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한마디 고백하자면,
나는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아.
아예 드라마에 홀릭하는 것이 근 몇 년 만. (리뷰도 18회에 처음 썼잖아.)
그래서 최근에야 오프닝을 보았어.
그리고 오프닝에 굉장히 많은 상징을 담고 있구나 생각을 했지.
그 생각을 잠시 갤러들과 나눠 볼까 해.
(솔직히 갤 분위기 때문에 마음이 좀 무겁기는 한데,
이런 때일수록 조금씩 여유를 갖는 게 필요하다 싶기도 하고.
그냥 편한 마음으로 읽어 주라. ^^)
음, 육룡 오프닝에 보면 여섯 주인공이 소개되면서 먹그림이 깔리지.
그 그림이 저마다 다른데 모두 알고 있듯 이성계와 이방원은 용,
정도전은 사슴, 분이는 잉어, 땅새는 매, 무휼은 호랑이 그림이 떠.
그리고 이 동물들이 각자 상징하는 의미가 인물들과 딱 맞아떨어지지.
제목을 붙여 보면 아마 이렇게 될까?
1. 두 마리의 용, 이성계와 이방원
2. 풍요와 따뜻함, 잉어 분이
3. 거대한 힘, 호랑이 무휼
4. 빠르고 날카롭고 강하다, 매 땅새
5. 태평성대의 수호자, 사슴 정도전
재미있는 것은 잉어나 호랑이, 매, 사슴도 사실은 모두 용이라는 거야.
아니, 정확히는 용을 이루는 구성 요소라고 할까.
용이 원래 상상의 동물이잖아.
그래서 최강의 동물 용을 상상하면서 옛날 사람들은,
지상에 사는 최강의 동물 아홉 마리의 생김새를 갖다 붙이지.
그 아홉 마리 중에 사슴과 매, 잉어와 호랑이가 들어가.
중국의 고서 <광아(廣雅)>에 그 이야기가 잘 나와 있으니 옮겨 볼게.
......용은 비늘 달린 동물의 우두머리로 그 모양이 아홉 마리 짐승과 닮았다.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
말하자면 저 동물들은 저마다 상징하는 게 있으면서(풍요나 힘, 태평성대 같은),
또한 저 동물들이 다 함께 모여야 비로소 ‘용’이 되는 거야.
나라에 임금뿐 아니라 정치가, 백성, 검객...... 등등이 다 필요하듯이.
저 육룡이 다 모여야 비로소 ‘조선’이라는 나라가 건국되듯이.
이 “부분이면서 전체”인 용의 의미는 아주 중요한데,
나중에 좀 더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동물들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하나씩 알아볼까?
1. 두 마리의 용, 이성계와 이방원
용은 당연하지만 ‘임금’을 상징해.
흔히 임금의 옷을 용포, 임금의 얼굴을 용안,
임금이 앉는 의자를 용상 등등으로 부르는 것도,
다 용이 임금을 상징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지.
이성계와 이방원 또한 훗날 조선의 태조와 태종 임금으로,
이 두 사람의 배경 그림이 용이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오프닝에서 깔리는 부위(?)가 다르다는 거야.
이성계는 용의 몸통 부분이 배경으로 깔리고
이방원은 용의 머리 부분이 배경으로 깔리지. (아래 그림 보여?)
이성계의 용은 머리가 잘린 채 아래턱부터 몸통과 갈기가 주로 나오고
이방원의 용은 머리 부분만 덩그러니 나오는 거 보이지?
이건 아마 두 사람의 차이를 보여 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어.
이성계는 ‘몸’으로 싸우는 무인이지.
평생을 변방을 떠돌며 장군으로 전쟁터를 누벼 온.
신궁 소리를 들을 만큼 활의 대가이고.
드라마 속 성격 또한 우직하고 강직한 딱 무인답지.
이에 견주어 이방원은 ‘머리’가 좋은 지략가에 가깝지.
무인 집안의 아들이지만 일찌감치 성균관에서 공부했고, 과거에도 급제하는 문인이야.
거기에 타고난 카리스마와 배짱이 더해져 드라마에서는 대단히 센 캐릭터.
심지어 나중에는 아버지와 형제까지 뛰어넘는 절대 지배자의 위용을 선보이잖아.
한마디로 같은 임금, 다른 성정.
끝까지 원칙을 지키려는 철저한 무인 이성계.
원칙보다는 실리를 따라 움직이는 야망의 화신 이방원.
