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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모의재판서 사형을 구형햇던 철부지 윤이 뒤늦게 철이 들고 재한조총련서 대한민국으로....
87년민주주의헌법...전두환헌법
헌법전문의 419정신은 이승만정신
"불의를 보고서도 일어나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나 다름이 없지. 불의를 보면은 일어나야 해."
====3.15 부정선거 - 나무위키 4. 누구의 책임인가?.... 실제로 당시 국무회의 기록을 봐도 이승만은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다가 마산 지역을 비롯하여 각종 시위들이 일어난 후에야 뭔가 잘못된 일이 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승만도 "그렇게 망측스러운 불의를 보고서도 일어나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나 다름이 없지. 불의를 보면은 일어나야 해."라는 말을 남기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4.19정신'을 남기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재한조총련 남로달정권의 돼일성생일날 4.15부정선거반란...
이 틀딱은 뭐 맨날 혼자 주절주절이 댓글 달고 자빠졌냐
재한조총련이 돼일성한테 바치는 남조선북화통일혁명(대한민국 침몰)을 위한 4.15부정선거반란 vs 이승만이 남기고 간 헌법전문의 4.19정신
방부시체로 영생한다는 돼일성의 남조선북화통일혁명 vs 헌법전문에 살아있는 이승만정신
민주화로 위장한 중공몽+돼지몽 재한조총련이 숭배하던 중국공산당은 한국의 87년민주화시위를 롤모델로 따라한 89년 천안문시위를 대학살 진압함....전두환정권은 87년민주주의헌법을 국민들한테 내놨는데....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 동유럽의 독재 정권들은 어떻게, 왜 무너 ...wspaper.org › article 2019. 11. 11. —... 조국 사태가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쟁점이었는데, 조국은 사노맹 출신이었다. 사노맹은 중국의 천안문 학살을 열렬하게 지지하고, 1991년 소련에서 노동자 투쟁을 분쇄하기 위해 벌어졌던 수구파 쿠데타도 열렬하게 지지했다.....====
====자유게시판 - 사노맹의 전위조직노선에 대한 평가 - 해방연대 www.hbyd.org 2011. 9. 24. - ...TASK 이외에 사노맹 준비위 시절에 사노맹 준비위의 사상노선을 규정했던 주요한 문건들이 있다. 그것은 일대전환이라는 문건과 정세분석 방법론 그리고 89년에 있었던 천안문 시위에 대한 평가였다. 일대전환은 조직이 어느정도 정비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운동과의 결합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세분석 방법론은 80년대 중후반의 전술논쟁의 성과를 집약한 것으로서 정세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기초를 세운 것이었다. 그런데 천안문 시위에 대한 평가 문건은 문제가 된다. 바로 여기에 당시 사노맹 준비위의 사상적 한계가 집약되어 있다. 즉, 천안문 시위에 대한 등소평 등의 폭력진압을 지지한 것이었다.
====인간의 얼굴은 어디로 갔나 - 한겨레 21 www.hani.co.kr › data 10여년 전에 세계를 뒤흔든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보수파들의 쿠데타가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는 개혁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시위가 있었다. 모스크바 시내를 보수파의 탱크가 돌아다니고 있을 때, 베이징의 천안문 앞에도 인민해방군의 탱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두 사건은 전혀 다른 식으로 결말을 맺었다. 러시아의 민중은 (아마도 술김에) 탱크 위에 올라선 옐친의 용기에 크게 힘입어 보수파의 무력행사를 제압했지만, 천안문 앞의 학생시위는 보수파의 탱크에 잔인하게 진압되고 말았다.
