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세계사] (90분) 히틀러, 스탈린에 버금가는 최악의 학살자 폴 포트+ 감옥 국가를 건설해 국민 1/4의 목숨을 앗아간 폴 포트의 최후+
디글 :Di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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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28만회 1년 전....
https://youtu.be/Hn0uCLQcYcU
====5.18문학 - 임형의 남도문학기행
2017. 3. 14. · 게시물 10개 · 작성자 2명
....1978년 전남대 2학년이던 나는 국문과 선배이면서 연극 활동을 하던 박효선 형의 권유로 연극반에 들어갔다. ...그때 나는 연극반 선배였던 상원 형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상원 형은 한참 선배였지만 후배들과 똑 같이 한 부분씩을 맡아 발표를 하고 마지막에 정리를 해 주는 방식으로 적극 참여하였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로 먼저 의식의 전환을 하고, 이어서 중국관련 공부, 경제사 공부 등을 이어갔다. 얼치기 대학생이던 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개안을 하는듯한 충격에 빠졌다. ...그때 ‘전환시대의 논리’는 의식화 입문서였던 셈이다.....====
oo(183.105)2025-01-12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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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탯자리 천동마을
광주일보
2023. 5. 30. — ... 누구보다 가깝게 지냈던 녹두서점의 김상윤 선생은 윤상원의 대학 시절부터 함께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후 복학한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윤상원은 학습조의 기둥 노릇을 했어요.” 1977년 10월 윤상원과 둘이 있던 자리에 한 젊은 여자가 서점으로 들어왔는데, 리영희 교수의 저작 ‘8억인과의 대화’란 책이 있냐 물었다. “윤상원과 공범의 눈빛을 교환한 뒤 방 안에 있던 책을 가져와 그녀에게 주었지요. “꼭 큰 상을 드리는 느낌입니다.”라고 그러면서요.”
...====
oo(183.105)2025-01-12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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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서점上] 학생·노동자·농민 사랑방 … 독재 항쟁정신 싹 ...
광주일보
2016. 8. 17. — ....김상윤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붙잡혀 1975년 2월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이후 ‘학습조’를 만들어 대학생들의 의식화 작업에 들어갔고, 정치외교학과 복학생 윤상원도 함께였다.
“5∼6명이 한 조가 돼 6개월 동안 학습하고 나면 그 여섯 사람이 또 여섯 사람을 의식화 시키는 방식으로 학습을 진행했습니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많은 책을 사서 공급했었죠.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등등 많은 책을 읽었죠. ...====
oo(183.105)2025-01-12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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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평전 - 1956페이지 -
김상집 · 2021 · History
... 의식화 학습 을 가장 먼저 강조한 사람 은 김남주 시인 이었다 . 김남주 시인 은 ... 리영희 선생 의 《 전환 시대 의 논리 》 를 펴냈다 .《 창작 과 비평 》 1975 년 ...
====윤상원으로 되짚어보는 5·18항쟁(3)김남주와 카프카 서점
남도일보
2023. 5. 9. — 의식화 학습 커리큘럼은 김상윤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김남주가 카프카 서점을 열어 책 공급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이 책 저 책 닥치는 대로 읽어 ...====
oo(183.105)2025-01-12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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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올해 리영희상 박정훈 대령
미디어오늘
2024. 11. 28. — '채수근 해병 순직 사건' 이첩 보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올해 리영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외압 거부하고 양심 따랐다”···박정훈 대령, 리영희상 수상자 ...
경향신문
2024. 11. 28. — “외압 거부하고 양심 따랐다”···박정훈 대령, 리영희상 수상자로 선정 ...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재판 ...====
oo(183.105)2025-01-12 14:01:00
답글
....
oo(183.105)2025-01-12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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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의 문혁춘추] 38회: "변방의 중국몽: 좌파 친중주의의 뿌리" ...
http://www.pennmike.com
›
2019. 10. 16. — 리영희는 대한민국 좌파세력의 구루(Guru)다. 현재 50-60대 한국 인텔리들은 젊은 시절 리영희의 저작을 읽으며 사회주의적 이상주의를 키웠다. 여러 논객들은 그를 “살아있는 신화”로, “한국현대사의 길잡이”로,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명”으로, “사상의 은사”로, “허구의 시대에 정직하게 살려고 했던 인간의 징표”로 미화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여러 차례 리영희의 저서를 통해 현실에 눈뜨고 가치관을 정립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oo(183.105)2025-01-12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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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2010년 12월 7일 문재인은 “리영희 선생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이라 말한 바 있다. 나아가 그는 “우리 세대들에게나 학생운동, 민족운동 한 사람들은 [리영희] 선생님 영향이 절대적 이었다”고까지 술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차례 리영희의 저서를 통해 현실에 눈뜨고 가치관을 정립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바로 엄청난 그의 “영향력” 때문에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친중주의의 근원적 뿌리를 찾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리영희의 저작을 꼼꼼히 읽어야만 한다. 중국을 무기 삼아 한국을 공격하는 전술을 구사했던 그는 한국의 좌파들엔 “우상에 도전하는 실천적 이성”이며, 여전히 문대통령을 지배하는 “정신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oo(183.105)2025-01-12 14:02:00
답글
1976년, 모택동 사망 직후, 리영희는 모택동이야말로 “인간의 평등과 인간소외의 해소·극복”을 위한 “인간우선주의”와 “인간중심 사상제일주의”의 새로운 사회주의 이념을 제창한 위대한 혁명의 사상가라 찬양한다.
