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께를 뙛놈이롸 얕잡아보다

식민지 재림.

이거 20년전 벌써 우려섞인 예측.ㄷㄷ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1950년 창고봉쇄령과 화폐개혁, 그리고 1962년의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 등으로 인해 화농이 몰락하고 화상들도 헐값에 땅을 팔게 된 것이 그 이유다.[19] 화교 견제 정책은 한국의 민족주의 정서와도 부합하였으므로 이후 정권들이 계승해서 1990년대까지 이어진다. 화교 요식업자들은 피로연 같은 큰 행사를 많이 했는데 토지 소유 제한으로 대규모 영업장의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운이 좋은 경우엔 한국인 바지사장을 내걸기도 한다.

박정희 정권에 들어와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으며, 국내공산업 발전을 위한 국산품 애용, 국민의식 고취 노력이 더 강해지며 외국계 억제 정책은 계속되었다. 1970년엔 주거용 200평, 영업용 50평으로 약간 제한이 풀리긴 하지만 영세한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었고 이러한 외국인 토지 소유 제한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풀리게 된다. 1970년엔 단 몇 개월 뿐이긴 하지만 중식당의 쌀밥 판매 금지 조치가 내려진 적도 있다. 이는 혼분식 장려 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는데 사실 타 식당도 혼분식 정책으로 애로사항이 꽃피기는 마찬가지였다지만[20] 화교들에게 상당히 심리적으로 위축될 만한 일이었다. 그 탓에 4천 곳에 달하던 화교 식당은 1천 곳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미국에 한국 화교들의 식당이 2천 곳이나 생겼다.



[19]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이승만이 화교의 놀라운 상권 장악력을 목격하고 막으려 했다는 설이 있다.


https://youtu.be/caKmd0hKkZk



[20] 이 당시 혼분식 정책을 박정희 정권이 얼마나 강압적으로 저질렀냐면 혼분식 단속원이 식당 사장딸이 먹는 밥이 흰쌀밥인 것을 가지고 트집잡아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일이 있었을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소송에서 승소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