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색캬. 반론 환영.
경제면에서 무솔리니는 미국주의라 부르는 대량 생산체제, 소위 포디즘이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다고 경계하였다. 특히 미국의 대량 생산체제를 벤치마킹한 피아트와 마찰을 빚었다. 피아트가 미국식으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쥐어짜는 공장을 지으려 하자, '노동자들이 기계 옆에서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는 것은 안 될 일이다.'며 안락한 구내식당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등 압박을 넣었다. 하지만 결국 피아트를 막진 못했다. 이런 관점에서 지방의 소기업에게 일감을 나눠주고, 기술 장인들을 대우하는 등 전반적으로 자본주의의 폐해를 줄이려 하였다. 이렇듯 노동자 대우에 대해서는 생각 외로 인간적인 면이 있었는데,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정책들은 당시 이탈리아 경제를 허약하게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장인들이 한땀 한땀 기술 좋은 레이싱용 차를 만들던 알파 로메오가 비효율성을 견디지 못하고 망해서 무솔리니가 국영화했으나, 전쟁으로 급박한 와중에 가정에서 망치로 두들겨 만든 부품을 도시의 공장으로 가져와 조립하는 식의 생산 방식 때문에 전투기 생산이 매우 지체되었다. 나중에 생산 체제를 개편해서 나아졌으나 얼마 가지 않아 이탈리아는 항복했다. 다만 무솔리니의 이런 정책이 가족기업, 10인 이하 영세기업들 간의 네트워크가 중심이 된 이탈리아의 경제구조를 형성하는 데는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소위 장인들이 한땀 한땀 만드는 고급제품(명품) 시장에선 이탈리아가 절대 강자라는 점은 잘 알려져있고, 실제로 1980년대까지는 이러한 경제구조가 이탈리아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어서 한때 이탈리아가 미국-일본-서독-프랑스에 뒤이은 세계 5위 경제대국에 오르는 위엄을 발휘한바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부터는 이탈리아의 중소기업들이 세계적인 대기업들의 공세속에서 자금력 부족으로 고전을 면치못하며 이러한 경제구조는 현대 이탈리아 경기침체에 악영향을 주고있는 중이다.
Vs
"양은 양만의 질이 있다." (스탈린 어록)
후진적 농업국가 제정 러시아에서, 미국과 대적할 세계 제 2 열강으로 소련을 입갤시킨 스탈린에 대한 연구가 너무나 미흡하다. 후대에 살만하게 소련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 흐르시쵸프 브레즈네프는 허당이야. 산유국 소련 석유팔아 분배 정책. 20~30년후 소련 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