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도전이 민본을 주장했기 때문에
정도전은 민주적인 관점을 가졌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민본주의 사상은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름.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은
오히려 지극히 호혜적인 관점의 귀족정치적 사상임.
민주주의의 핵심은 지도자가 국민을 나라의 근본으로 여기라는 모호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어야 하는 것임.
독재자가 국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국민만을 위한 정치를 베푼다고 해도
국민이 주권을 갖지 않는 한 그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것과 같음.
그리고 당시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은
지배층이 마치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듯
윗사람으로써 보듬으라는 정도의 도덕적 관념임.
시대를 앞서간 것도 아니고
이미 유교적 가치관 이전에도 민본주의적 사상은 숱하게 있었음.
실현을 못해서 그렇지.
실현이 안되는 이유도 간단함.
민본은 호혜적인 개념일 뿐 실제 그렇지 않을때 징벌할 주권이 백성에게 없기 때문임.
2.
같은 맥락에서 정도전이 주장한 재상정치는
한 명의 왕보다 소수의 재상이 실권을 갖자는 것이지
백성을 서구적 시민개념처럼 계몽하고
다수의 시민이 정치의 주최가 되도록 이양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간 것도 아님.
전체 신분계급의 최상위계층안에서만 정치권력을 갖는,
그 정도의 정치제도는 중앙집권화 이전의 삼국시대에도 이미 있었음.
다만 정도전은 세습적인 귀족정이 아닌
시험으로 뽑은 성리학적 사대부가 이를 대체한다는 차이점정도인데,
나중에 조선후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성리학적으로 양성된 사대부의 세습특권화 현상 및
그들이 하는짓이라는게
삼국시대의 귀족과 전혀 다르지 않음.
정도전은 혈통에사 학문적배경으로 조건을 바꿨을뿐
신분사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
국가라는 틀을 깨긴 했지만
그렇다고 시대를 앞서갔다고 할만큼 사상적으로 혁신적이었는지는 모르겠음.
정도전의 사상이 급진적이라고 하는 것은
고려에 대한 태도를 보는 것이지
그 당시 전체 사회상을 정말 급진적으로 개혁하려고 했는가는 의문임.
딱 그 시대에 태어난 학자다운 생각을 가진 사상가였다고 봄.
3.
왕은 현명한 왕도 있고 우둔한 폭군도 있기 때문에
현명한 재상이 실권을 갖는게 안전하다는 생각 역시
재상이 되는 자가 반드시 현명하지도 않고
한 번 재상이 되서 자기 문벌에 권력을 몰아주고 독점하는 현상을
막을 수단이 없기 때문에 왕권정치의 한계와 다른 바가 없음.
실제로 조선사를 보면
왕권이 강했던 경우는 조선초기를 제외하면 숙종~정조 정도에 잠깐이고
그 외에는 전형적인 신권통치국가지만
그 많은 재상들 중에 현명한 청백리보다
정치꾼과 가렴주구하는 탐관오리 재상이 더 많았음.
위에서 계속 이야기했지만
정도전이 사상은 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없음.
즉 국민이 투표로 지배층을 꾸준히 물갈이할 장치가 없는 한
한 번 재상이 된 자가 정치권력을 통해
파벌을 만들고 더 현명한 자가 나오거나 말거나 자리를 독점하는 것을
막을 실효성있는 장치가 있을 수 없음.
결국 정도전이 말하는 재상정치는 왕도정치의 대안이 될 수가 없음.
태생적으로 불가능함.
정도전의 행정능력이나 거시적인 안목, 수완, 행동력은 조선역대급이라고 보지만
그의 재상정치 사상은
그냥 딱 성리학을 공부한 유학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임.
맞음. 민본사상은 민주주의랑은 전혀 다르지. 백성을 다스리겠다와 국민이 주권을 갖는다는 전혀 다르니까. 다만 그 당시의 유학의 틀 내에서 정도전이 대단한 인물인 건 맞음..
왕도정치나 재상정치나 결국 사회지배층 안의 주도권다툼에 불과하긴 함
무슨 유학자의 틀에서 벗어나질 못해ㅋㅋㅋㅋㅋㅋ 태종이 왕권정치를 했지만 정도전의 방식을 쓴게 얼마나 많은데
결국 백성하곤 아무 상관없지. 재상정치라는게 오히려 갑질하는 머리수만 늘어나는것뿐
ㄴ 유학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것과 태종이 정도전의 방식을 쓴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데. 왕권정치든 재상정치든 성리학 프레임안에 있음. 니가 말하고 싶은건 태종이 정도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거지. 그러나 정도전도 유학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유학자의 틀에서 벗어난 생각을 했다면 일단은 신분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야한다.
