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보도연맹 학살(國民保導聯盟虐殺)은 1950년 6.25 전쟁중에 대한민국 국군·헌병·반공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을 포함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4934명과[5], 10만 명에서 최대 120만 명으로 추산되는[6][7][8]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추정되는 대학살 사건이다
구분 계 사망 부상 실종/포로
계 775,438 178,631 554,202 42,605
한국군621,479 137,899 450,742 32,838
https://theme.archives.go.kr/next/625/damageStatistic.do
어마어마한 규모의 보도연맹 학살(10만~30만, 최대 120만 주장도 있음)을 제외하고도...
국민방위군도 정작 징집만 해놓고 보급 다 슈킹해서 굶어 죽고 얼어 죽은 사람이 10만명 남짓.
한강 인도교 기습폭파로 500~800명 민간인 사망, 군경 77명 사망.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 최소 1800여명
제주 4.3사건 민간인 학살 사망자 공식 확인된 숫자만 14,442명
여순사건 사망+실종 포함 확인된 피해자 4,209명
대전형무소 학살 총 사망자 4,900여명 중 대한민국 정부가 죽인 숫자가 3,200여명
거창에서도 1,400여명을 학살했으며
4.19때는 공식 집계만 186명이 사망.
그것도 자기나라 국민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
남조선북화통일혁명 연쇄무장반란에 남침전쟁으로 피바다혁명 킬링필드를 건설한 빨갱이들
돼로남불 인지장애 자살들쥐떼 레밍증후군의 남로당 토착빨갱이와 후예 재한조총련 빨갱이들....
====제주4·3사태, 민중봉기 아닌 공산폭동 | Save Internet 뉴데일리 2018. 4. 2. — 제주 4·3사건은 종래 4·3사태, 44·3폭동, 4·3반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 과 그의 천재적 령도자 스탈린 대원수 만세!, 김일성 장군 만세! ====남로당제주도당 인민해방군 사령관 이덕구의 선전포고 http://jeju43.net › board 남로당제주도당 인민유격대원들은 인공기를 곳곳에 게양하였고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르며 살인 방화 납치 약탈을 자행하였다
====홈 > 제주4.3 > 4.3증언 4.3증언 제목 : 대한민국 국민이 꼭 읽어야 할 제주4.3 (8)- https://www.nongak.net/board/index.html?id=nca43116&no=7
====여수 14연대 반란 폭동과 무자비한 양민학살. 그리고 군경 인사들과 우익인사들의 죽음... http://m.blog.naver.com 2014. 1. 28. —...제일 먼저 여수 경찰서를 습격한 반도들은 계속해서 우체국, 지서 등 관공서와 공공건물을 접수, 방화하고 경찰관과 관리, 우익 인사, 우익청년단 간부들을 무차별로 학살하였습니다. 시체가 산더미같이 길가에 쌓였고 집집마다 살해된 사람이 없는 집이 없었습니다....인민위원회가 조직되고 인민공화국의 적기(赤旗)가 나부끼고, 여수 온 시내 와 관공서에 인민공화국 포스터가 나붙었습니다. 불과 하루도 못 되어 여수 시내가 인민공화국 천지가 된 것을 볼 때, 저들이 14연대 반란을 사전에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bhee639/90189318466
====여순사건 70주년, 그때를 되돌아본다! (5) http://www.ysinnews 2018. 12. 2. — ...“위대한 김일성 장군님이 영도하는 용맹한 인민군대가 이승만 괴뢰정권을 타도하고, 우리 남조선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38선을 밀고 내려오고, 여수 신월리에 주둔한 14연대 혁명군들이 19일 저녁에 봉기하여, 여수경찰서를 점령하여 경찰서장을 비롯해서 검둥개 새끼들과 우익놈들을 다 쳐 죽이고, 순천도 점령하고 북으로 쳐 올라가고 있어, 며칠 후면 인민군대와 서로 만날 것이다. 남조선도 위대한 김일성 장군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세상이 되면, 소작도 없어지고 노동자 농민의 세상이 되어, 빈부귀천 없이 누구나 똑같이 행복하게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여러분도 위대한 김일성 장군을 맞이할....
