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고등학교 동창회를 다녀왔다. 가장 놀란 것은 직업의 다양성. 대학 때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비슷한 회사에 들어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데 반해 고등학교 친구들은 달랐다.

요리사, 헤어디자이너, 성악가,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운동장에서 뛰어 놀던 녀석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걸 보니 신기하다. 나는 바텐더로서 잘 하고 있는가 되새겨볼 수 있었던 시간.

‘끼이익~!’

그녀가 오랜만에 가게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위스키 한 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음…오늘은 뭐가 좋으려나…역시 첫 잔은 글렌모렌지로 할까요? 첫 잔으로 마시기에는 너무 좋은 것 같아서요.”

“네 알겠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하프로 세 잔을 서비스로 드릴게요. 글렌모렌지를 더 공부도 할 겸.”

백 바에서 글렌모렌지 네 병을 꺼냈다. 글렌모렌지 오리지널, 라산타, 퀸타루반, 그리고 넥타도르. 이 녀석들은 10년 동안 같은 술이다. 아메리칸 오크에서 10년 간 숙성시켜 글렌모렌지 오리지널을 만든다. 그리고 올로로소 쉐리 오크 2년, 포트와인 오크 2년, 소테른 와인 오크 2년을 추가 숙성시켜 각각 라산타, 퀸타루반, 넥타도르가 만들어진다.

“역시 언제 봐도 글렌모렌지 병은 예쁜 것 같아요. 이렇게 여러 병 모아놓으니까 더 좋은데요?”

“오리지널부터 순서대로 드셔보시죠. 느낌을 말씀해주시면 하나씩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녀가 글렌모렌지 오리지널부터 마시기 시작한다.

“역시 연한 바닐라 맛과 꿀 맛이 좋아요.”

다음은 ‘라산타’.

“이건 오리지널에 비해 더 달짝지근한데요? 그렇다고 너무 단 느낌은 아니고 은근한 게 참 좋아요. 그리고 뭔가 오리지널에 비해 더 따뜻한 느낌이랄까요?”

“라산타는 ‘뜨거운 열정’이라는 뜻입니다. 오리지널을 올로로소 쉐리 캐스크에 옮겨 담아 2년 간 추가 숙성한 위스키죠.”

다음은 ‘퀸타루반’

“음…뭔가 강렬한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좀 드라이하달까…초콜렛 같은 단 맛도 좀 도는 것 같고요.”

“퀸타루반은 ‘붉은 와이너리’라는 뜻입니다. 오리지널을 포트 와인 캐스크에 옮겨 담아 2년 간 추가 숙성한 위스키죠. 특히 색깔이 아름답습니다. ‘루반’은 ‘루비’라는 뜻이거든요.”

다음은 ‘넥타도르’.

“달아요. 마치 화이트 와인 같은 느낌인데요? 서비스로 준 위스키 중엔 이게 제 입맛에 가장 맞는 것 같아요.”

“넥타도르는 ‘황금의 과실음료’라는 뜻입니다. 오리지널을 소테른 와인 캐스크에 옮겨 담아 2년 간 추가 숙성한 위스키죠. 소테른 와인은 소테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귀부병에 걸린 포도로 만든 스위트 와인입니다. 디저트 와인의 대명사라 불릴 만큼 인기 있는 와인이죠.”

“그렇군요…다 마셔보니 각각의 개성이 있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오리지널도 좋지만 2년 더 숙성해서 이렇게 만들어진 위스키도 참 좋네요.”

“싱글몰트의 매력은 개성적인 맛에 있죠. 글렌모렌지 증류소는 어떻게 하면 더 개성 있는 싱글몰트를 만들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이런 제품을 내놓은 것이고요. 사실 위스키에 개성을 넣는 방법은 이런 방식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캐스크를 섞는다든지, 장기숙성 원주와 단기숙성 원주를 섞는다든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숙성된 위스키를 하나의 캐스크에 담아 오랜 세월을 지낸다든지…”

“꼭 사람같네요. 살아온 환경에 따라 셀 수 없이 많을 정도의 맛을 내는 위스키라는 게…”

“다양한 인생의 숫자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위스키도 너무나 다양합니다. 하지만 그런 개성을 위해서는 꼭 갖춰야 될 조건이 있어요. 글렌모렌지로 예를 들자면, 10년 간 숙성된 오리지널이 제대로 된 맛을 내야 한다는 거죠. 제아무리 좋은 캐스크를 써서 추가 2년 숙성을 한다고 해도, 오리지널이 맛이 없다면 맛이 좋을 리 없죠.”

“그럴 듯 하네요.”

“고등학교 동창회에 갔을 때, 다양한 삶을 사는 친구들의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술이 한 두 잔 들어가고 학창시절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가 예전으로 돌아간 듯 했어요. 지금은 서로가 다른 모습이라 해도, 너무나 소중했던 우리의 학창시절은 우리 안에 영원히 남아있는 거죠. 라산타, 퀸타루반, 넥타도르가 오리지널의 훌륭한 맛을 지니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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