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조총련의 남로당때부텀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돼지몽+중공몽 반역매국노고, 부역의힘엔 한중수교 이후 포섭된 중공몽 매국노들이 상당수임
oo(183.105)2023-03-28 2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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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문학 - 임형의 남도문학기행
2017. 3. 14. · 게시물 10개 · 작성자 2명
....1978년 전남대 2학년이던 나는 국문과 선배이면서 연극 활동을 하던 박효선 형의 권유로 연극반에 들어갔다. ...그때 나는 연극반 선배였던 상원 형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상원 형은 한참 선배였지만 후배들과 똑 같이 한 부분씩을 맡아 발표를 하고 마지막에 정리를 해 주는 방식으로 적극 참여하였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로 먼저 의식의 전환을 하고, 이어서 중국관련 공부, 경제사 공부 등을 이어갔다. 얼치기 대학생이던 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개안을 하는듯한 충격에 빠졌다. ...그때 ‘전환시대의 논리’는 의식화 입문서였던 셈이다....====
oo(183.105)2023-03-28 2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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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의 문혁춘추] 38회: "변방의 중국몽: 좌파 친중주의의 뿌리" ...
http://www.pennmike.com
›
2019. 10. 16. — 리영희는 대한민국 좌파세력의 구루(Guru)다. 현재 50-60대 한국 인텔리들은 젊은 시절 리영희의 저작을 읽으며 사회주의적 이상주의를 키웠다. 여러 논객들은 그를 “살아있는 신화”로, “한국현대사의 길잡이”로,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명”으로, “사상의 은사”로, “허구의 시대에 정직하게 살려고 했던 인간의 징표”로 미화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여러 차례 리영희의 저서를 통해 현실에 눈뜨고 가치관을 정립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oo(183.105)2023-03-2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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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2010년 12월 7일 문재인은 “리영희 선생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이라 말한 바 있다. 나아가 그는 “우리 세대들에게나 학생운동, 민족운동 한 사람들은 [리영희] 선생님 영향이 절대적 이었다”고까지 술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차례 리영희의 저서를 통해 현실에 눈뜨고 가치관을 정립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바로 엄청난 그의 “영향력” 때문에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친중주의의 근원적 뿌리를 찾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리영희의 저작을 꼼꼼히 읽어야만 한다. 중국을 무기 삼아 한국을 공격하는 전술을 구사했던 그는 한국의 좌파들엔 “우상에 도전하는 실천적 이성”이며, 여전히 문대통령을 지배하는 “정신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oo(183.105)2023-03-2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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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모택동 사망 직후, 리영희는 모택동이야말로 “인간의 평등과 인간소외의 해소·극복”을 위한 “인간우선주의”와 “인간중심 사상제일주의”의 새로운 사회주의 이념을 제창한 위대한 혁명의 사상가라 찬양한다.
리영희는 또 모택동의 사망 직후 막을 내린 문화혁명(1966-1976)에 대해서도 “모든 사회분자의 인간애”에 기초한 “웅장한 인류사적 실험”이라며 격찬한다. 나아가 모택동이 마르크스와 레닌을 능가하는 인간제일주의 사상가라고도 평가한다. 심지어 그는 당시 중국을 휩쓸었던 “모택동 인격숭배”(The Mao Cult)마저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58
oo(183.105)2023-03-2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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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진실을 외면했던 정직하지 못한 지식인 리영희에 대한 고발 ...
http://pub.chosun.com
2016.
8. 26. — ....나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마오쩌둥(毛澤東)을 위시한 중국의 공산주의자들과 이들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었던 1980년대 초 나는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었다. 공산당은 악(惡)이고, 이를 따르는 무리들은 상식적인 도를 넘어서는 비도덕적 인물일 것이라는 게 당시 내가 알던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의 전부였다. 그러나 리영희의 책에서 본 마오쩌둥과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높은 도덕성과 숭고한 인간애를 지닌 이 시대 최고의 우상이자 영웅들이었다.
oo(183.105)2023-03-2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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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인간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만들기 위한 ‘인류 최초의 위대한 실험’이었다.