.....반란군의 선창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위대한 김일성 장군 만세! 14연대 혁명군 만세! 삼창을 하고 “어른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학생들은 동각청안으로 들어가라”하여, 청안으로 들어가 앉으니 칠판에 처음 보는 기를 그려놓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기”라면서,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으로 시작되는 김일성 장군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출처 : 에듀저널.여수인터넷신문닷컴( http://www.ysinnews.com)
====6·25 때 좌익이 학살한 5만9964명 名簿 발견 靈光 대학살 2만1225명 월간조선 ....총 4권으로 이루어진 이 名簿에는 5만9964명의 피살자 명단이 실려 있다. 이번에 발견된 피살자 名簿는 국립중앙도서관, 정부기록보존소에도 동일한 문건이 소장돼 있으며 통계청도 피살자 名簿의 일부인 서울시와 경기도 지역의 피살자 명단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표지에 적힌 이 名簿의 정식 명칭은 「6·25 事變 被殺者 名簿」이며 작성 주체는 공보처 통계국으로 돼 있다. 작성일은 1952년 3월31일이다.....
....凡例(범례)에 『6·25 사변 중 공무원 및 일반인이 잔인무도한 괴뢰도당에 피살당한 상황을 조사 편찬하였다』면서, 대상을 『軍警을 제외한 非전투자에 한하였다』고 밝혀, 인민군 등 좌익에 의해 피살된 사람들의 명단만 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5만9964명의 피살자 가운데 전남 지역에서 피살된 사람이 4만3511명으로 전체의 72.6%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전라북도(5603명), 충청남도(3680명), 경기도(2536명), 서울시(1383명), 강원도(1216명) 順이었다. 그 외 경상남도 689명, 충청북도 633명, 경상북도 628명, 제주도 23명, 철도경찰 62명이 좌익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기록됐다. 전체 피해자 가운데 남자가 4만4008명, 여자가 1만5956명이었다.
여성 피살자 1만5956명 가운데 1만3946명이 전남 지역에서 피살됐다. 피살자가 집중된 전남 지역에서도 특히 靈光郡(영광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전남 지역 피살자 4만3511명 중 절반에 가까운 2만1225명이 영광군에서 피살됐다. 영광지역 여성 피살자는 전국 여성 피살자의 절반 가까운 7914명이다. ...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204100025
===='2만명 학살 아픔' 영광에 6·25 민간인희생자 위령탑 제막 광주일보 2021. 10. 28. — 지난 21일 한국전쟁 당시 가장 많은 민간인이 학살된 영광군에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이 전후 70여년 만에 세워졌다. <영광군 제공> 한국전쟁 당시 가장 많은 민간인이 억울한 죽임을 당한 영광에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이 전후 70여년 만에 세워졌다. 영광 지역에는 군·경 참전기념비는 있지만 민간인 희생자의 아픔을 기리는 위령탑은 처음 세워졌다. 대한민국 통계연감’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남한에서 민간인 6만여명이 공산 좌익 세력에 학살당한 가운데 이중 전남지역 학살자가 4만3500여명으로 전체 72.5%를 차지한다. 다시 전남지역을 세분화해 살펴보면 영광군에서 가장 많은 2만1200여명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635412800728256150
근데 저 '위령비' 글씨체가 남조선북화통일혁명당 간첩 신영북의 '북화혁명체 붓 글씨체'란 것....여순반란기념탑 글씨체도 간첩 신영북의 북화혁명체 붓 글씨체고....위령비가 아닌 부관참시 확인사살 기념비에 진지전 스파이전쟁으로 역사조작에 성공한 연쇄역사조작반란 승전기념비인 것
북지원과 재한조총련 의장 남로달곰문이 국정원을 북정원으로 접수하고 원훈석을 철거한후 세운 북화혁명석의 글씨체도 남조선북화통일혁명당 간첩 신영북의 '북화혁명체 붓 글씨체'...
