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통혁당 사건은 ... 대규모 간첩단 사건 .......
...... 김종태 등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공비를 남파
...... 우리 軍警과의 교전 끝에 14명 중 12명이 사살 ........ ]
[ ......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하여 反帝·反봉건·反식민의 민주사회를 거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 ........
...... 남반부를 불법강점하고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원수 미제와 그 주구들을 몰아내고 사회주의 낙원을 건설 ........ ]
[ .....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사형 .... 신영복...무기징역 .... 박성준은 15년형 .......
..... 북한 전역에서 김종태 추도기간이 설정 ........
...... 해주사범대학을 김종태사범대학으로 개명 ..... 평양 시내에는 김종태의 이름을 딴 거리가 ........ ]
2006-04-06
'통혁당'은 北 지령받은 비밀 지하당 조직
written by.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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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혁당 사건은 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에 의해 검거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었다. 통혁당은 김종태(金鍾泰)를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하여 김질락(金瓆洛)·신영복(申榮福) 주도의 ‘민족해방애국전선’과 이문규(李文奎)·이재학(李在學) 주도의 ‘조국해방전선’ 아래 다양한 서클·조직·학사주점 등을 통해 공산혁명을 획책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北지령받는 지하당이 분명” 주범 김질락
통혁당은 북한과 연계된 지하당이었다. 주동자였던 김종태·김질락·이문규는 월북(越北)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통혁당 하부선이었던 이진영·오병헌은 68년 4월 22일 월북(越北)해 교육을 받던 중 68년 6월 말 통혁당 사건이 발생하자 귀환하지 않았다.
김종태는 4차례에 걸쳐 북한을 왕래하면서 김일성을 면담하고 美貨 7만 달러, 韓貨 3,000만 원, 日貨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고 A-3지령만 167회를 수신했다. 그는 민중봉기, 간첩의 무장 집단유격투쟁을 통한 수도권 장악, 북한으로부터 무기수령을 위한 양륙거점 정찰, 특수요원 포섭, 월북 등 14개 항목의 공작임무를 띠고 있었다.
북한은 통혁당에 대한 검거망이 좁혀오자 김종태 등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공비를 남파하기도 했다. ‘김종태를 구하라’는 특별지령을 받은 북한 753부대 소속 무장공작선은 68년 8월 20일 제주도에 도착했으나, 우리 軍警과의 교전 끝에 14명 중 12명이 사살되고 이관학, 송승환 등 2명은 체포됐다. 이들 무장공비들은 김종태를 구출하여 월북시킨 뒤 백두일이라는 가명으로 북한정권 수립 20주년 기념일인 9·9절에 남한대표로 김일성 앞에서 연설하게 할 예정이었다.
주범 중 한 명인 김질락은 옥중유고에서 “통일혁명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비밀지하당 조직이라는 데는 이의가 있을 리 없고 통혁당의 조직상황과 활동상황이 김일성에게 직접 보고되었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고 쓴 바 있다.
“통혁당은 국제공산당의 일원”
통혁당은 또한 공산혁명조직이었다. 김질락의 앞의 수기 중 65년 11월초 통혁당 결성 당시 김종태의 제안설명 중 일부를 인용해 본다.
“우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하여 反帝·反봉건·反식민의 민주사회를 거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며… 우리의 당은 비단 이북의 노동당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의 공산당과도 형제당이 되는 것이며 국제 공산당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어 “남반부를 불법강점하고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원수 미제와 그 주구들을 몰아내고 사회주의 낙원을 건설함에 있어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으로 무장하고 중앙당(中央黨)의 지도 아래 혁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통일혁명당 창당을 선언한다”는 요지의 선언문이 낭독됐던 것으로 같은 수기는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통혁당은 공산혁명을 목표로, 중앙당(中央黨)인 북한 조선로동당의 지휘를 받는 남한 내 지하당(地下黨)이었다.
통혁당의 성격은 68년 공판 당시 언론에도 보도됐다.
김질락은 68년 11월 30일 공판정에서 “反美·反제국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공산주의자의 ABC이다. 나는 청맥의 지면을 통하여 광범한 인민대중의 反美·反괴뢰투쟁을 선동하였다”고 말했다.
김질락은 그러나 68년 12월 18일 공판정에서 “지은 죄가 얼마나 큰가를 뉘우칠 뿐이며 정당함을 주장할 것이 없다”고 변호인 신문을 거부한 뒤 “그동안 공산주의를 위해 싸워 왔으나 이제는 공산주의자로서 죽고 싶지 않으며 순수한 인간으로 돌아가 죽고 싶다”고 참회했다.
北, 통혁당 연루자들 영웅화, 평양에 ‘김종태 거리’ 명성
통혁당 사건으로 북한에 건너가 로동당에 입당한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사형을 당했다. 신영복, 이재학, 오병철, 신광현, 정종소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박성준은 15년형, 김종태의 아내 임영숙은 12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기타 인물들은 5년 이하의 형을 선고받았다.
북한은 통혁당 사건 이후 연루자들에 대한 영웅(英雄)화에 나섰다. 69년 1월 25일 김종태와 이문규에게 사형이 확정되자 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김종태와 이문규를 지지하는 평양시 군중대회가 열렸다.
