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편 링크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yourname&no=449005&page=1&search_pos=-454805&s_type=search_all&s_keyword=너의+꿈은






14.


내가 쓰러져 입원한 날
나는 절박유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선생님은 아직 완전유산은 아니지만 무리를 하게 될 경우 장담할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나에게 안정을 취하고 직장에 병가를 낼 것을 권했다.


'아직 살아있구나.'


갑작스레 찾아온 천사님이 아직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놓였다.
어느 덧 면회시간이 지나고 나는 남편에게 갈아입을 옷가지가 필요하고 심심풀이용으로 쓸 타블렛 PC와 책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2주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반납일자가 다 되었으니 반납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사실은 그가 집에가서 편히 쉬고 다음날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랬다. 지금의 그는 너무나 지쳐보였다.


그를 돌려보내고 나는 잠을 새벽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자리를 설친 게 얼마만이었을까?

고등학생 시절 이유는 생각나지 않지만 도쿄에 갔다가 머리를 자르고 돌아온 그날 저녁밤 이후였으리라.. 그 날은 어떤 이유에선지 머리를 자르고 밤새도록 베개를 눈물로 적시다 학교를 빼먹은 적이 있었다. 마치 좋아하는 아이에게 차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울다가 잠이 들었었다.
 
그때의 상실감 이후 나는 10년동안 누군가를 찾는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를 찾게 되었다.


타치바나 타키


그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운명임을 느끼고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역시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걸어가는 길에 내가 걸림돌이 된다면 그는 망설임없이 그 길을 포기하고 나를 택할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임신사실을 숨겼었고 최악의 상황으로 번진 이 상황에서 그에게 모진 말을 하면서 그를 프랑스로 보내려 했었다.


"바보같아."


정말 바보같았다. 가지 말아줘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마음에도 없는 말이 계속해서 입밖으로 나왔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더이상 생각해봐야 마음만 아플 것이고 내 안에 있는 아이에게 나쁜 영향만 줄 것 같았다.

지금은 쉬는 것만 생각하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제촉하면서 몸을 뒤척였다.




15.


병원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의사선생님의 진료를 받았다. 여러가지 검사를 받은 후 의사선생님은 뱃 속에 고인 피가 있으니 절대안정을 취하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라고 하셨다.

병실로 돌아와 누워서 TV를 보았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게 이렇게 지루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


"미츠하."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렸다. 숨을 헐떡이면서 병실 입구에 서 있는 그는 땀범벅이가 되어 있었다.


"타키군? 그게 무슨 꼴이야?"


내가 그에게 묻자 그는 약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옆구리를 지긋이 누르면서 괜찮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보아하니 밥을 먹고 바로 운동을 한 뒤에 옆구리가 당기는 모습으로 보였다.
  




"만나고 싶어서 바로 달려왔어."
"밥먹고 바로 달려온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몸을 생각해서 행동하란 말이야. 바보.


"너와 꼭 할얘기가 있어."
"일단은 숨을 고르고 그 다음에 이야기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는 숨을 골랐다. 호흡이 안정될 즈음 그는 한차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어디서부터 달려왔는지 모르겠지만 입었던 티셔츠는 벌써 땀 범벅이 되어서 몸에 딱 달라붙어있었다. 숨을 고르면서 그는 등에 매고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아마 저 가방은 내가 부탁했던 물건들.

그는 숨을 다 고른 후에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미츠하, 들어줘. 나는 프랑스로 가지 않을거야."


다시금 듣는 그의 이야기에 내심 고마움을 느꼈다. 


"어제 이야기했잖아. 나는 당신의 꿈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 파리의 카페에서 봤던 그때의 표정이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나는 그를 위해 잠시동안 혼자가 될 결심을 했던 것이다.


"미츠하. 파리의 카페에서 내가 미츠하의 꿈이 뭐냐고 물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내 답변은 네가 행복해지는 것. 그리고 너의 답변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리를 직접 만드는것.


"미츠하가 쓰러지고 누워있는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리를 만드는건 사실 중요한게 아니었어. 누구랑 같이 그 거리에서 사는지가 중요한 거였어. 널 만나기 전의 나는 쟃빛속에서 사는 것 같았어. 그리고 널 만난 순간 세상이 수채화처럼 느껴졌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토모리 재해 이후로 공허함을 느낀지 10년. 그를 만난 다음부터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매일 거닐던 거리도, 들렀던 카페도, 심지어 만원전철 안에서도 너와 함께여서 즐거웠던거였어. 지금의 생활도 늦게 퇴근하고 돌아가면 네가 있어서 버틸 수 있고 힘을 낼 수 있는거였어."


그는 잠시 뜸을 들이고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어제 혼자서 집에 돌아가니 이게 내 집인가 싶더라. 미츠하도 이런 경험을 하겠지? 라고 생각하니까 참을 수가 없었어."


