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자둘이었는데 자첫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전부 보이면서 대사 하나, 장면 하나 전부 이해가 갔어. 왜 다들 이 극을 그렇게 애정했던건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이었어. 다가오는게 너무 많았고, 덕분에 진짜 많이 울었던거 같아. 이미 자첫 후기를 길게 써서 자둘은 그만둘까 했는데, 안 쓰기엔 너무 좋은 극이라.


일단 먼저, 자첫때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가서 놓쳤던 부분인데, 몰리나는 처음부터 발렌틴의 정보를 얻어내려고 수감되었던게 아니더라구. 나는 처음부터 몰리나가 목적을 갖고 발렌틴과 함께 수감된건줄 알았는데, 초반의 몰리나는 그런게 아니었어. 정말 둘이서 그냥 심심해서 영화얘기를 하게 됐던거고, 그래서 몰리나가 발렌틴의 여자친구 얘기에도 거리낌 없이 즐겁게 들었던거였어. 그러다가 죽을 먹고 아파한 씬부터 시작해서 그 이후로 몰리나가 발렌틴의 이야기를 듣는걸 꺼려하게 되는데 그때 발렌틴의 정보를 빼오라는 제의를 받은거구나, 싶더라. 그 미묘한 연기를 명행몰리나가 너무 잘 보여줬어. 초반에는 그냥 밝기만 한 몰리나였는데, 그 씬 이후부터는 신경질적이고, 불안해하고, 때때로 솟아 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하는 몰리나가 보이더라구. 그게 이해 되니까 몰리나의 행동이 이해가 되면서 감정선을 따라가기 좋았어.


자첫때는 멀리서 봐서 그런지, 아니면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잘 몰입을 못하는 나 때문인지. 사실 발렌틴이 고문때문에 아파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한다는걸 눈으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잘 이해 못했거든. 어차피 발렌틴의 일이고, 나랑은 상관없고. 근데 가까이서 보니까, 고문에 그렇게 아파하는걸 보니까. 발렌틴의 그 히스테릭함과 가끔은 미친놈 같았던 성격까지 다 이해가 되더라. 얼마나 끔찍했을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하루하루 죽음에 다가간다는 그 느낌이 무엇이었을지. 그 안에서 오직 신념만으로 하루를 버티던 발렌틴에게 몰리나가 얼마나 간절하며, 동시에 거부해야 했던 존재였는지 까지. 자신에게 조금씩,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 몰리나를 발렌틴은 견딜 수 없었겠지. 너무나도 기대고 싶은 마음과 그래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발렌틴을 괴롭혔던거 같아. 그래서 몰리나를 받아들이다가도 어느 순간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몰리나를 상처입히고.


두 인물 모두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워하는게 보여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 하지만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둘은 어찌할 수 없이 서로에게 이끌려. 몰리나가 바지에 실례한 발렌틴에게 마지막 셔츠, 휴지, 티백까지 내어준 후에 발렌틴이 가장 먼저 한 말이 바로 앞으로 뭐든지 함께 나누자는 거였어. 그 뒤로 발렌틴은 자신에게 온 편지도 함께 나눠 읽고, 몰리나가 그의 이야기를 하면 자신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했어. 몰리나가 고맙다 그러면, 발렌틴도 몰리나의 눈을 바라보며 꼭 고맙다고 이야기 했고. 발렌틴은 몰리나를 한명의 동등한 사람으로 대해준거야. 감옥에서조차 발렌틴의 정보를 빼오는 도구 취급을 받아야 했던 몰리나를 동등하게 대해준 단 한사람이 발렌틴이었던거지.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마음을 여는건 너무나 당연했고, 그렇게 따듯한 몰리나에게 발렌틴이 마음을 여는 것 역시 당연했어.