김종태가 69년 7월 10일 사형집행을 당한 후 김일성으로부터 영웅칭호가 내려졌다. 69년 7월 12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는 김종태 추도 결의문을 채택했고, 같은 해 7월 13일부터 19일까지 북한 전역에서 김종태 추도기간이 설정됐다. 평양대극장을 비롯해 각 시·도·직할시·區분대·區분대당위원회·공업기업소·협동농장·교육문화·보건기관에 이르기까지 대대적 추도식이 거행됐다.
북한 내각은 김종태에게 영웅 칭호 외 북한 최고훈장인 금성메달과 국기훈장 제1급을 추서하고 평양 전기기관차 공장을 김종태 전기기관차 공장으로, 해주사범대학을 김종태사범대학으로 개명했다. 평양 시내에는 김종태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겨났다.
69년 11월 6일 이문규가 사형집행을 당하자 역시 영웅 칭호가 수여됐다. 그러나 죽기 직전 공산주의자였던 것을 뉘우친 김질락은 북한정권으로부터 변절(變節)을 이유로 외면당했다.
살아 남은 최고위급 통혁당 간부인 신영복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후 1988년 특사를 받아 출감했다. 그는 89년 이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신영복의 하부선으로서 자신의 처 한명숙(현 국무총리 내정자), 박경호, 김국주 등을 포섭한 혐의 등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박성준 씨 역시 현재 성공회대 민주사회교육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민중신학자 안병무(安炳茂) 교수(작고)가 설립했던 신학연구소의 운영책임을 맡았으며 최근 종교공동체연대 등의 설립에 참여, 소위 반전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통혁당 잔존세력 지하활동 지속...`主體思想` 받아들여 당 재건 기도
통혁당은 68년 조직원 대부분이 검거됐지만, 북한과 연계된 잔존세력은 이후에도 지하당 활동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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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발표된 통혁당 선언·강령 역시 소위 “김일성 원수의 위대한 혁명사상,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있다.
선언은 “통혁당의 지도이념은 맑스-레닌주의를 현시대와 우리 조국현실에 독창적으로 구현한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주체사상(主體思想)이다. 주체사상(主體思想)은 40여년간의 험난한 혁명의 폭풍우 속에서 완벽함을 과시한 우리 시대의 맑스-레닌주의이다”고 주장했다.
선언은 또 “우리당은 바로 이 위대한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지도리념으로 삼고 있기에 불패이다. 우리 당의 최고목적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인류의 세기적 숙명이며 최고리상이다”며 “미군침략군을 격퇴하고 괴뢰정권을 타도하여 자주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인민의 정권을 수립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출처 미래한국 김성욱 기자
2006-04-06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8435
2016. 1.22. 한겨레 --- "혁명적 인간" 신영복
[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혁명적 인간의 글모음”이었다. .........
...... 이제 그가 남겨놓은 ‘희망의 원리’를 진보의 도구로 벼리는 일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 ........ ]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
2016-01-22
[토요판] 커버스토리 신영복의 학문 궤적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 논리는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전개 과정이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자본축적 과정의 전형적 형태입니다.”(신영복, 강의)
동양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시서화에 능한 인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신영복은 본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규명하는 정치경제학자였다. 그는 대학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자본주의 분석에 있어서 가장 체계적인 이론으로, 가장 정합적인 실천과학’으로 받아들이며 정치경제학을 자기 학문의 밑절미로 삼은 ‘붉은 경제학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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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여긴 박정희 군사정권 치하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내면화한 제3세계의 급진적 지식인이 설 곳은 많지 않았다.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숙명여대에서 후진국개발론을 강의하며 학생운동 서클 간부로 활동하던 신영복은 남한사회 반체제운동의 주류로 자리잡아온 엔엘(NL·민족해방주의) 노선에 기초한 혁명조직인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20년 20일 동안 영어의 몸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그 잔인한 세월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그를 인문학적 사상가로 거듭나게 한 시간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감옥은 그에게 또다른 ‘학교’였다.
고전·서예 능통한 인문학자 신영복
원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변화 도구로 인문학 일깨운 징역
낮은 데서 깨친 인간에 대한 이해
정치경제학에 인문학 더한 ‘관계론’
관념화·교양화 등 비판 나오기도
“외연 확대 중요하다”던 그의 담론
진보의 도구로 만드는 건 우리의 몫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1988년 가석방될 때까지 그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동양고전이라는 숫돌에 자신의 칼이었던 정치경제학을 벼리고 또 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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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서늘한 각성의 정수를 모아놓은 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사색)이었다. 사색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그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혁명적 인간의 글모음”이었다. “이 사실을 놓치면, 그것은 이 책을 한낱 지당한 ‘공자님 말씀’들로 이루어진 인생론집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된다”는 지적(김명인)은 그래서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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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전을 통한 인간 사랑이 그를 초월적인 달관의 경지로 이끌진 못했다. 2004년 주역에서 법가까지 자신의 동양고전에 대한 해석을 담은 강의를 펴내며 근대의 존재론적 인식을 넘은 관계론적 철학을 이야기할 때도 그의 반자본주의적인 입장은 여전히 또렷했다.
