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때도 절대다수에게 비난받던 정도는 아니었고, 교민들 사이에서는 소식을 듣자마자 "개자식들, 당장 파병해!"라면서 미군을 한국에 즉각 파병해준 그를 은인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트루먼이 사망하자 1972년 12월 28일을 애도일로 선포하고 하루 동안 조기를 게양하였다.# 한국 전쟁 당시 그의 성 트루먼(Truman=True+Man)을 한역하여, 정감록에 나오는 바다를 건너와 백성들을 구하는 진인(眞人)이 바로 이 사람이라는 드립성 주장도 있었을 정도.
파병 당시 정확한 인용은 다음의 대목으로, 군통수권자로서 의회 승인과 관계 없이 미군을 파병했다.
"한국에서 미국의 행동은 악당들의 기습(Bunch of bandits)을 유엔이 격퇴시키는 것을 도우려고 취해진 것"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 따르면, 채명신은 퇴임 후의 트루먼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채명신과의 만남에서 트루먼은 손수 커피를 끓여주며 채명신을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채명신이 한국민과 한국군의 일원으로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의사를 전하자 본인 역시 승전군인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받으면서 당시 백악관의 상황과 결정이 상세히 기록된 자신의 일기를 직접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수첩에는 본인이 군통수권자의 직권으로 미군을 파병한 흔적이 부대별로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고는 문득 채명신에게 "내가 맥아더를 경질한 것을 한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한국인들의 생각을 여과없이 듣고 싶군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채명신은 당시 트루먼과 맥아더의 정치적 관계[38]를 고려해서 “한국민들은 맥아더의 해임 이유를 모르고 그가 그저 인천상륙작전을 이끈 훌륭한 장군이라 믿지만 저는 압록강 전선에서의 후퇴에 분명 맥아더의 판단 착오[39]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였고, 공과 과에 대한 평가를 적절히 섞은 채명신의 답변을 들은 트루먼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 그의 화려한 명성 뒤엔 작전상 중대한 과오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정치가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던 트루먼은 궁극적인 목표[40]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관철을 위해 당시 상황의 균형[41]을 먼저 선택하는,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원론적인 육참골단의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트루먼이 맥아더를 경질하듯, 윤석열이 이준석 내치는 게 뭔 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