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      문형배




  [   ..... 이제는 대법원에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도 진출해야 할 때 .......    ]




중견·소장 판사들, 개혁 요구 봇물


각계 의견 수렴해 개혁 · 진보적 대법관을




03.01.20     황방열(hby)




문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지금까지처럼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밀실행정으로 선임할 것이 아니라, 선임이유와 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며 변호사 협회, 법학계, 언론, 시민단체, 법원 내부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개혁적인 새 시대 인물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해 '대법관 인사방식 개혁'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텄다.



법관인사도 다면평가로



이어 한기택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사시 23회)가 17일 대법원 인사개혁과 관련해 대법관 선임과정에 법원내부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법원의 내부적인 '다면평가'를 제도화시켜야 한다는 글을 법원내부 통신망 '코트넷(courtnet)에 올렸다. 



또 18일에는 문형배 부산지법 판사(사시 28회)와 이용구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사시 33회)가, 19일에는 정진경 서울지법 판사(사시 27회)와 박상훈 전주지법 정읍지원장(사시 26회)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문형배 부산지법 판사는 '사법개혁 논의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제는 대법원에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도 진출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법관 인사는 그 정치적 역할을 감안하여 지역별, 기수별, 직역별 안배가 이루어져 왔으나 이제는 성향별 안배도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며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도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과 함께 최고법원을 구성하고 법적으로 제도화된 공론을 통하여 이 사회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대법관 선임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진보성'



그는 이어 이제 변화와 개혁이 이 시대의 당면한 요구로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법조인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차제에 사법개혁에 관한 활발한 논의와 제도화를 통하여 사법부의 발전을 도모할 때라며 유감스럽게도 법원 내부에서는 그러한 논의가 활발하지 못한 것 같아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박상훈 정읍 지원장도 이번 대법관 선임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진보성'이라고 주장했다. 법률은 사회질서유지를 기본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태생적인 보수성을 갖고 있고, 이에 따라 30년 가까이 법관으로 종사한 사람들은 대개 보수적 성향을 갖게 마련이라며 그러나 16대 대선에서 개혁내지 진보를 택한 국민들의 염원을 고려할 때 보수적 성향을 띤 현재의 대법원에는 '진보적 인물'이 긴급하게 수혈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 지원장은 또 이제까지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방패막이 뒤에서 법관들이 대법관 선임에 관해 발언하는 것은 금기시 돼왔으나 왜 그래야 하느냐며 사법구 구성원 뿐 아니라 변호사회, 검찰, 언론, 시민단체 등의 의견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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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선출을 위한 위원회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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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활발하게 법원개혁의 목소리를 내온 정진경 서울 지법판사는 19일 '최근의 대법관 추천과 관련한 논의에 붙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법부 구성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비공개 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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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연령대로, 판사경력은 9∼19년차들로 평판사에서 부장판사까지 다양하다. 이제까지는 법원 외부 시민단체나 언론에서 사법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온 데 비해 지금은 법원내부에서 이에 대한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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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03669&CMPT_CD=SEARCH










문형배  @favor55   15년 02월 22일



다이빙벨을 올레 tv로 봤다.  진실은 무엇일까?








문형배  @favor55   2016년 1월 16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담론까지  신영복 교수 책은 거의 읽은 것 같은데  돌아가셨구나!   변화와 창조는 변방에서 일어난다.  단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그분 말씀에 공감했다.  영면하시기를 빈다.








 [  .....  신영복 선생은 말하였습니다.  '만남은 바깥에서 이루어집니다. .......    ]



우리법연구회 현직 판사 129명의 분석



조갑제닷컴

201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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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법연구회 회장인 문형배 판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이런 주장을 하였다.




우리법연구회의 정체성이 진보냐, 개혁이냐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중략). 힘 없고 돈 없는 다수의 국민이 억울함을 호소하여 법원에 일정한 역할을 기대하는 한, 누군가가 이에 답변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3%의 소금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법연구회 회원수도 전체 법관의 3%가 넘습니다. 우리법연구회가 사법부의 소금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요 (중략). 신영복 선생()은 말하였습니다. '만남은 바깥에서 이루어집니다. 각자의 성을 열고 바깥으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진정한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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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씨는 1968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8년 석방됐던 인물이다. 통혁당은 중앙당(中央黨)인 조선로동당의 지시를 받는 지하당(地下黨)이었다. 주범 김종태·김질락·이문규는 월북(越北)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당원(黨員) 이진영·오병헌은 68년 4월22일 월북해 교육을 받던 중 68년 6월 말 통혁당 사건이 터지자 북한에 머물렀다.