고전을 알기 쉽게 소개시켜주는 지혜로운 인문주의자나 소주병에 글씨를 쓴 탁월한 서예가로만 신영복을 기억할 수는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에게 인문학은 정치경제학 인식을 실천으로 매개할 하나의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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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가 남겨놓은 ‘희망의 원리’를 진보의 도구로 벼리는 일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 되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727533.html
[ 20년 복역 통혁당 무기수 신영복 ]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무기징역형 선고, 20년 복역
.... 나는 군법회의 1·2심에서 사형선고 받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어 고법에서 무기징역으로 확정되었습니다 ......
1988.8.15. 특별가석방 출소. 20년간 복역.
1996.8. 신영복 -- 월간 말 -- 이광재
[ 신영복은 근본적인 원칙을 폐기하는 성급한 청산주의적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고 말합니다. ]
월간‘말’ 1996년 8월호(글/김경환 기자, 사진/박진희 기자)
1992 조유식 말지기자 민혁당, 김영환과 잠수정 입북
1995 이광재 월간말지 기획위원
1999 김경환 민혁당 4년 6월 선고
2000년 [ 신영복, 임종석 김상곤 김근태 등과 송두율교수 귀국추진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
2000년 8월 통일맞이 서신
2001-03-28 [ 신영복, 자본주의는 실패했다고 주장 ]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7151
1985 통혁당 = 한민전
[ ..... 통혁당은 사실 북한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우리당으로 평가한 남한의 혁명전위정당이다. .......
85년 7월 통일혁명당은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칭하여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
월간 ‘길’ 윤철호 편집국장과의 대담
1993년 5월호 「길이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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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사색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신영복 선생이 연루됐던 통혁당은 사실 북한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우리당으로 평가한 남한의 혁명전위정당이다. 그리고 85년 7월 통일혁명당은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칭하여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과정에 대해 그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기자는 아직도 냉전논리가 첨예한 한국사회에서 이미 수십년 전에 벌어진 사건의 당사자일 뿐인 신선생을 그런 문제로 자꾸 밀어넣는 게 지금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데 부담을 지우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결국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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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전 --- 전대협
[ .... 「한민전」의 지침과 북한의 「구국의 소리」 방송을 청취 ... 투쟁전략과 전술을 수립 ......
..... 여러개의 가명을 사용하면서 철저히 신분을 은폐 .....
.... 「MT」 ....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서」 「한민전 지침 수행결의식」 등을 ........ ]
“전대협,우리 체제 전복 기도” 안기부 수사내용
◎ 김일성사상 신봉집단 한민전 지침따라 시위 주도 두 학생 밀입북 조종… 「고려연방제」 추진
전국 대학생들의 대표조직인 「전대협」은 겉으로 「민주화투쟁」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로는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학생들에게 장악돼 김일성 유일사상을 전파하고 체제전복을 기도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 「전대협」을 이끄는 핵심지도부는 선후배를 불문하고 북한의 수령관을 그대로 받아들여 「전대협」의장에게 반드시 「의장님」이라고 호칭하는 등 절대복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국가안전기획부가 발표한 「전대협의 실체 수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1월초 대학가에 배포된 「전대협 신년서한」은 북한의 심리전 공작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이 1월1일 「구국의 소리」방송을 통해 발표한 「한민전 신년 메시지」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대협」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정책위원회」는 주체혁명사상이 투철한 골수 「주사파」지하세력으로 거의 매일 모임을 갖고 지하조직을 통해 전달되는 「한민전」의 지침과 북한의 「구국의 소리」방송을 청취, 시국상황의 변화에 따라 각종 투쟁전략과 전술을 수립하고 이를 「전대협」의장과 「지구대협」의장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를 통해 각 집행기구에 시달,각종 불법집회와 폭력시위를 전개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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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위원회」는 「자민통」지하조직에서 침투된 정책위원장 등 중앙정책위원 5명과 「지구대협」정책위원 15명 등 2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특히 중앙정책위원이 핵심을 이루고 여러개의 가명을 사용하면서 철저히 신분을 은폐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 주사파 지하혁명조직은 한양대·경희대·외국어대를 중심으로 한 동부지역의 「자민통」(1천명),연세대·서강대를 중심으로 한 서부지역의 「조통그룹」(5백명),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의 「관악자주파」(3백명),고려대·성균관대를 중심으로 한 북부지역의 「반제 청년동맹」(2백명)등 4개 조직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3학년 2학기쯤 4∼5명 단위로 「MT」라는 이름의 수련회를 통해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서」「한민전 지침 수행결의식」등을 갖고 완전한 「주사파」로 양성된 뒤 이론에 정통한 학생은 총학생회집행부 또는 「전대협」의 「정책위」「조통위」「선전국」「투쟁국」등에 편입되고 연설능력등 대중성이 뛰어난 학생은 총학생회장,「전대협」의장 등 공개투쟁조직의 간부로 활동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전대협」은 또 통일투쟁을 위한 특별조직으로 「조통위원회」를 설치, 올해 통일투쟁 전략전술을 「범민련 강화」 및 「연방제 통일방안 합의」로 설정하는 등 정부의 통일정책에 반해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일치하는 운동을 전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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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JUL-91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19910727019001
2004. 4. 이인영 -- 전대협 -- 열린우리당 -- 민노당
[.... 민족·민주 세력이 주도하는 열린우리당이 돼야 하며 그렇게 될 수 있다......