체제개혁 기회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그때 서울의 대학가에는 주책없이 ‘보수파의 쿠데타를 환영한다’는 사노맹의 대자보가 나붙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소련 공산당에 창당 신고를 했던 사람들로서는 당연한 발상법이었겠지만, 대중의 빈축을 산 이 철없는 장난(?)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한편 좌파들 사이에는 ‘자유의 여신상’을 앞세운 베이징 학생들의 철없이 부르주아적인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것은 정당했다는 소리가 조심스레 나돌기도 했다. 한국의 광주와 중국의 베이징에서 벌어진 이 두 사건의 놀랄 만한 유사성이 양심을 찔렀지만, 천안문 시위의 성공적 진압이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 정체 모를 묘한 안도감과 함께 받아들여진 것은 사실이다. ....진중권/ 자유기고가- 한겨레21 1999년 12월 02일 제2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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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문학 - 임형의 남도문학기행 http://namdou.com 2017. 3. 14. · 게시물 10개 · 작성자 2명 ....1978년 전남대 2학년이던 나는 국문과 선배이면서 연극 활동을 하던 박효선 형의 권유로 연극반에 들어갔다. ...그때 나는 연극반 선배였던 상원 형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상원 형은 한참 선배였지만 후배들과 똑 같이 한 부분씩을 맡아 발표를 하고 마지막에 정리를 해 주는 방식으로 적극 참여하였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로 먼저 의식의 전환을 하고, 이어서 중국관련 공부, 경제사 공부 등을 이어갔다. 얼치기 대학생이던 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개안을 하는듯한 충격에 빠졌다. ...그때 ‘전환시대의 논리’는 의식화 입문서였던 셈이다.
====[송재윤의 문혁춘추] 38회: "변방의 중국몽: 좌파 친중주의의 뿌리" ... http://www.pennmike.com › 2019. 10. 16. — 리영희는 대한민국 좌파세력의 구루(Guru)다. 현재 50-60대 한국 인텔리들은 젊은 시절 리영희의 저작을 읽으며 사회주의적 이상주의를 키웠다. 여러 논객들은 그를 “살아있는 신화”로, “한국현대사의 길잡이”로,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명”으로, “사상의 은사”로, “허구의 시대에 정직하게 살려고 했던 인간의 징표”로 미화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여러 차례 리영희의 저서를 통해 현실에 눈뜨고 가치관을 정립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예컨대 2010년 12월 7일 문재인은 “리영희 선생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이라 말한 바 있다. 나아가 그는 “우리 세대들에게나 학생운동, 민족운동 한 사람들은 [리영희] 선생님 영향이 절대적 이었다”고까지 술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차례 리영희의 저서를 통해 현실에 눈뜨고 가치관을 정립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바로 엄청난 그의 “영향력” 때문에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친중주의의 근원적 뿌리를 찾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리영희의 저작을 꼼꼼히 읽어야만 한다. 중국을 무기 삼아 한국을 공격하는 전술을 구사했던 그는 한국의 좌파들엔 “우상에 도전하는 실천적 이성”이며, 여전히 문대통령을 지배하는 “정신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1976년, 모택동 사망 직후, 리영희는 모택동이야말로 “인간의 평등과 인간소외의 해소·극복”을 위한 “인간우선주의”와 “인간중심 사상제일주의”의 새로운 사회주의 이념을 제창한 위대한 혁명의 사상가라 찬양한다. 리영희는 또 모택동의 사망 직후 막을 내린 문화혁명(1966-1976)에 대해서도 “모든 사회분자의 인간애”에 기초한 “웅장한 인류사적 실험”이라며 격찬한다. 나아가 모택동이 마르크스와 레닌을 능가하는 인간제일주의 사상가라고도 평가한다. 심지어 그는 당시 중국을 휩쓸었던 “모택동 인격숭배”(The Mao Cult)마저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끝내 진실을 외면했던 정직하지 못한 지식인 리영희에 대한 고발 ... http://pub.chosun.com 2016. 8. 26. — ....나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마오쩌둥(毛澤東)을 위시한 중국의 공산주의자들과 이들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었던 1980년대 초 나는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었다. 공산당은 악(惡)이고, 이를 따르는 무리들은 상식적인 도를 넘어서는 비도덕적 인물일 것이라는 게 당시 내가 알던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의 전부였다. 그러나 리영희의 책에서 본 마오쩌둥과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높은 도덕성과 숭고한 인간애를 지닌 이 시대 최고의 우상이자 영웅들이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인간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만들기 위한 ‘인류 최초의 위대한 실험’이었다. “나는 리영희 추종자 중 하나였다” 리영희와 만남을 통해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자본주의의 온갖 이기심과 도덕적 타락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나라, 공산주의 나라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리영희의 안내에 따라 숭고한 이상을 향한 혁명적 실천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백낙청의 말대로 리영희를 따라나선 ‘진실에 열렬히 호응하여 이의 실천에 나선 젊은이들’ 중 하나였다. 나의 청년 시절 공산주의자의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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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가 주체사상 허물어야 - 미래한국 2017. 8. 2. — ....무엇보다 5.18을 전후로 한 주도 세력들의 친북·종북적 경향을 눈여겨 봐야 한다. 광주 학생 운동권 뿌리는 ‘광랑(광주일고 이념서클)’이다. ‘광랑’의 박경호(10기)는 통혁당원이고 김정길은 남민전 전사이며, 5.18의 주역은 11기와 14기이다. 윤한봉(11기)은 미국으로 밀항해 친북 활동에 헌신했고(<윤한봉 녹취록>), 남민전 하부 조직인 구국청년학생회의 김남주(남민전)는 대표적 종북 분자로 “남조선에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민족 반동세력 200만을 철저히 죽여야 한다”고 했으며 사망 후 5·18 희생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김남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자가 윤상원(5.18 후기 주역)이다.
