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고까지는 하긴 뭐하긴한데.
아직 몇번없었으니까.
근데 첫공주즘의 공연들은 내가 멘붕이어서 빼고
최근 유은 동은 공연들보면서 느낀게

초연에 은언니의 괴물노선은
앙리의 기억이 있을까? 그럴까??  하는 아리까리 함을 주면서도 확실하게 또다른 창조물 괴물로써의 자아가 가지는 애처로움이 있었거든. 그래서 초연 북극씬에서는 괴물을 앙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봤었어 마지막에  앙리라고 생각하고 보면 괴물이 너무 불쌍해지는것같아서..빅터는 앙리로봤는지 괴물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지막에 괴물이 앙리의 자아를 가진다면 괴물이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했었음.


또 전에 댓글 불판에선가 누가 난 괴물에서 '어젯밤 꿈속에서 꿈 꾸었네 누군가 날 안아주는 꿈을 '에서 누가 초연에는 빅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안아주는 사람이 까트린느일것같다고 그랬었는데 나도 초연에는 빅터라고 생각했거든 왠지 모르게 그럴것 같았는데, 재연에서는 까트린느 같더라고..

좀 횡설수설하는데
확실히 재연에서 앙리와 괴물은 확실히 좀 더 성장했달까.
초연에서 은앙리는 금사빠에 어리버리해서리 빅터에게 끌려가 휘말린 느낌이 좀 있었다면 재연에서는 오히려 자기 신념이 확고하고 그래서 빅터의 자극제나 지지자의 역할로써 단단함이 보여서 휘말린다기보다는 오히려 빅터가 친구의 죽음으로써 파국으로 휘말려 들어간 느낌이 들었어.
괴물한테 앙리의 인격이 굉장히 완벽하게 들어서는 느낌(까트와의 대화 중에..)이 강해서.. 빅터한테 앙리가 복수하는 느낌이 좀 있었어..
앙리가 빅터와 같은 꿈을 공유했을때 그림과 자기가 괴물이 되어서 당한 현실은 너무 그 결과가 달랐기에 분노가 더 커진 느낌.
앙리의 자아가 모호하고 괴물자체로써의 자아가 강했던 초연 은괴의 난 괴물에서 '안아주는 누군가'는 진짜로 누군가(창조주.. ?) 였다면 재연에서 은괴한테 '안아주는 누군가'는 자기한테 처음 관계 맺음을 알려준 까트린느 같았음.

그래서 초연 후회에서 숲속의 우는 어린아이는 진짜로 길잃은 아이(살아있는)한테 괴물이 빅터및 자기한테 다가온 현실 속 인간들에 대한 상처가 투영되어 살해당하는 존재라면. 재연 어린아이는 괴물이 빅터의 어린시절을 상상하는 장면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음...

북극씬은 나는 정말 여러모로 재연 은앙리 은괴물이  스토리상 짜임새있고 좀 더 구조적이어서 좋기도 한데 특히 북극씬때문에 더 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 좋음.
앙리로써 괴물이 창조주로써 실패한 빅터를 복수하는 결말이 좋아...  
자기가 죽을때는 빅터가 자기한테 보여준 미래, 실험에 헌신하는 마음이었는데 다시 태어나보니 괴물에게 창조주는 정말로 실패한 인간이었음. . 자기가 공유한 미래도 아니었음... 그래서 괴물이지만 앙리로써 복수한 느낌이랄까.. (설명이 잘안되지만...)
자기 필요한대로 그리쳐를 앙리라고도 불렀다가, 괴물로도 불렀다가! 하는 기회주의자같은 이기적인 인간성에 철저하게 복수하는...

그래서 저번 동은 북극씬 마지막이 좋았던게
(모든걸아는 앙리가)  복수심과 두려움에 정신이 나간빅터를 깨우듯이 빅터~~빅터~~빅터~~  하고 부른것같아서 좋았어...  

여하튼 이번 은언니 앙리, 괴물 노선은 앙리의지가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 난 좋아... 그냥 표면적인 캐릭터에 호소하지않고 한번 더 꼴 수있어서...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