.....전대협 세대를 포함해 50~60명의 현역 의원들이 ....... ]
[..... “자주·민주·통일의 깃발을 버리면 더 이상 전대협이 아니다......
..... “전대협 세대가 열린우리당으로 우회하지만 민주노동당과 함께 우리 사회의 방향을 ....... ]
“민족 · 민주 세력이 당을 이끌어야” [2004.04.29 제506호]
우리당 전대협 세대 맏형 격인 이인영 당선자… “이라크 추가파병에 반대한다”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이인영 당선자(39·서울 구로갑·열린우리당)는 4월17일 기자와 만나 “자주·민주·통일의 깃발을 버리면 더 이상 전대협이 아니다”라며 “전대협 세대가 열린우리당으로 우회하지만 민주노동당과 함께 우리 사회의 방향을 잡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냈으며, 사회에 진출한 뒤로도 전대협 출신자들 사이에서 ‘맏형’ 노릇을 해왔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해 낙선했다가 이번 총선에서 원내 진출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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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노선이 잡탕이라는 견해도 있다.
=구체제와 급진적 자유주의, 민족·민주 세력이 공존하고 있다. 구체제는 노심(盧心), 권력, 당권 따위를 추종하는 경향을 말한다. 급진적 자유주의는 행태는 급진적인데 철학은 자유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민족·민주 세력이 주도하는 열린우리당이 돼야 하며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대협 세대를 포함해 50~60명의 현역 의원들이 그 주축을 형성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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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이제 폐지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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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841.html
2004. 5.25.
열린우리당 전대협 --- 빨치산 임방규 --- 이종린 --- 한상렬
[...... 임방규 통일광장.... 여러분은... 우리의 아들...... 과거에 투쟁했던 모습보다 더 센 모습을 ....... ]
[...... 이종린 범민련.... 국가보안법이 적어도 내년 4월까지는 ....... ]
[...... 한상렬 통일연대 ... 국가보안법 철폐 .... 6.15통일시대를 ....... ]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 지켜봐 달라........ ]
통일조국에 복무하는 큰 지도자 되길
전대협 출신 열린우리당 당선자들 재야원로 만나
[통일뉴스] 송정미 기자 2004-05-25
25일 저녁 6시 명동의 한 음식점에 약간은 긴장되고 상기된 표정의 전대협 출신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하나 둘씩 들어섰다.
암울했던 80년대, 때로는 스승으로 때로는 선배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 주었던 재야원로들을 이제는 17대 국회의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 당선자가 돼 만나는 자리이다.
재야원로들과 전대협 동우회의 만남에 전대협 출신의 국회의원 당선자 10여명이 자리를 함께 한 것으로, 재야원로들은 국회의원 당선을 축하하면서 당부의 말을 건넸고, 이들 당선자들은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영식 의원은 재야 어른들을 만나면 생활을 뒤돌아보고 성찰하게 된다며 젊은시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기 계신 분들의 도움으로 전대협과 함께 했던 것이 가장 큰 역사고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된다면서 그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고 이제 제도권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로, 16대와 다르게 어깨가 무겁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정청래 당선자는 제 개인의 능력이 출중해서 국회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시대가 필요해서 국회에 밀어 넣었다고 생각한다며 몸을 낮추고 개혁의 깃발을 선명하게 들고 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힌 후, 특히 반통일세력인 조선일보 제자리 찾기에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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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린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은 4.15총선은 우리 민중의 승리이자, 6.15공동선언의 승리라며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에 걸림돌이 되는 국가보안법이 적어도 내년 4월까지는 해결될 수 있도록 각별히 노력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했다.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도 초심(初心), 일심(一心), 정심(正心)으로 파병철회, 국가보안법 철폐, 민중생존권 보장해 6.15통일시대를 이뤄가고 주도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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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재야원로들의 당부와 기대에 대해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며 지켜봐 달라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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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이철우 당선자는 천하의 빨갱이가 휴전선 옆에서 당선됐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지키겠다고 말했다.
임방규 통일광장 공동대표는 여러분은 민중의 품에서 컸고 그래서 우리의 아들이라며 전대협 출신이라는 당당한 모습과 과거에 투쟁했던 모습보다 더 센 모습을 국회에서 보여달라. 그래서 우리민족사에 오래 남는 그런 일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태년 당선자는 민족을 생각하고 민중을 바라보고 민주주의를 지키도록 하겠다며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애정과 기대와 '채찍'의 마음이 담긴 원로들의 당부는 계속 쏟아져 나왔다.
이외에도 오종렬 전국연합 의장을 비롯해,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장,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의장, 홍근수 평통사 상임대표,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부의장, 황건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문경식 전농 의장 등이 애정어린 조언을 했다.