===='국민모임' 급진 좌파 재편의 실체 : 주간동아 https://weekly.donga.com 2014. 12. 29. — 1972년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좌우를 망라해 광범위한 반독재투쟁이 일어나면서 좌파가 번성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70년대 주요 사건 가운데 후일 종북파에게 큰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79년에 있었던 남민전사건이 그것이다. 남민전은 주사파 성장에 결정적 구실을 한 단체로 김세원(광주), 이재문(대구) 등이 주도했다. 김세원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빨치산 출신으로 광주운동권을 정비하고 김남주, 윤상원 등과 접촉했다. 이재문은 김일성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며 ....====
====조국 SNS ‘죽창가’ 지은 김남주, ‘남조선 우익 200만 학살’ 주장한 주사파 ... http://www.speconomy.com 2019. 7. 15. — - 조국, 알고 올렸을까? 김남주 “200만의 피, 그것은 소수에 불과해” 김남주 가담한 남민전, 김일성에 충성맹세하기도 김남주, 노무현 정부 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
....그런데 죽창가를 작사한 고(故) 김남주 시인은 1979년 대한민국 유신말기 최대의 공안사건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에 가담한 주사파(주체사상파)였던 것으로 알려져 조 수석이 해당 노래를 언급한 배경에 대해 관심이 모아진다. ■ 김남주 “200만의 반동세력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2013년 9월 12일자 <조갑제닷컴> 보도에 따르면, 유신체제 당시 남민전에서 사상교육을 받았으나 전향한 소설가인 김정익 씨는 1989년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며 쓴 저서 ‘어느 좌익사상범의 고백 : 수인번호(囚人番號) 3179’를 통해 민족주의자로 위장한 주사파 수감자의 실체를 폭로했다. ‘수인번호 3179’에 따르면, 김 씨는 1984년경 교도소 안에서 김남주 시인(1979년부터 수감)을 만났다.
김 씨는 감방에서 만난 김 시인이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우익인사 등)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한다” ▶“그 숫자는 대략 200만 정도는 될 것”이라는 등의 사상을 자신에게 설파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김 시인이 ▶“200만이라는 숫자가 엄청날 것 같지만, 인류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 전체를 놓고 볼 때에 그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민족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온 것이다” ▶“우리에게 적은 숫자의 반동세력의 피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등을 가르쳤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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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 게재되지 못했던'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 인터뷰... https://www.bosik.kr 전두환은 새카만 후배… 내게 '형님' 하며 어려워 해 날 뛰어넘어 월권했다?… 내 성격 알면 이런 말 안 나와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나면 국가 위기 상황을 군은 걱정
―당시 국정 수반인 최규하 대통령도 도의적 책임이 있습니까? “그건 아니오. 군의 작전 상황이니 계엄사령관과 국방장관에게 있지, 군을 잘 모르는 대통령께서야 책임질 일이 아니오.” ―도의적 책임은 그렇고, 실제적인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5·18 당시부터 대학가에서는 '광주 학살 주범'으로 전두환을 특정했습니다. “그건 군의 작전 지휘 계통을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요.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5·18과는 무관하오. 그는 12·12(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를 이유로 정승화 육참총장을 강제 연행한 사건)와는 상관있지만 5·18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소.”
