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      문형배




  [   ..... 이제는 대법원에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도 진출해야 할 때 .......    ]




중견·소장 판사들, 개혁 요구 봇물


각계 의견 수렴해 개혁 · 진보적 대법관을




03.01.20     황방열(hby)




문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지금까지처럼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밀실행정으로 선임할 것이 아니라, 선임이유와 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며 변호사 협회, 법학계, 언론, 시민단체, 법원 내부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개혁적인 새 시대 인물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해 '대법관 인사방식 개혁'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텄다.



법관인사도 다면평가로



이어 한기택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사시 23회)가 17일 대법원 인사개혁과 관련해 대법관 선임과정에 법원내부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법원의 내부적인 '다면평가'를 제도화시켜야 한다는 글을 법원내부 통신망 '코트넷(courtnet)에 올렸다. 



또 18일에는 문형배 부산지법 판사(사시 28회)와 이용구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사시 33회)가, 19일에는 정진경 서울지법 판사(사시 27회)와 박상훈 전주지법 정읍지원장(사시 26회)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문형배 부산지법 판사는 '사법개혁 논의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제는 대법원에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도 진출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법관 인사는 그 정치적 역할을 감안하여 지역별, 기수별, 직역별 안배가 이루어져 왔으나 이제는 성향별 안배도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며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도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과 함께 최고법원을 구성하고 법적으로 제도화된 공론을 통하여 이 사회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대법관 선임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진보성'



그는 이어 이제 변화와 개혁이 이 시대의 당면한 요구로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법조인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차제에 사법개혁에 관한 활발한 논의와 제도화를 통하여 사법부의 발전을 도모할 때라며 유감스럽게도 법원 내부에서는 그러한 논의가 활발하지 못한 것 같아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박상훈 정읍 지원장도 이번 대법관 선임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진보성'이라고 주장했다. 법률은 사회질서유지를 기본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태생적인 보수성을 갖고 있고, 이에 따라 30년 가까이 법관으로 종사한 사람들은 대개 보수적 성향을 갖게 마련이라며 그러나 16대 대선에서 개혁내지 진보를 택한 국민들의 염원을 고려할 때 보수적 성향을 띤 현재의 대법원에는 '진보적 인물'이 긴급하게 수혈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 지원장은 또 이제까지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방패막이 뒤에서 법관들이 대법관 선임에 관해 발언하는 것은 금기시 돼왔으나 왜 그래야 하느냐며 사법구 구성원 뿐 아니라 변호사회, 검찰, 언론, 시민단체 등의 의견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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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선출을 위한 위원회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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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활발하게 법원개혁의 목소리를 내온 정진경 서울 지법판사는 19일 '최근의 대법관 추천과 관련한 논의에 붙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법부 구성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비공개 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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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연령대로, 판사경력은 9∼19년차들로 평판사에서 부장판사까지 다양하다. 이제까지는 법원 외부 시민단체나 언론에서 사법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온 데 비해 지금은 법원내부에서 이에 대한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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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03669&CMPT_CD=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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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우리법연구회는 참여정부 때 전성시대를 맞는다. 노무현 정부 때 박시환 판사는 대법관으로, 강금실 판사는 법무장관으로 임명됐다.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이광범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 등 사법부 요직에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대거 발탁됐다. 이때 회원 수가 120명을 넘으며 덩치도 커졌다. 



하지만 동시에 '판사들의 정치적 사조직'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고 '법피아(법조계 마피아)' '법조계 하나회'라는 말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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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1/14/2025011400148.html







      [  .... 우리법연구회는 대법원장을 지지하고 주류의 일원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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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전 회장이 블로그에 올린 글 = 문 전 회장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우리법연구회의 다수 회원이 지지하는 대법원장이 취임하셨고, 우리 연구회 출신 변호사가 대법관에 제청됐다”며 “우리법연구회는 대법원장을 지지하고 주류의 일원으로 편입된 이상 기존 주류의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법연구회를 제안한 박시환(현 대법관) 정신, 한기택(전 대전고법 부장판사, 2005년 작고) 정신, 늘푸른 당신과 함께 앞으로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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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위원장 “우리법연구회,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념 사조직”

 [중앙일보]   2010.01.21

https://www.joongang.co.kr/article/3977663






            


[ ...... 우리 모임은 법원 내 여러 연구모임처럼 회원의 실력 향상이나 역량 증진 등 개인의 발전을 목표로 하는 모임은 아니다. …....



