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분할은 국가 지배층들의 무책임과 무능이 국가에게 미치는 해악을 보여준다. 이 시기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주변국, 즉 프로이센 왕국, 러시아 제국은 계몽전제군주의 지도 하에 강국으로 거듭나고 근대화를 이룩하였다. 하지만 그에 비해 폴란드-리투아니아는 개혁의 구심점이 될 군주의 권력이 지나치게 미약하였고, 반대로 귀족들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하고 강력하였다. 대홍수를 비롯해 18세기 초까지 끊임없는 전란을 겪은 결과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경제적 기반은 거의 파괴되었으며, 이것은 귀족 간의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켰다. 이것은 힘 있는 소수의 대귀족들을 중심으로 그 밑의 귀족들이 뭉치는 사태를 초래했으며, 강력한 중앙정부가 부재한 상태에서 각 대귀족들은 사실상 국가 안의 국가처럼 놀고 외국 정부와 자체적으로 교섭했다. 즉 나라가 나라가 아니게 되었고,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외세의 개입에 더욱 취약해지게 되었다.
비록 18세기 초부터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경제가 회복되긴 했지만 이때쯤이면 주변국에 비해 많이 뒤처진 상태였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폴란드-리투아니아 전역을 통틀어 상공업 및 금융 인프라를 제대로 갖춘 도시는 독일인이 모여사는 그단스크 하나 뿐이었다. 대홍수로 수출 인프라가 파괴되어 식량 수출은 전체 수확량의 5%도 안되는 양이었고 그마저도 아메리카 및 러시아 등의 다른 식량 수출국과 경쟁해야 했다. 그 결과 이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크기에 비해 굉장히 허약한 국가가 되었다. 폴란드보다 훨씬 작은 프로이센이 220만의 인구에 8만의 상비군을 보유했는데, 같은 시기 폴란드는 인구가 1000만이 넘었지만 상비군이 3만을 못 넘었다.
1차 폴란드 분할은 폴란드인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가져다주었고, 결국 폴란드는 멸망의 목전에 다다라서야 국가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유럽 최초의 성문헌법인 5월 3일 헌법의 통과는 그 노력의 정점이었다. 폴란드의 개혁이 멸망을 코 앞에 두고서야 시작된 것의 원인에는 리베룸 베토로 표현되는 만장일치제가 있음에 많은 역사학자들이 동의한다. 1차 분할의 충격 직후, 대부분의 폴란드-리투아니아 귀족들도 개혁 자체에는 동감하고 있었다. 5월 3일 헌법의 폐기 대상 1호가 바로 이 만장일치제였다. 그러나 자신들의 특권이 일정 부분 줄어드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일부 폴란드 귀족들의 매국적 행위는 결국 폴란드의 멸망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폴란드 분할은 유럽의 외교 구도에 나비효과를 가져다주는데, 바로 동유럽의 패권을 노리던 두 국가, 즉 프로이센과 러시아가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전에도 두 국가가 철천지 원수 관계가 되었던 적이 있지만,[14] 그래도 중간에 폴란드라는 완충국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충돌의 빈도는 적었다. 그러나 그 폴란드 자체가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1795년에 이르러 둘은 처음으로 국경을 맞대게 된다. 처음에는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동맹국이자 폴란드 분할의 공동 책임자로서 서로 협력하던 관계였지만 이후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의 영향으로 둘의 관계가 아작난 이후로, 이들은 1차 대전으로 전면전을 벌이더니 독소전쟁에 이르러서는 리얼 브루드워를 실현시켜가며 싸운다. 결국 2차 대전 이후에는 소련의 외교적 필요성에 의해[15] 폴란드는 멸망 전의 영토가 아닌, '서쪽으로 이동한 형태'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16] 프로이센의 영토였던 지역은 폴란드에 편입되었고, 반대로 폴란드의 동쪽 영토였던 곳은 소련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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