그 기분을 잘 알 것 같았다. 그와 만나기 전 자취할 때 늦게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적막하고 싸늘한 집의 풍경. 나는 그 풍경을 그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그래서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이야기했고 그를 위해서 최대한 야근을 줄이면서 먼저 집에 들어왔던 것이다.
 
"솔직히 나는 미츠하가 없는 세상에서 난 살 수 없을 것 같아. "


나 역시 마찬가지로 타키군이 없는 세상은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다.


"드디어 알았어. 내 꿈은 너와 행복해지는거야."


내 꿈은 타키군과 행복해지는거야.


"미츠하가 내가 하고싶어하는 일 때문에 행복해지지 못한다면 나는 그런 일따위 하지 않아. 미츠하의 꿈은 뭐야?


그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내 꿈에 대해서 물어왔었던 그 표정으로 나에게 다시금 질문해왔다.


"내 꿈은 타키군이 행복해지는게 꿈이야."


나는 그곳에서 말했던 말 그대로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가 행복해지는게 나의 행복이라고...


"내 꿈은 너와 나, 그리고 뱃속에 있는 아이까지 함께 행복해지는거야. 그래서 난 널 혼자두고 프랑스로 떠나지 않을거야."


그의 표정은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하지만 이 눈물의 의미가 그에게 전해지는건 충분했다. 아마 말을 하지 않아도 그는 알아챘을 것이다. 가지 말고 옆에 있어달라고. 나는 당신과 행복해지는게 꿈이라고.
눈물이 흘렀다. 기뻐서 이건 흘리는 눈물이다. 나는 울면서 그에게 옆에 있어줘. 함께 있어줘. 아무데도 가지 말아줘. 라며 그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말았다. 한달동안 내가 그토록 그에게 하고싶었던 말들이었다.



서로의 진심을 확인 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요츠하가 미묘한 표정으로 병실문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와 할머니가 급하게 날 찾아왔고 안정을 취하면 문제없을거라는 이야기로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내가 저녁식사를 하는 것 까지 본 다음에 가족들을 돌려보냈다.




다음날 나와 타키군은 오전에 진료를 받으면서 처음으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아이의 심장소리는 들리고 있으니 엄마가 마음을 굳게 먹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쿵! 쿵! 쿵!


마치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심장고동소리처럼 힘차게 심장이 뛰고있었다.
어쩐지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왜 아이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는거에요? 위험한게 아닌가요?"


타키군은 심장소리를 듣자마자 의사선생님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의사선생님은 원래 그렇게 뛰는거라면서 건강하게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아빠가 그렇게 당황하면 아기가 놀란다고 주의를 주셨다. 이야기를 듣고 당황한 표정으로 심호흡을 하고 애써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그를 보면서 나는 그가 천상 아빠가 됐구나 느끼고 있었다.


"푸흡, 타키군, 아이가 놀라니까 이제 그만해. 나까지 놀라잖아."
"미츠하, 울던지 웃던지 한가지만 해주세요."
"푸훕, 하하하"


나는 울음을 멈추지도 못하고 웃음을 멈추지도 못했다. 지금 흐르는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지만 웃고있는 이유도 기뻐서 웃는 것이다. 앞으로는 계속해서 이런 이유로 울고 웃고싶었다.
 




약 한달간 입원한 후 나는 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었다. 사실은 그곳에서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 병을 얻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라서 빨리 퇴원을 한 것이다. 퇴원 후 3일 뒤 나는 회사에 돌아가 밀려있던 업무를 처리했다.


타키군은 야마다이사에게 해외파견은 다른 사람으로 보내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부서를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야마다이사는 못마땅해하는 눈으로 원래 타키군이 소속돼 있던 부서로 그를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예전처럼 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생활에서 서로 비밀을 만들지 않고 고민이 있으면 바로 말하자는 규칙이 추가됐다. 말하지 않아도 한눈에 알 수 있다는건 거짓말이다. 서로 좋아하고 아껴준다고 해도 그 사람의 속마음을 전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더 많이 이야기하고 고민을 공유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부부니까...





점점 배가 불러오는 걸 느끼고 있다. 입덧을 하기도 하고 가끔 아이의 발길질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런 변화가 싫지만은 않았다.

타키군과 외출을 하면 아기용품점에 가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는 일이 늘어났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육아관련된 책을 읽어보고 공부했다. 주말에 태교에 관련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 어느순간 잠들어 점심시간을 놓치기도 했다. 아이를 핑계로 먹고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이런 변화 하나하나가 너무나 행복했다.
아마 그를 멀리 보냈다면 느끼지 못했을 행복.
그는 나에게 이런 행복을 주기위해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앞으로 예정일이 3주 앞으로 나가왔다.
아이가 태어나면 더 많은 변화가 찾아오겠지.
하지만 그와 함께 있으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함께 극복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원래 구상대로 인슐린 팍팍 뿌리고 마지막에 해피엔딩인척 끝냈다.






이 그림 안봤으면 이런거 안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