 ...... 법원(또는 법조계) 내 문제의식과 이상을 가진 회원이 모여 재판 과정 또는 사법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법원(법족法族)을 이상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     ]


 


한나라가 공개한 우리법연구회 2005년 논문집 보니


 


[중앙일보]


 2010.01.28


 


오재성은 “학술단체”라던 우리법연구회


박시환은 “법원 변화를 목표로 하는 단체”

 


 

“우리 모임은 법원 내 여러 연구모임처럼 회원의 실력 향상이나 역량 증진 등 개인의 발전을 목표로 하는 모임은 아니다. … 법원(또는 법조계) 내 문제의식과 이상을 가진 회원이 모여 재판 과정 또는 사법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법원(법족法族)을 이상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가 아닌가 생각한다.”(박시환 대법관, 『우리법연구회 논문집Ⅱ』 ‘무제’ 글의 일부)



법원 내부 진보 성향 법관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지낸 박시환 현 대법관이 “법원을 이상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라고 연구회의 성격을 규정한 글이다. 박 대법관이 부장판사이던 2002년 8월 연구회 홈페이지에 처음 썼다가 2005년 6월 발간한 논문집에 다시 실었다. 한나라당 사법제도개선 특위는 27일 “우리법연구회의 정치·이념성의 증거”라면서 우리법연구회 홈페이지와 논문집 등의 일부 글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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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3988418


 


 







           [    문형배  ---  노무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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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을 봤다. 법률가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물었다. 나는 대답을 못 하고 울었다." (2013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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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12479867


'김어준 저장소' 팔로우한 문형배, 과거 발언 재조명 [이슈+]

이슬기 기자     입력2025.01.24










 [  .....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 ......


노무현 대통령은 수기에서 피의자들이 변호인인 자신을 의식화시키려고 상당한 노력을 했고, 결국 자신도 그들 때문에  .......    ]




[  ..... 청와대나 정부 요직 중에서 부산인맥이라 불리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부림사건 인맥들 ......


        보복을 당한 셈이죠. 좌천 인사를  .......    ]




[  ..... 남북한 어디쪽에 정통성이 있는지는 좀 생각해 봐야겠다 .......    ]




[조선pub]   영화 변호인  엉터리다 


 부림사건 당시  수사검사  고영주 변호사




이상흔 인터넷뉴스부 기자     2014.01.12. 




12월 18일 개봉한 영화 이 누적관객 800만명을 넘어서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 영화는 1981년 일어난 속칭 ‘부림사건(釜林事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터넷 백과사전에 부림사건을 검색하면 ‘1981년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일으킨 부산 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容共)조작 사건’이라고 나온다. 다른 백과사전의 내용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백과사전에는 이 사건의 변론은 부산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김광일, 문재인 등이 무료로 변론을 맡았으며, 노무현은 이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상당 부분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김광일, 문재인 등은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경우 자신의 수기(手記)에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고 밝혔다. 그는 수기에서 피의자들은 부림사건 와중에도 노동착취 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으며, 그들에게 감명받아 그들의 관심사에 차츰 눈을 뜨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부림사건은 노 대통령을 좌경 의식화(意識化) 시켰으며, 이후 그가 정치의 길로 들어는 분기점이 되었기 때문에 친노(親盧) 세력에게 중요하고 의미있는 사건이다.



부림사건은 부산지방검찰청의 공안(公安) 검사 3명이 수사를 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이 고영주(高永宙ㆍ65ㆍ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변호사) 변호사다.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명백한 의식화 교육 사건”




지난 1월 7일 종로구의 케이씨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고 변호사는 최근 영화 을 통해 부각된 ‘부림사건’의 경우도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명백한 의식화 교육 사건”이라고 잘라 말했다.




현재 부림사건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여전히 유죄(有罪)로 남아 있는 사건이다. 2009년 부산지법 형사 항소 3부는 이 사건의 재심판결에서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사건의 핵심인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판단을 유지한 것이다. 지난 1월 9일 부산지법에서 또다시 재심 공판이 열렸고, 현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고영주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진상규명위와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에서 진짜 간첩행위를 한 사람들도 민주화 인사로 만든 판에 그들 주장대로 부림사건이 정말 고문으로 조작된 용공사건이었다면 재심에서 어떻게 유죄가 유지됐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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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부림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980년대 초 대학가에 반미 좌경(左傾) 의식화 학습을 위한 스터디 그룹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학림(學林)사건’ 즉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 사건입니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서너명 혹은 10명 정도의 인원을 조직화하여 공산주의 혁명 노선을 공부하는 의식화 모임이 많았는데 학림이 그중에 가장 큰 조직이었습니다.



이들은 전국적인 조직결성을 시도하였지만, 부림사건 관련자들은 자신들의 의식수준이 학림보다 못하지 않다며, 부산지역의 독자성을 주장하며 학림조직에의 편입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학림과 부림사건 등 이런 의식화 사건으로 뿌리내린 좌경사상이 결국 전 대학가를 점령하였고, 오늘날 종북(從北) 세력의 뿌리도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부림사건이 경찰과 검찰의 고문 수사로 조작된 것이라고 나오는데요.