김종태는 4차례에 걸쳐 북한을 왕래하면서 김일성을 면담하고 美貨 7만 달러, 韓貨 3천만 원, 日貨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고 A-3지령만 167회를 수신했다. 그는 민중봉기, 간첩의 무장집단 유격투쟁을 통한 수도권장악, 북한으로부터 무기수령을 위한 양륙(揚陸)거점 정찰, 특수요원 포섭, 월북 등 14개 항목의 공작임무를 띄고 있었다. 신영복 씨는 석방된 후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해오다 2006년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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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월17일 申씨는 연세대에서 민노당 당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자본축적은 근본적 모순체제』라고 비판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며 이렇게 결론짓는다.



《자본주의 체제, 종속적 자본주의, 천민적 자본주의가 우리나라에 언제까지 갈 것인가 나도 몰라. 그러나 논리적 이론적 사고를 한다면 「非인간적 근본적 모순구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자본 축척은 근본적 모순체제다. 和(화)의 철학을 기초해서 만들어 가야한다. 억압적 구조에서 취약역량을 가지고 희망을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다. 힘들어도 샛길은 없다. 사회를 바꾸어 내자. 정말 황폐화된 인간관계 삶의 일부로서 실천해야한다. 운동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행할 때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할 것이다》




申씨는 2003년 10월 송두율이 입국하자,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성명(2003. 10. 23)」, 「송두율 교수의 무죄 석방을 촉구하는 사회 원로·인사 성명(2004. 3. 11)」 및 「송두율석방대책위」고문 등으로 참여하며 소위 송두율 석방투쟁의 전면에 섰었다.



그는「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교수 1000인 성명(2004. 10.27)」「6.15공동선언, 10.4선언 이행 및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각계 인사 공동선언(2008. 6. 14)」등에 참여해 국보법폐지와 6.15 및 10.4선언 이행 촉구에도 앞장서왔다.



https://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30962&C_CC=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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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22.    한겨레  ---  "혁명적 인간"  신영복




[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혁명적 인간의 글모음”이었다. .........


 ...... 이제 그가 남겨놓은 ‘희망의 원리’를 진보의 도구로 벼리는 일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 ........     ]




[ .....  그의 반자본주의적인 입장은 여전히 또렷했다. .......    ]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



    2016-01-22 




[토요판] 커버스토리  신영복의 학문 궤적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 논리는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전개 과정이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자본축적 과정의 전형적 형태입니다.”(신영복, 강의)



동양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시서화에 능한 인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신영복은 본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규명하는 정치경제학자였다. 그는 대학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자본주의 분석에 있어서 가장 체계적인 이론으로, 가장 정합적인 실천과학’으로 받아들이며 정치경제학을 자기 학문의 밑절미로 삼은 ‘붉은 경제학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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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여긴 박정희 군사정권 치하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내면화한 제3세계의 급진적 지식인이 설 곳은 많지 않았다.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숙명여대에서 후진국개발론을 강의하며 학생운동 서클 간부로 활동하던 신영복은 남한사회 반체제운동의 주류로 자리잡아온 엔엘(NL·민족해방주의) 노선에 기초한 혁명조직인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20년 20일 동안 영어의 몸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그 잔인한 세월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그를 인문학적 사상가로 거듭나게 한 시간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감옥은 그에게 또다른 ‘학교’였다.




고전·서예 능통한 인문학자 신영복

원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변화 도구로 인문학 일깨운 징역

낮은 데서 깨친 인간에 대한 이해

정치경제학에 인문학 더한 ‘관계론’

관념화·교양화 등 비판 나오기도

“외연 확대 중요하다”던 그의 담론

진보의 도구로 만드는 건 우리의 몫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1988년 가석방될 때까지 그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동양고전이라는 숫돌에 자신의 칼이었던 정치경제학을 벼리고 또 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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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서늘한 각성의 정수를 모아놓은 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사색)이었다. 사색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그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혁명적 인간의 글모음”이었다. “이 사실을 놓치면, 그것은 이 책을 한낱 지당한 ‘공자님 말씀’들로 이루어진 인생론집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된다”는 지적(김명인)은 그래서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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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전을 통한 인간 사랑이 그를 초월적인 달관의 경지로 이끌진 못했다. 2004년 주역에서 법가까지 자신의 동양고전에 대한 해석을 담은 강의를 펴내며 근대의 존재론적 인식을 넘은 관계론적 철학을 이야기할 때도 그의 반자본주의적인 입장은 여전히 또렷했다.