“나는 리영희 추종자 중 하나였다”
리영희와 만남을 통해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자본주의의 온갖 이기심과 도덕적 타락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나라, 공산주의 나라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리영희의 안내에 따라 숭고한 이상을 향한 혁명적 실천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백낙청의 말대로 리영희를 따라나선 ‘진실에 열렬히 호응하여 이의 실천에 나선 젊은이들’ 중 하나였다. 나의 청년 시절 공산주의자의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김종인 "사드 배치해 경제 어려워지면 안보도 어려워져" - 세상을 ...www.viewsnnews.com
2016. 2. 16. - 한중수교 주역으로 사드 배치로 한중 위기 발발 크게 우려 ... 김종인 대표는 이날 밤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북한 장거리 ...김 대표는 노태우 정권 말기의 1992년 한중 수교때 막후에서 중국, 미국을 오가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한중수교에 반발한 대만 정부에 의해 그는 사실상 아직까지 대만에 입국금지 상태다.-
https://www.viewsnnews.com/article?q=129122
oo(183.105)2023-03-28 2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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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이 말하는 한·중 상생의 길 - 월간중앙
2018. 11. 17. -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한·중 양국 ... 한·중 수교는 동북아에서 한·중 양국을 운명공동체로 묶은 획기적인 사건으로 ... “고증(考證)을 거쳤다. 1100년 전쯤 수(穗)라는 이름을 쓰는 할아버지가 아들 9형제를 데리고 한국으로 왔더라. 산둥성에는 지금도 노씨 집성촌이 있다. 중국 사회가 씨족이나 가문을 굉장히 통제하는데 그쪽에 있는 제남시라는 공원에 노씨 사당을 만드는 것을 허가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노씨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인정했고 한다. 노씨는 중국에서 온 성이다. 나는 교하(交河) 노씨이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광산(光山) 노씨지만 같은 집안이다.”...==
oo(183.105)2023-03-28 2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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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하는 노재헌 일대일로 연구원 이사장 - 다음뉴스
https://news.v.daum.net
› 20190613115002464
2019. 6. 13. — (서울=뉴스1) 이종덕 기자 =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의 '일대일로와 동아시아공동체'를 주제로 강연에 ..
===='일대일로연구원' 출범…"중국 연구 허브로" - 연합뉴스
https://www.yna.co.kr
› 최신기사
2018. 2. 5. — 최재천 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변호사가 이사장을, 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과 취환 한중문화우호협회 회장이 공동 원장을 맡는다 ...
oo(183.105)2023-03-28 22: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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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젠페이 중국 중앙당교 원장 기조연설… ‘일대일로 연구원’ 창립 세미나
2019. 4. 19.
서울경제TV 쎈 이코노미
....세미나에 참석한 류젠페이 중국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원장은 ‘일대일로는 국제협력 모델의 혁신’이라는 주제로 기조 강연을 펼쳤습니다.
이날, 세미나에는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의원, 최재천 일대일로연구원 명예이사장, 노재헌 일대일로연구원 이사장, 취환 공동원장을 비롯하여 주한중국대사관 왕웨이 주임, 일국양제와 국가통일연구소 짱쓰롱 소장 등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측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습니다
====[단독]노태우 집 찾아간 中대사…그가 강조한 '28년 전 그날 ...news.joins.com › article
2020. 8. 20. -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왼쪽)가 19일 서울 연희동 노태우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해 아들 노재헌씨와 환담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오는 24일 한ㆍ중 ...
====주한 中대사, 노태우 前대통령 자택 방문…"우물 판 사람 못잊어 ...newsis.com › view
2020. 8. 20. - 주한중국대사관에 따르면 싱 대사는 “수교 28년 동안 한중관계는 급속히 발전했고 양국과 양국 국민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줬으며 세계 평화와 ...
oo(183.105)2023-03-28 22: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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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183.105)2023-03-28 22: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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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5·18 묘역서 무릎꿇고 참배 - 한겨레
https://www.hani.co.kr
› arti › politics › assembly
2016. 1. 31.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의 묘를 무릎꿇고 참배하고 있다.
====5·18묘역서 무릎꿇은 김종인 | 연합뉴스
https://www.yna.co.kr
› 최신기사
2016. 1. 31. — 5·18묘역서 무릎꿇은 김종인 ... 대책위원장이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의 묘를 무릎 꿇고 참배하고 있다.
oo(183.105)2023-03-28 22: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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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묘지서 무릎 꿇은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 연합뉴스
https://m.yna.co.kr
› 최신기사
2019. 8. 26. — (광주=연합뉴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가 이달 23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 묘소 앞에서 ...
====노태우 아들 노재헌씨 5·18묘지 참배 “진심으로 사죄” - 광주일보
http://www.kwangju.co.kr
› read
2019. 8. 27. —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가 지난 23일 오전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 묘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oo(183.105)2023-03-28 22: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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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183.105)2023-03-28 22: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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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국민통합위에 노태우 아들 노재헌·최재천 합류 -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
› politics_general › 2022/03/31
2022. 3. 31. — 인수위 국민통합위에 노태우 아들 노재헌·최재천 합류 터키인 교수 카디르·김별아 작가 이재명 의식화 담당 최원식도 포함 김태일 총장은 내부 반발로 ...