그래서 아버지 이성계에게 우직한 용의 몸을,
아들 이방원에게 계책에 능한 용의 머리를,
그렇게 나눠서 배경 그림을 준 것이 아닐까?
두 마리의 용,
두 명의 임금.
그렇게 같은 듯, 그러나 전혀 다른 두 사람.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2. 풍요와 따뜻함, 잉어 분이
잉어는 예로부터 풍요와 복의 상징이었어.
옛날 사람들이 가족의 행복이나 안락함, 자손이 많이 태어나기를 바랄 때
잉어 그림을 그려서 선물하는 것도 바로 잉어의 그런 상징성 때문이야.
풍요로움, 따뜻함, 안락함, 행복...... 그 상징이 잉어지.
하지만 동시에 잉어는 힘든 과정을 뛰어넘는 용기와 슬기를 뜻하기도 해.
‘등용문’이라는 말 알지?
스타의 등용문, 신인 작가의 등용문. 이런 말 할 때 자주 쓰는.
중국 황하에 ‘용문’이라는 아주 거칠고 험한 폭포가 있는데,
아주 드물게 용감한 잉어가 이 거센 물살을 헤치고 상류로 뛰어오른다고 해.
그 순간 잉어는 그저 평범한 잉어에서 하늘을 나는 당당한 용이 된다지.
그래서 힘든 관문(용문)을 헤치고 크게 이름을 떨칠 때, 등용문이라는 말을 써.
평범한 잉어가 거칠고 위험한 폭포를 뛰어넘어 마침내 용이 되듯,
평범한 백성이지만 그 똘똘함과 씩씩함으로 당당히 육룡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분이.
분이에게 이만큼 맞는 상징 동물도 없겠지?
솔직히 요즘 분이 캐릭터가 좀 아슬아슬하다 싶기는 해. ㅠㅠ
나는 분이가 분이대장으로 똘똘하게 움직이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해.
다만 그것을 그리는 방식에서는 살짝 한숨이 나오는 것도 사실.
뭐랄까, ‘분이’대장을 그려야 하는데 분이‘대장’을 그리는 느낌?
본바탕인 백성 분이는 숨어 버리고, 겉모습인 분이 대장만 남은 느낌?
정작 중요한 것은 ‘백성’ 분인데, ‘대장’ 분이의 활약이 너무 도드라져서 오히려 백성을 가리는 느낌......
그래서 참 아쉬워.
역사의 진짜 주인인 백성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그 백성을 대장으로 만드는 것으로 의미를 찾다니.
분이는 대장이어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잖아. 백성이어서 의미가 있는 거지.
‘분이’대장이어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분이‘대장’이어서 의미가 있는 게 절대 아니라고.
바로 그 지점을 드라마에서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그래서 바로 그 부분이 어떻게든 고쳐졌으면 좋겠다 싶어.
아마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니라 진심 어린 비판과 충고겠지.
잘못은 상처와 같아.
상처가 난 곳에 소금을 뿌리면 쓰리고 아프지.
하지만 상처에 약을 바르면 아픔이 그치고 상처가 낫잖아.
비난과 비판의 차이도 그런 게 아닐까?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같지만 그 뒤에 소금을 뿌리느냐, 약을 바르느냐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가 만들어 내는 결정적으로 다른 결과.
(소금이냐 약이냐에 따라 상처가 낫거나 더 아파지는 것처럼, 드라마 또한 나빠지거나 더 좋아지거나 하겠지.)
그러니까 비판은 하되 비난은 멈추자.
잘못은 지적하되, 그 지적이 드라마에 짜디짠 고통이 아니라 부드러운 약이 되도록.
진심을 담아 제대로 짚고 묻자. 그래서 정말로 멋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가 되도록.
거센 폭포를 헤치고 평범한 잉어가 비범한 용이 되는 까닭은,
그 잉어가 엄청나게 힘이 세다거나 머리가 좋다거나 재능이 많다거나 해서가 아니야.
폭포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의지’ 때문이지.
평범한 분이가 비범한 육룡의 하나가 될 수 있는 까닭 또한,
능력이 뛰어난 대장이어서가 아니라 평범해도 절대 기죽지 않는 용기와 의지 때문이지.
(“살아 있으면 뭔가를 해야 하잖아요.” 대사를 생각해 봐.)
대장 분이어서가 아니라 백성 분이어서 가능한, ‘평범함’ 속의 “위대함”이랄까?