“제가 부림사건을 비교적 잘 기억하는 것이 이 사건이 워낙 크기도 했지만, 수사 중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피의자였던 이XX 씨가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한테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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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한테 원시공산사회에서 고대노예제 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공산사회가 된다는 ‘설교’를 한참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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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이XX 씨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



고 변호사는 “‘나는 공산주의 세상이 오면 살고 싶지도 않지만, 만일 불가피하게 살아있게 된다면 자네들한테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느냐. 그렇지만 지금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이고, 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공안 검사이기 때문에 당신들을 조사하여 기소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수기에서 피의자들이 변호인인 자신을 의식화시키려고 상당한 노력을 했고, 결국 자신도 그들 때문에 점점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의식화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검사와 변호사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전파하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이것이 고문을 받고 겁에 질린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겠습니까 너무나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도저히 고문을 받았거나, 강압적 경찰 조사에 주눅이 든 피의자라고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림사건 인맥들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나 기타 요직에 많이 진출했습니까



“이호철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들어갔고, 당시에 문재인씨도 부림사건 변호를 맡았다는 이야기가 상식처럼 회자되었습니다. 청와대나 정부 요직 중에서 부산인맥이라 불리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부림사건 인맥들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과거 국보법 위반으로 나에게 수사를 받았던 세력들에게 보복을 당한 셈이죠. 좌천 인사를 당하면서 ‘저들이 말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저들에게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하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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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사건을 맡은 대법원은 이들 피의자가 노동경제학, 사회계급론, 현대철학의 설계 등 마르크스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서적과 기타 중국이나 북한이 사상교육을 위해 펴낸 서적을 통해 의식화 교육을 하고, 학원 데모를 모의하거나 각종 반정부 유인물을 작성해서 배포하는 등 공산국가 건설을 위한 이적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모든 증거는 적법한 방법으로 수집됐다



-당시 법정에서 피의자들이 장기 구속을 당한 상태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에 대해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피고인들의 진술이 임의성이 없는 진술이라고 볼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하였고, 증거 채증에 있어서도 위반이나 위법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즉 고문을 당했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죠. 기타 소송기록 송부가 늦어져 피고인들이 방어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그것이 심리에 지장을 받았다고 할 만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고, 원심에서 충분한 사실심리와 증거조사를 다하여 심리절차에 아무런 위법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울러 부당한 송부지연으로 충분한 심리를 다하지 못하여 위법이라는 피의자들의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제로 조사과정에서 고문이 있었다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만일 경찰에서의 진술이 고문에 의한 임의성 없는 진술이었다고 인정되면 증거능력이 없기 때문에 무죄입니다.”




-영화에는 재판 중 변론하는 변호사를 판사가 윽박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판사는 경찰이나 검찰과 한 통속인 것처럼 그려놨더군요.



“이를테면 법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검찰과 경찰, 판사까지 가세해서 사건을 조작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경찰이나 검사는 사건을 처리하는 사람들이지 무슨 공훈을 바라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사람을 고문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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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시작 전 포승줄에 묶여 있는 것을 노무현 역할을 맡은 변호사가 판사에게 항의해서 풀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재판 당시 노무현 변호인의 역할에 대해 혹시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까.



“규정상 피의자를 호송할 때는 포승줄에 묶지만 재판을 받을 때는 풀어줍니다. 변호사가 항의해서 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시 저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도 몰랐고, 그런 변호사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후에 자신이 부림사건 변호를 했다니까 그런 줄 아는 것이죠.



또 그가 당시 변호인에 포함되었다고 해도 명망이 있는 선배 변호사들이 있는데 법정에서 나서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겁니다. 시국사건 변호를 처음 한 사람이 얼마나 전문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호를 했을지도 의문이고요.”




피의자들이 한 달 간 고문을 당했다고



-영화에서 대학생(국밥집 아들)이 체포당해서 끌려간 곳이 여관(혹은 민가를 개조한 곳)이고, 이곳에서 감금된 채 한 달간 고문을 당한 것으로 나오는데요. 당시에 피의자를 외부에서 수사하는 관행이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그야말로 왜곡 조작이죠. 또 한 달간 피의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면 경찰이나 검찰청에 신고가 들어왔을 텐데 당시에 전혀 그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들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도리어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의견을 밝혔던 사람들입니다. 저한테 조사받을 때에는 고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고문 이야기는 나중에 재판받을 때 거론된 것입니다.



공안검찰의 경우 정치사범이나 공안사범을 잘못 건드리면 그야말로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소위 ‘칙사대접’해가면서 조사합니다. 그들이 정말로 경찰에서 그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했다면 그들이 하지 않았던 사실이 진술서에 나왔어야죠. 그런데 그들이 하지 않거나 없었던 이야기가 진술된 것은 전혀 없었거든요.”




검찰이 아니라, 피의자들이 방청객을 동원했다



-영화에서 가족과 일반 방청객이 법정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대신 검찰이 동원한 방청객이 방청석을 점령하여 변호하는 변호사에게 야유를 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하. 할 말이 없습니다. 실상은 정확하게 그 반대입니다. 공안사건을 십수년간 맡아봤지만, 공판 때는 항상 피의자 쪽 사람들로 꽉꽉 찼습니다. 검찰이 도대체 누구를 동원해서 방청객을 채웁니까. 막말로 공안검사는 법정에 들어가는 게 끔찍할 정도로, 법정은 언제나 저쪽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변호인 아들을 국가기관이 전화로 신변을 협박하는 장면도 있던데요.


“변호사가 그런 협박을 받고 가만있을 사람이 있나요. 특히 노무현처럼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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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법정에서 큰소리쳤다간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것



-고문을 한 경찰이 증인으로 나와 변호인에게 큰소리를 치고, 욕을 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판단은 내가 아니라 국가가 한다’고 큰소리를 치더군요.


