통보가 빈번해지자 농민들은 그 원인이 농지임대차관리법에 있다고 보고, 그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게 되어 시행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사문화되고 말았다. 이처럼 농지임대차관리법의 강화가 아닌 폐지로 인하여 비농민들의 농지구입 열풍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농민들은 이들의 소작농으로 급속히 재편되기에 이른다.
정부는 1989년 4월 28일 농어촌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응책을 마련함으로써 21세기를 향한 농정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취지에서 농어촌발전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1990년 4월 7일 법률 제4228호로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을 제정해 농어촌공사를 설립하는 한편, 직업훈련과 생계비 지원 등 전업 지원제도와 추진체계의 구상을 밝혔다.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은 농어촌발전종합대책이 밝힌 주요 추진시책을 반영한 것이다. (국가법령정보센타 법률 내용 인용)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의 제정은 지난 시기 급속한 공업화 중심의 개발과정에서 초래된 농어촌문제 현실에 대한 인정, 그리고 그간 정부의 기존 대책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나 농어가 다수의 자생력 회복이란 면에서 미흡했다는 점에 대한 시인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직접적으로는 농수산물 수입자유화의 일정을 확정한 가운데 농어민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정부의 판단이 작용한 결과물이었다.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은 농어촌문제의 구조적·장기적 해법을 모색하되 정책이념을 형평성이 아닌 생산성 및 경쟁력에 두면서 농수산업을 기업형 경영체제로 전환시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헌법 정신 부정하는 망언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어왔던 분들이
경자유전에 너무 집착한다”
이와 같이 헌법과 농지법에서 경자유전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농지의 소유와 이용에 관한 규제가 폐지ㆍ완화되고 농지법의 예외적인 조항을 통하여 비농업인의 농지소유가 광범위하게 인정되면서 경자유전의 원칙과 자작농주의는 상당부분 훼손되었다. 즉 농지에 관한 기본이념과 원칙이 제시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이 제시되어 있지만 기본이념과 원칙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농지의 소유와 이용의 밀접한 연계 속에서 제도화된 경자유전의 원칙이라는 헌법상의 이념은 현실에서 깡그리 무시되고 말았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윤석열은 지난 8월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청년 정책토론회에서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어왔던 분들이 경자유전에 너무 집착한다”며 “이런 이유로 농업이 산업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업의 가치가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 설명될 수 있는지도 문제지만 농업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천박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헌법정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망언일 뿐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가 인식이 이러하니 현재 헌법상의 경자유전은 땅에 대한 소유욕망을 위해 존재하는 알리바이 같은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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