지금 대한민국 봐라 또 이원집권제 한다고 재상들 설치고 있다 나라 개판나게 생김
오늘날에도 대통령제,의원내각제 각각 장단점이 있는것처럼 왕권중심이냐 재상합의정치냐도 마찬가지겠지 근데 삼봉의 정치시스템이 시대를 거치면서 변질되고 훼손된 측면도 있어 태종에의해 변형되었다가 세종이 선택적으로 살리긴해도 수양대군에 의해 망가졌고 연산군을 거치면서 사화로 많은 사림들이 죽기도했고 당파싸움이 비난도 받지만 특정정파가 독주하지못하도록 견제역할을 제대로 한것도 사실이야 정권교체처럼 정파가 갈리기도하구 근데 숙종이 왕권강화과정에서 후계다툼까지 엮여서 피의 숙청땜에 시스템에 또한번 균열이 왔었고 정조대왕에 이르러선 독재권력 홍국영의 등장이후 외척세력인 안동김씨에게 너무 힘을 실어주면서 세도정치땜에 삼봉의 시스템은 붕괴되고 조선의멸망으로 이어진것도 사실이지 태종이후 세종이 나온건 좋았지만 세조땜에 균열이
반대로 왕권정치는 옳았나? 연산군같은 폭군을 만들어내는 제도였을수도 있지.. 어느쪽이나 양면이 있고 한쪽이 옳다고 가릴수는 없다고 봄
ㄴ 재상정치, 왕권정치 다 장단점 있는거 맞음. 요지는 재상정치가 왕권정치보다 열등하다는게 아니라 재상정치가 왕도정치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보완할 대안은 아니라는 것임. 단 한 명일 것이냐, 그것보다는 많지만 역시 소수일 것이냐의 차이일 뿐 두 정치체제가 가진 한계는 결국 같다는 말을 하려는 것임. 정도전은 성리학적으로 육성한 재상들이 왕과는 차별화된 도덕성을 가지도록 키워질 수 있다고 전제했지만 그들이 변질될때 현실적으로 어떻게 견제해서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인지를 다른 성리학자들이 지성과 양심 이외에는 제시하지 못했다고 생각함. 그래서 폭군도 성군도 나올 수 있다는 왕권정치와 같은 모순을 가졌다는 것 뿐임.
귀족정이 왕정보다 나으려면 귀족을 견제할 평민 세력이 있을때만 가능한데알다시피 조선은 평민의 정치세력화가 전무했고 정도전또한 이걸 허용할 생각이 없었음 결국 정도전이 꿈꾼 귀족정은 과두정의 폐단만 안고 갈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지 실제로 조선에서 백성이 살기 좋았던 시절은 왕권이 강할때였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와 글 ㄷㄷㄷㄷ 난 이 글에 공감한다 .... 내 생각은 그래 ㅇㅇ
난 삼봉이 꿈꾸는 정치는 귀족정치와는 다르다고 본다 오히려 안동김씨,풍양조씨 귀족가문 세도정치를 잉태한 군주는 왕권이 있던 정조였고 조선은 귀족이 아닌 사대부 선비의 나라야 특정귀족가문이 이끈 나라가 아니라고 봐 임진왜란이 터지고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도망갔지만 조선이 망하지않고 버틴건 평민들을 이끈 의병장들 선비들이 있었기에 조선 건국 주도세력 사대부가 조선을 계속 이어가게 한 측면도 있고 난 세종땜에 왕자의 난을 일으킨 태종의 결단을 지지하지만 삼봉과 태종의 정치철학의 중도노선을 세종이후 문종이 계속 꽃피우지못하고 수양대군에 의해 망가진게 아쉽다 그래서 태종.세조에 의해 미완으로 끝난 삼봉의 조선 설계가 흔들리지않는 완벽한 시스템으로 마무리되었다면 어떤 나라가 만들어졌을까 한편으론 궁금하네
나도 이글에 완전 공감한다 와 잘쓴다 멋지다
내 생각도 그래ㅋ 공감!!!