“법정에 판사도 있고, 검사도 있고, 방청객이 있는데 경찰이 소리를 쳐요 판사가 그 장면을 보면, 저 경찰이 진짜 고문을 했다고 판단하거나, 미쳤다고 하겠죠. 그리고 법률 위반은 판사가 법에 따라 판단을 하는 것이지 어떻게 국가가 한다는 것이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재판을 어떻게 하는지 한 번도 안보고 시나리오를 썼나….”



-영화를 보면, 재판 초반에 판사가 검찰과 변호인 측을 만나서 형량을 합의하라고 권유하고, 재판 후반부에는 변호인들이 판사가 가석방을 해주는 조건으로 형량을 받아들였다는 등의 대화가 나옵니다.


“가석방은 판사가 하는 게 아니에요. 수감도중 행형 성적이 우수하면 교도소에서 법무부에 품신하는 것이지 판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죠. 법원과 경찰, 검사가 짜고 재판을 진행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그럴듯한 이야기를 해야죠.”



-영화에서는 고문 현장에 군의관이 참관해서 고문이 끝날 때마다 피의자들의 신체 상태를 살핍니다. 혹시 이런 비슷한 사건이라도 있었나요


“군의관이 왜 민간인 조사에 나옵니까 민간에도 의사가 있는데…. 그리고 고문을 한다면서 의사를 불러놓고 합니까. 무슨 소리인지….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라가 발칵 뒤집어 졌겠죠. 여기저기에서 아무 사건이나 모자이크 해서 갖다 붙인 모양이네요.”



제작진이 철저히 고증했다고··· 아무도 검찰측을 찾지 않았다



- 제작측은 영화고증을 철저하게 했다고 하는데 혹시 고증을 위해서 변호사님이나 검찰쪽에 자료 조사를 요청한 적이 있나요


“그런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부림사건이 ‘용공조작’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용공조작이라는 단어 자체도 부림사건 직후인 1982년 초에 발생한 부산 美문화원 방화사건 후에 나왔어요. 솔직히 부림사건은 조사를 끝내고도 우리가 제대로 발표를 하지 못하고 있던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김일성을 존경하고, 공산주의를 동경한다고 하면 북한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사건이 밖으로 알려지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았고, 비밀처럼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산 美문화원 방화사건이 나면서 국민의 충격이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고,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부림사건 같은 좌경의식 학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김일성이가 기뻐할 일이라 진짜 알리기 싫었지만 할 수 없이 한 겁니다.



그랬는데 전혀 예상밖으로 국민 사이에서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어떻게 공산주의를 지지한다는 말이냐. 이는 틀림없이 공안검찰이 용공조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반응이 나온 겁니다. 당시만 해도 6ㆍ25를 겪은 사람이 많았는데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공산주의를 지지하거나 동경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고 변호사는 “그러다가 1986년 쯤 되니 전 대학가가 빨갛게 되고, 이른바 ‘건국대사건’도 터지고, 노사분규도 격렬해지니까 사람들이 그제야 우리나라 대학과 노동계의 좌경화 실태에 대해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림사건이 용공조작이라면 어떻게 그 후 전 대학이 주체사상으로 붉게 물들 수 있었게냐며 오늘날 종북세력이 하늘에서 떨어졌겠냐, 땅에서 솟아났겠냐”고 반문했다.




형량이 아니라 유무죄를 다투는 사건이었다



-검찰 측이 '국가보안법은 유무죄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형량을 다투는 사건'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


“그야말로 바보 같은 소리죠. 보안법이야말로 형량보다는 유무죄(有無罪) 여부가 중요합니다. 오히려 형량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지금은 국보법 위반자가 국회의원도 되고 공직에도 진출하지만, 당시만 해도 국보법 위반 사범은 사람 취급을 못 받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국보법이 적용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현재 야당 정치인인 모 의원을 제가 당시에 국가모독죄(현재는 삭제된 형법 조항)로 구속한 적이 있는데 이분은 자기가 구속되면서도 오히려 ‘검사님이 국가보안법을 적용을 막아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습니다. 그럴 정도였는데 국보법이 유무죄가 아니라 형량 다툼이라는 건 당시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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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사건은 이번에 영화 이후에 처음으로 문제가 되었나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부림사건이 사건이 친노들의 정통성을 빛내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서 과거사진상위원회 등을 통해 무죄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을 감지하고 제가 당시 김승규 법무부 장관한테 말했습니다. ‘부림사건은 명백한 공산주의 운동이다. 부림사건을 과거사진상규명 대상 사건으로 하면 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변호한 것이 밝혀지게 되므로 대통령에게 크게 누가 될 것이다.’ 그랬더니 김 장관이 그 말을 노 대통령에게 전했나 봐요. 그래서 노 대통령 시절 이 문제를 더는 공론화하지 못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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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보시나요.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고, 친노 세력의 결집을 위한 목적이겠죠. 그런데 미국 같은 경우 아무리 비리를 저지른 경찰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더라도 나중에는 올바른 경찰이 이를 바로 잡는 등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식의 영화는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완전히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화를 만듭니다. 정말 악랄하죠.”



