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시험을 거쳐 하이퐁 부근의 깟비 공군기지[3]에 있는 비행학교에 입교한 그는 졸업한 후 120명의 동기들과 함께 소련에 조종 유학생으로 파견되어 크라스노다르 현지에서 과거 독소전을 치르고 한반도에도 파견되었던 소련 공군의 베테랑 조종사들에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되고 힘든 훈련을 받았다. 베트남에서도 고르고 골라 선발하여 보낸 120명의 조종 훈련생 중에서 겨우 23명만이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혹독한 코스를 통과하고 교육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그 중에는 응우옌반꼭도 끼어 있었다.
돌아온 그는 공군의 정예부대인 붉은 별 사단(Đoàn không quân Sao Đỏ)에 배속되어 MiG-17을 몰며 탁월한 조종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정예 파일럿으로 선정된 그는 최신예 요격기인 MiG-21의 기종 전환 훈련을 받으러 다시 소련으로 보내졌다. 꼭의 두 번째 유학 생활은 1년이나 되었고, 이번에도 무사히 모든 과정을 수료한 그는 6명의 유학생들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그는 공군의 정예부대인 붉은 별 사단(Đoàn không quân Sao Đỏ)에 배속되어 MiG-17을 몰며 탁월한 조종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정예 파일럿으로 선정된 그는 최신예 요격기인 MiG-21의 기종 전환 훈련을 받으러 다시 소련으로 보내졌다. 꼭의 두 번째 유학 생활은 1년이나 되었고, 이번에도 무사히 모든 과정을 수료한 그는 6명의 유학생들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왔다.
베트남 탑건[편집]
한국 전쟁에서는 그토록 압도적인 공중우세를 달성했던 미 공군이었지만, 베트남전에서는 단지 2대1의 우위만을 얻을 수 있었고 그것은 미 육군항공대 시절부터 따져도 가장 저조했던 항공전 성과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