이날 만남에는 복기왕, 백원우, 이철우, 정청래, 김형주, 우상호, 오영식, 한병도, 김태년 등 10여명의 당선자들과 전대협 동우회 정명수, 이성원씨 등이 참석하고, 재야원로 40여명이 참석해 총 6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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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ongilnews.comarticle.aspmenuid=101000&articleid=44320
임방규 통일광장 공동대표 = 통일연대 공동대표
통일광장 은 빨치산,간첩등 출소 장기수들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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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빨치산을 했어요. 해방 후 고창 중학교 시절 학생 운동을 했죠. 민주 학생동맹에 가입했었고 전주 공고에 다니다 6·25전에 상경했어요.
6·25때 의용군으로 가서 낙동강 전투에도 참여했다가 다시 쫓겨 임실로 들어갔습니다. 전북도당이 회문산에 있어 그 곳으로 가는 도중 임실 성수산, 학정리, 세심정, 성문안, 물우리 등에서 유격대로 활동했어요. 당시 외팔이 부대라는 별명이 붙었죠. 나중에 붙들려 징역을 20년 넘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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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aramilbo.comsub_read.htmluid=1174§ion=
(7) 비전향 장기수 임방규 선생
악법에 저항한 것이 어찌 민주인사가 아닌가
20040708
2005.2.2. [ 노무현 '광복 60년 기념사업위' --- 신영복 한명숙 조정래 ]
'광복 60년 기념사업위' 출범 ... 노 대통령 긴장되고 흥분
[ 오마이뉴스 2005-02-02 ]
[오마이뉴스 김당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약간 흥분할 만큼 의미가 와닿는다면서 긴장되고 흥분된다고 말했다. 2일 오후 청와대에서 이날 출범한 '광복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면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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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년을 맞아 범국민적 기념행사 및 문화사업 등을 추진할 '광복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이해찬 국무총리와 강만길 총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추진위원에는 이 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 12명(당연직 정부위원)과 강 총장을 비롯한 민간위원 48명 등 총 60명의 위원과 고문단(19명)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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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 +이해찬 국무총리 +강만길 상지대 총장 (이상 2명)
◇집행위원장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상 1명)
◇진실과 화해 분과 .... +이낙연 민주당 의원 ...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 (이상 15명)
◇평화와 희망 분과 ... +손숙 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 +이수호 민주노총위원장 ... (이상 1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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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 +조정래 소설가 ... (이상 19명)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47&article_id=0000057898
2006. 3.3. 열린우리당 --- 신영복
[ ...... 신영복 선생으로부터 ‘처음처럼’이라는 휘호 글씨를 받았다. ........ ]
중앙위원회의 모두발언
2006-03-06
▷ 일 시 : 2006년 3월 3일
▷ 장 소 : 백범기념관 대회의실
+ 정동영 당의장
우리는 오늘 첫 번째 중앙위원회를 이곳 백범묘소를 참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2년 전에 창당전당대회를 갖고 다음날 새벽 역대 정부와 정당 가운데 한번도 공식 참배를 한 적이 없던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였다. 그 당시 백범 선생의 아드님인 김신 장군으로부터 ‘양심건국’이라는 휘호를 받아 창당 정신의 지표로 삼고 정진했다.
2년 뒤 우리는 다시 새 지도부를 구성하고 중앙위원회를 이 자리에서 열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경계하고 자세를 가다듬자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으로부터 ‘처음처럼’이라는 휘호 글씨를 받았다. 신영복 선생께서 글씨와 함께 좋은 글을 주셨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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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3일
열린우리당 대변인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23&oid=155&aid=0000000078
2016.1.16. 더불어 민주당의 찬양 충성맹세 --- 통혁당 신영복
[ ...... 분단된 조국에서 군사 독재에 저항하다 스물일곱 청춘의 나이에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감옥에 갇힌 ........
....... 두려움 없이 군사 독재와 싸웠고 두려움 없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
...... 우리들이 사는 세상을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시켰습니다 .......... ]
[논평] 우직하게 조금씩 세상을 변화 시키겠습니다
2016-01-16
우직하게 조금씩 세상을 변화 시키겠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고 분단된 조국에서 군사 독재에 저항하다 스물일곱 청춘의 나이에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감옥에 갇힌 고인의 삶은 슬프고 비극적인 우리 현대사의 굴곡, 그 자체였습니다.
고인은 강산이 두 번 변하는 20년 세월동안 불굴의 의지로 한 평 좁은 감옥 안에서 끝없는 사색과 공부를 했고, 출소 이후 돌아가실 때까지 글과 강의로 젊은이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며,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분이셨습니다.
두려움 없이 군사 독재와 싸웠고 두려움 없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던진 가르침, 굽힐 줄 모르던 의지는 우리들이 사는 세상을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2016년 1월 16일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 강선아
http://npad.kr/briefingDetail.do?bd_seq=51704
문재인 "선생님" --- 신영복
[ ..... (신영복 선생님은) 우리 당에 '더불어'라는 이름을 주고가셨다 ......
...... 선생님의 더불어 정신을 늘 간직하겠습니다....... ]
더불어 정신을 간직하겠습니다 故 신영복 교수 추모행렬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윤준호 기자 박신엽 기자
2016.1.17.