고전을 알기 쉽게 소개시켜주는 지혜로운 인문주의자나 소주병에 글씨를 쓴 탁월한 서예가로만 신영복을 기억할 수는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에게 인문학은 정치경제학 인식을 실천으로 매개할 하나의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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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가 남겨놓은 ‘희망의 원리’를 진보의 도구로 벼리는 일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 되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727533.html








[김순덕 칼럼]   더불어민주당,  혁신하려면  신영복의 ‘더불어’부터  떼라


 


김순덕 대기자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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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1월 신영복 1주기 때 민주당 전 대표로서 참석해 “선생님은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 당명을 주려고 하셨다”며 손혜원과 함께 ‘더불어숲’에서 당명을 정했다고 추도사에서 고백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날 “당명 공모 때 ‘더불어민주당’ 제안자는 공존과 연대를 강조한 선생의 ‘더불어숲’ 정신을 본받자는 취지라고 밝혔다”고 트위터에 적었던 것도 거짓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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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대통령은 2018년 2월 강원 평창 겨울올림픽 때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을 앞에 놓고 “제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 신영복 선생”이라는 말을 했다. 물론 신영복은 전향서를 썼고 1988년 가석방됐으나 통혁당에 가입한 적도 없다고 2006년 거짓말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신영복은 통혁당 최고책임자 김종태(사형 뒤 북에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의 조카 김질락으로부터 지도받았다”고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2010년 증언한 바 있다.


 


겉으론 민주화운동을 내세우면서 실은 인민혁명을 꾀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정했던 신영복을 86그룹과 문 정권은 ‘선생님’이라며, 사상가라며 받들어 모셨다. 이런 사실까지 알고 나면 국민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그 이름을 다신 아무렇지도 않게 부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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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30621/119881281/1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의  SNS ‘말‧말‧말’


온라인상에서  '김어준 저장소‘  '이재명' 팔로우  의혹 제기돼




글 고기정  기자 yamkoki@chosun.com




국민의힘이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을 향해 공정성 우려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과거 문 대행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올렸던 글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24일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문 대행은 이재명, 정성호 의원과 사법연수원 동기이고,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이 꼽은 몇 안 되는 가까운 법조인”이라며 “문 대행의 X(옛 트위터) 계정을 이 대표가 팔로우하고 있고, 문 대행이 팔로우하는 상당수 다수는 ‘윤석열 구속’을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주 의원은 “문 대행이 이끄는 헌재는 절차적 공정성에 의심을 사고 있다. 소송서류 발송을 곧 송달된 것으로 보는 ‘발송송달’을 인정했다. 극히 예외적”이라며 “대통령 형사소추가 진행 중인데 탄핵 재판을 멈추기는커녕 일주일에 두 번 탄핵 재판을 연다. 한덕수 권한대행, 박성재 법무부 장관 재판만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본지 확인 결과, 24일 오후 3시 기준 문 대행의 X계정의 팔로잉은 5472명, 팔로워는 6385명이다. 꾸준했던 X 활동은 2022년 12월 24일 자신의 블로그 계정을 공유하며 끝을 맺는다.



문 대행의 남다른 SNS 사랑은 2010년 8월 7일 ‘부산일보’가 보도한 ‘twitter는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창이죠’ 기사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부산지법 행정2부의 재판장 직을 맡고 있던 문 대행은 2010년 1월 30일부터 SNS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과거 트윗에는 열정과 솔직한 의견이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 영화 ‘변호인’을 봤다는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기도 하고, 사법 시스템에 관한 자신의 고견을 거침없이 밝히기도 한다.




온라인상에서 문제가 된 것은 문 대행이 팔로잉하고 있는 목록 중 ‘김어준 저장소’가 있다는 점이다. 방송인 김어준씨가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닌 단순 팬 계정이지만, 10만4000여명의 팔로워를 지닌 좌파 진영 스피커로 알려져있다.


 


이 외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문 대행이 이 대표와 맞팔(함께 팔로잉하는 사이)이 되어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내용이 논란이 되자 이 대표 측이 문 대행과의 맞팔을 일방적으로 끊었다는 의혹이 퍼지기도 했다.



