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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年以上にわたり韓国の不法占拠が続く日本固有の領土「竹島」。その領有権を巡る韓国側の主張が覆る可能性のある新たな史料が発見された。19世紀末の大韓帝国高官による日誌に、ウルルン島(鬱陵島)を「松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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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재팬 기사입
크롬에서 한국어번역하면 내용나옴 .
규슈대학·한국연구센터의 나가시마 히로키 교수가 발견한 것은 19세기 말 대한제국 고위관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파견되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을 기록한 일지다. 이 사료는 한국의 서울대학이 소장해, 웹상에서 공개되고 있는 것을 나가시마 교수가 분석해 발견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러시아에서 한국·부산으로 돌아오는 항해 도중 기록이다. "동쪽에 일본의 섬, '마츠시마'가 보이고, 서쪽에 한국의 산이 보인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즉 당시 한국 정부 고관이 현재 울릉도(울릉도)를 일본 측의 호칭인 ‘마츠시마’라고 부르며 ‘일본령’으로 인식하고 있던 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나가시마 히로키 교수는 이번 발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동쪽에 보이는 산, 어쩐지 섬이지만, 그것은 이름이 '마츠시마'라는 바람에, 게다가 이것은 일본 섬이라고 써 버리고 있다. '울릉도'도 잘 모르는데, 이른바 '독도(한국 측의 다케시마의 호칭)'을 알고 있는 게 없다"
나가시마 교수는, 이 일지에 대해 「당시, 한국 정부의 고관이라도 울릉도(울릉도)나 그 앞바다에 있는 다케시마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분석. 한국 측이 다케시마의 영유권을 주장할 때의 역사적 근거에 중대한 의문을 던지는 내용이 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측 다케시마의 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나가시마 교수는 앞으로 더욱 자세한 조사를 진행할 것을 밝히고 있다. 한국 측의 과거 ‘울룬도(울릉도)’와 ‘다케시마’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료로는 그 밖에도 1898년 해난사고 때 대한제국이 러시아와 하는 외교문서 속에서 울룬섬(울릉도)을 ‘일본의 송도’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을 일본측의 다케시마에 관한 수많은 역사적 자료에 의해, 일본의 영유권의 근거가 확립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측의 사료에 의해서도 「옛부터 타케시마를 한국령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라고 하는 주장은, 근저로부터 덮고 있다.
그 시대는 아르고나, 다쥬레트 동해섬 명칭 대혼란기가 원인인데 발단은 필립 폰 지볼트 (네델란드 내과의, 식물학자)가 동인도회사 배를 타고 동방을 연구하던 차 규슈의 나가사키에 있던 유대교도 교역특구 '데지마'에서 살았는데 현지여성과 살림도 하면서 여자에도 낳았음. (그 애가 은하철도999 메텔의 모델) 토쿄로 여행허가 받아 가는 길에 소지품에서 [일본전도]가 발견되어 즉시 추방되는데 1829년. 본국 네델란드에 도착하니 1830년.
1839년 아편전쟁 발발하니 유럽이 동방의 지도,해도에 관심 폭발하고 출판사에서 동방에 관한 지식인을 찾았고 저 지볼트 의사가 ... 사고를 쳤는데 동해섬이 2개 보이자 왼쪽을 죽도(다케시마), 오른쪽을 송도(마츠시마)로 붙여 줬으며 로컬명이라 현지인과 대화때 써라 했거던. 그런데 이게 큰 화근이 되는데 ... 저 왼쪽섬이 실제하는 섬이 아니고 유령섬였어. 그 사연은.
미국인 선장이 영국국적 '아르고나'호를 타고 영화 레버넌트에 나오는 사슴가죽을 잔뜩 싣고 샌프란시스코 항을 떠나 아시아로 가서 토쿄에 갔는데 일본은 가톨릭 쇄국정책이지만 개신교도 예수 믿으니 않된다. 유대교는 예수를 경멸하니 OK지만 예수쟁이는 절대 않된다면서 입항금지 했으니 ... 아르고나호는 열도 각 항구를 차례 차례 똑똑 노크하면서 크게 좌회전하면서 노토반도 니가타 (북한으로가는 만경봉호 출항지)까지 갔지만 입항거절 당하지 다 포기하고 청나라 텐진항을 갈려구 동해를 가로질러 가다가 부산이 보이자 북상을 하는데 ... 텐진항을 가는 걸로 오인한 셈. (풍랑이 심해 '타'가 부려져 잃었다로 항해일지에 적혀있고) 큰 섬을 발견해서 '아르고나'라고 이름 붙여 국제해사 기구에 등록까지 함.
유럽의 동해지도에 섬이 2개 되는데 앞전에 등록된 다쥬레트(프랑스 측랑선이 울릉도를 발견한것) 또 등록된 아르고나(울릉도를 엉뚱한 좌표로 기록한 오측임) 유럽은 아직 독도를 발견못했는데 1859년에 프랑스 포경선이 드디어 발견하고 리앙코락스 (135개 크고작은 바위군집의 암초무리).
1840년 지볼트가 로컬명을 붙인 다케시마(가짜 울릉도), 마츠시마(진짜 울릉도)의 동해지도는 1839년 아편전쟁 기간에 엄청나게 팔려나갔음. 1868년 일본이 명치유신하고 서양을 COPY해야 겠다며 [탈아입구]를 실천하여 군대를 근대화 하는데 저 아르고나,다쥬레트의 다케시마, 마츠시마까지 일본지도에 Overwite 해버림.
2차 아편전쟁이 모두 끝난게 1861년인데 아편전쟁 말기에 프랑스 포경선이 동해에서 리앙코락스를 발견한거지 ㅋㅋ 1859년. 병신 일본은 영국하고만 친하니까 유령섬으로 판명난 아르고나는 점선으로 표시된 채 여전히 죽도(다케시마)였는데 이게 러일전 앞두고 동해를 측량하던 일본 해군에 의해서) 리앙코 락스에 옮겨옴 1904년. 일본 어부들은 '랑코도 얀코도'라 독도를 불렀음. 1953년까지 그랬음. (즉 해군의 지도에만 독도가 다케시마 였음)
지도를 구입하면 평생을 쓰는데 유렵의 지도에서 유령섬 아르고나가 사라진 새 지도가 나온다고 해서 ... 그것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하는 게 아니잔아. 조선조정이나, 일본정부나 1900년대 와서도 올릉도를 마츠시마로 불렀고 그것은 유럽이 부르는 글로벌스탠다드 였는데 비변사 안용복 기록에는 "왜인의 송도는 우산도다"로 적혀 있으니 ... 황당하기 그지없고 ... 조선조정은 혼란에 쌓이지. 울릉도를 죽도라 부르는 왜인들이 이제와서 송도라고 부르다니 ... 간약하구나
1882년 이규원 검찰사는 고종의 명을 받아 불법체류자 드걸드걸한 울릉도에 가서 그들이 울릉도를 마츠시마(송도)라고 부른게 1870년에 왜인이 울릉도로 불법으로 와서 팻말을 꽂아 놓고 갔다라는 것을 조선왕조실록에 적었음.
결론 동해섬의 명칭대혼란 시기 1840~1904 기간에 나타나는 각국 외교 문서, 항행 기록, 등의 섬이름에 대해서 완전히 무시 해도 됨.
추가정보 독도갤러리 가서 검색어 '아르고나' 치면 ... 어마어마한 글이 나오니 틈틈이 읽기 바람.
독도 조사/연구는 아르고나를 파악하면 ... 전반전이 끝난 셈이고 진짜인 후반전은 1905년 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