사대부의 나라가 서구의 귀족정과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차용한 이유는 민주주의가 서구에서 시작되었기에 일반적인 정치 체제 용어를 그쪽에서 가져올 수 밖에 없어 전란때 평민이 나라를 지킨것과 귀족관료에게 약하게나마 목소리를 내는 것은 조선의 경우 별개였어 결국 세금 내고 군역하고 목숨 바쳐 나라도 지킨 백성에게 아무런 권력도 나누지 않았기에
사대부정치는 왕정에서 한발 진보했다고 보기 어렵지
세도정치는 흔히 정조가 시작했다고하나 사실은 명나라가 망하고 중화로 상징되는 성리학의 세계가 붕괴되면서 등장할수 밖에 없었다고 봄 사상과 체제가 모두 성리학에 기반한 조선이 세계적 변화를 수용하지 못할거라면소멸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뛰어난 왕 영정조는 물론이고 세종이 살아 돌아 온다해도 별수 없었을거라고
삼봉의 정치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자리잡고 발전되었다면 대영제국을 건설한 영국의 입헌군주제처럼 장점을 발휘할 여지는 없었을까? 난 삼봉이 꿈꾸던 나라가 망가지는 결정타는 태종의 철학을 그대로 쫓아간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이라고 봐서 말이지 도덕적 대의명분을 잃고 권력욕만 가득찬 훈구세력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강력한 왕권을 지닌 세조의 등장은 장기적으론 조선을 망치는 시발점이라고 봐 성종이 다시한번 조선을 중흥할려고 사림세력을 불러들이긴했지만 교조주의적인 성리학파인 조선중후기의 선비들은 조선초의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의 활력넘치던 그 사대부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조선초 건국을 주도한 세력들,세종때 집현전 학자들 그 학풍이 사라진게아쉬워 형이상학적인 철학논리에 빠진 유학이라면 조선말 소멸은 예전된 수순이긴하지만
ㄴ 조선이 정치,경제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이유가 정도전파의 단절이라고 볼 순 없어. 정도전이 조선이란 나라의 틀을 잡긴했지만 그가 추진했던 정책중에 상업자본주의나 민주주의적 성격을 내포한 것이 없거든. 계유정난이후 집권한 훈구파가 권력적 야욕이 크다고 해도 그들의 사상적 노선은 오히려 사림보다 기존 관학파들과 더 유사하고. 조선망국은 성리학의 교조화에 있지
성리학의 교조화가 세조때문이라고 볼 수도 없을뿐더러 계유정난이 없이 단종이 계속 재위했을때 성군이 되었을지, 어린 군주의 유약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성년이 되서까지 허수아비였을지 그것은 알 수 없긴하지 역사엔 만약이 없으므로.
설민석이 그랬는데 조선초엔 그래도 개방적이고 괜찮은 신하들도 많았다 ㄹㅇ 관학파라고 세종문종대에 활약했던 신하들인데 이때까지만해도 괜찮았다 ㄹㅇ 근데 수양이 무리하게 왕욕심내고 망친거지
글이 진짜 콕 박힌다
정도전이 유학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니.. 참 오만하고 건방진 결론이네 왜이리 정도전은 과소평가 받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에 민본주의를 내세우며 사전을 혁파를 주장했지 유학자의 틀에갇힌건 정도전이 아니라 사전혁파를 반대했던 이색의 무리가 아니겠냐 이외에도 정도전의 업적은 말하기 입이 아플정도로 많지 조선의 기초를 거의 다 다져놨다해도 무방하다
개인적으로 정도전에 대한 이방원의 처사는 정말 옹졸하기 그지없다 생각함 정도전을 죽인것까진 서로 적대관계에 있었으니 이해한다해도 죽이고난뒤 개국공신의 시신을 무덤하나없이 처참히 버렸다는것과 정도전이 이룬 업적을 부정하며 극악한 역적으로 역사에 남긴건 정말 기가막힌 일이라 생각함
ㄴ 고작 사전을 혁파하자고 주장했다고 해서 유학자의 틀을 벗어났다는 생각이 더 오만하다. 그건 기존 유학자의 틀 안에서 약간의 기득권을 포기하는거지. 틀을 깬다는건 그런게 아니다. 사전혁파 뿐만 아니라 민본주의까지 주장해서 틀을 깼다? 이 글 서두부터 썼다. 민본주의는 절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잘 생각해봐라 국민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는다는게 듣기에는 좋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래서 백성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는 행동을 하는, 즉 주권을 행사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어디까지나 유학자를 포함한 기득권층이다.그래서 정도전의 민본주의는 결코 유학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거다. 그의 민본에서 백성은 지배층으로부터 위함을 받는 수동적 객체일뿐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는 능동적 주체가 아니다.
117.111이 다른 온건 사대부나 아니면 이방원을 포함한 왕권주의자들보다 정도전이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건 너의 자유임. 그리고 딱히 틀린것도 없음.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정도전과 비교하는 대상은 그의 정적들이 아니라 그 당시 시대의 프레임임. 정도전이 자신의 정적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이, 정도전이 시대의 틀을 벗어났다는 것까지 같이 의미하는 것인지?
중국 요순시대처럼 가족이 아닌데도 후계로 물려준다는 사상이면 혁명가로 인정해 줌 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