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구는 그 길로 블리자드 코리아를 찾아갔다.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하나를 깨닫고 나니 다른 여러가지 미심쩍었던 정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왜 갑자기 모험을 감내하면서 까지 키보드 조작방식을 뒤바꿔야 했을까? 오랜 게임산업 침체기 동안 블리자드 역시 주가가 땅에 떨어지고 있었음에도 어디서 그런 큰돈이 나 막대한 개발비와 새로운 이스포츠 대회 시설들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일까. 다른 게임 회사들은 부도의 연속이었다. 만일, 오버와치나 미연방 등 국제, 국가 차원에서 돈을 대줬다면? 오래전 드론을 조작하는 데에 스트리트파이터나 fps 게임류를 잘 다루는 아이들이 유리해, 게이머 일부가 군 드론 조작 훈련에 투입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있다.

하지만 병구는 납득 할 수없었다. 선후관계가 잘못되었다. 어쩌다보니도 아니고, 애초에 군인을 길러내기 위해 나온 게임이라니. 소년병을 길러내는 거랑 다를 바가 없이 느껴졌다. 그토록 좋아했던 게임의 순수성이 더럽혀진 듯한 느낌에 병구는 속이 메스꺼웠다.


마침내 병구는 블리자드 관계자와 이야기를 만나 자신의 잔인한 추측 그 모든 것들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미쳤군! 이를 사회에 알리겠어. 아직 20살도 안된 청년들에게 뭘 가르치고 있는거지!"
 
 " 이것 참, 오버 하지마시죠. 협회장님. 모든 게이머들이 군대로 빠지는 것도 아니고... "

 " 하지만 상당수 겠지... 전쟁속으로 내몰아놓고 어떻게 그리 뻔뻔할 수가 있나? "

 " 어차피 그런 시대입니다. 좋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우상인 게이머를 거쳐 국가의 영웅이 되는 것이죠! "

 " 영웅 같은 소리...! 그런말로 아이들을 꾀어냈나? "
 
 " 모두들  기뻐하며 자발적으로 입대한 것입니다. 외압 따위 전혀 없었죠. "

 " 20대 게이머들이 늘 지적받는 것이있지. 게임만 하고 살아서 세상을 모른다고. 그 아이들이 전쟁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겠나? "

 " 송병구협회장님. 좋아요, 당신이 고발한다 칩시다. 증거는 있습니까? 누가 당신의 편을 들어주죠? 게이머들이?
아뇨! 협회장님 말씀대로 프로게이머들은 세상을 몰라서 대다수가 은퇴 뒤 자기 진로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죠. 그런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직업의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그들이 당신 편을 들어줄까요? "


병구는 까득 이를 갈았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병구였더라도 군인을 택했을 것이다. 병구는 참담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경직된 인사소리가 들렸다.

병구는 그 길로 돌아가 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긴 기간 맡았던 자리는 아니지만 병구는 협회장을 하면서 이 판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많은 것을 희생했으며 또 많은 것을 얻었다. 꿈과 같은 날들이었다.

곧 스타5 대회 4번째 글로벌 파이널이 있을 예정이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대회였던가. 그러나 이젠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병구는 도심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다. 집안을 돌볼 인공지능 로봇과 방범을 해줄 다른 로봇 하나만 데리고서. 
젊은시절부터 벌어온 돈과, 협회장을 하면서 번 돈, 그리고 블리자드 측에서 입막음겸 쥐어준 돈 덕에 통장은 여유로웠다.

이사했다는 소식에 전화가 여러통 왔다. 사실 사퇴 발표이후 한동안 그 어떤 전화도 받지 않았었다. 첫 전화는 아들이었다. 이제는 그 아들 역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구의 아들은 미국에서 결혼하고 직장을 잡아 살고 있었기에 일년에 한두번 얼굴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병구는 반갑게 안부전화를 받았다.

