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이 이미지는 무려 1MB의 크기를 자랑한다.







병맛



  유머란 예상하지 못한 틈새라고 할 수 있다. 틈새는 상황과 맞지 않는 괴리감을 말한다.


한 번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 괴리감은 약간씩 변조되어 반복되고, 틀이 된다. 코미디는 이 틀에서 발생한다. 


그렇기에 코미디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바나나가 있으면 밟고 미끄러진다거나 바가지가 있다면 깨고 보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우스꽝스럽게 바나나를 밟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바가지를 깰때 우리는 그 코미디를 재밌는 것으로 취급한다.


이건 단순히 꽁트나 상황극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웹툰에서도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


예를 들어서 [마음의 소리]는 일상 속에서의 에피소드라는 '틀'에 맞춰 바가지를 깨고 웃음을 준다. 


기존의 개그물이란 이러한 틀에 맞춰진 개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패턴이 보일 수 밖에 없다. 


이 때 바가지를 깬다는 것을 예상할 때 부터 사람들은 지겨워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신선한 유머를 찾기 시작했다. 일정한 틀이 없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리는 개그를 원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병맛'은 유행했다. 개연성을 신경쓰지 않고 일변도로 달려나가는 개그는 사람들의 인기를 끌 수 밖에 없었고 


대중적인 유행으로 번져갔다. 그리고 스토리도 그림도 신경쓰지 않는 병맛의 폐해는 이 작품으로 인해 재차 증명되었다.






스토리



  어떤 작품이든 중심이 되는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다. 하다 못해 병맛이라 불리는 작품들도 기본적인 스토리는 전개해 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작품을 이루는 기본 뼈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 고수를 만나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시작하지만


뒤로 갈수록 인기라도 끌어볼 요량인지 화산고 열화카피로 내용이 바뀌고, 배틀물도 뭣도 아닌 어정쩡한 내용이 계속해서 전개 된다.


일상의 고수를 만나는 것과 야자를 째는 것은 무슨 상관 관계가 있단 말인가.  


중간 중간 나오는 캐릭터 어필은 너무 뜬금없고 단발적이라 개성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거기다 결말 부에 주인공은 고수를 만나서 난 이제 쌔졌다고 자랑을 하는 데, 


학교까지 가며 남발된 일회성 캐릭터들은 아무리 봐도 고수의 느낌을 주지 못했다. 


그냥 조금 짜증나는 캐릭터와 매우 짜증나는 캐릭터로 양분되어 독자를 괴롭히기만 한다.

 



개그



  약간 솔직해져보자면, 개그 코드는 의외로 나랑 잘맞았다.


초반 3화 정도까진 그림만 준수하게 잘 그리면 나름 병맛으로 잘 끌어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작가는 패러디를 더럽게 활용 못한다. 거기다가 그러면서도 억지로 패러디를 우겨넣어 작품을 더 망쳤다.


무슨 패러디인지 알고 보더라도 재미없는 패러디 투성이에 주가 되어야 할 내용도 패러디에 묻히는 경우까지 발생해서 내용 전개가 엉망이 됐다.


거기다 그림을 못그리면서 억지로 남의 그림을 흉내내다 보니 그림이 더 어색했다.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늑대와 개와 호랑이와 사자는 네 발로 걷는다는 엄청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발전 가능성이 충분한 작가

  


  의외로 그림만 잘 그리면 병맛 쪽으로 대성할 수 있는 타입이다. 


연출이나 구도에도 나름 신경쓰는 티가 보이고


패러디 떡칠하기 전까진 나름대로 짜놓은 설정을 활용할 줄도 알았다.


거기다 작품 떡밥도 나름 회수할 줄 알고 주제 의식도 넣을 줄 안다. 


발전 가능성이 충분한 작가니까 후속작을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