리영희는 또 모택동의 사망 직후 막을 내린 문화혁명(1966-1976)에 대해서도 “모든 사회분자의 인간애”에 기초한 “웅장한 인류사적 실험”이라며 격찬한다. 나아가 모택동이 마르크스와 레닌을 능가하는 인간제일주의 사상가라고도 평가한다. 심지어 그는 당시 중국을 휩쓸었던 “모택동 인격숭배”(The Mao Cult)마저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oo(183.105)2025-01-12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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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무죄!" 10대 홍위병, 학살의 주체가 되다 [송재윤의 슬픈 중국]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조선일보
2020. 9. 26. — 1966년 8-9월 10대의 홍위병들은 분명 바로 그런 “악의 상투성”에 길들여진 상태였다. 그들은 살인이 허용되는 무법 상태에서 혁명의 사명감에 들떠 학살을 감행했다. 그 밑에는 법질서의 해체와 도덕적 아노미(anomie)가 깔려 있었다. 물론 그들은 최고영도자의 암시를 따라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었다.....
....“혁명은 무죄이며, 반란은 정당하다.” 이제야 홍위병은 그 의미를 파악했다. 그들의 눈앞엔 살인까지 허용되는 무법천하가 펼쳐졌다....====
oo(183.105)2025-01-12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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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진실을 외면했던 정직하지 못한 지식인 리영희에 대한 고발 ...
http://pub.chosun.com
2016.
8. 26. — 1966년 8월 18일 마오쩌둥이 홍위병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천안문 광장 앞을 사열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지식인과 책에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와 그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가 각각 2위로 선정되었다고 경향신문이 2007년 보도했다. 2012년 12월 리영희 교수가 타계했을 때 좌파 언론을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은 ‘실천하는 지성’ ‘사상의 은사’로 고인을 추모했다. 백낙청은 조사에서 “고인이 살던 시절은 비록 험난했으나 진실에 열렬히 호응하고 이를 실천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던 감격의 시대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oo(183.105)2025-01-12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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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마오쩌둥(毛澤東)을 위시한 중국의 공산주의자들과 이들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었던 1980년대 초 나는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었다. 공산당은 악(惡)이고, 이를 따르는 무리들은 상식적인 도를 넘어서는 비도덕적 인물일 것이라는 게 당시 내가 알던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의 전부였다. 그러나 리영희의 책에서 본 마오쩌둥과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높은 도덕성과 숭고한 인간애를 지닌 이 시대 최고의 우상이자 영웅들이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인간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만들기 위한 ‘인류 최초의 위대한 실험’이었다.
oo(183.105)2025-01-12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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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영희 추종자 중 하나였다”
리영희와 만남을 통해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자본주의의 온갖 이기심과 도덕적 타락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나라, 공산주의 나라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리영희의 안내에 따라 숭고한 이상을 향한 혁명적 실천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백낙청의 말대로 리영희를 따라나선 ‘진실에 열렬히 호응하여 이의 실천에 나선 젊은이들’ 중 하나였다. 나의 청년 시절 공산주의자의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oo(183.105)2025-01-12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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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의 사상과 이에 입각한 실천은 도전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구 공산권들의 연이은 붕괴는 다시 한 번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나라들은 내가 알던 이상의 세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토록 경멸했던 자본주의 나라들보다 더욱 심한 인권 탄압과 부정과 독재로 일관된 최악의 나라들이었다. 그즈음 탈북자들의 증언이 언론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탈북자의 입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북한의 실상은 더욱 충격이었다. 마지막 결정타는 황장엽씨의 탈북과 그의 증언이었다. 북한은 책에서 본 나라가 아니었다. 도저히 인간의 짓이라고 보기 어려운 참혹한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 탄압, 최악의 식량난, 민주주의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최악의 1인 통치, 독재국가 그것이었다
oo(183.105)2025-01-12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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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내가 목숨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히 여겼던 믿음과 너무나 다른 사실과 마주해야 했다.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즈음 다시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에 대해 공부했다. 리영희의 안내는 거짓이었다. 그는 ‘실천하는 지성’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선전을 그대로 수용하고 이를 우리에게 안내한 ‘잘못된 안내자’였다. 나의 젊은 시절을 온통 지배했던 혁명과 그를 위한 헌신과 실천은 통째로 부정당했다. 나는 잘못된 안내자를 따라 잘못된 길을 나선 ‘저능아’였다.
oo(183.105)2025-01-12 14:04:00
답글
문화대혁명은 인류사상 초유의 실험?
리영희는 1974년 발간된 ‘전환시대의 논리’에 수록된 ‘대륙중국에 대한 시각조정’에서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과 그가 일으킨 문화대혁명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리영희는 당시 쿠바특파원인 루이 암스트롱의 글과 한국외국어대 안경준씨의 글을 인용하여 ‘중국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류사상 초유의 실험’, 즉 문화대혁명에 대해 두 가지 평가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글에서 리영희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는 중국에 대한 선입관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리영희는 잘못된 선입관 때문에 문화대혁명이 잘못 평가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리영희에 따르면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인류 최초의 인간의식 개조 혁명이었다. .====
oo(183.105)2025-01-12 14:04:00
답글
윗글은 전광훈목사와 함께하는 전향우파애국자 이동호교수 글임
oo(183.105)2025-01-12 14:04:00
답글
====이동호교수,김대중과의 대화 전격공개,전향하지않았다!...2022 02 17 13 08 00
너만몰라TV
구독자 41.9만명
조회수 5.1만회 2년 전....
https://youtu.be/BKnu73tRB78
oo(183.105)2025-01-12 14:15:00
답글
====김대중은 간첩인가? - 김국성 前 북한 정찰총국 대좌 #Shorts
트루스포럼 Truth Forum
구독자 8.34만명
조회수 212만회 2년 전...
https://youtu.be/k7f1wvzN1ck
oo(183.105)2025-01-12 14:17:00
답글
....
oo(183.105)2025-01-12 14:25:00
답글
====대약진 운동
나무위키
2023. 9. 20. — 이로 인해 중국 전역에서 기근이 발생해[1] 3천만~5천만 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이는 작정하고 중국인을 죽인 난징 대학살과 최소 30배 이상 차이 ...