밀린 전화를 하나 하나 다시 되걸어 사퇴건에 대해 말을 돌려돌려 해명해냈다. 유일하게 민수만이 병구의 마음을 이해하고 씁쓸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기나긴 시간 끝에 부재중통화를 죄다 정리하고 나니 한 연락처가 눈에 띠었다.


군인이 된 게이머의 연락처였다. 병구는 전화를 걸었다.



 " 헉! 협회장님.. 아니..이젠 사퇴하셨으니.. 어.. "
 
 " 편하게 불러도 된다. 그래, 군인이 됐다며? "
 
 " 아! 네. "
 
 " 은퇴하고 소식이 없어서 걱정했었다. ....... 새 직업은 어떠니. "

 " 아직 적응하기 힘들긴 하지만... 뭐 다들 그렇겠죠. 그래도 좋아요. 은퇴뒤에 불안했는데 이렇게 할 일이 생겨서요. "

 " 후회는 없고? "

 " 전혀요. 아주 좋은데요! "


병구는 속이 쓰렸다.

 " 그래, 네가 좋으면 된거겠지. "


병구는 몇마디 더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병구는 나가서 젊은시절에도 거의 펴본 적이 없는 담배를 사왔다. 담배를 한모금 빨고나니 몇일동안 미뤄왔던 피로감이 머리 끝까지 몰려왔다.  중학생 무렵부터 쉼없이 달려온 나날이었다. 병구는 이제 쉬기로 마음먹었다.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었다.








 " 와 씨, 하나한테 또 졌어. "

 " 쟤한테 누가 이겨.  "

 " 야! 하나야 너 나중에 진짜 프로게이머되는 거 아냐? "

불과 1년만에 하나는 근방 또래들 중에서 단연 톱의 실력을 가진 스타5 게이머가 되어있었다. 기관의 아이들은 틈만나면 하나를 붙잡고 게임을 알려달라고 졸라왔다. 

 " 어떻게 그렇게 영웅유닛을 잘다루지? 난 아무리 머리써도 잘 안되던데. "

 " 음... 내가 체조를 배워서 그런게 아닐까? 그냥 움직임 같은게 연상이 잘되거든. "

 " 하긴 네 유닛 움직이는 거 보면 되게 유연하게 움직여. "

부모님이 돌아가신지 1년하고도 반 하나는 많이 밝아져 있었다. 아이들과 장난도 잘치게 되었고, 입학한지 한달 된 중학교에서도 친구들을 여럿 사귄 듯했다. 

6월에는 학교 축제가 있었다. 축제에는 학생회 주체 게임대회가 열렸고 반 친구들과 기관 아이들은 하나보고 대회에 나가라며 재촉했다. 하나는 반 쯤 떠밀려 참가자에 자기 이름을 써넣었다. 

축제날에는 결승만 치르기로 했기 때문에 예선과 4강까지는 2주에 걸쳐 방과후 강당에서 이루어졌다. 워낙 인기있는 게임인지라 방과후인데도 관중이 제법 모여들었다. 하나야 힘내! 반 아이들의 응원 소리가 들렸다

하나로선 대회에 나가 누군가의 호응을 받으며 게임을 하는 첫 순간이었다. 심장이 쿵쿵 뛰고 오싹 전율이 흘렀다. 발표할때 느끼는 긴장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 기분이 좋아... '


하나는 한껏 고조되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상대는 2학년 남자 선배였다. 하나는 고개를 돌려 강당 앞 칠판에 쓰여있는 대진표를 보았다.  아직은 가장 밑 오른쪽 가장자리에 새겨져있는 자신의 아이디와 이름이 보였다.

송하나  D.va 

앞서 진출한 사람들 이름은 이미 한계단 위로 올라가 있었다. 하나는 보다 위를 보았다. 5명만 재치면 우승이었다.

  " 게임 시작 합니다! "

5, 4, 3, 2, 1......


하나는 빙긋 웃었다.
어쩐지 어떻게도 질 것 같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