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드라마 빛길로 3-0 후기.

이미 어제가 됐지만, 초대권으로 보고 왔어. 초대해줘서 정말 고마워.
사실 후기를 쓰기 전까지 정말 많이 고민했어. 후기의 대부분이 쓴소리일 것 같았거든…
그래도 초대해준 이유가 이런 후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거라고 생각하니까, 나도 최대한 솔직하게 써 보도록 노력할게. 보기 불편하더라도 이해해 줘…

일단 내용은 간단해. 빛길로라는 카페가 있고, 이른 새벽 그 카페에 소리, 란, 슬아 세 명의 여자가 모이게 돼. 이 세 명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고 그 에피소드가 나열되는 방식으로 극이 진행되는데, 슬아가 술에 취해 들어와 하소연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이 됨. 한 명 에피소드 들어갈 때 암전되고, 에피소드 끝나면 암전되고 나서 다시 카페로 돌아오고, 카페 장면 끝나면 다시 암전되면서 다른 에피소드 시작되는 방식이 반복돼.


1. 슬아 에피소드

슬아 이야기의 키워드는 리플렛에도 써 있듯이 ‘사랑’이야. 슬아는 학창 시절에는 그녀의 몸만 노리고 접근하는 남자에게, 직장을 다닐 때도 그녀에게 가볍게 접근한 남자에 의해 버려진 경험이 있어. 그 남자들에게 항상 진심이었고 온 사랑을 바쳤던 슬아는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변해 버리지. 그래서 그런 슬아를 어린 시절부터 바라보며 좋아해 왔던 소꿉친구 범수가 그녀에게 고백했을 때도 너마저 가짜로 변해 버리는 건 싫다며 거절해. 그렇게 범수 곁을 떠나지만 그 후에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 준 남자를 알아보지 못했다며 미련을 갖고 후회하는 게 슬아 에피소드임.

근데 이 에피소드의 큰 문제는 슬아의 감정이 안 보여. 범수는 슬아를 계속 지켜보는 모습이 비춰지고, 솔로 넘버에서도 슬아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절절하게 고백하는데 슬아는 그냥 남자들과 함께 있다가 배신당하고 버려지는 게 다임. 심지어 버려지는 부분에서 슬아가 괴로워한다거나 그런 모습도 안 보이고 그냥 대사로 끝나.

학창 시절 부분에서는 학교 친구들이 야 ㅇㅇ 새 여친 생겼대~ 그럼 슬아는 나가리인 거지~ 이런 식으로 표현한 후에 그 구남친이 범수의 전화를 받고 나 걔랑 깨졌다? 튕기더니 별거 없더라(ㅂㄷㅂㄷ) 이런 식으로 몇 마디 말하는 게 다임. 직장에 다닐 때는 어떤 대리가 프로포즈까지 했다가 파혼을 하게 되는데, 그 상황도 어둠 속에서 반지 버리는 실루엣 보이는 거랑 나중에 범수한테 나 박 대리랑 파혼했다고 불쌍하게 보냐는 식으로 얘기하는 걸로 퉁임. 저 반지 버리는 모습이라도 좀 어두운 조명으로라도 비춰 주면 좀 좋았을까 싶긴 한데…. 여튼 그래서 슬아가 왜 갑자기 범수가 진정한 사랑이었어! 이렇게 얘기하는지 그 감정의 흐름이 중간에서 끊겨 버린 느낌이야. 뭔가 그 사이에 슬아가 범수의 소중함이라거나 범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한 거 같은데 그게 빠져 버린 느낌.

정리해서 말하자면 범수의 시점에서 극을 보게 돼서 슬아한테 감정 이입이 안 됨. 범수가 나와서 하소연해야 될 거 같은데 말입니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범수 역 배우의 연기가 가장 좋았어. 가장 몰입되는 연기였고 노래도 좋았음. 전체 넘버들이 대체적으로 인디밴드 가요 느낌이라 다 무난무난한데 요 넘버가 좋기도 했고 노래도 잘하더라. 눈물 그렁그렁해서 사랑한다고 얘기하는데 그게 슬아한테 직접 하는 고백도 아니고 슬아 모르게 하는 혼잣말 같은 거라 더 짠함.

그리고 슬아의 학창 시절 남친의 대사가 몹시 진부하고 싫었어. “사랑하니까 안고 싶은 거야” 이 난리 치면서 슬아랑 자려고 꼬시는데 진짜 보면서 너무 싫더라. 근데 이 부분에서 넘버가 등장하는데 랩+보컬임. 랩으로 막 성춘향과 이몽룡은 열여섯에 사랑을 했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열넷에 목숨을 걸었는데 우리는 열여덟이다 뭐 어떠냐 막 이런 얘기를 하는데 멜로디가 참 경쾌해서 난 순간 얘네 둘이 잘되는 줄 알았음; 마치 겨울왕국의 Love is an open door을 들으며 느꼈던 그 기분…. 이 왕자가 설마 배신을? 같은… 그런데 저러고 나서 저 구남친이 슬아 손에 키스하면서 롬앤쥴의 순례자 대사 해서 나도비곰은 지뢰를 밟았다. 노래 자체는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그 상황이 참 별로였어.


