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제제, 한국 고질적문제...가해자-피해자 ‘원래 이랬잖아’


아이유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제제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아이유와 로엔트리 측, 동녘출판사 측이 공식입장을 발표했지만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소아성애’란 단어가 충돌의 중심에 서 있다. 아이유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제제 이슈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한국의 고질병’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놀란 제제

명작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하루아침에 ‘소아성애’ 이미지로 추락했다. 브라질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며 전 세계 20여국에서 번역본으로 팔렸다. 필자가 문학적 가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송구스러울 정도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아동문학’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작품성을 지녔다. 

그랬다가 우리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제제와 아이유, 핀업걸, 소아성애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순수한 제제를 생각하면 19금 단어, 불쾌함이 자동으로 연상된다. 이것만으로 아이유는 대중에게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 문학은 인류의 소중한 자산이며, 함부로 잣대를 대서 주무르면 안 된다. 개인 해석까지 관여할 수 없다. 하지만 대다수가 동의한 신성한 해석을, 누구나 동감한 순결한 메시지를 침범했다. 이 성역을 넘고자 했다면 아이유는 어떠한 질문과 공격도 이겨낼 수 있는 논리를 갖춰야 했다. 이러한 준비 없이 아이유는 마음 속 제제를 망가뜨렸다. 아이유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제제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새겼다. 

아이유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제제는 뮤직비디오 ‘투엔티 스리(Twenty Three)’와 맞물려 더 커졌다. 아이유가 ‘JeJe’ 노래 가사로 제제를 욕보였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뮤직비디오  ‘투엔티 스리(Twenty Three)’였다. 아이유는 우유가 가득 들어간 젖병을 물고 인형에 우유를 뿌렸다. 아이유 옷에는 우유가 묻었고 축 늘어진 포즈를 취했다. 젖병을 빠는 아이유 표정은 다양하게 보인다. 그뿐이랴. 아이유는 자신의 가슴에 사과를 넣는다. 아이유는 다시 사과를 빼더니 화살로 맞춘다. 아이유 팬 말대로 ‘해석이 자유’라면 ‘투엔티 스리(Twenty Three)’ 뮤직비디오의 ‘소아성애 해석’도 자유다. 대중은 ‘투엔티 스리(Twenty Three)’ 뮤직비디오에 대해 일침을 가할 권리가 있다. 수많은 국가에서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지 않았다. ‘투엔티 스리(Twenty Three)’ 뮤직비디오의 해석이 다양해도 되는 타당한 근거다. 

진짜 제대로 알고 덤비는가 

최근 한국사회가 잘하는 것이 있다. 편을 나눠 ‘서로 옳다’고 싸우는 것이다. 아이유 편 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제제 편으로 여론이 나뉘었다. 아이유 팬과 허지웅, 진중권 등이 아이유 편을 들었고 대중을 나무랐다. 반면 많은 네티즌과 영화 소원의 소재원 작가는 아이유(또는 아이유를 옹호하는 해석)에게 차가운 잣대를 들이댔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반복된 갈등 성향을 읽을 수 있다. 한쪽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반대쪽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잘 아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아이유 옹호 세력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은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해석의 자유’만 외친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제제-밍기뉴 관계만 담지 않았다. 누나들의 무시, 어머니의 괄시, 아버지의 폭력에 제제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받았다. 제제는 동네 어른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했다. 집안의 경제적 안정에 따라 제제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크기는 달랐다. 특히 제제에게 밍기뉴만큼 뽀르뚜까 아저씨도 중요한 존재였다. 

아이유 편 중 상당수는 네티즌이 ‘아이유 앨범에 핀업걸 자세로 등장한 제제’와 ‘제제-밍기뉴를 남녀관계로 본 아이유에게 화를 낸 것에 분노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줄거리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단 소리다. ‘제제의 순수성’은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원통한 대중은 “우리에게 제제가 어떤 존재인지 아느냐”고 토로한다. 그렇다. 제제는 어린 시절 겪지 말아야 할, 수많은 아픔을 겪은 아이다. 제제-밍기뉴를 남녀관계로 본 것이 ‘복합적인 제제’를 망쳤단 이야기다. 

동녘출판사가 만만한가 

더구나 아이유와 같은 시각을 가는 이들은 동녘출판사가 “죄송하다”고 발표한 공식입장에 의미를 두는 것 같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사과’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동녘출판사를 공격한다. 1차 공격자는 아이유인데, 피해자가 ‘속상하다’고 항변했다가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대중은 동녘출판사의 사과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철저한 윤리관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아야 할 인류의 자산이다. 

동녘출판사와 아이유의 파급력을 봤을 때 누가 더 우세할까. 2014년 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인 이상 가구의 한 달 도서구입은 1권, 연간 독서량은 10권 미만이며 국민의 70%는 공공도서관에 가지 않는다. 동녘출판사의 속내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대중가수가 ‘명작을 한국어로 성심성의껏 번역’한 출판사에게 ‘사과’를 받아냈다. 이것은 분명한 ‘팩트’며, ‘웃픈’ 이야기다. 

이번 아이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제제 사태는 우리 사회에 ‘소아성애’ 위험성을 일깨웠다. 아이유는 팬 사인회에서도 여전히 건재했다. 아이유는 팬의 성벽 아래에 있다. 어쩌면 아이유 본인이 체감하는 충격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대중가수의 인기는 팬덤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아이유에게 팬덤이 남았지만 팬덤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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