사법부의 좌경화도 심각한 문제



고영주 변호사는 우리나라 사법부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사법부 정상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판사의 꿈이 대법관이 되는 것인데 노무현 정부 때 공안사범에 대해 무죄를 내리지 않거나, 영장을 기각하지 않으면 대법관 자격이 없는 것처럼 인사를 했고, 그런 잘못된 관행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판결을 좌편향적으로 하는 판사라야 대법관에 임용될 수 있는 것처럼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법부의 좌편향이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대학가와 전교조의 의식화 교육이 20~30년이 넘게 진행되어 왔고, 특히 전교조의 영향을 받은 학생 중에 고시에 합격해서 지금 부장급 판사가 된 사람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좌경화 문제가 일부 젊은 판사들의 문제였는데, 점점 가면서 전 사법부로 문제가 번지고 있습니다. 최근 지방법원 부장급 판사들이 통합진보당과 전교조의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는 등 법과 상식에 벗어난 황당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걱정입니다.”




고 변호사는 2002년경 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 시절 사법시험 3차 면접시험 당시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3차 시험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건전한 상식에 어긋나는 언행을 해서 도저히 법조인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걸러내는 것인데, 1,000명 중 1~2명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을 합니다.



저는 첫번째 수험생에게 ‘한반도의 정통성이 어디에 있다고 보냐’고 물었습니다. 국가관을 물어본 거죠. 저는 당연히 ‘한반도의 정통성은 우리 대한민국에 있습니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 친구가 뜬금없이 ‘외형상은 남한에 정통성이 있다고 되어 있지만, 건국 세력이 친일파이기 때문에 남북한 어디쪽에 정통성이 있는지는 좀 생각해 봐야겠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지만, 3차에서 떨어지면 너무 아깝기 때문에 기회를 한 번 더 주기 위해 다음 질문으로 ‘주한미군 철수주장’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 하는 말이 ‘당연히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당연히 나가야 되느냐’하니, 자기들 멋대로 들어왔으니 당연히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이 남침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해봤느냐’고 물으니, ‘왜 남침을 합니까 남과 북이 사이좋게 지내야죠’라고 하는 겁니다. 골수 운동권 학생이 그런 대답을 하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평범한 학생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와서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를 반드시 떨어 뜨려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면접을 본 10명 중의 8명이 그런 식의 대답을 해서 떨어뜨리지 못하고, 그날 밤에는 ‘이 일을 어떻게 하나’ 하며 끙끙 앓은 적이 있습니다.”




-판사로 임용되고 나서는 국가관이나 역사관을 교정받을 기회가 없습니까.



“그게 사법부의 문제입니다. 그나마 검사들은 검찰 조직에 온 이상 다양한 교육과정을 통해 교정될 기회라도 있지만, 법원으로 바로 가는 판사들은 아무도 가르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판사들이 자기 소신이라고 믿고, 좌편향적인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대법관이 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계산적으로 그런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나오는 거죠. 통진당 해산 청구나 전교조 법외노조 추진 문제 등 나라가 점점 정상화되어가고 있지만, 사법부는 정상화 시킬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고영주 변호사는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시민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이지만, 만약 사법부의 결정이 대한민국의 안전과 자유민주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데까지 미치면 과연 이를 존중해 주는 것만이 능사일까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식에 어긋나는 좌 편향적 판결이 나올 경우 대법원 주변에서 일인시위 등으로 항의하고 있지만, 결국은 올바른 인사를 통해 바로 바로잡아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느끼신 점은.


“특히 지난 1년을 가장 보람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퇴직한 이후 7년이 넘도록 추진했던 통진당 해산문제와 전교조의 법외노조 문제, 현대사 왜곡 교과서 수정문제 등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정식으로 우리말을 들어주어 추진 중이잖습니까.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일을 해오다가 작년부터는 서서히 마무리가 되는 것을 보니까 보람을 느끼고, 저의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명박 정부가 사회의 종북문제나 교육계의 좌편향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쉽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도무지 정권교체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중도실용을 내걸고 종북세력도 포용한다는 명분아래, 이들을 방치해 왔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이라도 종북척결에 힘을 기울여 왔으면 지금쯤 사회가 훨씬 안정화되었을 텐데 많이 아쉽죠.”




이런 좌편향 교과서라면 역사교육 안하는 것이 낫다



-좌편향 일색의 역사 교과서를 바로 잡자고 교학사 교과서를 냈더니, 그마저 채택을 못 하게 방해받는 실정입니다.


“이런 식이면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던지 그렇게 못할 거면 차라리 국사 교육을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자유경쟁을 하자고 검정교과서 제도를 도입했는데 자유경쟁이 전혀 안 되잖아요. ”




-공안검사를 하면서 보람있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제가 대학가에서 의식화 학습이 처음 시작될 무렵에 공안검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온갖 불온 압수물과 증거물을 다 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민중민주주의’가 ‘공산주의’와 똑같은 이적이념이라는 것을 처음 밝혀냈습니다.



또한 전교조가 표방하는 ‘참교육’이 북한의 대남전략전술을 추종하는 이적이념이라는 것을 최초로 밝힌 것도 바로 접니다.