붓.... 남조선북화통일혁명 진지전 스파이전쟁
====[평양공동선언] 백두산 정상에서, 남북 정상의 대화록 전문 ...네이버 블로그 2018. 10. 2. — ...문재인 대통령 : 한라산에도 백록담이 있는데 천지처럼 물이 밑에서 솟지 않고 그냥 내린 비, 이렇게만 돼 있어서 좀 가물 때는 마릅니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 : 백두산 천지에 새 역사의 붓을 담가서, 백두산 천지의 물이 마르지 않듯이 이 천지 물에 붓을 담가서 앞으로 북남 간의 새로운 역사를 또 써 나가야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 이번에 제가 오면서 새로운 역사를 좀 썼지요.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도 다하고...
===='민족 영산'에서 맞잡은 손…"남북 새 역사 쓰자" - MBC뉴스 2018. 9. 20. —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백두산의 천지물이 마르지 않으니 이 천지물에 붓을 담가서 앞으로 북남 간의 새로운 역사를 또 써 나가야겠습니다."..... ====[포토뉴스] 백두산 천지에 선 남북정상...김정은 “천지 물 마르지 ... https://www.newskr.kr 2018. 9. 20. —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백두산 천지를 산책하던 중 천지 물을 물병에 담고 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조선로동당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ko.wikipedia.org › wiki › 조선로동당 상징 — 상징[편집]. 조선로동당의 마크는 망치와 낫, 붓이다. 망치는 혁명의 로동 계급인 로동자를, 낫은 농민을, 붓은 지식인, 조선로동당 당원을 뜻한다...... ====조선노동당기에는 왜 붓이 있을까 - 민중의소리www.vop.co.kr › ... 2005. 10. 6. — 조선노동당의 당기에도 새겨져 있는 망치,붓,낫은 각각 노동자, 지식인, 농민을 상징한다. 특이한 것은 붓인데, 이는 조선노동당 특유의 지식인 중시 ..
이른바 '백돼혈통' 똥돼지네를 상징한다는 백두산의 천지물에 조선노동당의 조로붓(남조선북화통일혁명 임무를 수행하는 남로붓 혁명전사 포함)을 담가서 '북남 간의 새역사(남조선북화통일혁명의 새역사)'를 써나가얀다고 교시하는 돼정은과 아부함서 맞장구쳐주고 천지물을 담아가는 수석간첩 수석똥충견 남로달곰문과 돼숙이
....
====신영복 교수의 붓글씨 '신영복체' 이야기 - 프레시안 2006. 2. 20. — 아름다운 미산계곡에도 따뜻한 봄이 오고 있습니다. 더불어숲학교가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봄학기를 시작합니다. 첫 강의인 제27강은 항상 새 학기 ......
====신영복 평전: 더불어 숲으로 가는 길 - 더불어 숲으로 가는 길 ' ... 쇠귀는 군사 정권의 배후에미국 이란 강력한 외세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진지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의 하방(下方)연대, 우리 시대 운동론의 핵심" - 오마이뉴스 .. 2006. 12. 2. — 1일 저녁 7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인문사회과학을 지키는 한 서점을 후원 ... 마지막으로 신 교수는 사회변혁 방법론으로 '진지전' 개념을 창안한 ... 이어 "사회 곳곳에 그런 진지와 숲을 만드는 노력이 중
====손잡고 더불어: 신영복과의 대화 - 신영복 · 2017 · Philosophy 신영복과의 대화 신영복. . ... 또 저의 숲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론'(陣地論) 과 같은 의미입니다. ====쇠귀 신영복...'한 평 감옥'에서 '더불어숲'을 보다 - 뉴스타파 2016. 1. 18. — 지난 1월 16일 2년 간의 투병 끝에 향년 75세로 타계한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이 오늘(19일) 성공회대에서 엄수됐다. 빈소가 마련 ...
