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이라 설레네...


몇 시간 동안 뮤비 장면들 스샷 찍어 가며 열심히 분석 글 써봤는데 이미 수도 없이 나와 있어서 김 빠짐ㅋㅋㅋㅋㅋ

그래도 조금씩 해석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나도 올려볼게.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긍정적인 쪽으로 해석한 거 같아.


개인적인 공간에 쓴 글을 가져온 거라 말투가 여기 분위기랑 안 맞아도 양해해주길 바랄게.






0. ...



반주와 멜로디 만으로는 청량한 팝락의 느낌이지만 곡 소개와 가사를 읽어보니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이별 노래였다. 아이유가 현재의 자신을 표현한 자칭 '나이 시리즈곡'으로 스물셋, 팔레트의 연장선 상에 있지만, 이전 곡들이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그린 노래였다면 이번 곡은 그보단 어떤 사람()과의 기억에 대한 '감상'을 그린 것에 가까운 것 같다. 의외의 주제에 팬으로서 미안하고 속상한 게 솔직한 마음임. 숨김 없는 곡 소개글에 특히나 놀랐다. 자기고백은 언제나 어렵고 힘이 든다.




1. '오렌지'



아이유의 곡에는 그 곡을 상징하는 색깔이 자주 등장한다. 블루밍의 파랑(blueming), 삐삐의 노랑(yello card), 스물셋의 보라, 분홍신의 빨강(red shoes). 이번엔 오렌지다.


가사엔 '오렌지 태양', 곡 소개엔 '오렌지 섬'이 등장하고, 뮤직 비디오도 오렌지가 주된 색감으로 사용된다. 주인공의 기억을 저장하는 스크린, 주인공의 눈화장, 도마뱀과 용의 눈, 태양빛, 기타 조명들...




곡의 주제로 봤을 때나 색감이 사용되는 방식으로 봤을 때나 오렌지는 그리운 기억, 또는 그 기억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하는 듯하다. 가사에서 화자는 기억 속에서 "오렌지 태양 아래 그림자 없이 춤을" 추고, 뮤비에서도 주인공은 작열하는 오렌지 빛 태양 아래에서 활짝 웃으며 행복해 하거나 은은한 오렌지 빛 조명 아래에서 아련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오렌지색 눈을 가진 도마뱀은 아마도 주인공이 그 기억 속에서 함께했던 그리운 존재를 상징할 것이다.




2. 현재와 과거


뮤비에서는 주인공이 일곱 가지 서로 다른 배경과 의상으로 등장한다. 그 중 돌벽 집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곱슬머리 주인공 셋을 하나로 치면 뮤비 속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의 모습은 크게 다섯 가지다.



(1) 신비로운 공간에서 하얀 옷을 입고 자신의 기억을 기계에 저장(녹음)하는 주인공





(2) 늦은 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돌집에 들어가 집 안과 창밖을 둘러보는 주인공




왼쪽부터 (3-1) 맑은 낮 집 밖에서 보라색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주인공,
(3-2) 해질녘 집 안에서 연보라 옷을 입고 술래잡기를 하고 도마뱀과 놀다가 잠이 드는 주인공,
(3-3) 늦은 밤 노란 옷을 입고 잠에서 깨 도마뱀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집 밖에 나가 무언가에 놀란 주인공


(4) 하얀 드레스를 입고 도마뱀과 함께 비행기 여행을 하다 난기류를 만나 그를 잃었지만 주인공(5)와 용을 보고 미소 짓는 주인공




(5) 오렌지빛 하늘 아래 달리다 용을 타고 주인공(4)를 만나는 주인공



"기억 속을 여행"한다는 가사처럼, 뮤비는 현실의 주인공(1)이 기억 저장 장치를 통해 과거(3)를 여행하며 겪는 체험(2)(4)(5)을 담고 있다.


현실 세계의 주인공(1)은 소중한 존재와 이별하고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 상태다. "So are you happy now?" "난 다 잃어버린 것 같아. 모든 게 맘대로 왔다가 인사도 없이 떠나"라는 가사가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는 그리운 기억을 회상하고 싶어서인지 지워버리고 싶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기억 저장 장치를 통해 과거의 기억과 연결된다.

(2)가 바로 기계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마주한 주인공의 의식. 은근한 조명 속에서 어떤 돌벽집에 들어온 주인공은 주위를 둘러보며 아련한 표정을 짓는다.


그와 상반되는 행복한 표정을 내내 보이는 (3)은 과거 그리운 기억 속의 주인공이다. (2)가 도착한 같은 돌벽집을 배경으로 (3)은 밝은 오렌지 태양 아래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3-1), 집 안에서 술레잡기를 하거나 오렌지색 눈을 가진 도마뱀과 놀기도 한다(3-2).

