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다시 읽었습니다.

이번에 느낀 점은, 현대인들은 이 책을 그다지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내용들은 겉보기에는 어렵지만, 핵심적인 주장들은 현대 과학을 믿는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거의 똑같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1.

스피노자를 오해하게 하는 대표적인 용어가 있습니다. '범신론'

세계 그 자체와 세계에 가득찬 사물들이 모두 신이라는 사고 방식이죠.

범신론에서 말하는 주요 맥락은, 신이란 세계의 물질들에 인격을 갖는 영적 실체가 겹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물을, 물질인 육체에 인격을 갖는 영혼이 겹쳐 있다고 믿은 인간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사물의 의인화)


그런데,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은 인격을 갖는 영적 실체가 아닙니다.

이 <신>은 현대인들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 우주 전체>가 어떻다고 생각하는 의미와 거의 똑같습니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스피노자는 세계에 인격을 갖는 영적 실체인, 신이 아예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범신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무신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신에 관하여 말하는 핵심적인 주장이 무엇이냐면,

고대로부터 중세까지 확립된 신존재증명에 나오는 신은 인격신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신존재증명에 정말로 충실하게 따른다면, 인격신은 존재할 수 없고, 그 신은 영원하고 무한하고 완전한 자연 그 자체여야 합니다.

따라서, 신존재증명은 종교를 떠받치는 근거가 아니라, 종교를 부정하는 근거가 된다는 말이죠.


이런 주장은 신존재증명에 의하여 종교를 떠받치려고 하였던 당시 종교세력들에게 아주 심각한 이념적 위협이었습니다.

종교를 부정하려는 무신론자들에게 강력한 이념적 무기를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죠.


2.

스피노자가 말하는 형이상학, 즉 세계가 어떤 것이냐는 주장은, 현대과학이 주장하는 형이상학과 똑같습니다.

인간이 아닌, 어떤 감정 의지 지성을 갖는 영적 실체는 세계에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인격신은 없다!

세계는 일정한 법칙을 따르는, 일정한 구조를 갖는, 물질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계라는 말입니다.


인간 역시 자유로운 의지는 없는, 물질에 관한 자연 법칙에 철저히 따르는 일종의 기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분자생물학, 뇌과학 및 심리학이 지향하는 바와 완전히 같습니다.


스피노자는 현대 과학과 거의 똑같은 관점하에 형이상학, 심리학, 윤리학을 <에티카>를 통하여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아직 철학 용어가 중세 철학의 용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대인들의 관점을 중세 철학 용어로 표현하였으며, 그러므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

도대체 무얼 말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봅시다.


<에티카>의 첫 부분에 나오는 정의3과 정의5를 봅시다.

정의3. 나는 실체란 자신 안에 있으며 자신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정의5. 나는 양태를 실체의 변용으로, 또는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알쏭달쏭하고 와닿지 않는 말이죠? 조금 풀어보면,

여기서 실체란 중세철학의 신을 의미합니다. 신존재증명에서 말하는 그 신이죠.

더 거슬러올라가면 플로티노스의 <일자>와 거의 같은 뜻입니다.

스피노자의 의도, 그리고 현대적인 뜻으로는 <실제로 있는 물질적인 우주 전체>를 의미합니다.


양태란,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구체적인 사물들 하나하나를 가리킵니다. 혹은 개체라고 보아도 됩니다.

변용이란, 어떤 실체가 일시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양태는 실체의 변용>이라는 구절이 어떤 뜻인지 간단하죠?

이 말을 현대적으로 풀면, 우리가 경험하는 구체적인 사물 하나하나는, 우주 전체인 자연의 일부분이 잠깐 모습을 바꾼

일시적인 형태라는 뜻입니다.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이 말은 양태는 양태가 아닌 다른 것, 즉 실체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현대적인 뜻으로는 개별적인 사물은 우주 전체의 일부분이다 라는 말이죠.


<자신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 <다른 것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 이라는 구절은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 (나는 생각한다 / 고로 존재한다)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무엇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가 스스로 생각하거나, 또다른 존재가 그 존재를 생각하여야한다는 명제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이것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잘 와닿지 않습니다.

이렇게, 스피노자의 주장과 현대적인 관점이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3.

이런 식으로 스피노자는 중세 철학의 개념들을 사용하여, 데카르트의 새로운 사고방식에 맞추어 새롭게 틀을 짜나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을 이어받은 많은 학자들이 중세를 지배하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목적론적 세계관을 깨버리고,

뉴턴으로부터 확립된 기계론적 세계관을 만들어나갔습니다.

현대인들은 그렇게 확립된 기계론적 세계관을 교육에 의하여 주입받고, 상식적 진리처럼 믿고 있지요.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세계관의 전환을 불러온 매우 위대한 책이었지만, 현대인들은 그 책을 더 이상 읽지 않습니다.

극소수의 과학철학자 혹은 역사가 빼고는 읽을 필요가 없죠.

왜냐하면 그 책에서 말하는 내용 중에 현대적으로 가치가 있는 부분은 모두 물리학 교재에 현대적인 용어로

더욱 잘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원전을 볼 필요 없이 교과서를 보면 된다는 말입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매우 위대한 책이지만,

그 핵심적인 주장 중에 현대적으로 가치가 있는 내용들은 대부분,

이미 현대인들이 상식처럼 다 받아들여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내용을 알기 위하여 굳이 구식 용어로 쓰인 <에티카>를 읽는 것이 좋지는 않습니다.

현대 용어로 쓰인 각종 교과서 스타일의 좋은 책들이 많이 있거든요.

내용 습득을 위해서라면 그런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물론, 기념품을 수집하는 기분으로 고전을 읽는다는 재미가 있으므로, 이 책을 무조건 읽지 말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플라톤부터 데카르트까지 쭈욱 원전을 읽어왔다면, 근대로 들어와 인간의 세계관이 변하는 순간을 과거로 돌아가

옆에서 지켜보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