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현지시간) 새벽 노르웨이 오슬로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폭발이 발생했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노르웨이 경찰이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께 미국 대사관이 있는 오슬로 서부 대사관 단지 인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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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키프러스에 있는 영국 공군기지가 공격받은 사실을 언급하며 키프러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고 프랑스가 최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국가라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중동전쟁 격화에 대응해 핵추진 항공모함을 발트해에서 지중해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프랑스 TV로 방영한 사전 녹화 연설에서 핵추진 항모 샤를드골함을 지중해로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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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한참 뒤의 얘기에다가 이라크군의 얘기였지만 이라크전 이후 신생 이라크군을 훈련시키러 온 체코군이 이라크 기갑사단을 교육 시키러 왔지만 그 이라크 병사들은 자신들을 이란과의 전쟁에서부터 싸워온 베테랑들이라 훈련시킬 필요가 없다고 훈련을 거부했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체코군이 그들의 상태를 확인했더니 자신들이 타고 있던 T-72 전차의 영점조차 제대로 다룰줄 몰랐었고 체코 교관들이 몇번만에 전차의 영점을 맞추고 제대로 사격하자 그들의 태도가 곧바로 바뀌어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이라크군의 훈련도가 이란보다 높았고 실제 전투에서도 실적을 잘내었던 게 이라크군이였단 걸 생각해보면 이란군의 당시 훈련 상태를 대충 엿볼수 있다. 사격통제장치도 컨트롤 못해 감으로 포를 쏴서 맞추는 다른 의미로 뛰어난 병사들이란 걸 생각해보면 이란군은 어쩌면 전차의 고성능 화기관제 시스템을 건드리지 못해 차라리 눈으로 보고 사용할수 있는 목측식 영점 조준 방식을 가진 T-55가 더 쉬웠을 것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최초로 실전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란군이 운용한 치프틴이 이라크군의 T-62에게 참패 당하고 Mi-24에 쫒기기만 하다 결국 전쟁 후반부에 이란군에 T-72가 등장하면서 전장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오히려 이란쪽은 노획한 T-55을 선호했다.[35][36]
치프틴이 패배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전투는 1981년 1월 실시된 이란군의 공세 '나스르 작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의 이란군과 잘 훈련된 이라크군이 맞붙으면서 생긴 일이었다. 당시 이란군의 상황은 독소전쟁 초기의 소련군과 비견할만한 것으로, 혁명에 뒤이은 숙청으로 잘 훈련된 지휘관이 대부분 날아간데다가 서방의 제재로 수리 부속을 보급받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규군 보병은 혁명 이후 대부분 해산돼 보병전력도 부족한 상황. 이것 뿐이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새로 창설된 혁명수비대와 이란 정규군 사이에 정치적 알력까지 벌어졌다.
이 개판에서 이라크군 공세가 주춤한 틈을 타 이란 정규군은 이라크군에게 포위공격받던 아바단 시를 구원하기 위해 제16기갑사단 예하 3개 여단을 동원, 대규모 공세를 실시한다. 하지만 이란군 공격축선은 지반이 무른데다가 매년 홍수로 야지가 진창으로 변하는, 전차를 굴리기에는 최악의 지형이었다. 이런 지형에서는 보병의 지원이 아주 중요한데, 정작 보병전력의 대부분을 보유중인 혁명수비대와는 정치적으로 대립중이라 미운 놈들 전공을 만들어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작전에서 제외해 버린다. 여기에 이란군은 수색정찰부대도 태부족이었고, 공세를 실시하면서도 전투력 비율을 3:1은 커녕 2:1 정도밖에 맞추지 못했다.
짧은 포병 공격준비사격으로 나스르 작전이 시작됐다. 이란군은 강을 도하해 300대의 전차를 전개시켰지만 야지의 진흙탕 때문에 포장도로 위에서 종대로 길게 늘어선 채 느릿느릿 전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데려온 제55공수여단의 보병들이 대열 맨 뒤에 위치해 적시에 전차를 지원할 수 없게 된 건 덤. 공격기도는 당연히 노출됐고, 이라크군은 제10기갑여단을 기동시켜 이란군 공격축선 정면과 측면에 호구(虎口)형 매복진지를 구축하고 전차를 차체차폐진지에 숨긴다. 정찰능력이 엉망이던 이란군은 다음 날 매복을 눈치채지 못한 채 호랑이 아가리로 뛰어들었는데, 이라크군은 이를 전차와 대전차헬기에서 쏟아지는 교차사격으로 성대하게 맞이했다. 이란군 선두 여단은 정면돌파를 시도하다가 심각한 손실을 입고 야지에서 기동해 이라크군에 맞서려고 시도했지만, 무거운 치프틴 전차가 진창에 빠지는 바람에 대실패. 선두 여단은 몰살당한다.