[신영복 타계] 문재인 대표 온 국민들의 역사의 스승… 17일 오후까지 시민 5500여명 찾아
15일 타계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빈소에는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주말에도 이어졌다. 별세 사흘째인 17일 오후까지 정계 인사를 포함한 시민 수천여명은 빈소를 찾아 스승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17일 오후 2시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신영복 선생님은) 우리 당에 '더불어'라는 이름을 주고가셨다며 더불어 정신의 공존과 연대의 정신을 우리 당이 늘 간직하며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방명록에 선생님의 더불어 정신을 늘 간직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문 대표는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신영복 선생님은 성공회대 학생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에게도 역사의 스승, 시대의 지성인으로 다가왔던 분이라며 향기를 느낄 정도의 지성이 오랜 감옥생활로 단련됐다는 게 놀랍다. '몸은 가둘 수 있어도 정신은 가둘 수 없다는 말'이 정말 실감될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신영복 교수와 개인적인 인연을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였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봬 왔다며 제겐 '처음처럼' 세 작품을, 노 전 대통령껜 '우공이산'과 '춘풍추상'이란 글씨를 주셨다고 전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신 교수님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알게된 분이라며 감옥에 있는 동안 빨리 나오시길 기원만 하고 있다가 1988년 나오신 이후에 인생을 사는데 많은 길잡이가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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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mt.co.kr/mtview.php?no=2016011718230946316&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
[ ..... '더불어민주당' 당명 .... 신 교수의 '더불어숲'에서 '더불어'를 따왔다 ........ ]
[ ...... 문재인 대표는 .... 신영복 선생님은 ... 다 함께 정권교체 꼭 해내자고 격려 .......
...... 선생님이 제게 써주신 '처음처럼'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써주신 '우공이산'은 저의 정신이 되고 마음가짐이 됐다 ......... ]
野 '故신영복의 추억' 당명, '더불어숲' 되라는 고인 선물
뉴미디어뉴스국 2016-01-16
문재인 '처음처럼', 저의 정신이 돼…소주한잔 올린다
안철수 오늘 조문 예정
야권 인사들은 16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로 유명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별세 소식에 저마다 고인의 삶을 떠올리며 한목소리로 애도했다.
특히 최근 개정한 당명인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가 신 교수의 저서 '더불어숲'에서 기인한 표현이었던 사실이 뒤늦게 회자되면서 신 교수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 교수는 생전에 적지 않은 야권 인사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 묘비문인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글귀도 신 교수의 '작품'이다.
더민주 문재인 대표는 페이스북 글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대선패배에 누구보다 아파하시고, 다 함께 정권교체 꼭 해내자고 격려해주셨던 분이라며 선생님이 제게 써주신 '처음처럼'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써주신 '우공이산'은 저의 정신이 되고 마음가짐이 됐다. 선생님께 소주 한잔 올린다고 추모했다.
문 대표는 지난 대선 이후 신 교수와 가끔 만나 조언을 구한 사이로, 17일 서울 성공회대에 마련된 빈소를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전문가 출신의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2006년 소주브랜드 '처음처럼'을 만들 때 고인의 서체를 활용해 그의 글씨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장본인이다. 손 위원장은 1990년대 말 강연 모임이던 '더불어 숲'에서 고인과 첫 인연을 맺은 뒤 직접 서예를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손 위원장은 저는 그 분의 서체를 정말 좋아했다며 고인에게 요청을 드려 시서화를 받았고, 그 글씨 중 '처음처럼'을 브랜드로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선생님의 가르침이 더욱 필요한데…이렇게 황망하게 떠나시니 마음이 미어집니다라고 썼다.
손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에도 고인의 흔적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더불어민주당' 당명 응모자가 제안 설명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글처럼 힘든길, 산길을 가도, 더불어 가면 길이 생긴다는 것이라며 신 교수의 '더불어숲'에서 '더불어'를 따왔다는 것이다.
손 위원장은 1등 하신 분이 제출한 당명 설명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는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였다며 눈이 선하다고 문재인 대표를 좋아하셨던 신영복 선생님께서 '더불어 숲'이 돼 민주주의를 지키라고 우리에게 큰 선물 '더불어'를 주고 가신 것 같다고 말했다.
SNS에도 고인을 추모하는 야권 인사들의 애도글이 이어졌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제가 대북송금특검으로 구속됐을 때 읽고 또 읽었다고 했고, 이석현 국회 부의장은 시대의 양심적인 지식인, 영면하소서라고 글을 남겼다.