====문화대혁명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
문화 혁명으로 인해 수십만에서 2 천만에 이르는 추정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베이징의 "붉은 8 월"을 시작으로 광시 대학살 (대규모 식인 풍습 ...====
oo(183.105)2025-01-12 14:27:00
답글
====毛澤東주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경북일보
폴 포트는 크메르 루즈 정권을 탄생시키고, 모택동사상에 입각해 '공산 농촌사회' 건설에 착수했다.
농민만 있으면 되니, 학자, 과학자, 의사, 법률가, 자본주의자, 외국 유학자 등등은 '말만 많고 쓸모 없는' 존재들이었다. 이들을 전부 농촌으로 내쫓고 반발하는 자는 가치 없이 처형했다. ...
====생생히 들어나는 크메르 루즈 잔학상
VOA 한국어
2009. 5. 8. —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권의 악명높았던 뚜옹 슬렝, 일명 S-21 형무소 소장이었던 카일 구엑 에아브 피고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전범 재판소에 출두해 심문을 받았습니다. ... 크메르 루주 정권은 극단적인 마오쩌둥 주의 공산정권으로 자국 국민들에게 잔혹행위를 자행하다가...=
oo(183.105)2025-01-12 14:28:00
답글
====킬링필드에서 살아돌아온 어린이, 제 이름은 '노릉 찬 팔' 입니다 | 킬링필드 현지 생존자 인터뷰
생생현대사
구독자 1.09만명
조회수 4.5천회 1년 전
캄보디아 현지 르포
1부 - 캄보디아 킬링필드... 잔혹한 학살의 현장에 가다....
https://youtu.be/Tq_TyOyKd7s?t=180
----
크메르루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크메르루주는 중국 마오쩌뚱 이념을 따랐습니다" ----
oo(183.105)2025-01-12 14:29:00
답글
====프놈펜으로부터의 서한: 왜 대부분의 중국 관광객은 킬링필드를 가지 않는가?
https://ko.bitterwinter.org
2018.
10. 23. - 매년 12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캄보디아를 찾는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서양인 관광객과는 다른 코스로 여행하며 특히 “킬링필드” 및 공산주의 정권의 학살 흔적을 피해 다닌다. 킬링필드에는 대학살의 비극을 둘러싼 공산당의 책임에 관하여 충격적인 이야기가 서려 있다.
-마시모 인트로빈(MASSIMO INTROVIGNE)
oo(183.105)2025-01-12 14:30:00
답글
....대부분의 서양인, 일본인 및 베트남인 관광객에게는 프놈펜 인근 또는 내부에 필수 코스 두 곳이 있다. 바로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이다. 킬링필드는 오늘날 캄보디아가 대학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한 추모 공간이다. 이곳에서 약 3백만 명의 캄보디아 국민이 폴 포트(Pol Pot, 본명 Salot Sar, 1925-1998, 캄보디아인 여러 명이 폴 포트가 죽음을 위장하고 아직 살아있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함) 정권에 의해 살해됐다.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를 지칭하는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은 150만 명을 참수했고 백만 명 이상을 굶겨 죽였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가 8백만 명이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폴 포트와 공산주의자는 정치적 이유로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의 자국민을 학살...
oo(183.105)2025-01-12 14:30:00
답글
......그러나 킬링필드의 모든 책임 소재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폴 포트가 중국에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켰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1965년 중국에 처음 방문했고 중국 공산당(CCP)에 의해 세뇌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주로 참고한 정책은 중국 문화대혁명이었지만 혁명의 막이 내린 후에도 발 빠르게 새로운 공산당 지도자의 지속적인 지지를 확보해냈다.
크메르루즈의 이념은 문화혁명방식의 모택동주의였다. 크메르루즈는 공산당의 광범위한 정치, 외교, 경제적 지원이 없었더라면 캄보디아 내전에서 승리하지도, 베트남 및 서구의 압박을 거부하며 수년간 권력을 유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은 크메르루즈에 무기 대부분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oo(183.105)2025-01-12 14:30:00
답글
폴 포트는 공산당이 자신을 베트남으로부터 보호해주리라 기대했고 어느 정도 그 기대는 충족됐다.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을 때, 중국은 우선 이들이 철수하도록 설득했고 이후 1979년 초 중월전쟁이 발발했다. 종국에는 중국이 하노이로 향하던 발을 돌렸는데 캄보디아를 두고 베트남의 보호국이자 동맹국인 소련과 국제전을 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산당은 폴 포트와 크메르루즈를 최후의 순간까지 보호하고 지원했다.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크메르루즈가 1979년 몰락한 이후에도 이들의 연정을 캄보디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해야 한다고 설득한 것도 중국이었다. .....
oo(183.105)2025-01-12 14:31:00
답글
.....폴 포트 정권 시기에 캄보디아에는 중국 고문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어디에나 있었으며 엄청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 고문들은 분명 대학살과 그 규모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대량 학살은 중국의 승인과 지지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은 수년간 국제적인 선전 활동을 통해 캄보디아 대학살이 발생한 사실을 부인하려 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중국 관광객이 킬링필드를 여행하지 않는 현실이 그리 놀랍지 않다. 비록 박물관에는 중국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주도면밀하게 누락돼 있으나 캄보디아 대학살이 중국 공산당이 저지르거나 지원한 범죄 행위의 기나긴 목록에 추가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역사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모든 중국인에게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oo(183.105)2025-01-12 14:31:00
답글
아직도 모택똥이를 신으로 떠받드는 홍위병과 홍위병의 자녀손자인 중공인들은 즈그 중국공산당이 중공몽 피바다혁명 킬링필드 건설을 지원햇기 땜에 킬링필드 역사교훈 박물관에 가는걸 부러 피하겟지만 한국인들은 캄보디아 여행 필수코스가 킬링필드수용소와 백골탑일 거라봄, 근데 킬링필드수용소의 백골교훈탑을 봄서 '우리도 코메르루주한테 홀려 소년병이 될 수도 있었고, 우리도 백골탑이 될 뻔햇고 앞으로 백골탑이 될수도 있다'고 판단함서 등골에 식은땀을 흘려야 정상적인 판단에 정상적인 반응이겟슴
oo(183.105)2025-01-12 14:47:00
답글
김민전의원과 백골단은 이름을 '백골탑교훈계몽단'으로 바꿔서 캄보디아 백골탑교훈을 국민들한테(특히나 호남인들) 계몽 홍보해얀다봄
oo(183.105)2025-01-12 14:52:00
답글
'우리도 백골탑이 될 뻔 햇고 될 수도 있다'=>백골탑계몽단 백골탑교훈단
oo(183.105)2025-01-12 14:55:00
답글
&
oo(183.105)2025-01-12 14:57:00
답글
====한국의 진보가 주체사상 허물어야 - 미래한국
2017. 8. 2. — ....무엇보다 5.18을 전후로 한 주도 세력들의 친북·종북적 경향을 눈여겨 봐야 한다. 광주 학생 운동권 뿌리는 ‘광랑(광주일고 이념서클)’이다. ‘광랑’의 박경호(10기)는 통혁당원이고 김정길은 남민전 전사이며, 5.18의 주역은 11기와 14기이다.