문 대행이 북한과 관련해 남긴 내용도 논란이 됐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통일외교안보특보로 활동한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책인 ‘중국의 내일을 묻다’에 나오는 몇 구절을 소개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은 북한이 자신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더욱 많은 대북 원조를 제공해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한 문 대행은 2010년 5월 16일에 “굳이 분류하자면 우리법연구회 내부에서 제가 제일 왼쪽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며 “그런데 친구들과 이야기 해 보면 제가 참 보수적이다. 문제는 좌, 우를 나누는 잣대조차 불분명하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문 대행은 사법시험 28회‧사법연수원 18기로 부산‧경남에서 지역법관(옛 향판)으로 일했다. 이 대표와는 사법연수원 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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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기정 월간조선 기자


입력  2025.01.24


https://m.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21309&Newsnumb=20250121309













헌법재판소  장악한   '우리법연구회'  탐구 ①



강금실·김명수·박범계부터 정계선까지 … '좌파 법피아'서 민주당 '정권 파수꾼'으로




송학주 기자


입력 2025-01-14 



尹, 정계선 재판관 기피 신청…"좌편향 인물"

'법조계 하나회' 비판…민주당 정권서 승승장구

최연소 여성장관에다 13기수 뛰어넘은 파격 인사

국가보안법 위헌·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 좌편향 판결 논란



"정치적 중립성 훼손…탄핵 심판 공정할지 의문"




윤석열 대통령 측이 탄핵 심리를 위한 변론 기일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헌법재판소에 정계선 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서를 제출했다. 정 재판관이 법원 내 진보적 성향을 가진 '우리법연구회'의 회원이자 회장을 역임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일 취임한 정 재판관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정 재판관과 함께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 이미선 헙법재판관도 같은 연구회 출신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추가 임명을 압박하고 있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그렇게 되면 헌재는 재판관 9인 체제가 완성된 상태에서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진행할 수 있지만 진보 성향의 재판관이 4명이나 된다. 탄핵이 가결된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 우리법연구회는 태생부터 '좌편향'




우리법연구회는 과거 진보 성향의 판사들이 모여 만든 연구 모임으로, 5공화국 시절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에 반발해 창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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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우리법연구회는 참여정부 때 전성시대를 맞는다. 노무현 정부 때 박시환 판사는 대법관으로, 강금실 판사는 법무장관으로 임명됐다.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이광범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 등 사법부 요직에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대거 발탁됐다. 이때 회원 수가 120명을 넘으며 덩치도 커졌다. 



하지만 동시에 '판사들의 정치적 사조직'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고 '법피아(법조계 마피아)' '법조계 하나회'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이 모임 소속 판사들이 SNS에 대통령을 비꼰 글을 올리는 등 논란을 빚다 2010년 해체됐다.




하지만 2011년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초대회장을 맡은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설립됐고 일각에선 '제2의 우리법연구회'로 불렀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 6년 동안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등 주요 보직을 차지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김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4명 중 7명,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5명이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사법부 정치화를 주도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 민주당 정권에서 '승승장구'… 최연소 여성장관에다 13기수 뛰어넘은 파격 인사



우리법연구회는 사법부 독립, 대법관 임명 등 법조계의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섰다. 박시환 전 대법관을 비롯해 강금실 전 법무장관,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명수 전 대법원장, 유남석 전 헌법재판소장, 이정렬 전 판사 등이 대표적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우리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문재인 참여정부 시절 대법관으로 활동했다. 사법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진보적인 법 해석을 주도했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우리법연구회 창립멤버로 2003년 참여정부에서 초대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된 후 2004년 7월 28일까지 봉직했다. 헌정 사상 최연소 법무부장관이자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이었다.



이때 노 전 대통령에게 강금실을 천거한 사람이 강금실의 사법연수원 1기수 선배인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문재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강금실을 환경부장관이나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임명할 것을 제안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여성이 그런 부처 장관에만 임명되는 것은 고정관념"이라며 노동부나 법무부장관에 기용할 뜻을 밝힌다. 이로 인해 검찰 내 비주류가 계속 지적하던 조직순혈주의, 남성중심주의, 기수중심주의, 관료이기주의가 깨졌다.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은 1996년 서울지법 판사를 끝으로 법관에서 퇴직한 뒤 9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다 돌연 2005년 대법원장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비서실장 자리는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으나 정무직 차관급으로 승격해 재야에서 활동하던 변호사를 선임한 건 이례적인 인사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우리법연구회 출신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민정2비서관과 법무비서관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 때는 법무부 장관까지 역임했다. 




유남석 전 헌법재판소장은 우리법연구회 창립맴버로, 공수처법 합헌 결정, 낙태죄 헌법불합치 등 진보적인 판결을 내려 주목받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헌법재판소장을 지냈다.



이정렬 전 판사는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내려 화제가 된 판사로, 2023년 11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씨를 고발한 사람의 신상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이자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와 2대 회장을 맡은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양 대법원장보다 연수원 13기 후배로, 파격적인 인사였다.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성을 중요시하며 이를 위해서는 제왕적인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권력을 일선 판사들에게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김 대법원장 임기 동안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관들을 요직에 대거 등용했고 이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시킨 행위라고 비판이 나왔다.




◆  국가보안법 위헌·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 파격 판결…정치적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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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1/14/20250114001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