===='中 일대일로' 칭찬했던 최재천, 국민통합위원으로 尹정부 합류
https://www.chosun.com
› politics_general › 2022/07/28
2022. 7. 28. —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던 2018년 2월 민간 주도로 한국과 중국 간 교류 협력을 강화하겠다며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 ...
oo(183.105)2023-03-28 22: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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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돼지네 대표단이 참배함서 '즈그혁명'이라고 침바르기 인증을 하고 간 돼지몽 성지에, 중공몽매국노들이 무릅꿇고 참배하는 중공몽성지 역할도 하는 5.18묘지
oo(183.105)2023-03-28 22:21:00
답글
......
oo(183.105)2023-03-28 22: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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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교과서 "南 민주화운동은 모두 김일성 교시 따른 것" | 연합뉴스
https://www.yna.co.kr
› 전체뉴스
2015. 10. 14. —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북한의 교과서들에 그려진 현대 한국의 모습은 어떨까.....광주는 인민봉기의 땅이며, ...북한은 해방 이후 남한에 일어난 민주화 시위와 반정부 운동, 파업 등을 모두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남조선 인민들이 일으킨 것"이라고....북한 교과서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만큼 북한의 관심을 끈 사건도 드물다.
북한은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남조선 애국인민이 호응해 일으킨 반파쇼 투쟁 중에서 5·18광주인민봉기는 가장 성공한 인민혁명사건"이라 주장한다.....====
oo(183.105)2023-03-28 22: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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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가 주체사상 허물어야 - 미래한국
2017. 8. 2. — ....무엇보다 5.18을 전후로 한 주도 세력들의 친북·종북적 경향을 눈여겨 봐야 한다. 광주 학생 운동권 뿌리는 ‘광랑(광주일고 이념서클)’이다. ‘광랑’의 박경호(10기)는 통혁당원이고 김정길은 남민전 전사이며, 5.18의 주역은 11기와 14기이다.
윤한봉(11기)은 미국으로 밀항해 친북 활동에 헌신했고(<윤한봉 녹취록>), 남민전 하부 조직인 구국청년학생회의 김남주(남민전)는 대표적 종북 분자로 “남조선에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민족 반동세력 200만을 철저히 죽여야 한다”고 했으며 사망 후 5·18 희생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김남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자가 윤상원(5.18 후기 주역)이다
===='국민모임' 급진 좌파 재편의 실체 : 주간동아
https://weekly.donga.com
2014.
12. 29. — 1972년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좌우를 망라해 광범위한 반독재투쟁이 일어나면서 좌파가 번성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70년대 주요 사건 가운데 후일 종북파에게 큰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79년에 있었던 남민전사건이 그것이다. 남민전은 주사파 성장에 결정적 구실을 한 단체로 김세원(광주), 이재문(대구) 등이 주도했다. 김세원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빨치산 출신으로 광주운동권을 정비하고 김남주, 윤상원 등과 접촉했다. 이재문은 김일성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며 ...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98639/1
oo(183.105)2023-03-28 22: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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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SNS ‘죽창가’ 지은 김남주, ‘남조선 우익 200만 학살’ 주장한 주사파 ...
http://www.speconomy.com
2019.
7. 15. — - 조국, 알고 올렸을까?
김남주 “200만의 피, 그것은 소수에 불과해”
김남주 가담한 남민전, 김일성에 충성맹세하기도
김남주, 노무현 정부 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
oo(183.105)2023-03-28 22:27:00
답글
....그런데 죽창가를 작사한 고(故) 김남주 시인은 1979년 대한민국 유신말기 최대의 공안사건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에 가담한 주사파(주체사상파)였던 것으로 알려져 조 수석이 해당 노래를 언급한 배경에 대해 관심이 모아진다.
■ 김남주 “200만의 반동세력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2013년 9월 12일자 <조갑제닷컴> 보도에 따르면, 유신체제 당시 남민전에서 사상교육을 받았으나 전향한 소설가인 김정익 씨는 1989년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며 쓴 저서 ‘어느 좌익사상범의 고백 : 수인번호(囚人番號) 3179’를 통해 민족주의자로 위장한 주사파 수감자의 실체를 폭로했다.