윤한봉(11기)은 미국으로 밀항해 친북 활동에 헌신했고(<윤한봉 녹취록>), 남민전 하부 조직인 구국청년학생회의 김남주(남민전)는 대표적 종북 분자로 “남조선에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민족 반동세력 200만을 철저히 죽여야 한다”고 했으며 사망 후 5·18 희생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김남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자가 윤상원(5.18 후기 주역)이다....====
oo(183.105)2025-01-12 14:57:00
답글
===='국민모임' 급진 좌파 재편의 실체 : 주간동아
https://weekly.donga.com
2014.
12. 29. — 1972년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좌우를 망라해 광범위한 반독재투쟁이 일어나면서 좌파가 번성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70년대 주요 사건 가운데 후일 종북파에게 큰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79년에 있었던 남민전사건이 그것이다. 남민전은 주사파 성장에 결정적 구실을 한 단체로 김세원(광주), 이재문(대구) 등이 주도했다. 김세원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빨치산 출신으로 광주운동권을 정비하고 김남주, 윤상원 등과 접촉했다. 이재문은 김일성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며 ...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98639/1
oo(183.105)2025-01-12 14:57:00
답글
====조국 SNS ‘죽창가’ 지은 김남주, ‘남조선 우익 200만 학살’ 주장한 주사파 ...
http://www.speconomy.com
2019.
7. 15. — - 조국, 알고 올렸을까?
김남주 “200만의 피, 그것은 소수에 불과해”
김남주 가담한 남민전, 김일성에 충성맹세하기도
김남주, 노무현 정부 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
oo(183.105)2025-01-12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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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죽창가를 작사한 고(故) 김남주 시인은 1979년 대한민국 유신말기 최대의 공안사건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에 가담한 주사파(주체사상파)였던 것으로 알려져 조 수석이 해당 노래를 언급한 배경에 대해 관심이 모아진다.
■ 김남주 “200만의 반동세력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2013년 9월 12일자 <조갑제닷컴> 보도에 따르면, 유신체제 당시 남민전에서 사상교육을 받았으나 전향한 소설가인 김정익 씨는 1989년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며 쓴 저서 ‘어느 좌익사상범의 고백 : 수인번호(囚人番號) 3179’를 통해 민족주의자로 위장한 주사파 수감자의 실체를 폭로했다.
‘수인번호 3179’에 따르면, 김 씨는 1984년경 교도소 안에서 김남주 시인(1979년부터 수감)을 만났다.
oo(183.105)2025-01-12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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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감방에서 만난 김 시인이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우익인사 등)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한다” ▶“그 숫자는 대략 200만 정도는 될 것”이라는 등의 사상을 자신에게 설파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김 시인이 ▶“200만이라는 숫자가 엄청날 것 같지만, 인류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 전체를 놓고 볼 때에 그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민족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온 것이다” ▶“우리에게 적은 숫자의 반동세력의 피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등을 가르쳤다고 전했다....====
oo(183.105)2025-01-12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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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감방에서 만난 김 시인이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우익인사 등)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한다” ▶“그 숫자는 대략 200만 정도는 될 것”이라는 등의 사상을 자신에게 설파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김 시인이 ▶“200만이라는 숫자가 엄청날 것 같지만, 인류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 전체를 놓고 볼 때에 그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민족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온 것이다” ▶“우리에게 적은 숫자의 반동세력의 피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등을 가르쳤다고 전했다....====
oo(183.105)2025-01-12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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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한반도 적화 통일시 2000 만명 숙청'
네이버 블로그
2010. 12. 19. — 김정일은 “한반도 적화(赤化)통일 달성 시 1천만 명은 이민 갈 것이고, 2천만 명은 숙청될 것이며, 남은 2천만 명과 북한 2천만 명으로 공산국가를 건설할 ...
====적화통일/한반도
나무위키
대숙청. 김정일은 생전에 적화통일 달성 시 1천만 명은 이민을 갈 것이며 2천만 명은 숙청될 것이고 남은 2천만 명과 북한 2천만 명으로 새로운 공산 국가를 세울 것이라 얘기했다. 대놓고 2천만 명을 죽이겠다고 하는 것에서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
oo(183.105)2025-01-12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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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와 김남주가 묻힌 5.18묘지
oo(183.105)2025-01-12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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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의 미성년자 간수들이 그토록 잔혹했던 이유는?
생생현대사
구독자 4.07만명
조회수 29,032회 2023. 7. 23.
간수들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고문도구도 자체 개발...고통을 극대화하면 자백도 빨리 받는다 생각
소년병 간수 중 반역자로 몰려 고문하다 고문받고 죽은 사람도 다수
모든 뼈, 두개골마다 구타의흔적이 남아있다....
https://youtu.be/bKJqqZIYM-E
oo(183.105)2025-01-12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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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몽 피바다혁명 킬링필드 건설 도구로 쓰인, 모택똥의 빵떡모자를 쓴 크메르루주 뒷북홍위병 소년병 간수들
동태구ㅗㄴ에 생태균에 황태균에 아쉬운 대로 노갈희씨까지 동원해 설문들 하나보네?
