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짜리 푸이를 선택했을 때 서태후는 곧 병을 털고 일어나 수렴청정을 이어갈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령은 이질을 이기지 못했고 서태후는 광서제가 죽은 다음날인 1908년 11월 15일 그토록 핍박했던 조카를 따라 생을 마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서태후의 유언은 다시는 나처럼 여인이 정사에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였다. 사후 장례가 치루어졌는데 청나라 조정이 120만냥의 거금과 수천명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루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는 멸망했다.

노쇠하였지만 7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니 당시로는 상당히 오래 산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서태후도 위안스카이에게 암살당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