2. 란 에피소드

두 번째로 란 이야기의 키워드는 ‘모성애’임. 란은 보육원에서 자라났는데, 거기에서 후원자에 의해(확실하게는 안 나오는데 아마 그런 거 같아, 막 후원자님이 란한테 잘 해주네~ 이런 식의 대사 나오고 상황 나오고 그러니까) 임신을 하게 돼. 주위의 시선은 싸늘하고 후원자는 애 지우라고 하는 상황에서 란은 도망쳐나와 미혼모로 혼자 아이를 기르게 됨.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남의 분식집에서 청소하고 장사하면서 살게 되는데 아들은 그 와중에도 공부 야무지게 해서 외고 입학도 함. 근데 분식집 사장이 임신한 부인 몰래 란한테 집적거리다가 란을 겁탈하려고 해. 그런데 그 상황에 딱 아들인 현이 들어와서 사장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되고, 확실히 나오진 않지만 그걸 시작으로 미혼모 가정인 자신들에 대한 편견과 조롱에 폭력으로 맞서게 되면서 결국 현은 폭력사건으로 소년원에 들어감(!) 물론 란이 이 이야기를 하는 시점은 이미 소년원에서도 나오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긴 하지만 여튼 이렇게 란 에피소드 끝.

일단 이 에피소드에서, 그리고 더 크게는 이 작품에서 불편한 점은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남자 악역이 너무 많이 등장해. 슬아 에피소드에서 학창 시절 남친이 그랬고, 란 에피소드에서 그 후원자랑 저 분식집 사장도 그렇고, 이후 소리 에피소드에서도 기획사 대표가 좀 수상쩍음. 여자 셋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꼭 이런 악역만 등장해야 하는 건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지만 보기에도 불편하고 왜 굳이 이런 소재를 사용했어야만 했나 싶어. 현이 엇나가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면 그냥 그 사회적 편견들에 의해 삐뚤어져도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란 역할의 배우 얘기를 해보자면, 모든 배우들이 멀티 역할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 배우는 참 움직임도 좋고 연기도 찰져. 특히나 이후 소리 에피소드에서 소리네 셋집 주인으로 나오는데 그 연기가 일품임. 그런데 이 란 역할을 할 때의 연기는 조금 아쉬워. 초반에 대사 같은 걸 보면 란이 약간 정신적으로 모자란 역할인 거 같거든? 배우의 대사 톤도 그것에 맞춰져 있고. 하지만 뒤로 갈수록 톤이 약간 오락가락해서 란이 진짜 모자란 건지 아니면 초반에만 그랬던 건지 모르겠어. 란 캐릭터를 종잡을 수가 없다는 느낌이야. 개취로 캐릭터를 조금 더 일관성 있게 연기해 주면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넘버로 치면 강원도에서 처음 자립했을 때 되게 희망찬 넘버가 나와. 주위 사람들도 란에게 호의적으로 대해 주고 란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느낌의 넘버인데, 란 주위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춤추고 노래하는 신나는 넘버야. 그런데 이후에 사람들이 미혼모라는 사실을 알고 태도가 확 바뀌었을 때도 똑같은 넘버가 나와. 이 때는 란 혼자만 춤추고 노래하고, 주위 사람들은 란에게 차례로 비수 같은 말을 꽂고 사라져 버림. 그래서 신선한 연출은 아닐지언정 앞 부분이랑 잘 대비되면서 란의 처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연출이라고 생각해서 괜찮다고 느꼈어.

하지만 중간에 갑자기 분위기가 어둡게 바뀌면서 뒤에서는 다른 배우들이 입으로 화음을 맞추면서 반주를 깔고 란이 이게 현실이다, 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거든. 이 부분에서 화음이…좀 잘 안 맞았고, 연출 자체도 쌩뚱맞다는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현 역할을 맡은 배우도 이 역할이 제일 아쉬움. 노래할 때 발성은 좋은 거 같은데 표정이 다양하지 않아서 조금 몰입이 힘들었어. 이 배우가 슬아 에피소드에서 슬아 학창 시절 구남친인데, 거기서 캐릭터를 더 잘 살린 거 같아. 진짜 때리고 싶었거든… 이후의 소리 에피소드에서도 소속사 대표로 나와서 그 연기도 정말 코믹하게 잘 살리던데, 이 현 역할에서는 현이 겪는 고뇌나 슬픔을 잘 볼 수가 없었어.


