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남자가 있다.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한 경력이 있지만 지금은 다른 정치적 경향을 가진 정치인.
나이를 초월하는 젊음과 철가면이 되어버린 듯한 미소를 장착하고 법적으로 사진 한 장을 대중의 기억에서 지워줄 것을 요구한다.
재판조정에 직접 나온 이 남자는 자신이 내려달라고 한 사진속의 한 여자를 미소를 띠며 그린다.
책상 속 깊이 넣어 두고 수도 없이 꺼내 보았다는 사진에는 그 날 이후 더 이상 변하지도 나이들지도 않을 한 여인과, 함께 나이들면서 그때의 사랑을
평생 아프게 지켜보아야 했던 다른 여자의 얼굴이 있다.
그 사진은 중년의 이 남자의 과거의 어느 순간.
지극히 사적이고 소중한, 결코 잊혀지지 않은 아름답고 아픈 순간을 포착하고 있었고, 그 순간은 평생을 자기 옆에서 보낸 아내에게는
상처의 기억이었다.
한 남자의 기억속에만 사는 그 여인이 더 가여운가, 그 기억속의 여인을 평생동안 질투해야 했던 여인이 가여운가?
그리고 이 재판은 자신의 잊혀질 권리를 위한 재판이 아니라 자신의 잊어야 할 의무를 위한 재판이라고 한다.
대중을 비웃는 한 정치인의 개인사는 임바른의 달콤하고 슬픈 사랑의 전주곡이었다.
판사회의 소집 이후 바른과 오름은 부쩍 가까워진 듯 하다.
바른은 오름의 연설을 흉내내기도 하고 오름은 꽃중년 정치인보다 바른의 훨씬 낫다고 한다.
학창시절 오름은 바른을 설레게 한, 시작도 못해 본 첫사랑이었다.
긴 머리에 말이 없고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던 소녀의 손끝으로 흘러나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한 소년을 첫 눈에 반하게 만들었고
그 때나 지금이나 바른은 그녀 앞에서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릴 만큼 넋을 잃는다.
도서관 서가 사이로 그녀를 몰래 지켜본다.
오름이 무심코하는 행동 하나 하나에 의미를 찾는다.
십이년 동안 잊을 수 없는 피아노곡 하나를 제대로 연주하게 되면 그의 마음을 어떻게 될까?
그 때 그는 그 소녀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그가 그토록 열병을 앓았던 것은 그 소녀의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때와 너무도 달라진 그녀가 이렇게 설레는 것은 왜일까?
자기도 모르게 장미꽃잎을 뜯으며 그녀의 마음을 점치고 심리학과 뇌과학 책을 읽으며 자기와 그녀의 심리를
알아보려 하지만 알 수 없다.
직접 물어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대학동아리 선배라고 찾아온 남자는 그녀의 집에 갑자기 맣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식사하다 갑자기 일이 있다고 일어섰던 그녀는 사람에게는 굳이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않은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바른은 오름의 그 속사정을 알고 싶다고 한다.
우배석이라서가 아니라 같은 재판부라서가 아니라, 좋아하니까.
어린시절 처음 만났을 때도, 다시 만난 지금도 좋아한다고.
그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고, 잘 모르는 지금도 좋아한다고.
생각해 보았는데 좋아한다고, 당신에 대해 알고 싶은 이 마음도 좋아하는 마음이거 맞다고.
나는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도 관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라고.
오름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당신은 좋은 오빠, 좋은 선배지만 남자로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버지는 안계시고, 남기고 간 빚이 있고, 어머니는 아프시고, 할머니는 점점 약해지시는데, 오름 자신은 이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일을 많이 벌리고 있다고한다.
상황이 그래서, 미안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 여유도 감당할 자신도 없다며 오름의 눈에 눈물이 차 오른다.
어쩌면 그녀도 나를....이라고 약간의 기대를 했던 바른은 오름의 사연을 들으며
좀 놀라기도 하고 안타깝지만 깔끔하게 물러선다.
그런 바름의 눈도 촉촉하게 젖어 온다.
함께 술이나 마시자는 정보왕와 함께 셋을 자주 갔던 바에 가서 두 사람은 유난히 말없이 앉아 있다.
그 때 오름은 세 사람의 침묵 가운데 잔잔하게 흐르는 이 아름다운 곡의 이름을 묻는다.
바른은 'The star crossed lovers'라며 유성이야기를 한다.
드물게 각기 다른 곳에서 떨어진 유성이 한 곳에서 만난 후 우주로 끝도 없이 멀어져간다고.
바른은 학창시절 이래도 오래동안 품어왔던 사랑을 방금 거절당했다.
다시 만나지 못할 그 별들은 단 한번 만났던 그 추억으로 평생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녀를 알게 되었던 아름다운 추억 때문에 바른은 아프지만 달콤한 사랑을 키워왔었다.
그녀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이 넓은 우주공간으로 끝도 없이 서로 멀어져가도
잠시 그녀를 만났던 순간의 행복한 기억 때문에 슬프지만 달콤한 사랑을 간직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물리적으로 멀어지더라도,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낡지도 퇴색하지도 않은 짝사랑을 그는 계속할거 같았다.
그에 비해 바른의 친구 정보왕은 만났지만 인연이 아닐 수 있는 그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만남은 슬픔이었다.
음악이 끝나자 오름은 피아노 앞에 가서 앉는다.
두 유성이 우주의 한 곳에서 만난 그 후의 사연이라고 볼 수도 있는 stardust.
이제 아름다운 기억들은 우주의 먼지로 흩어져버린다.
오름의 감정은 행복했던 그 순간에 머물수 없었다.
엄마와 행복했던 그 순간이 다시 올 수 없기 때문에, 엄마에게 자신이란 존재는 우주의 먼지처럼 산산히 흩어지고 있는 시간이라
더욱 아프고 서럽다.
오름은 행복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오름을 바라보는 바른의 눈동자는 우주 저 멀리로 황홀하게 멀어져 가는 별을 보듯 바라보며 그윽하고 거절당한 아픔으로 눈물이 비친다.
바른에게 오름은 영원한 stardust.
즉 신비스럽고 천부적인 재능을 뿜어내는,사람을 도취시키는 매력을 가진 여인인가 보았다.
덧붙임
독서교실에서 오름이 연주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뒤에 바른이 낭독한 예이츠의 '하늘의 융단'을 기억하는가.
예이츠는 모드 곤 이라는 여성을 평생 사랑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재다능하고 아름다웠던 그 여인은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였다고 한다.
어딘지 바름커플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바른과 오름은 그런 슬픈 사랑을 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6회만 보자면 그렇게 엇갈릴 운명을 지닌듯 보인다.
조타
와 지나간 회차 리뷰 ㄱㅅㄱㅅ 글을 쭈욱 읽어 내려가니 조금전 재방본게 6회였는데 연결되서 특히 좋았다 덧붙힘에 정보도 고맙고 바름커플은 해피하게 끝내주길 ㅜㅜ
좋은 글 고마워. stardust 와 유성의 관계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써줬네. (근데 책장은 '서가'야. '서고'가 아니고. 중간에 또 오타 하나 발견. '안타까워'가 맞음)
맞아 서가 ,서고는 보존용이지. 오타 맞네 .고칠게
덧붙임정보 매우 감사해
와 덕분에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