1987년 공판 과정에서 압수한 노트를 보다가 ‘ 민중혁명을 성공시키려면 초·중·고등학생을 의식화시켜야 한다. 이들을 어떻게 의식화 시키느냐. 교원노조를 결성해서 학생들을 주도적으로 의식화 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갑자기 선생님들이 전교조를 만든다고 하기에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교육부처는 전교조 문제에 손을 놓다시피 한 상태였는데, 제가 쓴 라는 글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전교조 가입자가 90% 이상 탈퇴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전교조가 교학사 교과서 사용을 극력 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전교조가 내세운 참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민중민주주의 혁명역량을 키워주기 위한 교육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학생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대한민국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도록 교육을 받으면 민중혁명의식이 고양될 수 없지요. 그러면 전교조의 존립의미가 없어지니까 제대로 된 교과서 채택을 기를 쓰고 막는 것입니다.”




고영주 변호사는 1980년대 초 대학가의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의 산하 조직인 삼민투(三民鬪)를 이적(利敵) 단체로 기소했고, 한총련도 이적단체로 규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대표적인 공안검사 출신인 고영주 변호사는 2006년 1월 서울 남부지검 검사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자 기존의 공안 검사들을 공안조직에서 배제하고, 이른바 신(新)공안으로 물갈이를 했다. 고 변호사는 김대중 정부 초기에 속칭 '검찰 내 거대상 10걸'로 분류되었고 노무현 정부 들어서서는 유일한 청와대 비토(Veto) 대상 검사였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나를 내보내려고 개인비리나 인권침해 조사 사례를 샅샅이 뒤졌지만, 나오는 게 없으니까 아내지는 못했지만 결국 인사상 불이익으로 공직을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영전을 해야 할 차례에 광주고검 차장에서 대구고검 차장으로 좌천 발령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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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위원회 등이 간첩들을 민주화 인사로 둔갑시키면서 과거 공안 수사기관에 있었던 사람들을 반민주인사로 몰아가는 것을 보고 심한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공안수사관들은 자부심과 사명감 하나로 평생 국가를 위해 어려운 공안업무를 수행 온 전문가들인데, 지난 시절 이들이 이루었던 명예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종북척결과 국가정상화 운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1/12/2014011200637.html










             2003.5.    노무현



[ ..... 농부는 김매기 때가 되면  밭에서 잡초를 뽑아 냅니다. ........     ]



 2003.05.09  


 노 대통령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 



httpwww.hani.co.krsection-003000000200305003000000200305090924001.html








[ ..... 동무들 !   이제 우리들 세상이 왔습니다. ........


 ...... 연대해 새세상을 만듭시다 ........     ]



[광화문] 청와대 386의 미숙



이백규의氣UP 머니투데이 이백규 부장  


200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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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들! 이제 우리들 세상이 왔습니다. 힘을 합합시다. 연대해 새세상을 만듭시다 



이런 e메일이 나돌았다. 발신자는 현직 청와대 고위 공무원이다. 이른바 386 핵심이다. 



이 메일을 접하곤 우선은 부끄러웠다. 중학생 초등생 두애를 둔 가장으로서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젊을적 꿈을 잊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보너스에 웃고 과외비에 벌벌 떠는 소시민으로 전락한 내가 미웠다. 더구나 언론인은 공인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부끄러움은 잠깐이고 동무라니, 우리들 세상이라니.우리는 누구이고 새세상은 무엇인가. 우리들끼리만 어떻게 새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혹시 그들은 기존의 것들, 재벌과 관료와 언론, 그리고 이 체제를 앙시앵레짐으로 보고 허물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나. 그건 혁명이기 전에 일종의 왕자병인데. 정치권력을 쥐었다고 어찌 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청와대 복도에서 마주치는 정부 부처 관료들을 우습게 보고 거들떠 보지도 않고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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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그러나 비주류들의 돌발적 치기로 치부하기엔 그들 자리는 너무나 막강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청와대 386 공무원들은 일반 국민 정서의 정규분포에서 벗어났고 386은 물론 운동권의 평균값에서도 멀어져 갔다. 




더구나 그들은 이제 운동가도, 정치인도 아닌 공무원 신분였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법과 제도를 수행하는 이른바 공복이고 그래서 노조도 정치활동도 금지돼있을 것이다. 정치를 하려면 청와대를 떠나던지. 




혹 공산주의자라면 어떤가. 공산주의의 수장 등소평은 ´흑묘백묘´로 중국을 개혁했고 고르비도 페레스트로이가를 주창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김정일도 신의주 특구 시장에 외국인을 임명하지 않았던가. 뭘 어떻게 추구하는가가 문제겠지. 



