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는 1401년 송나라의 등문고를 모델로 만든 제도임.
태종은 당시에 '금부민고소'라는 법을 만들었는데 이게 백성들이 지방수령들을 고발못하게 한 법임.
그래서 지방수령들은 그 법의 쉴드아래 횡포를 일삼고 지방의 절대군주가 되어버림.
물론 지방통치가 제대로 안되니 지방수령들에게 전권을 주어 충성심을 유도하려고 하는 제도였으나
백성들 입장에선 억울해도 호소라도 할 데가 없음.
신문고가 설치된 곳은 의금부. 지금의 대검찰청격이라고 생각하면 됨.
그 당시 백성들에겐 무시무시한 곳에 설치되어 있던 것.
신문고는 아무나 치나?
한양거주백성 : 거주담당관청 → 사헌부 호소 → 사헌부 허가 → 의금부에서 심문 및 조사 → 신문고 침 → 쳐도 왕에게 보고 안함
지방거주백성 : 고을원님 확인서 → 거주지 도관찰사 확인서 → 사헌부에 확인서 제출 후 호소 → 의금부 조사 및 신문고 침 → 보고 안함
특히나 지방거주민인 경우 확인서 자기고을에서 일어난 억울한 일이기 때문에 확인서 떼주기 꺼려함
더구나 신문고를 칠 수 있는 억울한 일?
<역모, 살인, 친자확인, 정실인지 첩인지 구분, 양민인지 천민인지 구분>
심지어 신문고를 친다해도 결과를 보장받을 수 없고, 내용이 진실일지라도 위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엄벌에 처했음.
그래서 백성들이 신문고를 친 일은 거의 없었음.
신문고가 설치된 곳은 한양 뿐 지방민이 치려면 한달 이상 걸림.
지방민들이 한 번 치려면 거금의 여비가 필요함.
결국 무의미한 그림의 떡. 순전히 폼으로 만들어놓은 제도.
신문고는 주로 양반들이 쳤는데 토지나 노비의 소유권 쟁탈이었음.
태종은 백성을 끔찍이 생각했다. 하는 주장에서 신문고설치는 빼길 바람.
그래도 그당시 생각하는마음으로 실행한게 중요한거지
금부민고소가 뭔지 잘 모르겠어서 뭐라 못하겠네. 하지만 신문고는 제도화되는 단계를 거치지 못해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애시당초 신문고를 만든 이유는 아무데도 말할데없는 억울란 백성들을 위해 만들어준게 맞다. 한나라의 왕이 그런 시도를 했다는 건 중요하지.
백성구제의 신문고를 설립해 세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한 태종의 뜻을 꼭 이렇게 폄훼해야 하는지. 민의를 수렴하겠다는 건 태종의 시선이 백성을 향해 있엇다는 하나의 증표인데. 어쨋든 깍아내리려는 너의 의도가 분명하다 니 닉도 눈에 익고
당시 태종이 백성을 위한것도, 그에따라 민심이 태종을 향해 있던것도 사실이지
나도 육룡속 방원이가 좋은거지 실제 역사 태종은 시름...그냥 세종아빠.
빨간줄까지 쳐가며 정성도 넘치네~ 근데 비츄드삼
하난 알고 둘은 모르는구먼 비추나 쳐먹어라
역사적 사실을 알려줘서 고마워 더불어 역사 속 인물을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
니놈은 태종이 싫어서 안달났냐?
115.136 태종이 싫어서 안달났냐니 난 태종 비판하는 글 이게 처음쓴거고 갤에서 너무 태종이 명군이다 어쩐다 띄워주기만 하니까 쓴 글이다
모든 정책이 성공하기만한 왕이 어딨냐. 그것도 건국초긴데. 시도가 중요한거지
공들였는데 노공감이다. 비추나 먹어라
내가 쓴 금부민고소법의 진실이나 읽고와라
얘 말이 틀린 건 아님. 실제 신문고는 애민정책이라기보단 역모를 발고하려는 왕권강화용으로 설치한 쪽이지.
어렸을때 교육용만화 보면 태종과 세종이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답시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누구나' 북을 울리라고 만든게 신문고라고 써져있던데 ㅋㅋㅋㅋ 역시 거짓부렁 헬조선 ㅋㅋㅋㅋ
세종이 백성들 구휼한건 사실이다
이 글도 틀린말은 아님
복잡한 얘기까진 모르겠고, 신문고가 애초에 지방에서 몰래 역적모의 하는거 신고하라고 만든거지 무슨 억울한 백성을 위해 만든게 아니었음
좆선족 죤나많네씨발
저거 땜시 백성 생각했다는 게 아닌데. 실록 찾아보면 시골 백성이 궁안에서 길을 잃고 왕의 침전 앞에서 자고 일어남. 그 때 발각되서 죽을 뻔 한 걸 태종이 묵인해주고 그냥 봐줌. 이런 사례가 2 번. 아이들이 왕족 이름으로 놀면서 장난 치는 데 병사들에게 하옥됨. 이것도 그냥 풀어주고 봐줌. 숭례문 태풍에 부서졌을 때도 지난 해 백성들이 성 쌓는 일 해서 고생했다면서 군사들로만 동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