‘수인번호 3179’에 따르면, 김 씨는 1984년경 교도소 안에서 김남주 시인(1979년부터 수감)을 만났다.
oo(183.105)2023-03-28 22:28:00
답글
김 씨는 감방에서 만난 김 시인이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우익인사 등)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한다” ▶“그 숫자는 대략 200만 정도는 될 것”이라는 등의 사상을 자신에게 설파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김 시인이 ▶“200만이라는 숫자가 엄청날 것 같지만, 인류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 전체를 놓고 볼 때에 그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민족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온 것이다” ▶“우리에게 적은 숫자의 반동세력의 피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등을 가르쳤다고 전했다.
http://www.sp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258
oo(183.105)2023-03-28 22:28:00
답글
&
oo(183.105)2023-03-28 22:29:00
답글
====프놈펜으로부터의 서한: 왜 대부분의 중국 관광객은 킬링필드를 가지 않는가?
https://ko.bitterwinter.org
2018.
10. 23. - 매년 12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캄보디아를 찾는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서양인 관광객과는 다른 코스로 여행하며 특히 “킬링필드” 및 공산주의 정권의 학살 흔적을 피해 다닌다. 킬링필드에는 대학살의 비극을 둘러싼 공산당의 책임에 관하여 충격적인 이야기가 서려 있다.
-마시모 인트로빈(MASSIMO INTROVIGNE)
oo(183.105)2023-03-28 22:32:00
답글
....대부분의 서양인, 일본인 및 베트남인 관광객에게는 프놈펜 인근 또는 내부에 필수 코스 두 곳이 있다. 바로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이다. 킬링필드는 오늘날 캄보디아가 대학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한 추모 공간이다. 이곳에서 약 3백만 명의 캄보디아 국민이 폴 포트(Pol Pot, 본명 Salot Sar, 1925-1998, 캄보디아인 여러 명이 폴 포트가 죽음을 위장하고 아직 살아있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함) 정권에 의해 살해됐다.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를 지칭하는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은 150만 명을 참수했고 백만 명 이상을 굶겨 죽였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가 8백만 명이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폴 포트와 공산주의자는 정치적 이유로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의 자국민을 학살했다는
oo(183.105)2023-03-28 22:32:00
답글
......그러나 킬링필드의 모든 책임 소재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폴 포트가 중국에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켰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1965년 중국에 처음 방문했고 중국 공산당(CCP)에 의해 세뇌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주로 참고한 정책은 중국 문화대혁명이었지만 혁명의 막이 내린 후에도 발 빠르게 새로운 공산당 지도자의 지속적인 지지를 확보해냈다.
크메르루즈의 이념은 문화혁명방식의 모택동주의였다. 크메르루즈는 공산당의 광범위한 정치, 외교, 경제적 지원이 없었더라면 캄보디아 내전에서 승리하지도, 베트남 및 서구의 압박을 거부하며 수년간 권력을 유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은 크메르루즈에 무기 대부분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oo(183.105)2023-03-28 22:32:00
답글
폴 포트는 공산당이 자신을 베트남으로부터 보호해주리라 기대했고 어느 정도 그 기대는 충족됐다.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을 때, 중국은 우선 이들이 철수하도록 설득했고 이후 1979년 초 중월전쟁이 발발했다. 종국에는 중국이 하노이로 향하던 발을 돌렸는데 캄보디아를 두고 베트남의 보호국이자 동맹국인 소련과 국제전을 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산당은 폴 포트와 크메르루즈를 최후의 순간까지 보호하고 지원했다.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크메르루즈가 1979년 몰락한 이후에도 이들의 연정을 캄보디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해야 한다고 설득한 것도 중국이었다. .....
oo(183.105)2023-03-28 22:32:00
답글
.....폴 포트 정권 시기에 캄보디아에는 중국 고문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어디에나 있었으며 엄청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 고문들은 분명 대학살과 그 규모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대량 학살은 중국의 승인과 지지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은 수년간 국제적인 선전 활동을 통해 캄보디아 대학살이 발생한 사실을 부인하려 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중국 관광객이 킬링필드를 여행하지 않는 현실이 그리 놀랍지 않다. 비록 박물관에는 중국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주도면밀하게 누락돼 있으나 캄보디아 대학살이 중국 공산당이 저지르거나 지원한 범죄 행위의 기나긴 목록에 추가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역사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모든 중국인에게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예전부터 이거 팩트라고 하는데도 아니라고 우겨대던게 윤빠들이죠
중국황제가 역대처음으로 조선으로 윤각하에게 알현하러 들어오노 혼밥구타당한 문재앙중국몽과는 180도 다르네 - dc App
정신승리도 가지가지 그러면 트럼프는 문재인 알현하러왔냐?병신 윤빠
두창이 시진핑 앞에서 찍소리도 못할듯
ㄹㅇ
재앙이처럼 처맞고 질질 짜지는 않을듯 - dc App
중국하고 거래안하면 우리경제 자멸.