3. 소리 에피소드

이제 소리 에피소드인데, 이 이야기는 란의 이야기를 들은 소리가 란에게 우리 부모님도 정말 뭐 저를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서 시작됨. 소리 에피소드는 앞의 두 에피소드에 비해 뭔가 짧다고 느껴졌는데 왜인지는 모르겠다. 실제로 짧은지는 시간을 안 재 봐서. 여튼 소리 에피소드의 키워드는 ‘꿈과 청춘’임. 가수가 꿈인 서른 살(확실치 않음) 소리는 열심히 거리공연도 하고 하긴 하는데 별 성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 상태임. 그리고 그런 소리를 아빠는 탐탁치 않게 여기고 그 꿈을 접길 바라고, 소리는 그런 아빠에게 반발하지. 하지만 소리 엄마는 소리가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도와주려고 하면서 감싸줘. 소리 엄마가 몸이 안좋아져서 수술하는 날 소리와 아빠는 그런 식으로 부딪치게 되고, 그 상태로 소리는 서울로 올라오게 됨.

이 이야기는 정말 현실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진부해. 소리 아빠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어떻게 사냐고 하고, 그냥 공무원 준비나 하면서 나중에 취미로 음악을 하라고 해. 소리는 그렇게 살 수 없다고 하고.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소리가 어릴 적 좋아한다고 했던 빵을 계속 사다준 건 아빠였다, 하는 식으로 아빠는 소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줌. 여기서 소리 역 배우가 가수 역할이니만큼 목소리도 꾀꼴하시고 노래도 잘하시는데 고음이 약간 아슬아슬함. 그래도 들으면서 좋았어. 근데 아빠와의 듀엣은 아빠 가사가 잘 안들리는 게 아쉽더라. 슬아 역 배우가 여기서 엄마로 나오시는데 개인적으로 이 연기가 더 좋았어! 포근한 엄마 느낌 잘 살리시더라. 아빠 역 배우도 좋았고.

근데 여기서 정말 대반전인 게 나옴.
(보고 싶지 않은 횽은 맨 밑으로 쭈욱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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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세 사람은 이미 다 죽은 상태였던 거지. 슬아는 자신의 영정사진을 들고 허망하게 앉아 있는 범수 옆에서 사랑의 고백을 하고, 란은 번듯한 사회인이 되어 있는 아들의 연설을 듣고, 란은 아빠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이렇게 마무리가 됨.

도대체 이 반전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 극의 시놉시스에 보면 이 극이 사랑했던, 사랑하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고, 극의 흐름 자체도 그 사랑을 계속 부각시키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이 사람들이 서로에게 공감하고 위로를 받은 후 현실로 돌아가 다시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물론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지라 놀라긴 했는데 그게 긍정적인 놀라움이 아니라 좀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마지막 마무리가 아쉬웠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뭔가 힌트가 있었나 싶기도 한데 잘 기억이 안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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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슬아 에피소드랑 란 에피소드 사이였나, 란 에피소드 들어가기 직전이었나 그 즈음에 갑자기 이벤트가 한 번 있어. 들어갈 때 응모한 거 뽑아서 선물 주는 거랑 퀴즈 하나 있는데, 공연 올릴 때 배우들 옷 갈아입을 시간을 도저히 확보를 못해서 그 시간을 벌기 위해 이벤트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 근데 딱히 뭐 거슬리진 않고 그냥 웃으며 지나갈 만 했어. 아 그리고 카페 컨셉이라서 들어갈 때 믹스커피나 원두커피 중 하나 선택해서 마실 수 있어! 물론 안 마셔도 됨.

또 오늘 계속 마이크가 지직거리고 음향사고가 좀 많았는데, 그걸 해결하려고 되게 분주히 움직여서인지 좀 소음도 있고 그랬어. 그래서 좀 불편했는데 배우들이 커튼콜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나갈 때도 너무 죄송하다고, 나중에 말씀해주시면 이 공연이나 인연의 숲 초대권 드리겠다고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하셔서 정말 다 풀렸어. 다른 공연에서 더 큰 병크 먹어도 이렇게 사과받아 본 기억이 없어서… 참 기분도 좋고 감사했음.  

정말 좋은 소리가 얼마 없어서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고민했는데… 그래도 올리는 게 맞는 거 같아서 올려 봐. 혹시 불편하다면 삭제할게. 내 후기는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고, 한 번 본 것뿐이라 놓친 것도 많을 수 있어. 혹시 다른 횽들이 보러 간다면 정반대의 후기가 나올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정말 배우들도 열심히 하는 게 보였고 정성스럽게 극 올린 거 느낄 수 있었어. 다시 한 번 초대 고마워. 다른 횽들 후기도 기다릴게!

+) 혹시 보러 갈 횽들, 화장실은 극장 안에 있어(세계 최초래). 그리고 꼭 2~3번째 줄에 앉아! 거기가 배우들이 보장한 꿀자리임. 아이컨택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