―계엄사령관이 위계상 높지만 당시 모든 힘이 전두환에게 쏠리지 않았습니까? “전두환은 새카만 후배였고 내게 '형님, 형님' 하며 어려워했소. 나를 뛰어넘어 감히 월권해? 내 성격을 알고 이런 관계만 알아도, 그런 소리가 안 나옵니다. 전두환은 밝은 사람이지, 음습하지 않아요. 몰래 그렇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오. 내 단호히 얘기하오. 광주에 관한 한 전두환 책임은 없소.” ―그렇다면 5·18에 전두환을 지목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봅니까? “광주가 수습되고 3개월 뒤 그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오. 대통령만 안 됐으면 전두환 이름이 그 뒤로 나오지 않았을 거요.”
―전두환이 아니라면, 누가 5·18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겁니까? “지휘 계통의 최고위에 있는 계엄사령관인 나와 국방장관(주영복)이오. 그래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소. 그때 전두환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어요. 그는 보안사령관이었고 내 참모에 불과했소. 참모로서 내게 건의할 수는 있었겠지만 작전 지휘 체계에 있지 않았소. 진압 작전에 개입할 수 없었소. 그는 광주에도 내려간 적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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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교과서 "南 민주화운동은 모두 김일성 교시 따른 것" | 연합뉴스 https://www.yna.co.kr › 전체뉴스 2015. 10. 14. —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북한의 교과서들에 그려진 현대 한국의 모습은 어떨까.....광주는 인민봉기의 땅이며, ...북한은 해방 이후 남한에 일어난 민주화 시위와 반정부 운동, 파업 등을 모두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남조선 인민들이 일으킨 것"이라고....북한 교과서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만큼 북한의 관심을 끈 사건도 드물다. 북한은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남조선 애국인민이 호응해 일으킨 반파쇼 투쟁 중에서 5·18광주인민봉기는 가장 성공한 인민혁명사건"이라 주장한다....====
5.18단체들은 똥돼지네한텐 찍소리도 못함서 전두환 지만원한테만 고소고발에 화형식 규탄시위라니... 똥돼지네3대 인형에 북한교과서 모형 화형식 규탄시위도 해봐라
'5.18은 우리혁명' 주장을 인증하러온 똥돼지네 대표단...
====북 대표단, 5.18묘역 참배 "오월 영령과 함께 갈 것" - 시민의소리 http://www.siminsori.com 2006. 6. 14. — ....북측대표단은 "역사발전에 기여한 오월영령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우리는 그들의 영혼을 안고 영원히 함께 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단 일원인 김철운씨는 "광주는 민주화와 반미자주화의 성지"라며 "5월영령의 영혼을 수호하고 앞으로 우리민족끼리 반미자주화를 실현하는데 뜻과 마음, 힘을 다 합쳐 나가자"고 소감을 피력했다. 김영대 당국대표단 단장은 방명록에 "5.18 용사들의 정신은 6.15시대와 더불어 길이 전해질 것이다"라고 남겼고, 안경호 민간대표단 단장은 "5월의 렬사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이날 계속된 폭우로 당초 예정됐던 기념식수 행사가 취소되는 등 행사를 대폭 간소화 했다. 한편,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소속 유가족들이 북측대표단들에게 구묘역(3묘역)도 함께 방문해 줄 것을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는 소동이 있기도 했다.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와 강경대 열사 부친 강민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이사장은 "왜 3묘역은 안 들리겠다는 것이냐"며 "열사들과 유가족들의 투쟁으로 오늘날 5.18도 명예 회복이 된 것"이라며 강하게 항의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현장리포트] 망월동에서 만난 남과 북 : 국방·북한 : 정치 : 뉴스 ... http://www.hani.co.kr 2006. 6. 15. — ... 그 빛고을 광주에 '5월의 전사들'을 사주했다던 북한의 당국 대표단이 참배를 하러 왔다. ...민주수호의 제단에 바쳐진 처절한 저항이었다. 그렇게 1980년 5월 ‘광주항쟁’은 현대 한국 민주주의를 풍부하게 하는 마르지 않는 샘물의 발원지가 되었다. .... 북쪽 대표단이 ‘민주의 문’에 들어설 때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왜 우리 한열이한테는 가지 않냐?”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북쪽 참배 대표단이 6월항쟁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가 누워있는 구묘역에는 가지 않기로 한 걸 따진 것이다.