청와대 386들은 우리 국민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걸 할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왜 청와대에 와 있는지, 혹 멸사봉공이 아니라 멸공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 봐야 한다.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퇴물 공산주의자들보다도 못한 사람들로 역사에 기록돼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httpnews.mt.co.krmtview.phpno=2003072717394030865&vgb=column&code=column132








             2003.8.     이인영




[  ...... 내년 총선은  56년간 의회 권력을 장악해 온  수구 기득권 세력과   개혁 세력이 겨루는   최후의 결전 ........     ]



[ ...... 10년 안에는  한국 사회의 주류 교체·세대 교체가 완결될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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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386이 일시적으로는 비난을 받았겠지만 앞으로 10년 안에는 한국 사회의 주류 교체·세대 교체가 완결될 것이라고 이인영씨(민주당 구로 갑 지구당위원장)는 자신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총선은 56년간 의회 권력을 장악해 온 수구 기득권 세력과 개혁 세력이 겨루는 최후의 결전이 되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나서면 세상이 바뀐다’며 떼로 나서겠다고 선언한 이 ‘전대협의 아이들’ 때문에 기성 정치권은 이래저래 애 좀 먹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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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2969


'전대협의 밤'에 터져나온 386의 고민  

‘전대협의 밤’ 현장 중계신랄한 자아 비판 속 “10년내 주류·세대 교체” 자신  

 [723호] 2003년 08월 26일 









     [   문형배  ---  김제동   ]



문형배 @favor55  Jul21, 2010


Replying to @pmi.....


 @pmi..... 트위트 초보라면 당연히  이외수선생(oisoo), 김제동 선생(keumkangkyung)을 팔로잉 하셔야죠.




            *


윤도현·김제동,  스승 신영복 교수  추모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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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신 교수의 제자인 MC 김제동도 별세 당일인 15일 페이스북에 여럿이 함께. 처음처럼.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란 분별이 없어져야 함을 따뜻한 눈빛으로 늘 알려주셨던이라고 썼다.  



 맞담배를 늘 권하시며 아래에서 위를 알려주셨던 고마운 우리 선생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우리의 몫으로 남겨두시고 가신 분. 자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자로. 울 선생님의 가시는 길에 글 놓습니다. 따뜻하시기를. 평안하시기를라고 애도했다.



 김제동은 17일 신 교수를 위한 '추모의 밤'과 18일 영결식 사회도 맡는다.  



 윤도현과 김제동은 2003년과 2009년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하면서 신 교수와 인연을 맺었다.



https://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117_0013842071









문형배  @favor55   15년 02월 22일



다이빙벨을 올레 tv로 봤다.  진실은 무엇일까?








           [    문형배  ---   신영복    ]



문형배  @favor55   2016년 1월 16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담론까지  신영복 교수 책은 거의 읽은 것 같은데  돌아가셨구나!   변화와 창조는 변방에서 일어난다.  단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그분 말씀에 공감했다.  영면하시기를 빈다.







 [  .....  신영복 선생은 말하였습니다.  '만남은 바깥에서 이루어집니다. .......    ]



우리법연구회 현직 판사 129명의 분석



조갑제닷컴

201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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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법연구회 회장인 문형배 판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이런 주장을 하였다.




우리법연구회의 정체성이 진보냐, 개혁이냐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중략). 힘 없고 돈 없는 다수의 국민이 억울함을 호소하여 법원에 일정한 역할을 기대하는 한, 누군가가 이에 답변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3%의 소금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법연구회 회원수도 전체 법관의 3%가 넘습니다. 우리법연구회가 사법부의 소금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요 (중략). 신영복 선생()은 말하였습니다. '만남은 바깥에서 이루어집니다. 각자의 성을 열고 바깥으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진정한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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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씨는 1968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8년 석방됐던 인물이다. 통혁당은 중앙당(中央黨)인 조선로동당의 지시를 받는 지하당(地下黨)이었다. 주범 김종태·김질락·이문규는 월북(越北)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당원(黨員) 이진영·오병헌은 68년 4월22일 월북해 교육을 받던 중 68년 6월 말 통혁당 사건이 터지자 북한에 머물렀다.

김종태는 4차례에 걸쳐 북한을 왕래하면서 김일성을 면담하고 美貨 7만 달러, 韓貨 3천만 원, 日貨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고 A-3지령만 167회를 수신했다. 그는 민중봉기, 간첩의 무장집단 유격투쟁을 통한 수도권장악, 북한으로부터 무기수령을 위한 양륙(揚陸)거점 정찰, 특수요원 포섭, 월북 등 14개 항목의 공작임무를 띄고 있었다. 신영복 씨는 석방된 후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해오다 2006년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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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월17일 申씨는 연세대에서 민노당 당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자본축적은 근본적 모순체제』라고 비판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며 이렇게 결론짓는다.



《자본주의 체제, 종속적 자본주의, 천민적 자본주의가 우리나라에 언제까지 갈 것인가 나도 몰라. 그러나 논리적 이론적 사고를 한다면 「非인간적 근본적 모순구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자본 축척은 근본적 모순체제다. 和(화)의 철학을 기초해서 만들어 가야한다. 억압적 구조에서 취약역량을 가지고 희망을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다. 힘들어도 샛길은 없다. 사회를 바꾸어 내자. 정말 황폐화된 인간관계 삶의 일부로서 실천해야한다. 운동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행할 때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할 것이다》




申씨는 2003년 10월 송두율이 입국하자,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성명(2003. 10. 23)」, 「송두율 교수의 무죄 석방을 촉구하는 사회 원로·인사 성명(2004. 3. 11)」 및 「송두율석방대책위」고문 등으로 참여하며 소위 송두율 석방투쟁의 전면에 섰었다.



