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211226112102444
[일본史람] 청년 입 틀어막은 제국 일본, 전장의 소모품으로 그들을 내던지다
[박광홍 기자]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는 그 어느때보다도 '청년'의 존재가 뜨겁게 호명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년 표심을 잡기 위해 각종 청년 관련 정책에 골몰하는 후보들을 보며, 청년이라는 단어가 새정치나 혁신의 상징으로 올라선 현실을 실감한다.
사회적으로 민중에 대한 억압과 통제가 극에 달했던 제국 일본에서도 청년들은 변혁을 갈구하던 주체였다. 젊은 학생들은 새로운 사상들을 접하고서 폭력적인 제국 체제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국가는 이들이 요구하는 '새정치'에 귀를 닫고서 투옥과 고문 등 탄압으로 응수했다.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국체사상의 광풍과 거듭되는 대외전쟁 속에서, 청년들이 꿈꾸던 새정치는 설자리가 없었다(관련 기사: 잘 알려지지 않은 '오야코동'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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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동생 와카나와 함께 여동생 와카나는 오빠 미노루에게 자주 편지를 썼다. 이에 해병단(일본 해군의 교육훈련 시설) 교관들은 '전의를 상실시킨다'는 이유로 와카나의 편지를 문제 삼으며 미노루를 질책했다. 미노루는 편지까지 검열받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일기에 남겼다. |
| ⓒ 니시와라 와카나(西原若菜) |
인간어뢰 카이텐(回天)특공대원이었던 와다 미노루(和田稔) 소위가 남긴 수기는, 입에 재갈이 물린 채 국가에 의해 소모품 취급을 받았던 청년의 비극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출전 후 인간어뢰에 갇혀 숨지기까지, 자신이 학교와 군대에서 느낀 감상을 무려 36권에 달하는 대학노트에 기록했다.
그러나 이미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총력전 체제의 제국 일본에서 그는 이상을 펼치기 어려웠다. 국가는 잠재적 동원 대상자인 소년들에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것'을 당연한 미덕으로서 주입했다. 전쟁이 예찬되고 자유가 억압되는 사회를 살아가며, 미노루는 동요와 방황을 거듭한다. 미노루는 "이 무서운 세상에서 또 하나의 신념이 사라졌다"고 까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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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학교 졸업, 고등학교 입학 시의 미노루 미노루는 학교가 지성을 기르는 곳이 아닌 병정을 만드는 시설로 전락한 현실에 대해 한탄하는 글을 남겼다. |
| ⓒ 치쿠마서방(筑摩書房) |
미노루는 무책임한 제국의 지도자들을 '이기주의'로 비판하며, 그들이 결국 국민 전체를 사지로 내몰 것을 예상했다. 결국 1941년 12월 8일,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한 새로운 전쟁의 개전 소식이 들려온다.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그는 면학정진을 거듭해 그토록 원하던 도쿄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한다. 그러나 신문지면과 라디오 등을 통해 먼 발치서 전해지던 전쟁의 현실은 어느새 그의 일상으로까지 파고 들어온다. 1943년, 독일군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참패, 에투 섬 일본군 수비대의 전멸, 이탈리아의 무조건 항복 등의 암울한 소식들이 거듭 전해지는 가운데 미노루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 해 말 그동안 법·문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던 징병유예가 폐지되면서, 법학부 학생이던 미노루는 결국 학도병으로 동원된다. 그는 자신이 장차 미래에 펼칠 수 있는 수많은 꿈보다도, 지금 당장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가치있게 평가되는 현실에 절망한다(관련 기사: 패전 후 돌아온 일본군 학도병이 어머니께 겨우 한 말).
내면의 소용돌이와 안타까운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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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이덴 기지에서의 미노루(중앙) 미노루는 일상화된 죽음을 접하며 고뇌의 나날을 보냈다. |
| ⓒ 치쿠마서방(筑摩書房) |
해군에 입대한 뒤, 미노루는 '군인 정신'이 철저하게 주입되던 환경 속에서도 삶과 죽음의 의미를 끊임없이 자문한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옥쇄'나 '전사' 소식은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못박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와중, '체격' 문제로 항공병과 지원에 탈락하고 좌절하던 그에게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
죽음에 대한 고뇌가 이어지던 일기 속에서, 처음으로 삶에 대한 희망이 엿보인다. 스스로 죽음의 운명을 납득하고자 노력하던 그는 어뢰정의 생존율이 높다는 이야기에 반색하는 듯하다. 이 희망의 끈을 잡고 싶었던 것인지, 그는 결국 어뢰를 다루는 수뢰학교에 지원해 합격한다. 그러나 이때의 선택이 결국 그의 생사를 좌우하고 말았다.
카이텐 기지에 배속된 이후, 죽음은 일상화된다. 함께 지내던 전우들이 공습을 맞고, 훈련 중 사고를 당해, 특공에 나가 목숨을 잃는 날들이 이어진다. 그 죽음들을 지켜보며, 미노루는 자신의 생명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해군군인'으로서 특공의 각오를 다지던 그는, 결국 카이텐 출격 직전에 이르러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일기장 위에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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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이텐 출격 당일 단검을 수여받는 미노루 일본군은 특공 출격에 앞서 국가신토적 의식을 행하며 특공대원의 사기를 북돋고자 했다. 미노루는 적을 발견하지 못해 귀항할 수 있었지만, 두달 뒤 훈련 중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
| ⓒ 치쿠마서방(筑摩書房) |
천만다행이도, 미노루와 인간어뢰를 실은 어뢰정은
이런 망한 나라 조선이니 대동아전쟁 이야기 하는애들은 뭔 생각으로 이런애길 하지
일본 자민당 정치인들이 요새 맨날 하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