전라도 비하하는 2찍들 신났네 ㅋㅋㅋㅋ
非常感谢你为民主主义所作的努力。 中国的共产主义必须崩溃。
我认为,为了摆脱中国的通信网,在韩国网站上用韩文进行民主化运动是非常好的。
극우과표집 여론조사로 조작 왜곡 가능성이 있다
====[#벌거벗은세계사] (90분) 히틀러, 스탈린에 버금가는 최악의 학살자 폴 포트+ 감옥 국가를 건설해 국민 1/4의 목숨을 앗아간 폴 포트의 최후+ 디글 :Diggle 구독자 390만명 조회수 228만회 1년 전.... https://youtu.be/Hn0uCLQcYcU
'민주캄프치아'라는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민주화의투명옷'을 걸치고, 모택똥의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을 롤모델로 캄보디아에 중공몽 피바다혁명 킬링필드를 건설한 모택똥주의자 폴포트와 크메르루주
문화혁명 피해자라는 등소평이가 지원한, 캄보디아의 뒷북모택똥 폴포트와 뒷북홍위병인 크메르루주 소년병들의 중공몽 피바다혁명 킬링필드 건설
캄보디아서 뒷북모택똥 폴포트와 뒷북홍위병인 크메르루주가 '민주화의투명옷'을 걸치고 피바다혁명 킬링필드를 건설하던 시기에 남한서도 리영희가 모택똥의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을 대찬양 미화하는 중공몽 선전선동 책들을 연쇄로 출간함서 청년학생들한테 중공몽을 세뇌해서 주체사상 돼지몽을 겸비한 뒷북홍위병이 양성됨, => '민주화의투명옷'을 걸친 돼지몽돼트콩+중공몽코메르루주=남로당의후예 재한조총련 반역매국운동권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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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문학 - 임형의 남도문학기행 2017. 3. 14. · 게시물 10개 · 작성자 2명 ....1978년 전남대 2학년이던 나는 국문과 선배이면서 연극 활동을 하던 박효선 형의 권유로 연극반에 들어갔다. ...그때 나는 연극반 선배였던 상원 형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상원 형은 한참 선배였지만 후배들과 똑 같이 한 부분씩을 맡아 발표를 하고 마지막에 정리를 해 주는 방식으로 적극 참여하였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로 먼저 의식의 전환을 하고, 이어서 중국관련 공부, 경제사 공부 등을 이어갔다. 얼치기 대학생이던 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개안을 하는듯한 충격에 빠졌다. ...그때 ‘전환시대의 논리’는 의식화 입문서였던 셈이다.....====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탯자리 천동마을 광주일보 2023. 5. 30. — ... 누구보다 가깝게 지냈던 녹두서점의 김상윤 선생은 윤상원의 대학 시절부터 함께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후 복학한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윤상원은 학습조의 기둥 노릇을 했어요.” 1977년 10월 윤상원과 둘이 있던 자리에 한 젊은 여자가 서점으로 들어왔는데, 리영희 교수의 저작 ‘8억인과의 대화’란 책이 있냐 물었다. “윤상원과 공범의 눈빛을 교환한 뒤 방 안에 있던 책을 가져와 그녀에게 주었지요. “꼭 큰 상을 드리는 느낌입니다.”라고 그러면서요.” ...====
====[녹두서점上] 학생·노동자·농민 사랑방 … 독재 항쟁정신 싹 ... 광주일보 2016. 8. 17. — ....김상윤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붙잡혀 1975년 2월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이후 ‘학습조’를 만들어 대학생들의 의식화 작업에 들어갔고, 정치외교학과 복학생 윤상원도 함께였다. “5∼6명이 한 조가 돼 6개월 동안 학습하고 나면 그 여섯 사람이 또 여섯 사람을 의식화 시키는 방식으로 학습을 진행했습니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많은 책을 사서 공급했었죠.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등등 많은 책을 읽었죠. ...====
====윤상원 평전 - 1956페이지 - 김상집 · 2021 · History ... 의식화 학습 을 가장 먼저 강조한 사람 은 김남주 시인 이었다 . 김남주 시인 은 ... 리영희 선생 의 《 전환 시대 의 논리 》 를 펴냈다 .《 창작 과 비평 》 1975 년 ... ====윤상원으로 되짚어보는 5·18항쟁(3)김남주와 카프카 서점 남도일보 2023. 5. 9. — 의식화 학습 커리큘럼은 김상윤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김남주가 카프카 서점을 열어 책 공급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이 책 저 책 닥치는 대로 읽어 ...====
====“용산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올해 리영희상 박정훈 대령 미디어오늘 2024. 11. 28. — '채수근 해병 순직 사건' 이첩 보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올해 리영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외압 거부하고 양심 따랐다”···박정훈 대령, 리영희상 수상자 ... 경향신문 2024. 11. 28. — “외압 거부하고 양심 따랐다”···박정훈 대령, 리영희상 수상자로 선정 ...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재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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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의 문혁춘추] 38회: "변방의 중국몽: 좌파 친중주의의 뿌리" ... http://www.pennmike.com › 2019. 10. 16. — 리영희는 대한민국 좌파세력의 구루(Guru)다. 현재 50-60대 한국 인텔리들은 젊은 시절 리영희의 저작을 읽으며 사회주의적 이상주의를 키웠다. 여러 논객들은 그를 “살아있는 신화”로, “한국현대사의 길잡이”로,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명”으로, “사상의 은사”로, “허구의 시대에 정직하게 살려고 했던 인간의 징표”로 미화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여러 차례 리영희의 저서를 통해 현실에 눈뜨고 가치관을 정립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예컨대 2010년 12월 7일 문재인은 “리영희 선생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이라 말한 바 있다. 