한중수교로 중공몽 우물을 팟다는 노태우때부텀 부역의힘의 중공몽은 고질병임...
재한조총련과 부역의힘을 능구랭이마냥 넘나드는 김중공인 영감은 한중수교 밀사출신임
노태우 아들놈은 중공몽 앞잽이고
재한조총련의 남로당때부텀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돼지몽+중공몽 반역매국노고, 부역의힘엔 한중수교 이후 포섭된 중공몽 매국노들이 상당수임
====5.18문학 - 임형의 남도문학기행 2017. 3. 14. · 게시물 10개 · 작성자 2명 ....1978년 전남대 2학년이던 나는 국문과 선배이면서 연극 활동을 하던 박효선 형의 권유로 연극반에 들어갔다. ...그때 나는 연극반 선배였던 상원 형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상원 형은 한참 선배였지만 후배들과 똑 같이 한 부분씩을 맡아 발표를 하고 마지막에 정리를 해 주는 방식으로 적극 참여하였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로 먼저 의식의 전환을 하고, 이어서 중국관련 공부, 경제사 공부 등을 이어갔다. 얼치기 대학생이던 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개안을 하는듯한 충격에 빠졌다. ...그때 ‘전환시대의 논리’는 의식화 입문서였던 셈이다....====
====[송재윤의 문혁춘추] 38회: "변방의 중국몽: 좌파 친중주의의 뿌리" ... http://www.pennmike.com › 2019. 10. 16. — 리영희는 대한민국 좌파세력의 구루(Guru)다. 현재 50-60대 한국 인텔리들은 젊은 시절 리영희의 저작을 읽으며 사회주의적 이상주의를 키웠다. 여러 논객들은 그를 “살아있는 신화”로, “한국현대사의 길잡이”로,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명”으로, “사상의 은사”로, “허구의 시대에 정직하게 살려고 했던 인간의 징표”로 미화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여러 차례 리영희의 저서를 통해 현실에 눈뜨고 가치관을 정립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예컨대 2010년 12월 7일 문재인은 “리영희 선생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이라 말한 바 있다. 나아가 그는 “우리 세대들에게나 학생운동, 민족운동 한 사람들은 [리영희] 선생님 영향이 절대적 이었다”고까지 술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차례 리영희의 저서를 통해 현실에 눈뜨고 가치관을 정립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바로 엄청난 그의 “영향력” 때문에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친중주의의 근원적 뿌리를 찾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리영희의 저작을 꼼꼼히 읽어야만 한다. 중국을 무기 삼아 한국을 공격하는 전술을 구사했던 그는 한국의 좌파들엔 “우상에 도전하는 실천적 이성”이며, 여전히 문대통령을 지배하는 “정신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1976년, 모택동 사망 직후, 리영희는 모택동이야말로 “인간의 평등과 인간소외의 해소·극복”을 위한 “인간우선주의”와 “인간중심 사상제일주의”의 새로운 사회주의 이념을 제창한 위대한 혁명의 사상가라 찬양한다. 리영희는 또 모택동의 사망 직후 막을 내린 문화혁명(1966-1976)에 대해서도 “모든 사회분자의 인간애”에 기초한 “웅장한 인류사적 실험”이라며 격찬한다. 나아가 모택동이 마르크스와 레닌을 능가하는 인간제일주의 사상가라고도 평가한다. 심지어 그는 당시 중국을 휩쓸었던 “모택동 인격숭배”(The Mao Cult)마저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58
====끝내 진실을 외면했던 정직하지 못한 지식인 리영희에 대한 고발 ... http://pub.chosun.com 2016. 8. 26. — ....나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마오쩌둥(毛澤東)을 위시한 중국의 공산주의자들과 이들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었던 1980년대 초 나는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었다. 공산당은 악(惡)이고, 이를 따르는 무리들은 상식적인 도를 넘어서는 비도덕적 인물일 것이라는 게 당시 내가 알던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의 전부였다. 그러나 리영희의 책에서 본 마오쩌둥과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높은 도덕성과 숭고한 인간애를 지닌 이 시대 최고의 우상이자 영웅들이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인간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만들기 위한 ‘인류 최초의 위대한 실험’이었다. “나는 리영희 추종자 중 하나였다” 리영희와 만남을 통해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자본주의의 온갖 이기심과 도덕적 타락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나라, 공산주의 나라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리영희의 안내에 따라 숭고한 이상을 향한 혁명적 실천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백낙청의 말대로 리영희를 따라나선 ‘진실에 열렬히 호응하여 이의 실천에 나선 젊은이들’ 중 하나였다. 