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롬멜의 부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개 당시 독일군 지휘부의 2가지 중요한 문제 중 하나[29]가 되었다.

그리고 사령관 롬멜의 부재 중 B집단군 사령부를 책임져야 할 참모장 한스 슈파이델은 갈팡질팡하다가 이렇다 할 방편을 마련하지 못했고, 연합군의 상륙 이후에도 롬멜은 7군 사령관 프리드리히 돌만 육군 상급대장과 갈등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돌만 장군의 갑작스러운 자살 이후 공석이 된 사령관 자리에 파울 하우서 SS 상급대장이 임명되는 것을 맹렬히 반대했다. 훗날 독일군이 팔레즈 포위망을 탈출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야전 지휘관이 하우서 장군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잘못된 판단. 그뿐만 아니라 룬트슈테트와 반격작전으로 마찰을 겪었고 한편으로는 히틀러에게 서부전선에서의 불리함을 강조하며 최고사령부와 다시 한번 갈등을 겪는다.[30] 이렇듯 서부 사령부 내에서의 분열로도 부족해 최고사령부 VS 서부 사령부의 갈등이 터지면서 독일군의 야전 지휘체계는 망가졌으며 버나드 로 몽고메리 장군이 회상한 말 그대로 인용하면 독일군 장병들은 노르망디에서 공군의 지원 없이 연합군 군대와 힘겨운 전투를 벌였고, 그들에게는 고위 지휘 체계가 무질서해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다만 몽고메리의 회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롬멜과 타 장교들의 갈등이 고위 지휘체계의 무질서함의 원인이라고 매도하기엔 상황이 상당히 복잡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과 함께 연합군의 군세를 결코 밀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롬멜은 룬트슈테트와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고 연합국과 휴전에 돌입해야 한다'라는 합의점을 도출한다. 이를 늑대굴에 있던 히틀러에게 보고했지만 히틀러는 오히려 화를 벌컥 내며 위치 사수를 명령하고 패배주의에 찌들었다며 룬트슈테트를 날려버린다. 그리고 그 후임으로 동부전선에서 활약한 귄터 폰 클루게를 임명했다. 헌데 히틀러는 클루게에게 롬멜이 패배주의에 찌들었다고 경고하며 그를 굴복시키라고 명령한다. 클루게는 부임하자마자 7월 3일 서부전선 사령부에 출근하여 휘하 장교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 롬멜의 패배를 강하게 비판하며 두 사령관이 또 대판 싸우게 된다. 이후 롬멜은 클루게에게 그의 비난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고 이러한 비난을 퍼부은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편지를 쓰며 갈등 봉합을 시도했다. 클루게 역시 동부전선에서 야전 지휘관으로 활약한 만큼 직접 전장에 나가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여러 차례 피한 이후 7월 7일 롬멜의 보고가 정확했음을 시인하고 사과한다. 하지만 히틀러는 계속해서 클루게와 롬멜의 정확한 상황보고와 부대 재정비를 위해 노르망디 지역을 포기하고 후퇴하여 방어선을 구축할 것을 간언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연합군을 무자비하게 바다로 밀어넣으라고 명령했고 이를 불가하다고 조언하는 롬멜과 클루게를 패배주의자라고 비난하는 형태가 지속되게 된다. 여기에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지며 서부전선 사령부는 게슈타포의 수사망에 갇혀 두 사령관이 자살하는 등 문자 그대로 카오스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후 히틀러의 고집으로 진행된 그 어느 서부전선 장교도 찬성하지 않았던 독일군의 공세는 실패하고 미군의 코브라 작전이 성공하며 서부전선의 정예군은 팔레즈 포켓에서 소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