발렌틴의 편지를 몰리나가 대필해줄때, 그 내용은 전부 그가 혼자라고 느끼고, 외롭다는 이야기들 뿐이었어. 아마 발렌틴도 점점 몰리나에게 이끌리는 마음이 생겨났을거야. 동등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그렇게 보게 된 몰리나는 너무 다정하고 따듯한 사람이었으니까. 그치만 발렌틴은 그를 거부하기라도 하듯 히스테릭하게 화를 내고 자신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보이지. 혼자라고 느껴져 외로워. 그때, 몰리나가 한 행동은 그가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등을 닦아주는 거였어. 그런데 어떻게 마음을 열지 않고 배기겠어. 아마 그 다음씬에 케이크 던지면서 폭발했던건, 이미 몰리나가 없으면 감옥생활을 견디기 힘들어진 나약한 자신과 몰리나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때문에 그런게 아니었나 싶어. 그 마음을 더 확실하게 보여준 부분이, 몰리나가 감옥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했을때 발렌틴의 반응이었어. 마르타를 생각했을 때처럼, 머리를 아파하며 더는 생각하기를 관두지.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 듯, 발렌틴에게는 이미 몰리나도 그렇게 여겨지고 있었던거야. 


그 이후의 씬들은 자첫때 느꼈던 것과 같고 비슷한 후기가 될까봐 생략할게. 다만, 마지막 표범여인에 대한 몰리나와 발렌틴의 대화가 잊혀지질 않아. 난 이게 너무나도 사랑고백처럼 들렸어. 몰리나가 표범여인이 된다는건 끔직하다고, 누구에게도 키스를 할 수 없고 받을 수 없다고 하잖아. 난 이 키스가 사랑을 뜻한다고 생각했어. 누구도 사랑할 수 없고, 사랑받을 수도 없는. 그래서 몰리나가 자신을 표범여인처럼 생각하니까 발렌틴이 그래. 넌 표범여인이 아니야. 거미여인이야. 꼭 넌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고, 누구에게라도 사랑받을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그래서 발렌틴의 그 말에 몰리나가 그렇게 울었던 건가봐. 그리고 그렇게 나눈 두 사람의 키스는, 거미여인의 키스는, 마치 사랑한다는 말을 대신하는 것 같았어. "거미여인의 키스" 극 제목이 왜 그렇게 되었던건지 알겠더라.


마지막에 서로는 서로를 평생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않았을까. 몰리나는 자신이 감옥을 나가면 발렌틴이 다시 고문을 받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고, 몰리나가 가석방인 상태로 자신의 메세지를 건내는게 위험하다는 것쯤 발렌틴도 알고 있었을테니까. 영영 마지막인 두 사람의 이별에, 떠난 몰리나를 그리워하듯 울던 발렌틴 덕분에, 정말 많이 울었던거 같아. 

 

선렌틴과 명몰리나는 처음 봤는데, 둘이 잘 어울리까 싶었던 걱정이 부질없었을 정도로 정말 잘 어울렸어. 사실 가장 원작에 가까운 나잇대이기도 했고. 발렌틴의 이상을 꿈꾸는 젊음, 그러나 동시에 그것에 버거워하는 나약한 부분을 선렌틴이 잘 보여줬고, 명몰리나도 그것을 다정하고 따듯하게 품어주었고. 둘 조합 진짜 좋았던거 같아. 내가 자둘때 많은 부분이 마음으로 다가와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가장 원작스럽게 느껴졌던 공연이었던거 같아. 정말 다시 생각해도 너무 좋고.. 아, 뭐라고 말로 다 표현을 못하겠다. (라고 했지만 이미 구구절절 너무 길게 써놨네ㅋㅋㅋㅋ)


아 글고 플북! 오천원인데 진짜 좋던데? 인터뷰도 있고, 대사가 중간중간 써져있기도 했고. 진짜 퀄 좋더라! 플북에 써져있는 대사보면서도 눈물 펑펑나서 혼났어. 자둘자막하려고 표 안잡아놨던 과거의 나새끼 무릎꿇고 반성했으면.... 그리고 나 반성하듯 신연아트홀도 좀 반성했으면... 농담아니고 나 진짜 엉덩이 반으로 갈라지는 줄 알았어... 1열이라서 발 뻗기도 눈치보였는데 나중에 가서는 고통에 극 휘발될까봐 그냥 다리 뻗고 봄... 진짜 신연아트홀 인간적으로 반성해주라.... 그리고 관크들도 마찬가지로 반성 좀.... 오늘 웃음관크는 괜찮았는데 부시럭관크와 벨소리관크.... 하.... 마무리는 다 같이 반성하는걸로.....ㅠㅠ



아무튼 거미여인의 키스 진짜 최고야! 너무 좋은 극을 봐서 행복하다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