나의 청년 시절 공산주의자의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nNewsNumb=20160821295&nidx=2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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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사드 배치해 경제 어려워지면 안보도 어려워져" - 세상을 ...www.viewsnnews.com 2016. 2. 16. - 한중수교 주역으로 사드 배치로 한중 위기 발발 크게 우려 ... 김종인 대표는 이날 밤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북한 장거리 ...김 대표는 노태우 정권 말기의 1992년 한중 수교때 막후에서 중국, 미국을 오가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한중수교에 반발한 대만 정부에 의해 그는 사실상 아직까지 대만에 입국금지 상태다.- https://www.viewsnnews.com/article?q=129122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이 말하는 한·중 상생의 길 - 월간중앙 2018. 11. 17. -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한·중 양국 ... 한·중 수교는 동북아에서 한·중 양국을 운명공동체로 묶은 획기적인 사건으로 ... “고증(考證)을 거쳤다. 1100년 전쯤 수(穗)라는 이름을 쓰는 할아버지가 아들 9형제를 데리고 한국으로 왔더라. 산둥성에는 지금도 노씨 집성촌이 있다. 중국 사회가 씨족이나 가문을 굉장히 통제하는데 그쪽에 있는 제남시라는 공원에 노씨 사당을 만드는 것을 허가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노씨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인정했고 한다. 노씨는 중국에서 온 성이다. 나는 교하(交河) 노씨이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광산(光山) 노씨지만 같은 집안이다.”...==
====축사하는 노재헌 일대일로 연구원 이사장 - 다음뉴스 https://news.v.daum.net › 20190613115002464 2019. 6. 13. — (서울=뉴스1) 이종덕 기자 =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의 '일대일로와 동아시아공동체'를 주제로 강연에 .. ===='일대일로연구원' 출범…"중국 연구 허브로" - 연합뉴스 https://www.yna.co.kr › 최신기사 2018. 2. 5. — 최재천 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변호사가 이사장을, 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과 취환 한중문화우호협회 회장이 공동 원장을 맡는다 ...
====류젠페이 중국 중앙당교 원장 기조연설… ‘일대일로 연구원’ 창립 세미나 2019. 4. 19. 서울경제TV 쎈 이코노미 ....세미나에 참석한 류젠페이 중국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원장은 ‘일대일로는 국제협력 모델의 혁신’이라는 주제로 기조 강연을 펼쳤습니다. 이날, 세미나에는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의원, 최재천 일대일로연구원 명예이사장, 노재헌 일대일로연구원 이사장, 취환 공동원장을 비롯하여 주한중국대사관 왕웨이 주임, 일국양제와 국가통일연구소 짱쓰롱 소장 등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측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습니다
====#최문순 #문재인 #김지은 [충격단독] 제2의 주옥파 취환 (feat. 안희정) 조회수 347,550회•실시간 스트리밍 시작일: 2021. 5. 11. 가로세로연구소- https://youtu.be/o6KiwvkPC_Q
====[단독]노태우 집 찾아간 中대사…그가 강조한 '28년 전 그날 ...news.joins.com › article 2020. 8. 20. -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왼쪽)가 19일 서울 연희동 노태우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해 아들 노재헌씨와 환담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오는 24일 한ㆍ중 ... ====주한 中대사, 노태우 前대통령 자택 방문…"우물 판 사람 못잊어 ...newsis.com › view 2020. 8. 20. - 주한중국대사관에 따르면 싱 대사는 “수교 28년 동안 한중관계는 급속히 발전했고 양국과 양국 국민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줬으며 세계 평화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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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5·18 묘역서 무릎꿇고 참배 - 한겨레 https://www.hani.co.kr › arti › politics › assembly 2016. 1. 31.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의 묘를 무릎꿇고 참배하고 있다. ====5·18묘역서 무릎꿇은 김종인 | 연합뉴스 https://www.yna.co.kr › 최신기사 2016. 1. 31. — 5·18묘역서 무릎꿇은 김종인 ... 대책위원장이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의 묘를 무릎 꿇고 참배하고 있다.