그는「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교수 1000인 성명(2004. 10.27)」「6.15공동선언, 10.4선언 이행 및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각계 인사 공동선언(2008. 6. 14)」등에 참여해 국보법폐지와 6.15 및 10.4선언 이행 촉구에도 앞장서왔다.



https://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30962&C_CC=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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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22.    한겨레  ---  "혁명적 인간"  신영복




[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혁명적 인간의 글모음”이었다. .........


 ...... 이제 그가 남겨놓은 ‘희망의 원리’를 진보의 도구로 벼리는 일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 ........     ]




[ .....  그의 반자본주의적인 입장은 여전히 또렷했다. .......    ]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



    2016-01-22 




[토요판] 커버스토리  신영복의 학문 궤적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 논리는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전개 과정이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자본축적 과정의 전형적 형태입니다.”(신영복, 강의)



동양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시서화에 능한 인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신영복은 본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규명하는 정치경제학자였다. 그는 대학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자본주의 분석에 있어서 가장 체계적인 이론으로, 가장 정합적인 실천과학’으로 받아들이며 정치경제학을 자기 학문의 밑절미로 삼은 ‘붉은 경제학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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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여긴 박정희 군사정권 치하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내면화한 제3세계의 급진적 지식인이 설 곳은 많지 않았다.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숙명여대에서 후진국개발론을 강의하며 학생운동 서클 간부로 활동하던 신영복은 남한사회 반체제운동의 주류로 자리잡아온 엔엘(NL·민족해방주의) 노선에 기초한 혁명조직인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20년 20일 동안 영어의 몸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그 잔인한 세월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그를 인문학적 사상가로 거듭나게 한 시간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감옥은 그에게 또다른 ‘학교’였다.




고전·서예 능통한 인문학자 신영복

원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변화 도구로 인문학 일깨운 징역

낮은 데서 깨친 인간에 대한 이해

정치경제학에 인문학 더한 ‘관계론’

관념화·교양화 등 비판 나오기도

“외연 확대 중요하다”던 그의 담론

진보의 도구로 만드는 건 우리의 몫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1988년 가석방될 때까지 그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동양고전이라는 숫돌에 자신의 칼이었던 정치경제학을 벼리고 또 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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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서늘한 각성의 정수를 모아놓은 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사색)이었다. 사색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그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혁명적 인간의 글모음”이었다. “이 사실을 놓치면, 그것은 이 책을 한낱 지당한 ‘공자님 말씀’들로 이루어진 인생론집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된다”는 지적(김명인)은 그래서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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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전을 통한 인간 사랑이 그를 초월적인 달관의 경지로 이끌진 못했다. 2004년 주역에서 법가까지 자신의 동양고전에 대한 해석을 담은 강의를 펴내며 근대의 존재론적 인식을 넘은 관계론적 철학을 이야기할 때도 그의 반자본주의적인 입장은 여전히 또렷했다.



고전을 알기 쉽게 소개시켜주는 지혜로운 인문주의자나 소주병에 글씨를 쓴 탁월한 서예가로만 신영복을 기억할 수는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에게 인문학은 정치경제학 인식을 실천으로 매개할 하나의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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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가 남겨놓은 ‘희망의 원리’를 진보의 도구로 벼리는 일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 되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727533.html








[김순덕 칼럼]   더불어민주당,  혁신하려면  신영복의 ‘더불어’부터  떼라


 


김순덕 대기자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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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1월 신영복 1주기 때 민주당 전 대표로서 참석해 “선생님은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 당명을 주려고 하셨다”며 손혜원과 함께 ‘더불어숲’에서 당명을 정했다고 추도사에서 고백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날 “당명 공모 때 ‘더불어민주당’ 제안자는 공존과 연대를 강조한 선생의 ‘더불어숲’ 정신을 본받자는 취지라고 밝혔다”고 트위터에 적었던 것도 거짓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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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대통령은 2018년 2월 강원 평창 겨울올림픽 때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을 앞에 놓고 “제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 신영복 선생”이라는 말을 했다. 물론 신영복은 전향서를 썼고 1988년 가석방됐으나 통혁당에 가입한 적도 없다고 2006년 거짓말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신영복은 통혁당 최고책임자 김종태(사형 뒤 북에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의 조카 김질락으로부터 지도받았다”고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2010년 증언한 바 있다.


 


겉으론 민주화운동을 내세우면서 실은 인민혁명을 꾀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정했던 신영복을 86그룹과 문 정권은 ‘선생님’이라며, 사상가라며 받들어 모셨다. 이런 사실까지 알고 나면 국민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그 이름을 다신 아무렇지도 않게 부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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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30621/119881281/1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의  SNS ‘말‧말‧말’


온라인상에서  '김어준 저장소‘  '이재명' 팔로우  의혹 제기돼




글 고기정  기자 yamkoki@chosun.com




국민의힘이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을 향해 공정성 우려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과거 문 대행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올렸던 글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24일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문 대행은 이재명, 정성호 의원과 사법연수원 동기이고,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이 꼽은 몇 안 되는 가까운 법조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