====野 '故신영복의 추억'…"당명, '더불어숲' 되라는 고인 선물" | 연합뉴스 2016. 1. 16. — 野 '故신영복의 추억'…"당명, '더불어숲' 되라. 더민주 문재인 대표는 페이스북 글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대선패배에 누구보다 아파하시고, 다 함께 ...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 정신 이어 세상 바꾸겠다" - 노컷뉴스 2017. 1. 15. — 문재인 고문은 “'더불어 민주당'의 '더불어'는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숲'에서 나온 것"이라며, "촛불 하나하나는 가냘프지만 많이 모이게 되니 .....====
돼정은의 '천지물에 붓을 담가서 남조선북화통일혁명 새역사를 써내려가라'는 교시지령 => 똥돼지네 수석간첩에 수석똥충견인 재한조총련의장 남로달곰문이와 돼숙이가 떠온 백두산천지물 =>남조선북화통일혁명당 간첩 신영북의 북화혁명체 붓 글씨체로 쓴 남조선북화통일혁명 진지전 스파이전쟁 승전기념물들
그때그시절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전쟁 vs 지금이시절 똥돼지네 주구인 남로당의후예 재한조총련의 남조선북화통일혁명 진지전 스파이전쟁 대한민국 멸망 망국전쟁
똥돼지네 수석똥충견에 수석간첩인 재한조총련 의장 남로달곰문의 방북은, 온통 인공기만 펄럭이는 평양순안공항=>조선노동당 중앙당사내 노동당마크 아래 통일의상징이라는 한반도기가 있는 배경서 돼정은과 기념사진=>이른바 백돼혈통 똥돼지네를 상징한다는 반쪽짜리 백두산의 천지서 돼정은의 '천지물 붓 교시지령'에 따라 천지물을 떠옴=>능라도경기장서 돼정은과 함께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주체욱일태양 통일조국 똥돼지핼조선)' 관람
일종의 돼천지 주체욱일태양통일교의 남조선북화통일혁명 사이비종교 의식
====[풀영상] 남북 정상이 함께 관람한 북한 '대집단체조' 공연 '빛나는 조국' / 연합뉴스 (Yonhapnews) 연합뉴스 Yonhapnews 구독자 95.3만명 조회수 84만회 5년 전..... https://youtu.be/XXl1_lLMQdI
능라도경기장의 집단체조 '빛나는 (통일)조국'의 맨 첫장면은 카드색션으로 맨들어진 똥돼지네상징이라는 주체욱일태양으로 통일의상징이라는 한반도기가 바쳐지는 '남조선북화통일혁명 통일한반도 똥돼지핼조선'을 위한 사이비종교 의식
====보도연맹 우익 학살 앞장서자 국군이 예비검속… 억울한 희생 이어져 [6.25전쟁 70주년] 김재동 목사의 잊지 말아야 할 그때 그 역사 <11> 국민일보 2020. 5. 28. — 대한민국 정부는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의 사상을 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에 따라 공산주의에서 전향한 좌익을 통합·관리하기 위해 1949년 6월 국민보도연맹이라는 단체를 조직했다. 문제는 6·25전쟁 발발 3일 만에 인민군에 의해 서울이 점령당하면서 보도연맹원들의 상당수가 다시 전향해 인민군에 부역하며 우익색출 및 인민재판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와 마포형무소, 인천형무소에서 나온 9000여명의 남로당원과 보도연맹 가입자는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인민재판을 통해 양민을 학살했다.