====5·18묘지서 무릎 꿇은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 연합뉴스 https://m.yna.co.kr › 최신기사 2019. 8. 26. — (광주=연합뉴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가 이달 23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 묘소 앞에서 ... ====노태우 아들 노재헌씨 5·18묘지 참배 “진심으로 사죄” - 광주일보 http://www.kwangju.co.kr › read 2019. 8. 27. —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가 지난 23일 오전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 묘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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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국민통합위에 노태우 아들 노재헌·최재천 합류 -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 › politics_general › 2022/03/31 2022. 3. 31. — 인수위 국민통합위에 노태우 아들 노재헌·최재천 합류 터키인 교수 카디르·김별아 작가 이재명 의식화 담당 최원식도 포함 김태일 총장은 내부 반발로 ... ===='中 일대일로' 칭찬했던 최재천, 국민통합위원으로 尹정부 합류 https://www.chosun.com › politics_general › 2022/07/28 2022. 7. 28. —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던 2018년 2월 민간 주도로 한국과 중국 간 교류 협력을 강화하겠다며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 ...
똥돼지네 대표단이 참배함서 '즈그혁명'이라고 침바르기 인증을 하고 간 돼지몽 성지에, 중공몽매국노들이 무릅꿇고 참배하는 중공몽성지 역할도 하는 5.18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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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교과서 "南 민주화운동은 모두 김일성 교시 따른 것" | 연합뉴스 https://www.yna.co.kr › 전체뉴스 2015. 10. 14. —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북한의 교과서들에 그려진 현대 한국의 모습은 어떨까.....광주는 인민봉기의 땅이며, ...북한은 해방 이후 남한에 일어난 민주화 시위와 반정부 운동, 파업 등을 모두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남조선 인민들이 일으킨 것"이라고....북한 교과서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만큼 북한의 관심을 끈 사건도 드물다. 북한은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남조선 애국인민이 호응해 일으킨 반파쇼 투쟁 중에서 5·18광주인민봉기는 가장 성공한 인민혁명사건"이라 주장한다.....====
====한국의 진보가 주체사상 허물어야 - 미래한국 2017. 8. 2. — ....무엇보다 5.18을 전후로 한 주도 세력들의 친북·종북적 경향을 눈여겨 봐야 한다. 광주 학생 운동권 뿌리는 ‘광랑(광주일고 이념서클)’이다. ‘광랑’의 박경호(10기)는 통혁당원이고 김정길은 남민전 전사이며, 5.18의 주역은 11기와 14기이다. 윤한봉(11기)은 미국으로 밀항해 친북 활동에 헌신했고(<윤한봉 녹취록>), 남민전 하부 조직인 구국청년학생회의 김남주(남민전)는 대표적 종북 분자로 “남조선에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민족 반동세력 200만을 철저히 죽여야 한다”고 했으며 사망 후 5·18 희생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김남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자가 윤상원(5.18 후기 주역)이다
https://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232
===='국민모임' 급진 좌파 재편의 실체 : 주간동아 https://weekly.donga.com 2014. 12. 29. — 1972년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좌우를 망라해 광범위한 반독재투쟁이 일어나면서 좌파가 번성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70년대 주요 사건 가운데 후일 종북파에게 큰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79년에 있었던 남민전사건이 그것이다. 남민전은 주사파 성장에 결정적 구실을 한 단체로 김세원(광주), 이재문(대구) 등이 주도했다. 김세원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빨치산 출신으로 광주운동권을 정비하고 김남주, 윤상원 등과 접촉했다. 이재문은 김일성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며 ...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98639/1
====조국 SNS ‘죽창가’ 지은 김남주, ‘남조선 우익 200만 학살’ 주장한 주사파 ... http://www.speconomy.com 2019. 7. 15. — - 조국, 알고 올렸을까? 김남주 “200만의 피, 그것은 소수에 불과해” 김남주 가담한 남민전, 김일성에 충성맹세하기도 김남주, 노무현 정부 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
....그런데 죽창가를 작사한 고(故) 김남주 시인은 1979년 대한민국 유신말기 최대의 공안사건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에 가담한 주사파(주체사상파)였던 것으로 알려져 조 수석이 해당 노래를 언급한 배경에 대해 관심이 모아진다. ■ 김남주 “200만의 반동세력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2013년 9월 12일자 <조갑제닷컴> 보도에 따르면, 유신체제 당시 남민전에서 사상교육을 받았으나 전향한 소설가인 김정익 씨는 1989년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며 쓴 저서 ‘어느 좌익사상범의 고백 : 수인번호(囚人番號) 3179’를 통해 민족주의자로 위장한 주사파 수감자의 실체를 폭로했다. ‘수인번호 3179’에 따르면, 김 씨는 1984년경 교도소 안에서 김남주 시인(1979년부터 수감)을 만났다.
