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병역기피자나 병역면제자들이 전쟁을 쉽게 벌임.


애라이 C8 색캬.



아국 대통령 입후보 자격에


(여성 빼고)


병역 기피자와 면제자는 아예 후보등록 박탈해라.


아이젠하워의 집권기인 1950년대는 존 F. 케네디 암살과 베트남 전쟁오일쇼크워터게이트 등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기 직전, 미국의 황금기를 상징하며, 시기적으로도 전쟁이 끝나고 전후 시대를 맞아 미국 역사상 최고의 호황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젠하워 시기 미국은 경제 성장률 4%대를 유지하였고, 제조업 기반의 강력한 중산층이 형성되어 완전 고용이 실현되는 등 경제적 번영이 광범위한 계층에 비교적 평등하게 분배되었다.[15][16] 덕분에 지금도 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 순위에서 10위 안팎의 상위권에 오르내리며, 공화당에서 자당 정치사의 주요 아이콘으로 내세우는 대통령 중 한 명이 되었다.




[15] 동시에 미국의 GDP는 세계 전체의 40%에 육박했고 1인당 GDP 역시 세계 1위 수준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중반기와 빌 클린턴 시기 미국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이며, 특히 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기의 호황은 닷컴 버블로 인한 거품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16]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0여 년만에 세계 대공황이 터진 것처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공황을 기대한 이오시프 스탈린의 바람과는 반대였다. 다만, 집권 말기에는 일시적인 경기 불황에 시달렸는데 이는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존 F. 케네디의 당선 요인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공화당 후보였던 리처드 닉슨은 말이 패배였지 표차가 고작 0.17%p였고, 이조차 TV 토론회에서의 악재와 아이젠하워의 지지선언만 있었다면 닉슨이 이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전쟁 사변을 제일 싫어하는 게 실은 군인 경찰이다.


자기들이 제일 먼저 죽거든. OK?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당시 전두환에게 한 평가를 보면 극단적인 평화주의 성향으로 보인다. 한홍구 교수는 아웅산 테러 사건 당시 전두환의 행동을 이렇게 평가했다.

(북한의 아웅산 테러 이후)
해설:
전두환 대통령은 버마에서 귀국하자마자 전방부대로 향합니다. 그리고 보복이라는 독단적인 행동을 할 경우 반역행위로 간주하겠다는 강경한 뜻을 군에 전달합니다. 그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한홍구:
"전쟁을 했을 때 피해가 두려웠던 거겠죠. 전두환은 군인입니다. 사실 지금 현재 제일 두려운 거는 민간에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깐 실제 전쟁이 일어났을 때……저도 겁 없이 여러가지 활동을 했지만 제가 평화운동을 하면서 제일 두려웠던 순간은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 가서 전쟁이 무섭지 않다고 할 때 그리고 군대를 가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청와대 지하 벙커에 모여갖고 전쟁을 논의하고 있을 때. 저는 민주진영이기 때문에 전두환을 그렇게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전두환이 집권 기간 동안 가장 잘한 일이 아웅산 사태를 평화적인 무드로 갖고갔고 더 이상 확산시키지 않은 부분은……지나놓고 보면은 그래도 전두환 정권에 점수를 줘야할 대목입니다.」
KBS 다큐멘터리 "아웅산 테러 그리고 2013" 中

당시 아웅산 묘소 테러는 국제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으며[8] 당시 공산주의에 대한 강경자세를 보이던 레이건 대통령이 북한 폭격을 검토하고 주한미군을 증파했고 김일성은 아웅산 테러를 실시한 김정일을 비판하며제 아들 간수도 못하는 놈이 무슨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중국과 소련에게 중재를 해달라며 필사적으로 매달렸지만 소련은 한국과 미국의 제한적 공습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주소련 미국대사관에 전달하였고, 진짜로 북한이 지도에서 지워질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중국만이 김일성의 요청을 받아들여 미국에게 공습 반대의견을 전달하였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군사력은 냉전의 한 축이었던 미국에게 비할 바 없었기에 김일성의 불안감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는데, 전두환은 그 시점에서 전방 사단을 일일이 돌면서 "내 명령 없이 움직이면 반역자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군 장성들을 모아 같은 취지로 발언하면서 진정시켰다.[9] 그런 점에서, 실제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국민감정이 외교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21세기 한국이었다면 진짜로 휴전협정 파기와 북한 진격까지 갈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제5공화국 정부가 북침을 하지 않았으니 북한으로서는 고마웠음은 틀림없지만, 그 시점에서 한반도 내에서의 남북간 전면전으로 퍼지는 것을 막고 대신 외교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키자는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한홍구의 말마따나 북한은 급한 불을 피한 대신 국제사회로부터 막장 국가로 낙인이 찍히다시피 했고 결국 2020년 현재 중국 및 일부 친북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국제적으로 거의 고립된 상태에 놓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한홍구의 저 발언도 군사적인 충돌도 일어날 수 있었던(그리고 그것이 누가 봐도 당연해 보였던) 급박한 상황에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 대신 끝까지 외교적인 대응 방법을 모색했던 전두환 정부의 선택에 점수를 주면서 더불어 민간에서는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기 위한 취지이기도 하다. 군사독재정권의 수괴이고 그 자신이 군인인 전두환도 전쟁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저렇게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애썼는데 정작 민주정부의 수장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전쟁이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있냐는 뉘앙스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강경한 군사 행동에 반대하는 경우 한국에서는 극우들에 의해 종북으로 몰리곤 하지만, 전쟁을 피하고 다른 해결책을 모의하자는 발상이나 주장이 무조건적으로 종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극우들의 주장처럼 한홍구를 '종북'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며, 극단적인 평화론자로 보면서 그에 대한 비판을 행해야 할 것이다. 











  •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 시절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당시 컬럼비아 대학은 잔디밭을 돌아서 들어가야 했는데 그것이 귀찮은 학생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면서 잔디가 훼손되자, 학교측에서는 잔디밭 출입금지 문구를 박아놓고 심지어 철조망까지 둘러쳤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잔디밭 가로지르기는 계속되었는데, 이를 본 아이젠하워 총장이 "이 철조망은 뭡니까?"하고 묻자, 관리인은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학생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아이젠하워 총장은 "그곳에 길을 내도록 하세요. 모두가 다니면 그곳이 길입니다." 라고 지시했다고 한다.[40]


    [40] 이 일화는 도널드 트럼프가 을 세우면서 다시 회자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