포기하지 못한 이란군은 후속 여단을 투입해 다시 공격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지상군을 구원하기 위해 출격한 코브라 공격헬기도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라크군의 대공포화로 코브라 몇 대가 격추당하기까지 했으니. 여기에 대전차화기로 무장한 이라크군 기계화보병이 꼼짝 못하고 앉아있는 이란군 전차 사냥에 참가하면서 전투를 사실상 도살극으로 만들었다. 전투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이란군 도하지점의 부교를 파괴한 이라크군 공습. 이로써 이란군은 퇴로까지 끊겨버린다. 제16기갑사단은 갇힌 채 3일 동안 복날 개 맞듯 신나게 두들겨 맞다가 마지막 순간에 수리된 부교를 통해 간신히 후위 여단만 후퇴하는데 성공했다. 그나마 후위 여단이 탈출할 수 있었던 것도 훈련 수준이 낮은 이라크군이 전면 역습으로 전환할 생각은 안 하고 대부분의 전차를 계속 진지 안에 박아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스르 작전에서 이란군은 88대(이란군 주장)에서 214대(이라크군 주장)의 전차를 손실했다. 이는 공세 전까지 이란군이 보유한 전차의 10-20%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란군의 손실에는 이것 말고도 장갑차 100여대, 수 문의 자주포와 코브라 공격헬기가 더해진다. 이라크군의 피해도 45대의 전차와 50여대의 장갑차량으로 상당했지만, 그럼에도 잃은 전차보다 노획한 치프틴 전차가 많을 정도였다.
전투 경과에서 알 수 있듯이, 나스르 작전의 실패는 치프틴 성능의 문제는 아니었다. 비슷한 예로 중동전쟁에서 AMX-30의 주포를 장착한 셔먼들[37]등에 격파당한 T-55, 한심한 교전비를 낸 이라크군의 T-72[38]나 M1 에이브람스[39] 등이 있다. 무기의 성능만 중요한 게 아니라 지휘관과 승무원도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운 예인 것이다. 치프틴의 주포와 사격통제장치도 헐다운 진지 안에 숨어있는 이라크군 전차를 정확하게 격파하면서 이라크군에 손실을 강요했다고 한다.
한편 영국군은 이전부터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의 막대한 전차 손실량을 보고[40] 전차의 방어력 증강 연구를 알음알음 해왔는데 위의 나스르 전투를 비롯한 이란-이라크 전쟁의 전차전에서 치프틴의 장갑이 T-62와 T-72등의 전차가 발사하는 대구경 날개안정분리철갑탄 및 대전차고폭탄에 대해 방호력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걸 봤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속도를 내서 스틸브루 증가장갑 패키지를 1984년부터 자국군 치프틴의 포탑에 부착하기 시작했다. 전쟁 당시 이라크군 T-62가 치프틴을 격파하는데에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는데 이라크군 전차병들의 숙련도 부족으로 인한 착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련군은 115mm 날탄으로 치프틴을 1600m 내에서 관통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으며[41] 영국군 또한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당장 구형 115mm 날탄에 치프틴의 전면 포탑장갑이 시원하게 뚫려버린 영국군의 실험 사진이 남아있다.
이와는 대비되는 사례도 존재한다. 걸프 전쟁의 빌미가 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있었던 '다리의 전투'가 대표적이다. 쿠웨이트군 제 35 여단이 치프틴 Mk.5/2K 37대 및 빅커스 Mk.1들을 이용해 다수의 T-72로 이뤄진 이라크군 2개 사단을 거의 10시간 동안이나 막아내며 막대한 피해를 입혔지만 다급한 출정으로 인한 탄약 부족과 이라크군 증원병력 투입 등 지속적 전투가 불가능한 상황 때문에 결국 사우디 아라비아로 퇴각 및 피신했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쿠웨이트군 치프틴들은 다수의 이라크 군 T-72를 격파했으며, 손실된 치프틴은 고장난 1대와 격파된 2대 뿐이었다고 한다.
쿠웨이트군의 치프틴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군이 운용한 치프틴보다 사양이 밀리는 버전이었다. 상대한 전차도 이란군 치프틴이 상대한 T-62, T-72 극초기형보다 훨씬 강력한 T-72 개량형이었다. 하지만 쿠웨이트군 치프틴은 이란군 치프틴과 다르게 대부분 전장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전차병의 숙련도, 지휘관의 역량과 작전 환경에 따라 전차의 활약이 갈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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