이제껏 나왔듯 죽음의 칼날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용기,
이서군 사람들이나 오라버니 땅새에게 나눠 주는 따뜻함.
삼봉이 일을 맡길 만큼 타고난 똘똘함과 영리함.
이 모든 평범하지만 긍정적인 백성의 천성을 갖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분이야.
‘대장’ 분이가 아니라 ‘백성’ 분이가 갖고 있던 그 본래의 따뜻함과 용기를 되찾는다면,
분이라는 이 평범한 소녀가 어째서 당당히 육룡의 한 명이 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드라마가 거친 폭포를 거슬러 진짜 용으로 나르샤 하는 등용문의 순간을 기다려 주자고. (이제 22회 왔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에게 복을 나눠 주는 따뜻함의 상징, 잉어잖아. ^^
분이, 아니, 잉어 복 받아~~~.
PS.
글이 길어져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뒷부분이랑 결론은 마저 써서 내일 가져올게.
그런데 별로 아무도 안 궁금하려나? 음........
그런 의미에서(응?) 다시 제목 투척!
1. 두 마리의 용, 이성계와 이방원
2. 풍요와 따뜻함, 잉어 분이
3. 거대한 힘, 호랑이 무휼
4. 빠르고 날카롭고 강하다, 매 땅새
5. 태평성대의 수호자, 사슴 정도전
참고로 내가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가 집중된 편은 제5편 사슴이닷!!!
오 글 좋다 궁금하다 나머지도 부탁한다 - DCW
잘읽었어 이런글 좋다
야 재밌게 잘 썼네. 추천때리고간다
횽 리뷰 너무 좋다 구구절절 다 공감하고 있어 이런 바탕을 좀 섬세히 표현했으면 좋겠다ㅠㅠㅠ
잘봤어 사슴 삼봉선생편도 기대기대^^
진짜 오프닝 하나가지고 이렇게 상세하게 분석해낸게 대단하고 분석해낸 내용이 전부 일리가 있네. 육룡 사극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잉어에 풍요말고 슬기도 있구나 배우고 간다 - DCW
안그래도 아까 오프닝보면서 동물들 뭘 의미하는걸까 생각하던 차였는데 좋다 진짜 다음편도 기다림 ㅋㅋ
와 좋다 대근이도 감동받음
글 좋다
이 리뷰 너무 좋은데.내가 놓친 부분인데 덕분에 알게되서 고마워.
재밌게 읽었어 다음편도 기다림!
좋은 감상글 잘 읽었어 분이에 대한 내용도 공감이 간다 육룡작가들이 이 글 꼭 봤으면 좋겠네 작가들땜에 분이가 많이 욕먹기도했구
정말 작가들이 봤으면 하는 리뷰네
대근이도 이글보고 감동먹고 갑니다. 새벽이슬같은 완장대장님보다 훨씬훌륭한분이시네요. 분이까고도 욕 안먹는 글은 처음입니다 존경합니다!
리뷰 대박이다. 완전.
리뷰가 아니라 작가의 복심 수준이네 문제는 현재 스토리 라인 구체적인 대사 연출 편집 모두 리뷰어가 보고 싶은 것의 절반도 못 그리고 있다는 거 육룡에서도 이런 수준의 리뷰가 나오는구나 감동적이야ㅋㅋ
횽 댓글 정리 좀 해줘...이 좋은 글에
와...작가한테이글보여주고싶네 이글은 대근이들도 공감하겠다 평범했던소녀분이 잠시잊고있었는데 그때참좋았지
이런 글만 올라왔으면 좋겠네
필력 쩔고 분이에 대한 모종의 불편했던 감정을 가장 명백하게 표현해준듯 ㅇㅇ 보자마자 이거지 싶었다. 다음 편도 기대할게
김박 몰아내고 니가 작가해라. 차라리 그게 나을듯.
헉 좋다
다른 분들도 이렇게 적어주시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다음 글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잘봤어. 다음 편도 기다릴게
정작 중요한 것은 ‘백성’ 분인데, ‘대장’ 분이의 활약이 너무 도드라져서 오히려 백성을 가리는 느낌......이게 핵심인듯. 좋은 글 고마워.
굿!!!
이건 따로 저장해놓고 보고 싶은 글이다.... 다음편도 기대할게. 그리고 작감이 이글 꼭 봤음 좋겠음
매우 고급진 리뷰다 횽아 수준급의 글이야 고마워 많이 배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