나아가 그는 “우리 세대들에게나 학생운동, 민족운동 한 사람들은 [리영희] 선생님 영향이 절대적 이었다”고까지 술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차례 리영희의 저서를 통해 현실에 눈뜨고 가치관을 정립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바로 엄청난 그의 “영향력” 때문에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친중주의의 근원적 뿌리를 찾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리영희의 저작을 꼼꼼히 읽어야만 한다. 중국을 무기 삼아 한국을 공격하는 전술을 구사했던 그는 한국의 좌파들엔 “우상에 도전하는 실천적 이성”이며, 여전히 문대통령을 지배하는 “정신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1976년, 모택동 사망 직후, 리영희는 모택동이야말로 “인간의 평등과 인간소외의 해소·극복”을 위한 “인간우선주의”와 “인간중심 사상제일주의”의 새로운 사회주의 이념을 제창한 위대한 혁명의 사상가라 찬양한다. 리영희는 또 모택동의 사망 직후 막을 내린 문화혁명(1966-1976)에 대해서도 “모든 사회분자의 인간애”에 기초한 “웅장한 인류사적 실험”이라며 격찬한다. 나아가 모택동이 마르크스와 레닌을 능가하는 인간제일주의 사상가라고도 평가한다. 심지어 그는 당시 중국을 휩쓸었던 “모택동 인격숭배”(The Mao Cult)마저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혁명 무죄!" 10대 홍위병, 학살의 주체가 되다 [송재윤의 슬픈 중국]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조선일보 2020. 9. 26. — 1966년 8-9월 10대의 홍위병들은 분명 바로 그런 “악의 상투성”에 길들여진 상태였다. 그들은 살인이 허용되는 무법 상태에서 혁명의 사명감에 들떠 학살을 감행했다. 그 밑에는 법질서의 해체와 도덕적 아노미(anomie)가 깔려 있었다. 물론 그들은 최고영도자의 암시를 따라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었다..... ....“혁명은 무죄이며, 반란은 정당하다.” 이제야 홍위병은 그 의미를 파악했다. 그들의 눈앞엔 살인까지 허용되는 무법천하가 펼쳐졌다....====
====끝내 진실을 외면했던 정직하지 못한 지식인 리영희에 대한 고발 ... http://pub.chosun.com 2016. 8. 26. — 1966년 8월 18일 마오쩌둥이 홍위병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천안문 광장 앞을 사열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지식인과 책에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와 그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가 각각 2위로 선정되었다고 경향신문이 2007년 보도했다. 2012년 12월 리영희 교수가 타계했을 때 좌파 언론을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은 ‘실천하는 지성’ ‘사상의 은사’로 고인을 추모했다. 백낙청은 조사에서 “고인이 살던 시절은 비록 험난했으나 진실에 열렬히 호응하고 이를 실천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던 감격의 시대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나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마오쩌둥(毛澤東)을 위시한 중국의 공산주의자들과 이들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었던 1980년대 초 나는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었다. 공산당은 악(惡)이고, 이를 따르는 무리들은 상식적인 도를 넘어서는 비도덕적 인물일 것이라는 게 당시 내가 알던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의 전부였다. 그러나 리영희의 책에서 본 마오쩌둥과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높은 도덕성과 숭고한 인간애를 지닌 이 시대 최고의 우상이자 영웅들이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인간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만들기 위한 ‘인류 최초의 위대한 실험’이었다.
“나는 리영희 추종자 중 하나였다” 리영희와 만남을 통해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자본주의의 온갖 이기심과 도덕적 타락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나라, 공산주의 나라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리영희의 안내에 따라 숭고한 이상을 향한 혁명적 실천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백낙청의 말대로 리영희를 따라나선 ‘진실에 열렬히 호응하여 이의 실천에 나선 젊은이들’ 중 하나였다. 나의 청년 시절 공산주의자의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동안 나의 사상과 이에 입각한 실천은 도전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구 공산권들의 연이은 붕괴는 다시 한 번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나라들은 내가 알던 이상의 세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토록 경멸했던 자본주의 나라들보다 더욱 심한 인권 탄압과 부정과 독재로 일관된 최악의 나라들이었다. 그즈음 탈북자들의 증언이 언론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탈북자의 입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북한의 실상은 더욱 충격이었다. 마지막 결정타는 황장엽씨의 탈북과 그의 증언이었다. 북한은 책에서 본 나라가 아니었다. 도저히 인간의 짓이라고 보기 어려운 참혹한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 탄압, 최악의 식량난, 민주주의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최악의 1인 통치, 독재국가 그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목숨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히 여겼던 믿음과 너무나 다른 사실과 마주해야 했다.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즈음 다시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에 대해 공부했다. 리영희의 안내는 거짓이었다. 그는 ‘실천하는 지성’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선전을 그대로 수용하고 이를 우리에게 안내한 ‘잘못된 안내자’였다. 나의 젊은 시절을 온통 지배했던 혁명과 그를 위한 헌신과 실천은 통째로 부정당했다. 나는 잘못된 안내자를 따라 잘못된 길을 나선 ‘저능아’였다.