그런 기억을 배경으로 깔리는 가사는 이렇다. "다 해질 대로 해져버린 기억 속을 여행해.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춰. 정해진 이별 따위는 없어. 그 기억에서 만나 forever young. 이런 악몽이라면 영영 깨지 않을게." (1)과 (2)가 꿈을 꾸듯 (3)의 행복한 기억을 여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중에 주인공(1)이 미소를 짓는 장면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슈가의 랩 파트와 함께 등장하는 섬세한 그림체의 애니메이션. 그 속의 주인공(4)는 비행기 창문에 붙은 도마뱀과 함께 하늘을 날다가 갑작스러운 난기류를 만난다. 천둥 번개에 깜짝 놀라 바라본 창문에는 이미 사라져 있는 도마뱀. 이를 배경으로 이런 가사가 흐른다. "영원이란 말은 모래성. 작별은 마치 재난문자 같지."

마찬가지로 과거 기억 속의 (3) 또한 깜짝 놀라 잠이 깨지만 도마뱀이 사라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4)와 (3)이 같은 사건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 그 사건은 영원히 "함께 춤출" 것 같았던 누군가와 갑작스레 헤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다시 행복한 웃음을 머금은 주인공(5)가 등장한다. 그는 오렌지빛 하늘 아래를 달리다 뛰어올라, 사라진 도마뱀을 떠올리는 오렌지색 눈을 가진 용을 타고 하늘을 난다. 그 뒤에 깔리는 가사는 "정해진 안녕 따위는 없어" "우울한 결말 따위는 없어." 이 모습을 본 주인공(4) 역시 눈물 젖은 미소를 보인다.

이는 영영 잃은 줄 알았던 그리움의 대상(주인공)이 다른 모습(용)으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래서 "정해진 안녕"과 "우울한 결말"이 없는 것이고, 우리가 영원히 젊을 수 있는 것이다("forever we young").



3. 현실 세계와 의식 세계

그런데 주인공(5)는 언뜻 보면 그리운 존재와 함께 있던 과거의 자신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본다면 주인공(4)의 웃음은 단순히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짓는 슬픈 웃음일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주인공(2), (4), (5)는 모두 같은 의상(화려한 장식이 달린 앞섬에는 두 개의 단추, 등 뒤에는 큰 리본이 달린 같은 하양 드레스)을 입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셋이 서로 다른 의식의 차원에 있을 뿐 같은 시점에 있는 동일한 주인공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주인공(2)가 그리운 기억을 여행하는 현재의 의식이라는 것에 비추어 본다면(그는 이 곡의 마지막 가사인 "이런 악몽이라면 영영 깨지 않을게"를 노래한다), 주인공(2)(4)(5)는 현실 세계에서 잠들어 있는 주인공(1)의 의식이며, (2)에서 (4), (4)에서 (5)로 갈수록 더 단순한 비주얼과 더 비현실적인 장면을 통해 주인공의 더 깊은 무의식과 환상을 그려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해석이 맞다면 이 뮤비는 슬픔에 잠긴 현재의 주인공(흰 의상)이 과거의 기억을 여행하다(색채 의상) 깊은 의식 속에서 그리운 존재(용)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듯 뮤비의 초반에는 주인공(1)을 지켜보는 도마뱀이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영영 깨지 않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현실세계의 주인공(1)은 잠에서 깨어난다. 잠들기 전과 달리 젖은 머리는 주인공(2)이 마주한 비오는 날씨(슬픈 감정)를, 주인공(4)이 겪은 폭풍우(상실의 기억)를 똑같이 겪은 듯하다. 그는 서서히 일어나 복잡한 웃음을 짓고, 그 뒤로 노래 초반부의 가사가 아주 조용하게 깔린다. "So are you happy now? Finally happy now are you? 뭐 그대로야 난. 다 잃어버린 것 같..."




주인공이 기계를 통해 기억을 지운 것이라면 서서히 조용해지는 노래는 사라진 기억을, 주인공의 미소는 그리움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반면에 주인공이 기계를 이용해 기억을 영원히 보관하기로 한 것이라면, 가사의 끝을 맺지 않은 것은 자신이 소중한 존재를 잃었어도 "다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열린 결말이지만, 개인적으로 후자의 의미였으면 좋겠다. 자전적인 소설이기에 더더욱.



4. 감상

아이유의 곡은 가볍게 즐기려면 가볍게, 팬의 관점에서 깊이 감상하려면 깊이 듣고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고 생각한다.(물론 다른 수만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이번 노래도 계절에 맞게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청량한 팝락이면서도, 팬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공감해볼 수 있는 가사와 이야기를 가졌다. 장르와 주제 (그리고 협업까지) 모두 의외의 선택인데도 이번 곡이 반가운 이유다.

아무튼... 장르도 멜로디도 되게 대중적이고 가볍게 듣기 편해서 오랫동안 잘 나갈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