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학생시절 떼씹


이건 훗날 본인 입으로 자유의사로 진술.


조국을 찢어죽여라.


죽여도 된다.



운동권 붉은 귀족들을 죽여야만 한다.



https://youtu.be/cc-zQm7Dxec?feature=shared



빨갱이는 많이 죽여 없앨 수록 좋다.


민노총 공무원 노조 언론노조 다 인민에겐 해악이다.


졸업후 수십년 후 만난 운동권 애가, 운동권 모임내 여학우 돌림빵 윤간 이야긜 건대앞 당구장 아래 맥줏집에서 하길래. 너거덜 정신 차리나는 의미에서 한마디 하고 간다.




이하 글 한 줄 요약.



이러한 엇갈린 행보 때문에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우익 진영은 드골주의자들을 제외하면 프랑스 정국의 주도권을 잃어버렸고, 공산당 역시 비토당하게 되면서 중도 - 중도좌익 진영이 그 주도권을 쥐고 제4공화국 말까지 집권하게 되었다. 



때려잡자. 공산당.



프랑스 공산당은 개전 초기에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방조하거나, 군수품 생산에 사보타주를 하는 등 나치를 도와주는 태도를 취했는데, 이는 나치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소련이 프랑스 공산당에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 대표인 모레스 토레즈는 반전 운동을 벌였고, 당 내부에서도 대독 저항 문제를 놓고 내홍을 겪었다. 그러다가 나치 독일이 1941년 소련과 맺은 불가침 조약을 깨뜨리고 소련을 공격하자, 방침이 바뀌어 프랑스 공산당도 나치 독일을 적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인 레지스탕스 활동과 사보타주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엇갈린 행보 때문에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우익 진영은 드골주의자들을 제외하면 프랑스 정국의 주도권을 잃어버렸고, 공산당 역시 비토당하게 되면서 중도 - 중도좌익 진영이 그 주도권을 쥐고 제4공화국 말까지 집권하게 되었다. [142]



[142] 공산당은 임시정부 선거에서 제1당까지 차지했는데도 미국의 압력으로 내각에서 추방당했다. 물론 연정에서만 배제되었지 제4공화국 내내 줄곧 제1당을 차지했다. 친독파 우익과 일부 기회주의적 우익들은 세력 보존을 위해 드골에게 압력을 행사해 부역자 청산을 적극적으로 저지했고, 그 덕에 나치 부역자들은 대부분이 살아남아 활동할 수 있었다.





https://youtu.be/SBXaBiVLDr0?feature=shared


"결과적으로 명백한 점은 우리 프랑스는 전적으로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 어디에서나 즉각 동원될 수 있는 군사력, 즉 독자적 핵타격력이 필요하고, 이것을 수년 내에 반드시 달성하여야 한다. 군사력의 기본이 핵무장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그것을 제조하든 혹은 돈으로 구입하든 간에 그것은 우리 수중에 있어야 한다. …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독자적 핵전력을 갖추지 못하면) 더 이상 유럽의 강대국도 주권국일 수도 없고 통합된 위성국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핵우산을 제공하려는 미국에 대해) "미국은 파리를 지키기 위해서 뉴욕을 희생할 수 있겠는가?"
"어느 나라든지 다른 나라를 도와줄 수는 있어도, 다른 나라와 운명을 함께 해주지는 못한다."
프랑스 전 대통령, 샤를 드골.
프랑스의 핵무기 개발 선언시에 미국, 영국이 핵우산을 보장한다는 말을 비슷하게 하자, 드골은 위와 같은 말을 하면서 결국엔 미국이든 영국이든 자신의 국익을 우선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강대국의 핵우산 제공을 강하게 불신하며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하는 측에서 자주 내세우는 명분으로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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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체로 가족들도 상대하기 힘든 완고한 인물이었지만, 가족들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편지를 굉장히 자주 보내곤 했으며 편지 속의 문장은 평소의 드골의 이미지와 다르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라고... 다운 증후군 환자로 태어난 둘째 딸을 평생 아끼고 사랑했으며 딸이 스스로를 비정상으로 여기지 않도록 주변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이 부분은 2017년 11월 26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