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도 인용되듯 후궁의 삶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시구가 있다.
以色事他人 能得幾時好 색으로 남을 섬기는 자, 얼마동안이나 좋은 시절을 누리랴.
이백의 시 '첩박명(妾薄命)'의 한 구절이다.
황제의 총애를 받던 여인이 일단 그 총애를 잃게 되면 바로 그날로부터 비참하기 이를데 없는 운명으로 전락한다. 어느 누구도 동정하긴커녕 비웃고 멸시할 뿐, 소설의 한 구절처럼 하늘을 날던 존재가 지옥의 심연으로 곧두박질 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질투와 조소, 증오로 노려보던 궁인들의 원한이 집중되는 건 말할 나위가 없다.
협소한 장소에 갇혀 사는 궁녀들의 심리 상태가 궁밖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틀려 있을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체로 어린 나이에 입궁하는 궁녀들은, 당시의 남존여비 관념때문에도 그렇지만,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높은 지식이나 교양을 지니고 있지 못한 편이다.
입궁 전에 어느 정도 학문을 배웠다 해도 폐쇄된 후궁에서의 독특한 분위기에 물들게 되면, 특히 황제 단 한 사람의 총애에 모든 걸 기대게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눈에 띄기 위해, 화장이나 의상, 장신구 마련에 몰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허드렛일을 하는 궁녀들과 달리, 직첩이 있는 궁녀들이야 할 일이 없다보니 더욱 무료함과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약자에게 조소와 적의의 화살을 퍼붓는 것이고.
<후궁견환전>에서도 총애를 받지 못하는, 아니면 한창 총애를 받다 잊혀지거나 버려진 후궁에겐 여지없이 멸시와 핍박이 가해진다. 물론 총애를 얻고 있는 후궁에겐 더욱 무시무시한 칼날을 속으로 갈고 있지만 차마 뒷감당이 두려워 자제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총애를 잃어 후환이 걱정될 게 없다 싶으면 인정사정없이 괴롭혀댄다.
그래도 같은 후궁들의 괴롭힘이야 일대 일로 맞서든, 어떻게 대응할만하다.
그러나 가장 치사하고 졸렬하면서도 비참한 건 환관들의 괴롭힘이다.
소설 측천무후에선 후궁의 주인을 환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앞장에서도 몇 페이지에 걸쳐 환관의 유래, 당대의 환관제도, 환관의 임무를 열거하고 있는데, 그만큼 후궁에서 환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역설한다.
황궁을 유지해나가는 모든 업무, 사람으로 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모세혈관이라할만한 자잘한 잡무마저 환관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이 없다. 궁중의 일부터 중요한 국사의 모든 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갖고 있는 풍부한 정보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정치적인 비밀부터 궁 내 모든 사람들의 사소한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게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환관은 황궁이란 거대하고 화려한 감옥의 간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소한 시중이나 잡무들을 처리하는 환관들에게 밉보인다면 후궁에서의 생활이 어떻게 될까?
드라마에서도 묘사되듯 밥을 제대로 가져다주지 않는 건 물론이요(먹는 거 갖고 치사하게-_-+), 일상용품이 제때 구비되지 않고, 처소가 낡아도 수선해주지 않으며, 추워도 난방도 안해준다.
드라마에서 환관들에게 안하무인으로 굴었던 여답응은 그녀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환관 소하자의 손에 목이 졸려 죽는다.
반면 평소에도 옹정의 측근 태감인 소배성을 존중해주며 호의를 베풀었던 견환은, 소배성의 도움으로 감로사에 출가해있던 중에도 옹정을 다시 만나 재입궁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궁중의 일상생활을 이끌어가는 환관의 중요성, 그들이 엮어내는 정보망의 거대함과 세밀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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