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은 정치적으로 대중참여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대중경제론, 외교 안보적으로는 3단계 통일 방안, 4대국 평화보장론과 같은 햇볕정책의 추진으로 김영삼에 비해 진보적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권력층 재벌 군부 등 당시 기득권층과 맞선 것이다. 1955년 "한국 노동문제의 진로" 라는 글을 쓰기도했다. 이 때문에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이 평화민주당으로 분당한 이유로 온건중도를 표방하며 김영삼과는 같은 야권후보이지만 단일화하지 않는 논리로 정책과 노선이 다르다고 하고, 소외계층의 이익을 중시하고 노동자 도시서민 농민을 중시한다고 하였다. 재야민주화세력이 지지와 관심을 주기도했다. 1980년 서울의 봄과(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때(평화민주당과 국민운동본부의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약칭민통련)마다 재야 세력 예춘호, 문익환 문동환, 이해찬, 임채정, 장영달,이문영 박영숙, 김근태, 이우정, 이태영, 한승헌, 고은, 안병무등이 관심을 기울이며 민주당계 정당의 색깔이 진보화되게 된것도 김대중대통령 덕분이다. 김대중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및 4대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 의료보험의 확충과 생산적 복지,1999년 홍석현 중앙일보회장구속 2001년 조중동 세무조사를 통한 언론개혁, 의약분업, 2000 남북정상회담 햇볕정책,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여성부 설치, 제주 4.3사건을 제주4.3사건특별법을 제정하고 국립민주묘지인 5.18 민주화운동 망월동 묘지를 2002년 국립묘지로 승격하고,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법을 만들어서 국가유공자가 되게하고, 전교조, 민주노총의 합법화 등의 정책 등을 추진하였다. 앤서니 기든스 영국석학도 김대중정부를 중도좌파로 인정하였다 야당시절 북유럽사회민주주의모델에관심을 가지셨고 퇴임후 2008년역사비평박명림교수와 인터뷰에서 미국의리버럴,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관심을가졌고 같은생각을했다고언급했다당시에도 미국과는 조지w.부시 공화당정권과 제네바협정MD정책, 햇볕정책 등으로, 1998년 일본의 오부치총리로부터 식민지시대의 사과 2001년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나 역사교과서수정문제나 남쿠릴 열도 꽁치조업문제 등으로 갈등이 있어 최상용주일대사를 소환조치하거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잠시 연기하기도 하였다. 김대중도 역사문제에선 일제시대에는 비판적이었고 독도나 영해등 영토문제는 조용한 외교를 했을 뿐이지 일본에 무조건적인 양보를 하진 않았다. 일본의 일본 우익세력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기도 했다





노무현이라는 후계자(자서전에 평민당으로출마하려고했다가 부산지역의정서를감안해 1988년총선통일민주당으로출마)를 1992년 민주당과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dj대선캠프의중역으로, 새정치국민회의부총재 해양수산부장관으로기용하고 2002년새천년민주당대선경선승리이후 대선승리로 후계정권재창출로노무현문재인 민주정권이이어가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