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새 헌법 제정, 그리고 35세 사회주의자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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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연 기자 haeyeonchung5@gmail.com
발행2021-12-26 16:05:42 수정2021-12-26 16:05:42
26025019_NISI20211220_0018271502.jpg보리치 칠레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9일 당선 확정 이후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사진=뉴시스/AP

편집자주: 칠레의 11월 21일 대선 1차 투표에서 우파 후보가 1, 3, 4위를 차지해 무려 53.8%로 과반수를 넘었다. 하지만 지난 12월 19일 좌우 양자대결의 2차 투표에서 좌파의 가브리엘 보리치가 55% 대 44%로 승리했다. 우파의 말대로라면 칠레 국민이 공산주의와 자유 중에서 공산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2019년 10월 항쟁으로 독재시절 피노체트 헌법의 폐기를 쟁취한 칠레가 내년 새 헌법 제정을 앞두고 내린 선택이었다. 하지만 의회의 압도적인 과반을 확보해도 약속한 정책이 시행되지 않는 정권도 있다. 내년 3월에 등장할 보리치 정권을 어떻게 될까? 알자지라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Chile’s next president to govern historic transition

칠레의 차기 대통령은 개헌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에 나라를 이끌 것이다. 하지만 가브리엘 보리치가 내년에 취임하면 의회의 야권세력이 그의 야심찬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으로 보인다.

학생운동 지도자 출신의 35세 보리치 의원은 극우 후보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를 무려 11% 포인트 이상 앞서며 지난 19일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번 대선은 여성과 청년을 중심으로 2012년 의무투표제가 폐지된 이래 가장 높은 후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보리치는 대선에서 민영화된 연금제도의 전면적인 개혁, 보편적 건강보험, 누진세 강화, 인권 강화, 적극적인 기후변화 정책 등 광범위하게 사회민주주의와 페미니즘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정부 분권화와 지속적 개발 모델을 약속한 유일한 후보이기도 했다.

마티아스 가레톤 산티아고 알돌포이바네즈대학교 사회갈등⋅통합연구소 교수는 “칠레의 국가개발모델을 바꿔야 한다는 청년층의 의지가 확고하다. 그것이 1년 전만해도 당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던 보리치를 칠레의 최연소 대통령 당선자로 만든 보리치 돌풍의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고 했다.

새로 탄생할 칠레 헌법

취임하면 보리치는 칠레 중부인 산티아고나 발파라이소 지역 출신이 아닌 첫 대통령도 된다. 보리치는 산티아고 남쪽으로 2,180킬로미터 떨어진 푼타아레나스 출신이다. 대대적인 시위가 이어지던 10년 전 학생운동 지도자로 명성을 떨친 보리치는 2013년 하원에 처음 입성해 2017년 재선에 성공했다.

보리치 취임 6개월 이내에 지금 초안 작성 중인 새로운 헌법 제정 여부에 관한 국민투표가 있을 예정이다. 새로운 헌법은 2019년 10월 사회불평등 항의 시위에서 피노체트 헌법의 폐기가 주요 요구로 떠올라 탄생하게 됐다. 보리치는 선거로 선출된 시민 대표로 구성된 제헌의회(절반이 여성)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제헌의회의 초안을 전적으로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보리치는 당선 다음 날 제헌의회 지도부와의 만남에서 “제헌 과정과 제헌의회에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새 헌법으로 칠레 사회 전반에 크나큰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우선 새 헌법은 칠레가 다민족국가임을 천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헌의회 의원 155명 중 20명이 칠레 10개 민족의 원주민들이다.

마푸체 원주민인 살바도르 밀라레오 칠레대학교 교수는 “원주민에게 새로운 헌법은 억압을 종식할 기회이다. 그것은 원주민과 정부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단이 될 것”이라고 했다.

원주민 관계가 변하다

지금은 오래전부터 칠레 중남부 지방에 거주해 오면서 잉카제국이나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굴복하지 않은 마푸체족이 남부에서 계속 핍박받고 있다. 특히 원목회사들과의 토지 분쟁이 격렬해 마푸체족이 테러방지법 위반으로 처벌되기도 하고 국가헌병대의 손에 죽기도 했다.

밀라레오 교수는 “정부는 늘 마푸체족을 범죄자 취급하며 군경을 투입했다. 그러면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악화되기만 했다”고 설명했다. 곧 퇴임하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 10월 마푸체 지역에 2주간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방화와 충돌이 이어지자 “테러리즘, 약물거래, 조직폭력과 부딪혀야 한다. 이는 민간인을 겨냥하는 조치가 아니다”라며 군대를 투입했다.

보리치는 의회에서 비상사태 연장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고 갈등을 군사화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리고 원주민과 동등한 지위로 열린 대화를 하며 토지 배상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밀라레오 교수는 “이것이 차기 정부에게 가장 복잡한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과 방식으로 접근하면 정부는 과거와 달리 큰 성과를 낼 수도 있다”고 했다.

21062356_Chile 2021 Presidential Election.jpg2021년 12월 19일 대선에서 사회주의자 보리치가 당선되자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기뻐하고 있다.ⓒ사진=뉴시스/AP

의회에서 펼쳐질 어려운 싸움

하지만 보리치의 정책이 쉽게 시행되지는 못할 것이다. 오는 3월의 차기 의회는 굉장히 파편화돼 있을 것이다. 보리치가 대표했던 좌파연합 ‘존엄성을 지지한다’가 차지한 의석수는 그리 많지 않고, 보리치의 핵심 공약 몇몇은 법제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계 재편이 이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