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들이 자기들 비리 수사한다고


검찰을 공중분해시키네.ㄷㄷ


개인적으로는 또다른 사건 이한열 최초 검안의가


초딩동창 아버지다만.



앙금은 해방 직후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시절 민중을 가까이에서 억압한 것은 일본 경찰이었다. 당연히 높으신 분들보다 일선 순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와 증오는 굉장한 것이었다. 오죽하면 '순사 온다'는 말이면 우는 애가 울음을 그친다는 소리까지 있었으니... 문제는 미군정이 들어서며 내부 실정을 아는 경력자인 순사들이 그대로 미군정 경찰로 고스란히 채용된 것이다. 즉, 왕년의 친일파가 경찰이 돼 버린 셈이다. 일본 순사들이 대한민국 경찰 제복을 입고 거들먹대는 꼴에 분통이 치민 이들은 모조리 국군, 특히 육군으로 입대했고 이후 경찰과 육군은 총격전(!)을 주고받을 만큼 험악한 사이가 되었다. 물론 국군에도 일본군, 만주군 경력자들이 즐비했고 지금 시선에서야 둘 다 친일파라고 하겠지만 일본 육군, 만주군의 하급장교나 하사관에 불과한 이들이 대민 마찰을 일으킬 일은 적었다. 따라서 당시 관점에선 일본군, 만주군 경력자는 친일파로 안 봤다. 당장 '경찰 놈들이 부대로 쳐들어온다'는 헛소문으로 부대원을 선동하며 벌어졌던 여수·순천 10.19 사건의 주역인 남로당 김지회조차 왕년의 일본 육군 소위였다.



여튼 논란이야 있지만, 실 동원 능력의 무장세력으로 1공시기 정권의 친위부대로 초창기 국방군을 아류취급한 막강한 정보력까지 갖춘(권력의 집중 견제세력 없음-박종철 사건 은폐기도한 5공 실세라인) 경찰을 찍어 누른게 당시 검찰인건 펙트고.





영암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