문화대혁명은 인류사상 초유의 실험? 리영희는 1974년 발간된 ‘전환시대의 논리’에 수록된 ‘대륙중국에 대한 시각조정’에서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과 그가 일으킨 문화대혁명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리영희는 당시 쿠바특파원인 루이 암스트롱의 글과 한국외국어대 안경준씨의 글을 인용하여 ‘중국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류사상 초유의 실험’, 즉 문화대혁명에 대해 두 가지 평가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글에서 리영희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는 중국에 대한 선입관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리영희는 잘못된 선입관 때문에 문화대혁명이 잘못 평가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리영희에 따르면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인류 최초의 인간의식 개조 혁명이었다. .====
윗글은 전광훈목사와 함께하는 전향우파애국자 이동호교수 글임
====이동호교수,김대중과의 대화 전격공개,전향하지않았다!...2022 02 17 13 08 00 너만몰라TV 구독자 41.9만명 조회수 5.1만회 2년 전.... https://youtu.be/BKnu73tRB78
====김대중은 간첩인가? - 김국성 前 북한 정찰총국 대좌 #Shorts 트루스포럼 Truth Forum 구독자 8.34만명 조회수 212만회 2년 전... https://youtu.be/k7f1wvzN1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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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약진 운동 나무위키 2023. 9. 20. — 이로 인해 중국 전역에서 기근이 발생해[1] 3천만~5천만 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이는 작정하고 중국인을 죽인 난징 대학살과 최소 30배 이상 차이 ... ====문화대혁명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 문화 혁명으로 인해 수십만에서 2 천만에 이르는 추정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베이징의 "붉은 8 월"을 시작으로 광시 대학살 (대규모 식인 풍습 ...====
====毛澤東주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경북일보 폴 포트는 크메르 루즈 정권을 탄생시키고, 모택동사상에 입각해 '공산 농촌사회' 건설에 착수했다. 농민만 있으면 되니, 학자, 과학자, 의사, 법률가, 자본주의자, 외국 유학자 등등은 '말만 많고 쓸모 없는' 존재들이었다. 이들을 전부 농촌으로 내쫓고 반발하는 자는 가치 없이 처형했다. ... ====생생히 들어나는 크메르 루즈 잔학상 VOA 한국어 2009. 5. 8. —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권의 악명높았던 뚜옹 슬렝, 일명 S-21 형무소 소장이었던 카일 구엑 에아브 피고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전범 재판소에 출두해 심문을 받았습니다. ... 크메르 루주 정권은 극단적인 마오쩌둥 주의 공산정권으로 자국 국민들에게 잔혹행위를 자행하다가...=
====킬링필드에서 살아돌아온 어린이, 제 이름은 '노릉 찬 팔' 입니다 | 킬링필드 현지 생존자 인터뷰 생생현대사 구독자 1.09만명 조회수 4.5천회 1년 전 캄보디아 현지 르포 1부 - 캄보디아 킬링필드... 잔혹한 학살의 현장에 가다.... https://youtu.be/Tq_TyOyKd7s?t=180 ---- 크메르루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크메르루주는 중국 마오쩌뚱 이념을 따랐습니다" ----
====프놈펜으로부터의 서한: 왜 대부분의 중국 관광객은 킬링필드를 가지 않는가? https://ko.bitterwinter.org 2018. 10. 23. - 매년 12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캄보디아를 찾는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서양인 관광객과는 다른 코스로 여행하며 특히 “킬링필드” 및 공산주의 정권의 학살 흔적을 피해 다닌다. 킬링필드에는 대학살의 비극을 둘러싼 공산당의 책임에 관하여 충격적인 이야기가 서려 있다. -마시모 인트로빈(MASSIMO INTROVIGNE)
....대부분의 서양인, 일본인 및 베트남인 관광객에게는 프놈펜 인근 또는 내부에 필수 코스 두 곳이 있다. 바로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이다. 킬링필드는 오늘날 캄보디아가 대학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한 추모 공간이다. 이곳에서 약 3백만 명의 캄보디아 국민이 폴 포트(Pol Pot, 본명 Salot Sar, 1925-1998, 캄보디아인 여러 명이 폴 포트가 죽음을 위장하고 아직 살아있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함) 정권에 의해 살해됐다.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를 지칭하는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은 150만 명을 참수했고 백만 명 이상을 굶겨 죽였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가 8백만 명이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폴 포트와 공산주의자는 정치적 이유로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의 자국민을 학살...
......그러나 킬링필드의 모든 책임 소재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폴 포트가 중국에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켰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1965년 중국에 처음 방문했고 중국 공산당(CCP)에 의해 세뇌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주로 참고한 정책은 중국 문화대혁명이었지만 혁명의 막이 내린 후에도 발 빠르게 새로운 공산당 지도자의 지속적인 지지를 확보해냈다. 크메르루즈의 이념은 문화혁명방식의 모택동주의였다. 크메르루즈는 공산당의 광범위한 정치, 외교, 경제적 지원이 없었더라면 캄보디아 내전에서 승리하지도, 베트남 및 서구의 압박을 거부하며 수년간 권력을 유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은 크메르루즈에 무기 대부분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폴 포트는 공산당이 자신을 베트남으로부터 보호해주리라 기대했고 어느 정도 그 기대는 충족됐다.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을 때, 중국은 우선 이들이 철수하도록 설득했고 이후 1979년 초 중월전쟁이 발발했다. 종국에는 중국이 하노이로 향하던 발을 돌렸는데 캄보디아를 두고 베트남의 보호국이자 동맹국인 소련과 국제전을 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산당은 폴 포트와 크메르루즈를 최후의 순간까지 보호하고 지원했다.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크메르루즈가 1979년 몰락한 이후에도 이들의 연정을 캄보디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해야 한다고 설득한 것도 중국이었다. .....