인민재판을 주도한 이는 전향 후 보도연맹의 명예 간사장을 맡고 있던 정백이었다. 그는 서울이 인민군에 함락되자 즉시 극좌로 돌아서 보도연맹원들과 함께 우익인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북한 인민군이 내려왔을 때 ‘전향한 좌익’인 보도연맹원들이 제거 대상 1호였기 때문이었다. 보도연맹 소속의 ‘전향한 좌익’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 극렬하게 북한 인민군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인천의 보도연맹원들은 전쟁발발과 동시에 북한 동조세력으로 돌변해 적기를 앞세우고 시가행진을 하는 등 북한군을 맞이할 분위기를 조성했다.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부영사 핸더슨이 1950년 7월 4~5일에 쓴 비망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인민군이 형무소 문을 열어 정치범과 재소자들을 모두 풀어줬다. 재소자들은 무장한 뒤 자신들을 감옥에 보낸 사람을 찾아 보복에 나섰다. 한국군 사령부가 있던 서빙고에 인민재판소가 곧바로 설치됐으며 한때 보도연맹을 이끌던 정백이 우두머리가 됐다. 과거 유명한 공산주의자로 수개월 전 경찰에 체포된 정백은 당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대한민국에 충성하겠다고 했다. 국회 프락치 사건과 관련해 유죄를 선고받은 국회의원 13명도 인민재판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죄 선고만 있는 공산주의자들의 형식적인 재판에선 보도연맹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도연맹원 수천 명이 공산주의에 대한 그들의 뉘우침을 내팽개치고 거리로 나가 경찰, 공무원, 군인과 그 가족 등 우익을 지목하고 있다. 그들에게 지목된 사람은 인민재판을 받은 뒤 즉결 처형되고 있다.” 보도연맹원들의 이러한 행위는 인공 치하에 들어간 서울 인천 등 수도권의 주요 도시에서 일어났다. 수도권 이남에서도 피난 못 간 국민이 인민군과 보도연맹원에 의해 학살당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국군은 퇴각 전 보도연맹원에 대한 예비검속 등 방어적 조치와 함께 보도연맹원에 대한 처형을 집행했다. 지방에 있는 보도연맹원 또한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처럼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악질 반동분자’로 지목해 학살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다수 발생했다는 점이다. 6·25전쟁 전 보도연맹이 만들어질 때 담당자들이 실적을 위해 무리하게 ‘무고한 사람’을 가입시켰기 때문이다. 담당자들이 보도연맹을 만들 때만 해도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이 남침하면서 보도연맹의 명부는 살생부가 돼버렸다.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공산군 치하에서 인민재판을 통해 잔혹하게 살해당한 양민들과 그리고 일부 무고한 보도연맹원들의 억울한 죽음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6·25전쟁의 역사적 비극이다. 우리는 이러한 비극의 근본 원인이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건국과정에서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사건에 의해 발생한 전대미문의 양민학살은 신생국 대한민국과 온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극심한 혼란을 일으켰다.
그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6·25전쟁이 발발해 서울이 함락되자 자유민주주의로 전향한 보도연맹원들이 공산주의자로 회귀했고 인민재판을 통해 우익과 양민에 대한 학살에 앞장섰다. 이는 퇴각하는 국군들이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예비검속과 처형에 나서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6·25 당시의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하거나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 국군과 미군만 학살의 주범으로 몰아가고 있다.
6·25전쟁 중에도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회에서의 ‘사형금지법’ 가결(9월 18일), 육군본부의 ‘민간인에 대한 사적인 가해를 금지’ 훈령 발표(9월 25일), 이승만 대통령의 ‘탈환지역에서의 사적인 원한에 의한 타살·구타 금지 등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9월 28일), 국회 부역자처리법 확정가결(10월 13일) 등 국민의 자유와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이승만 대통령과 국회, 국군의 노력이 있었다.
특히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었던 손원일 제독은 서울 수복 이후 시내 곳곳에 “공산군에 협력한 사람이라도 이북으로 도망가지 않은 사람은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포고령을 붙였다. 손 제독은 이 대통령에게 “비록 적에게 협조한 사람이라도 적의 총부리 앞에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협조한 사람은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이 대통령은 조병옥 내무부 장관과 신성모 국방부 장관에게 “부역자라고 해서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내렸다....====
역사 구라쟁이 황현필, 이제 들통다났는데, 아직도 이런게 먹힐거라 생각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