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애국민주국민들이 윤석열을 중심으로 반역매국노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면 광화문에 윤석열동상을 세워줘도 될듯
oo(183.105)2025-01-01 2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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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218.235)2025-01-01 2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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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민주주의역사에 길이 남을 대전환점이 될 거라봄
oo(183.105)2025-01-01 2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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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선전죄 해당 댓글 민주파출소에 신고■
익명(223.38)2025-01-01 2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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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좌익이 학살한 5만9964명 名簿 발견 - 월간조선
월간조선
...사단은 9·28 서울 수복 후에 벌어졌다. 후퇴했던 유엔군과 국군이 영광읍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백전무의 아버지는 청년단원들과 함께 몰래 태극기를 만들면서 유엔군과 국군을 맞을 준비를 해 왔다. 1950년 9월29일, 소문대로 지프를 탄 미군 소속 흑인병사들과 국군이 영광에 들어왔다.
백전무의 아버지와 청년단원들, 공산치하에서 숨죽이고 있던 영광군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환영에 나섰다. 흑인 병사들과 국군은 영광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증언자마다 그냥 스쳐지나갔다는 주장과 하룻밤을 묵고 떠났다는 증언이 엇갈린다. 중요한 것은 서울이 수복된 이후에도 국군이든 유엔군이든 영광에 주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oo(183.105)2025-01-01 22: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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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과 국군이 잠깐 스쳐지나간 영광은 비록 인민군은 떠났지만 여전히 빨치산이 지배하는 인민공화국 치하였다. 좌익 세력에 의한 우익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선풍과 학살이 시작됐다. 유엔군 환영에 나섰던 우익 쪽 민간인들이 좌익들에게 완전히 노출된 것이다.
기자와 만난 대부분의 증언자들은 이 유엔군 환영식으로 인해 영광지역의 피살자 수가 크게 늘었다고 말하고 있다. 「6·25 피살자 名簿」에도 9·28 서울 수복 이후의 피살자 수가 이전의 피살자 수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빨치산 소년단 출신 金西用씨의 증언을 통해서도 그같은 사실은 입증이 된다.
oo(183.105)2025-01-01 22: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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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환영식이 있은 다음 거기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빨치산들은 유엔군이 온다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앞잡이들에게 주민들의 행동거지를 잘 살펴보도록 지시해 놓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더 많이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참혹한 광경에 눈이 멀어버리다
백전무의 가족 전체는 유엔군 환영대회 직후 좌익들에게 끌려갔다. 손위 형 종인씨는 마침 가족들이 끌려갈 때 밖으로 놀러갔다가 禍(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이웃집에서 『집으로 가면 큰일 난다』며 숨겨 주었다고 한다. 이웃집에 숨었다는 사실을 안 빨치산들은 죽창을 들고 와 종인씨를 찾았다. 金西用씨의 표현을 빌면 『씨를 말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변기통에 몸을 숨겼던 종인씨는 그곳을 .....====
oo(183.105)2025-01-01 22: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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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니 저때도 '민주파출소'가 있었구만...태극기집회 참석자를 고발하는 '민주파출소'
