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동권 출신
베트남 국민당 반동들을 청산하는 일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우리는 그들 손에 있던 모든 지역들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1946년 베트남 공산당의 반우파 숙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공산당은 1946년까지 프랑스와 여러 차례 협력하면서 비공산주의 내셔널리스트 독립운동가들을 프랑스한테 인계하고 돈을 받는 행위를 많이 저질렀다는 주장이 있는데+ 보응우옌잡은 2차대전 종전 후 중국에서의 망명을 끝내고 하노이로 돌아온 베트남 화교 출신 국민당의 숙청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행보들은 보수파 인사들을 제거하고 북베트남에서 공산당이 혁명에 성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레주언은 이런 행동들을 '우리의 힘을 모으고 프랑스의 침략행위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는데 내부의 적을 외부의 적에게 보내 소멸시키는 일종의 마키아벨리즘적인 이이제이 전략이라는 뜻이다.[11] PBS 다큐멘터리 시리즈 <베트남 전쟁>에 따르면 프랑스-베트남 전쟁 이전 베트민 통제 영역에 있는 트로츠키주의자, 프랑스 협력자, 반공 민족주의자 등의 반대파 대량 숙청에 앞장선 것도 이 사람이다. 주된 처형 방식은 생매장이었고 고문과 파괴도 서슴치 않았는데 정도가 상당히 심해서 별명이 파괴적 분파주의자 일 정도였다.
[11] 으레 공산국가들의 초창기 역사를 보면 외세와 싸우는 동시에 경쟁자들을 숙청하거나 제거하는 일을 동시에 행한 사례가 많은데 중국공산당 역시 중일전쟁 시절에 말로는 중국국민당과 연대하며 항일전쟁을 이어간다면서 마오쩌둥은 "중일의 싸움은 본당 발전의 절호의 기회이며 우리 공산당의 기본정책은 전력의 70%를 자기 세력 확대에, 20%를 반장(反蔣, 反장제스)에, 나머지 10% 항일에 사용한다."는 말을 남겼다. 결국 이들의 갈등은 환남사변으로 번졌고 훗날 중일전쟁에서 대부분의 군사력을 소진한 국민당은 일본과의 종전 후 국공내전때 공산당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맞이했다. 공산당 입장에서는 아주 현명한 전략을 짠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명분상으로도 잘못된 것은 없다. 공산당 입장에서는 일제나 국민당이나 똑같은 적이기 때문이다. 또 예시로 언급된 신사군 사건만 하더라도 국민당군과 일본군이 협공해서 중국공산당 병력을 괴멸시켰다. 게다가 공산당만 그런 것도 아닌 것이,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악질 독재자, 이슬람 근본주의자, 범죄자들과 거래하는 것을 넘어서 협력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으며 한국 역시 적대적 공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크메르 루즈 바더 마인호프 적군파는
공동의 적, 윤석열 전광훈이 제거되면,
자기 파벌내 사람 마구 학살함.
ㅌㄷ 빨갱이. 타도.
ㄴ독일 적군파 바더 마인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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