김 씨는 감방에서 만난 김 시인이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우익인사 등)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한다” ▶“그 숫자는 대략 200만 정도는 될 것”이라는 등의 사상을 자신에게 설파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김 시인이 ▶“200만이라는 숫자가 엄청날 것 같지만, 인류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 전체를 놓고 볼 때에 그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민족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온 것이다” ▶“우리에게 적은 숫자의 반동세력의 피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등을 가르쳤다고 전했다. http://www.sp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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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으로부터의 서한: 왜 대부분의 중국 관광객은 킬링필드를 가지 않는가? https://ko.bitterwinter.org 2018. 10. 23. - 매년 12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캄보디아를 찾는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서양인 관광객과는 다른 코스로 여행하며 특히 “킬링필드” 및 공산주의 정권의 학살 흔적을 피해 다닌다. 킬링필드에는 대학살의 비극을 둘러싼 공산당의 책임에 관하여 충격적인 이야기가 서려 있다. -마시모 인트로빈(MASSIMO INTROVIGNE)
....대부분의 서양인, 일본인 및 베트남인 관광객에게는 프놈펜 인근 또는 내부에 필수 코스 두 곳이 있다. 바로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이다. 킬링필드는 오늘날 캄보디아가 대학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한 추모 공간이다. 이곳에서 약 3백만 명의 캄보디아 국민이 폴 포트(Pol Pot, 본명 Salot Sar, 1925-1998, 캄보디아인 여러 명이 폴 포트가 죽음을 위장하고 아직 살아있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함) 정권에 의해 살해됐다.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를 지칭하는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은 150만 명을 참수했고 백만 명 이상을 굶겨 죽였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가 8백만 명이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폴 포트와 공산주의자는 정치적 이유로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의 자국민을 학살했다는
......그러나 킬링필드의 모든 책임 소재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폴 포트가 중국에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켰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1965년 중국에 처음 방문했고 중국 공산당(CCP)에 의해 세뇌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주로 참고한 정책은 중국 문화대혁명이었지만 혁명의 막이 내린 후에도 발 빠르게 새로운 공산당 지도자의 지속적인 지지를 확보해냈다. 크메르루즈의 이념은 문화혁명방식의 모택동주의였다. 크메르루즈는 공산당의 광범위한 정치, 외교, 경제적 지원이 없었더라면 캄보디아 내전에서 승리하지도, 베트남 및 서구의 압박을 거부하며 수년간 권력을 유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은 크메르루즈에 무기 대부분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폴 포트는 공산당이 자신을 베트남으로부터 보호해주리라 기대했고 어느 정도 그 기대는 충족됐다.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을 때, 중국은 우선 이들이 철수하도록 설득했고 이후 1979년 초 중월전쟁이 발발했다. 종국에는 중국이 하노이로 향하던 발을 돌렸는데 캄보디아를 두고 베트남의 보호국이자 동맹국인 소련과 국제전을 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산당은 폴 포트와 크메르루즈를 최후의 순간까지 보호하고 지원했다.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크메르루즈가 1979년 몰락한 이후에도 이들의 연정을 캄보디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해야 한다고 설득한 것도 중국이었다. .....
.....폴 포트 정권 시기에 캄보디아에는 중국 고문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어디에나 있었으며 엄청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 고문들은 분명 대학살과 그 규모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대량 학살은 중국의 승인과 지지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은 수년간 국제적인 선전 활동을 통해 캄보디아 대학살이 발생한 사실을 부인하려 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중국 관광객이 킬링필드를 여행하지 않는 현실이 그리 놀랍지 않다. 비록 박물관에는 중국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주도면밀하게 누락돼 있으나 캄보디아 대학살이 중국 공산당이 저지르거나 지원한 범죄 행위의 기나긴 목록에 추가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역사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모든 중국인에게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https://ko.bitterwinter.org/a-letter-from-phnom-penh/
모택똥주의 빨갱이인 폴포트와 크메르루즈가 중공의 문화혁명을 롤모델로 벤치마킹하고 중공의 지원하에 캄보디아에 건설한 중공몽 킬링필드....
캄보디아판 모택똥인 폴포트, ....캄보디아판 홍위병인 크메르루즈소년병....캄보디아판 문화혁명인 중공몽 킬링필드 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