oo(183.105)2025-01-01 22: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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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과 인근지역서 수천명을 동포들을 극악무도하게 학살해 피바다혁명 킬링필드를 건설한후 산으로 도망간 여순반란 잔당 빨치산들이 6.25남침전쟁과 더불어 영광으로 몰려들어서 또다시 피바다혁명 킬링필드를 건설하는 바람에 학살당한 피해자가 많다함,
oo(183.105)2025-01-01 23: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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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몇년전 영광에 위령비를 세워졋는데 위령비 글씨체가 그 유명한 남조선북화통일혁명당 간첩 신영북의 '북화혁명체' 붓글씨체란 것
oo(183.105)2025-01-01 2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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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로당의후예 재한조총련이 이번 적반탄핵반란에 경찰과 군대내에 심어논 공안들과 재한북괴군을 동원한다면 제2의여순반란이 될 판
다 계엄군 총에 맞고 뒤져야하는데
거짓 선동 잘하네 ㅋㅋㅋㅋ
■내란 선전죄 해당 댓글 민주파출소에 신고■
이번에 애국민주국민들이 윤석열을 중심으로 반역매국노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면 광화문에 윤석열동상을 세워줘도 될듯
대한민국 민주주의역사에 길이 남을 대전환점이 될 거라봄
■내란 선전죄 해당 댓글 민주파출소에 신고■
====6·25 때 좌익이 학살한 5만9964명 名簿 발견 - 월간조선 월간조선 ...사단은 9·28 서울 수복 후에 벌어졌다. 후퇴했던 유엔군과 국군이 영광읍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백전무의 아버지는 청년단원들과 함께 몰래 태극기를 만들면서 유엔군과 국군을 맞을 준비를 해 왔다. 1950년 9월29일, 소문대로 지프를 탄 미군 소속 흑인병사들과 국군이 영광에 들어왔다. 백전무의 아버지와 청년단원들, 공산치하에서 숨죽이고 있던 영광군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환영에 나섰다. 흑인 병사들과 국군은 영광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증언자마다 그냥 스쳐지나갔다는 주장과 하룻밤을 묵고 떠났다는 증언이 엇갈린다. 중요한 것은 서울이 수복된 이후에도 국군이든 유엔군이든 영광에 주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엔군과 국군이 잠깐 스쳐지나간 영광은 비록 인민군은 떠났지만 여전히 빨치산이 지배하는 인민공화국 치하였다. 좌익 세력에 의한 우익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선풍과 학살이 시작됐다. 유엔군 환영에 나섰던 우익 쪽 민간인들이 좌익들에게 완전히 노출된 것이다. 기자와 만난 대부분의 증언자들은 이 유엔군 환영식으로 인해 영광지역의 피살자 수가 크게 늘었다고 말하고 있다. 「6·25 피살자 名簿」에도 9·28 서울 수복 이후의 피살자 수가 이전의 피살자 수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빨치산 소년단 출신 金西用씨의 증언을 통해서도 그같은 사실은 입증이 된다.
『유엔군 환영식이 있은 다음 거기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빨치산들은 유엔군이 온다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앞잡이들에게 주민들의 행동거지를 잘 살펴보도록 지시해 놓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더 많이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참혹한 광경에 눈이 멀어버리다 백전무의 가족 전체는 유엔군 환영대회 직후 좌익들에게 끌려갔다. 손위 형 종인씨는 마침 가족들이 끌려갈 때 밖으로 놀러갔다가 禍(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이웃집에서 『집으로 가면 큰일 난다』며 숨겨 주었다고 한다. 이웃집에 숨었다는 사실을 안 빨치산들은 죽창을 들고 와 종인씨를 찾았다. 金西用씨의 표현을 빌면 『씨를 말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변기통에 몸을 숨겼던 종인씨는 그곳을 .....====
보자니 저때도 '민주파출소'가 있었구만...태극기집회 참석자를 고발하는 '민주파출소'
여수순천과 인근지역서 수천명을 동포들을 극악무도하게 학살해 피바다혁명 킬링필드를 건설한후 산으로 도망간 여순반란 잔당 빨치산들이 6.25남침전쟁과 더불어 영광으로 몰려들어서 또다시 피바다혁명 킬링필드를 건설하는 바람에 학살당한 피해자가 많다함,
해서 몇년전 영광에 위령비를 세워졋는데 위령비 글씨체가 그 유명한 남조선북화통일혁명당 간첩 신영북의 '북화혁명체' 붓글씨체란 것
남로당의후예 재한조총련이 이번 적반탄핵반란에 경찰과 군대내에 심어논 공안들과 재한북괴군을 동원한다면 제2의여순반란이 될 판
정말 ㅄ같다 보수는 망했다 이런것들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