분당 국면에서 거취를 놓고 막판 고심 중인 박영선 전 원내대표는 트위터글을 에서 성공회대의 더불어숲 강의에 다녔던 나에게 신영복 선생님은 '얼마나 힘들어요' 하시면서 서예를 권하며 붓 잡는 법을 가르쳐주셨다며 먹을 가는 단아한 마음, 금처럼 제련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라고 고인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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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는 선생님의 뜻과 정신은 낡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진보의 미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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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mnews.imbc.com/news/2016/culture/article/3861011_19794.html
2016.1.18. 중앙일보 --- 유홍준
아픔을 구슬로 만든 당신 … 많은 일깨움 북극성처럼 빛날 겁니다
[중앙일보] 입력 2016.01.18
유홍준 교수 ‘추모의 글’
우리 시대의 ‘참스승’ 신영복 선생님이 기어이 가셨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건 아니지만 이제 선생님을 다시 뵐 수 없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허전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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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삶과 글과 강의와 글씨로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일깨움을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생의 창조적 열정이 고조에 달하는 나이 27세부터 47세까지 20여 년을 어두운 감옥에서 보내셨으면서도 단 한 번도 당신이 받은 고통에 대하여 불평을 말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살을 찌르는 아픔을 견디고 마침내 영롱한 구슬을 만들어 내는 진주조개처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세상에 내보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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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더불어 숲』 『나무야 나무야』에서 『마지막 강의』까지 인간의 본분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무문관(無門關)의 수도사만이 전할 수 있는 인생교본이었습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명문이란 “가득 담았지만 뺄 것이 없고, 축약했지만 빠진 것이 없는 글”이라 했는데 선생님의 글이야말로 그러했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책을 정말로 아껴가며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씨로 말하자면 한국서예사에 홀연히 나타난 금자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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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중국인들이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는 루쉰(魯迅)의 전기를 번역하신 적이 있으시지요. 선생님이야 말로 우리나라의 루쉰이십니다.
고단한 삶이 이어지는 힘들고 강퍅한 세상을 살면서도 선생님 같은 분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선생님처럼 결이 고운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모든 것을 과거형으로 돌리자니 너무도 허전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남기신 말씀과 글씨들은 저 하늘의 북극성처럼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서 밝은 빛을 발할 겁니다.
“선생님! 편히 가십시오. 선생님과 한 생을 같이 살았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합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미술사가
http://news.joins.com/article/19427345
2016.1.15. 민주노총 --- 신영복
[ ..... 불의한 권력에 맞선 청년이었고 투사였다. ........
...... 그는 착취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의 선생이었고 ....... ]
[논평]
시대를 밝힌 촛불 하나 꺼지다. 신영복 선생 소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시대를 일깨웠던 신영복 선생이 별세하셨다.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그의 성찰은 사람을 향한 사색의 발원지였으며 척박한 세상을 적시는 꿀이었다.
그는 한 때 불의한 권력에 맞선 청년이었고 투사였다. 20년이 넘는 감옥의 혹독함도 그를 이기지 못했으며, 화려한 세상의 욕망도 그를 흔들진 못했다. 그는 착취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의 선생이었고, 동요하는 군상들 모두의 스승이기도 했다.
이 시대가 잃어버린 어떤 선각자처럼 그의 죽음은 우리 시대의 상실이다. 세상은 이제 어디에 기대 사색하고, 무엇을 좌표로 사람을 향해야하는가.
사람들은 아직 그의 말을 기다리는데, 오늘 그는 훌쩍 우리 곁을 떠났다. 시대를 밝히던 촛불 하나가 또 꺼졌다. 세상은 더 어두워졌고, 민중은 더 쓸쓸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소천, 하늘이 그를 불렸다면 천국도 팍팍하긴 마찬가진가 보다.
2016. 1. 15.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http://nodong.org/statement/7047742
2016.1.22. 한겨레 --- "혁명적 인간" 신영복
[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혁명적 인간의 글모음”이었다. .........
...... 이제 그가 남겨놓은 ‘희망의 원리’를 진보의 도구로 벼리는 일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 ........ ]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
2016-01-22
[토요판] 커버스토리 / 신영복의 학문 궤적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 논리는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전개 과정이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자본축적 과정의 전형적 형태입니다.”(신영복, <강의>)
동양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시서화에 능한 인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신영복은 본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규명하는 정치경제학자였다. 그는 대학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자본주의 분석에 있어서 가장 체계적인 이론으로, 가장 정합적인 실천과학’으로 받아들이며 정치경제학을 자기 학문의 밑절미로 삼은 ‘붉은 경제학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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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여긴 박정희 군사정권 치하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내면화한 제3세계의 급진적 지식인이 설 곳은 많지 않았다.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숙명여대에서 후진국개발론을 강의하며 학생운동 서클 간부로 활동하던 신영복은 남한사회 반체제운동의 주류로 자리잡아온 엔엘(NL·민족해방주의) 노선에 기초한 혁명조직인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20년 20일 동안 영어의 몸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그 잔인한 세월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그를 인문학적 사상가로 거듭나게 한 시간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감옥은 그에게 또다른 ‘학교’였다.
고전·서예 능통한 인문학자 신영복
원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변화 도구로 인문학 일깨운 징역
낮은 데서 깨친 인간에 대한 이해
정치경제학에 인문학 더한 ‘관계론’
관념화·교양화 등 비판 나오기도
“외연 확대 중요하다”던 그의 담론
진보의 도구로 만드는 건 우리의 몫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1988년 가석방될 때까지 그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동양고전이라는 숫돌에 자신의 칼이었던 정치경제학을 벼리고 또 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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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서늘한 각성의 정수를 모아놓은 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사색>)이었다. <사색>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그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혁명적 인간의 글모음”이었다. “이 사실을 놓치면, 그것은 이 책을 한낱 지당한 ‘공자님 말씀’들로 이루어진 인생론집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된다”는 지적(김명인)은 그래서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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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전을 통한 인간 사랑이 그를 초월적인 달관의 경지로 이끌진 못했다. 2004년 <주역>에서 법가까지 자신의 동양고전에 대한 해석을 담은 <강의>를 펴내며 근대의 존재론적 인식을 넘은 관계론적 철학을 이야기할 때도 그의 반자본주의적인 입장은 여전히 또렷했다.
