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는 있나???


고고학자로서,  사회적 책임과 역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자문 해 보길 바란다.


한민족의 유적으로 알려진 홍산문명의 우허랑 유적과  프랑스 saint 미쉘 봉분의  부장품 유물이 유사한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15610aa012fb27ebeee9be758db343a895157bd05bd2fdab78635


a05b10ac3d02b5539234134d58db343a4f67f98756f759defbc01184



토기의 역사ㅣ빗살무늬토기는 햇살무늬토기다ㅣ토기한류

꼬인역사를 시원하게 풀어주는 대한사람 역사토크

youtu.be



https://youtu.be/TBzDd_w53b4?si=mfeMoFbo4AdPmqU6&t=69



BC 6000년 추정, 유럽의 신석기 문화는 아나톨리아인의 (?) 유입으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들의 민족 정체성에 대하여 알려진것이 없다. (?)

  국내 주류 역사학자, 고고학자   .. 일본의  식민 사관 추종,   한국 고대사 연구를 소홀히 한  방증 아닐까? 


a14110ad1a0fb45b96805c64c65dc0c0d641572b3d63384f4fe0e8a6f8cd51da1ab218b51dc2401f44b766dba3d525e69d

(좌 프랑스 Saint michel tumlus (세인트 미첼 봉분) )BC 4000년 추정/ (우)BC 3500년 ~ 3000년 추정, 우하량 유적




3ebcd928f1ed35af6db7d3b929c5313000a1680972da6f59e08ef9018f932e04746dd6b1ff581f30a0e3446e813dc31e75

프랑스 Saint michel tumlus (세인트 미첼 봉분) )BC 4000년 추정



고구려 시대, 한국의 무덤 양식과 동일형태 아닌가?




고구려의 무덤은 초기 돌을 쌓아 올린 적석묘(돌무지무덤)에서 후기 흙으로 덮은 굴식 돌방무덤(석실봉토묘)으로 변화했습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장군총(초기), 안악 3호분(후기)이 있으며, 후기에는 내부 널방 벽면에 생활 풍습이나 사신도를 그린 벽화가 특징입니다. 
1. 초기: 적석묘(돌무지무덤) (3세기 이전~4세기) 
  • 특징: 다듬지 않은 강돌이나 다듬은 돌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층층이 쌓아 올린 형태.
  • 구조: 땅 위에 돌로 널방(석실)을 만들고, 그 주변과 위를 돌로 쌓아 올려 묘실을 보호.
  • 대표 예시: 집안 장군총(정교한 계단식), 태왕릉. 

  • 특징: 돌로 널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봉분을 형성.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어 여러 번 매장 가능.
  • 벽화: 널방 벽에 회를 바르고 생활 풍습, 도깨비, 사신도(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을 그림.
  • 구조: 널길(연도), 앞방(전실), 널방(주실)으로 구성되어 무덤이 도굴되기 쉬웠음.
  • 대표 예시: 안악 3호분, 강서대묘, 쌍영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