====“5월의 열사들에 경의” - 재외동포신문 ...김영대 단장은 민주의 문을 지나 민주광장을 가면서 “5.18열사들의 남긴 뜻을 실현하려면 6.15선언을 실천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또한 “광주는 반외세 반봉건 투쟁과 갑오농민, 광주학생운동의 역사를 갖고 있다”며 “우리 북녘 동포들은 518열사들의 뜻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 한편 북측대표단이 참배를 위해 입구에 들어설 무렵 지난 87년 6월 민주화운동 기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목숨을 잃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와 유가협 회원 20여 명이 갑자기 북측대표단 앞을 가로 막고 “참배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민주화 열사들이 묻힌 구묘역(제3묘역)을 예정대로 참배하지 않도록 일정을 변경한 주최측에 대한 항의의 의미였다.
배은심 씨는 “북측 대표단에게는 정말 죄송하다”며 “우리가 이렇게 항의하는 것은 남측위원회의 성의없음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배 씨는 “구묘역에도 조국의 통일을 외치다 산화해간 35구의 열사들이 묻혀 있다”며 “5.18영령들 못지않게 구묘역에 묻힌 열사들도 이 나라의 민주와 통일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남측위원회 관계자는 북측 대표단의 일정을 진행시키기 위해 “구묘역도 돌아볼 것”이라고 이들을 달랬다. 하지만 결국 북측대표단이 구묘역을 참배하지 않고 떠나려 하자 배 씨등 유가협 회원들은 더욱 격렬하게 항의했다. 다행스럽게도 큰 충돌은 없었다.
====북측 대표단, 역사적인 5.18묘역 참배 - 통일뉴스 2006. 6. 14. — ....김영대 단장은 "국립 5.18묘지에 오니까 80년 5.18 용사들과 민주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분들이 생각난다"며 "열사들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6.15공동선언 이행으로 통일의 길을 앞당겨야 한다"고 말하고 광주학생운동 등 현대사 속에서의 광주가 갖는 의미를 회고한 뒤 "북녘 인민들도 5.18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씨 등 유가협 회원들은 "3묘역(구묘역)에는 왜 안가느냐"며 주최측에 강하게 항의해 한 때 소란을 빚기도 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강민조 이사장은 "북에서 우리 열사 묘를 참배를 안한다고 한다. 우리도 필요없다. 북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북측 대표단, 폭우 속에서 망월동 참배 -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 › ... 2006. 6. 14. — .."열사들을 무시하지 말라" 한편, 북측 대표단이 묘역을 둘러보는 도중에 남측의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어머니들이 북책 대표단과 남측 행사위원회에 강하게 항의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유는 북측 대표단이 민주화열사들이 모셔져 있는 '구묘역'을 참배하지 않는다는 것.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북측 대표단 안경호 단장이 묘역에 들어서자 "왜 북측 대표단은 민주화 열사들에게는 참배하러 가지 않느냐"며 따졌고, 이에 경호원들이 배 여사를 거칠게 제지하자 묘역 입구가 한순간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이에 조성우 민화협 상임의장이 항의하는 유가협 회원들에게 직접 나서 말리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유가협 회원들은 "남측위원회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북측 대표단이 구묘역도 참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제와서 못온다고 하면 어떡하느냐"며 "이렇게 열사들을 무시해도 되느냐"고 성토했고, 조성우 상임의장은 "비가오고 날씨가 궂어서 일정을 취소했다"고 해명했지만 어머니들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열사 통일열사.... 지상최악의 극악독재에 남조선북화통일이 목표인 똥돼지네 대표단한테 애걸함서 민주열사 통일열사로 인정해달람서 항의한 구묘역 유족들
(남조선북화)통일혁명당 간첩 신영복 & 모택똥의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을 뒷북질로 대찬양한 리영희를 이념적스승으로 섬기는 중공몽+돼지몽 재한조총련.....캄보디아선 모택똥주의자인 폴포트의 크메르루즈가 모택똥의 대약진운동과 홍위병 문화혁명 롤모델로 피바다혁명 킬링필드를 건설함
폴포트등 크메르루주 두목들은 프랑스유학파 인텔리 먹물들엿지만 빨갱이물에 극악모택똥주의 물이들어 홍위병마냥 철부지 소년병들을 세뇌해 고문과 학살도구로 씀서 킬링필드를 건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