고전을 알기 쉽게 소개시켜주는 지혜로운 인문주의자나 소주병에 글씨를 쓴 탁월한 서예가로만 신영복을 기억할 수는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에게 인문학은 정치경제학 인식을 실천으로 매개할 하나의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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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가 남겨놓은 ‘희망의 원리’를 진보의 도구로 벼리는 일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 되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727533.html
신영복 --- 더불어 숲
[ ....... 저의 숲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론’과 같은 의미입니다 .........
...... 진지를 만들어서 버티자는 얘기에는 도처에 숲을 만들어서 힘도 기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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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에게 숲이란 단어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신영복‥개인이 반성해야 할 부분은 머리입니다. 기존 지배 이데올로기를 학습하고 포섭해서 수용하는 형식으로 자기 의식이 결정됩니다. 그 의식을 성찰해서 자기 주체 의식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쿨 헤드’(차가운 머리)를 ‘웜 하트’(따뜻한 가슴)로, 즉 인간적으로 완성해내는 게 필요합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롱기스트 저니(longest journey·장거리 여행)’입니다.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개인은 나무입니다. 전 삶의 현장으로서의 숲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숲은 다양성입니다. 화폐적 가치라는 단일한 가치 중심으로 모든 것을 질적으로 동질화하는 근대성에 대한 성찰의 화두로 숲을 내세웠습니다.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 전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도 공존하는 질서가 진보한 문명의 형태입니다.
또 저의 숲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론’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람시는 완고한 유럽 보수주의 벽 앞에서 아픔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진지를 만들어서 버티자는 얘기에는 도처에 숲을 만들어서 힘도 기르고 그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위로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실천적 의미도 있습니다. 숲은 근대성의 패권적 논리를 성찰하는 문명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인간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키워내는 진지의 운동론적 개념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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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9281739451&code=210000
경향 60돌]신영복 교수 “지배구조 고착으로 과도한 대립·갈등 표출”
2006.09.28
그람시 이탤리 공산당 총서기 --- 진지전
[ .... 서구사회 ... 국가 ... 주변에서는 시민사회로서 참호가 둘러싸 .... 기동전으로 당당하게 뚫고 들어갈 수 없기에 하나하나 참호를 점령해나가야 .... 기동전이 아닌 진지전 ....... ]
안토니오 그람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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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이탈리아어 Antonio Gramsci, 1891년 1월 22일 ~ 1937년 4월 27일)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반 파시즘을 주장한 이탈리아 지식인, 정치인 그리고 지도자와 사상가였다.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설자 중 한 명이며 한 때 지도자이기도 하였으며,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에서 투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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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는 1926년 1월, 프랑스 리옹에서 비밀리에 열린 전당대회를 통해 정식으로 공산당 총서기로 승인돼 이탈리아 공산당의 지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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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경우 혁명적 세력이 강제기구인 국가를 파괴점령한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기동전이 가능하다. 그러나 서구사회의 경우, 핵심에는 국가기구로서 국가가 있지만 그 주변에서는 시민사회로서 참호가 둘러싸고 있다. 그러므로 기동전으로 당당하게 뚫고 들어갈 수 없기에 하나하나 참호를 점령해나가야 한다. 이것은 기동전이 아닌 진지전으로서 장구한 시간이 필요하다. 러시아 볼세비키의 혁명전략이 왜 서구사회에 적합하지 않은지를 설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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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23. 노동신문
[ ..... 항거의 초불을 전민항쟁의 홰불로 틀어쥐고 반역의 무리를 모조리 불태워버려야 ....... ]
[ .... 남조선의 《전국언론로조》, 기자협회,... 민주언론시민련합, 언론개혁시민련대를 비롯한 많은 언론단체들은 언론단체비상시국대책회의를 내오고 각계층 인민들과 함께 투쟁 ........ ]
북한, ‘최순실 보도’ 남한 언론들 극찬
“정의와 진리의 대변자, 시대의 선각자, 인민들과 함께 투쟁”
송현수 기자
기사입력 2016-11-23
[리얼팩트=송현수 기자] 북한이 최순실 사태를 보도하는 남한 언론들을 열렬히 응원했다.
노동신문은 23일 “남조선언론들은 《박근혜, 최순실추문사건》의 내막을 련일 파헤쳐 널리 보도하고있다”며 “최악의 궁지에 몰린 박근혜일당의 가련한 처지와 반역무리를 권력의 자리에서 기어이 몰아낼 의지밑에 힘차게 벌어지는 각계의 투쟁소식들을 신속히 전하면서 반《정부》기운을 고조시키고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조선언론들의 이러한 보도활동은 정의와 진리의 대변자, 시대의 선각자로서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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