.....폴 포트 정권 시기에 캄보디아에는 중국 고문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어디에나 있었으며 엄청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 고문들은 분명 대학살과 그 규모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대량 학살은 중국의 승인과 지지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은 수년간 국제적인 선전 활동을 통해 캄보디아 대학살이 발생한 사실을 부인하려 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중국 관광객이 킬링필드를 여행하지 않는 현실이 그리 놀랍지 않다. 비록 박물관에는 중국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주도면밀하게 누락돼 있으나 캄보디아 대학살이 중국 공산당이 저지르거나 지원한 범죄 행위의 기나긴 목록에 추가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역사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모든 중국인에게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아직도 모택똥이를 신으로 떠받드는 홍위병과 홍위병의 자녀손자인 중공인들은 즈그 중국공산당이 중공몽 피바다혁명 킬링필드 건설을 지원햇기 땜에 킬링필드 역사교훈 박물관에 가는걸 부러 피하겟지만 한국인들은 캄보디아 여행 필수코스가 킬링필드수용소와 백골탑일 거라봄, 근데 킬링필드수용소의 백골교훈탑을 봄서 '우리도 코메르루주한테 홀려 소년병이 될 수도 있었고, 우리도 백골탑이 될 뻔햇고 앞으로 백골탑이 될수도 있다'고 판단함서 등골에 식은땀을 흘려야 정상적인 판단에 정상적인 반응이겟슴
김민전의원과 백골단은 이름을 '백골탑교훈계몽단'으로 바꿔서 캄보디아 백골탑교훈을 국민들한테(특히나 호남인들) 계몽 홍보해얀다봄
'우리도 백골탑이 될 뻔 햇고 될 수도 있다'=>백골탑계몽단 백골탑교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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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가 주체사상 허물어야 - 미래한국 2017. 8. 2. — ....무엇보다 5.18을 전후로 한 주도 세력들의 친북·종북적 경향을 눈여겨 봐야 한다. 광주 학생 운동권 뿌리는 ‘광랑(광주일고 이념서클)’이다. ‘광랑’의 박경호(10기)는 통혁당원이고 김정길은 남민전 전사이며, 5.18의 주역은 11기와 14기이다. 윤한봉(11기)은 미국으로 밀항해 친북 활동에 헌신했고(<윤한봉 녹취록>), 남민전 하부 조직인 구국청년학생회의 김남주(남민전)는 대표적 종북 분자로 “남조선에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민족 반동세력 200만을 철저히 죽여야 한다”고 했으며 사망 후 5·18 희생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김남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자가 윤상원(5.18 후기 주역)이다....====
===='국민모임' 급진 좌파 재편의 실체 : 주간동아 https://weekly.donga.com 2014. 12. 29. — 1972년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좌우를 망라해 광범위한 반독재투쟁이 일어나면서 좌파가 번성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70년대 주요 사건 가운데 후일 종북파에게 큰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79년에 있었던 남민전사건이 그것이다. 남민전은 주사파 성장에 결정적 구실을 한 단체로 김세원(광주), 이재문(대구) 등이 주도했다. 김세원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빨치산 출신으로 광주운동권을 정비하고 김남주, 윤상원 등과 접촉했다. 이재문은 김일성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며 ...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98639/1
====조국 SNS ‘죽창가’ 지은 김남주, ‘남조선 우익 200만 학살’ 주장한 주사파 ... http://www.speconomy.com 2019. 7. 15. — - 조국, 알고 올렸을까? 김남주 “200만의 피, 그것은 소수에 불과해” 김남주 가담한 남민전, 김일성에 충성맹세하기도 김남주, 노무현 정부 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
....그런데 죽창가를 작사한 고(故) 김남주 시인은 1979년 대한민국 유신말기 최대의 공안사건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에 가담한 주사파(주체사상파)였던 것으로 알려져 조 수석이 해당 노래를 언급한 배경에 대해 관심이 모아진다. ■ 김남주 “200만의 반동세력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2013년 9월 12일자 <조갑제닷컴> 보도에 따르면, 유신체제 당시 남민전에서 사상교육을 받았으나 전향한 소설가인 김정익 씨는 1989년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며 쓴 저서 ‘어느 좌익사상범의 고백 : 수인번호(囚人番號) 3179’를 통해 민족주의자로 위장한 주사파 수감자의 실체를 폭로했다. ‘수인번호 3179’에 따르면, 김 씨는 1984년경 교도소 안에서 김남주 시인(1979년부터 수감)을 만났다.
김 씨는 감방에서 만난 김 시인이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우익인사 등)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한다” ▶“그 숫자는 대략 200만 정도는 될 것”이라는 등의 사상을 자신에게 설파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김 시인이 ▶“200만이라는 숫자가 엄청날 것 같지만, 인류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 전체를 놓고 볼 때에 그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민족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온 것이다” ▶“우리에게 적은 숫자의 반동세력의 피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등을 가르쳤다고 전했다....====
김 씨는 감방에서 만난 김 시인이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우익인사 등)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한다” ▶“그 숫자는 대략 200만 정도는 될 것”이라는 등의 사상을 자신에게 설파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김 시인이 ▶“200만이라는 숫자가 엄청날 것 같지만, 인류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 전체를 놓고 볼 때에 그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민족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온 것이다” ▶“우리에게 적은 숫자의 반동세력의 피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등을 가르쳤다고 전했다....====
===김정일 '한반도 적화 통일시 2000 만명 숙청' 네이버 블로그 2010. 12. 19. — 김정일은 “한반도 적화(赤化)통일 달성 시 1천만 명은 이민 갈 것이고, 2천만 명은 숙청될 것이며, 남은 2천만 명과 북한 2천만 명으로 공산국가를 건설할 ... ====적화통일/한반도 나무위키 대숙청. 김정일은 생전에 적화통일 달성 시 1천만 명은 이민을 갈 것이며 2천만 명은 숙청될 것이고 남은 2천만 명과 북한 2천만 명으로 새로운 공산 국가를 세울 것이라 얘기했다. 대놓고 2천만 명을 죽이겠다고 하는 것에서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
리영희와 김남주가 묻힌 5.18묘지
====킬링필드의 미성년자 간수들이 그토록 잔혹했던 이유는? 생생현대사 구독자 4.07만명 조회수 29,032회 2023. 7. 23. 간수들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고문도구도 자체 개발...고통을 극대화하면 자백도 빨리 받는다 생각 소년병 간수 중 반역자로 몰려 고문하다 고문받고 죽은 사람도 다수 모든 뼈, 두개골마다 구타의흔적이 남아있다.... https://youtu.be/bKJqqZIYM-E
중공몽 피바다혁명 킬링필드 건설 도구로 쓰인, 모택똥의 빵떡모자를 쓴 크메르루주 뒷북홍위병 소년병 간수들
극우과표집 여론조작으로 호들갑 떠냐?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