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타본 열차가 대전역에서 부산역 가는 KTX였다.
아마도 6살이나 7살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서-대-동-부 로 가는 열차로 아버지가 끊었던 기억이 난다.
총 두 번 정차했고, 두번째에 내렸다.
아버지 차 타고 대전역까지 가서 기차를 탔던 걸로 기억한다.
가끔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수첩을 얻어 오시면, 그 뒤에 지하철노선도가 있었는데,
거기서 서울의 복잡한 노선도와, 부산과 대구의 간결한 노선이 기억이 난다.
언젠가부터 노선도에서 광주를 볼 수 있었고, 또 언젠가부턴가 대전의 노선도도 볼 수 있었다.
다시 그 수첩을 찾고 싶어도, 수첩을 모두 버린 것으로 보여, 수첩을 찾을 수가 없다.
매우 안타깝다.
사실 대전역에서 내가 기억나는건 별로 없다.
그저 내가 전광판에서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근열차를 보고 아버지께 질문을 한 것과
플랫폼이 꽤나 많아서 헷갈렸던 정도.
지금 대전역과 예전 대전역은 달랐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땐 조명이 좀 더 어두웠던 것 같다.
그때 아버지가 KTX 태워준다고 해서 탔던게 기억이 남는다.
무려 300km의 속력으로 대전에서 부산까지 2시간만에 도착한다고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다음에는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근열차를 타고 싶다고 했으나,
다시 여기 온 일은 10년 가까이, 혹은 10년이 넘은 후였다.
만약 여길 여러 번 왔다면 철덕질에 좀 더 빨리 입문하고,
세상과는 ㅂㅂ... 였을라나?
부모님은 기차를 타고 가는 것보단 차를 좋아하신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기차 멀미를 하시고, 여동생은 기차가 지루해서 싫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기차와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이었을까..
그러다 다시 기차와 접한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이땐 어릴 때는 아니다)
가족들과 서울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나는 그 때 귀찮다고 싫어했으나, 만약 그 때 가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철덕에 입문할 일은 영원히 없었다.
나는 거기서 3호선을 처음으로 접했다.
경복궁을 먼저 여행하기로 결정났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에 특이한 역명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동양대입구인줄 알았던 '동대입구', 인근에 약수가 나올 듯한 '약수', 금호고속이 생각나는 '금호', 옥수역 귀신으로 유명한 '옥수', 많이 들어본 '압구정'.
특히 압구정역에서 4개 국어로 방송되는 것과, 벽면에 붙어있었던 컬러 LCD 행선안내기는 나에게 철덕으로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음으론 명동에 가기 위해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을 했다.
환승통로가 되게 짧았는데, 거기서 열차가 온다고 막 뛰었다.
4호선은 3호선처럼 벽면에 행선안내기도 없었고, 열차도 낡았고, 또 방향이 방향인지라 사람도 많아서 서서 갔다.
나는 이때 서울에 흠뻑 빠졌다.
당장에 나무위키에서 역들을 검색해보았고, 커뮤니티 사이트 내에서 닉네임을 '용산역' 으로 했다.
두번째로 간 것은 그로부터 한달쯤 후였다.
이때는 표 예매도 몰라서 올 때 겨우 버스표를 끊어서 왔던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안국역으로 가서 창덕궁을 방문했으나, 정기 휴일이라 허탕을 쳤다.
그 때 내가 안내방송을 따라한 기억이 난다. 동국대역인데 동양 유니버시티 라고 했던 기억도 나고.
다음으론 내가 그나마 알고 있는 역인 서울역으로 갔다.
왠지 여기서 식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 KFC에서 한번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KFC에서 뭔가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음료수를 이렇게 자유롭게 뽑아서 마실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 다음엔 바로 용산 전자상가를 방문해서 여러 가지 물건을 샀다.
무거웠다.
이 때 나는 미쳤다고 산 물건을 과천역에 보관하려고 했다.
그 무거운 것을 들고, 그저 지하철이 좋다는 것 때문에 가능한 한 간지나는 역에 물건을 보관하고 싶었다. 진짜다.
그래서 과천역까지 갔다.
그런데 보관하는 곳이 없었다. 정부과천청사역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고속터미널역으로 돌아와 거기서 보관을 하려 했으나, 보관함이 꽉 찼다.
식사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가 아닌, 꼴리는 데에서 식사를 했다.
서초역이 느낌이 좋아 서초역에서 내려 무작정 걸어서 눈에 띠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아마 보관도 서초역에서 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다만 눈에 띠는 식당이 없어서 주변 사람들께 식당이 어디 있냐고 질문을 했다.
겨우겨우 찾아서 간 식당에서 먹은 돈까스는 최악이었다.
그 외엔 용산역에서 이촌역, 혹은 그 반대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불이 꺼졌다 켜져서 놀란 기억도 있다.
돌아올 때 금호고속에 남은 좌석은 2번 뿐이었다.
어떤 아저씨랑 같이 앉았는데, 내가 무거운 짐을 들며 땀을 뻘뻘 흘리자 어떻게 도와주셨던 걸로 기억이 난다.
세번째 서울을 방문할 땐 왕십리역에 꽂혔던 것 같다.
네번째 방문할 때는 막장환승을 해보겠다며 대곡역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환승만 하면 좀 아까울 것 같아서, 어느 역부터인가는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역마다 내려서 이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좀 미쳤다. 집에 오자마자 발을 확인해보니, 발이 허옇게 변하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
정말, 하루종일 지하철만 탔다.
이제부터 철갤 얘기.
근데 엄청 기네..;; 그냥 여기까지만 읽고 내려도 상관 음슴.
밑으론 그냥 일기 수준이라.
처음으로 철갤에 온건 라바지하철에 관련된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사실 그 전에 웹갤의 존재를 알고 웹갤에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문화적 충격과 함께), 디시에도 철도와 관련된 갤러리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철도 갤러리를 방문했다.
최초로 쓴 글은 이거였으며,
이건 최근에 물어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보니 XΧ×쿠랭이 이분 이때도 계셨네?
최초로 개념글을 간건 '개인적으로 라바지하철은 돈지랄' 이란 글이었다.
그땐 매우 기뻤다. 내가 이렇게 관심을 받다니.
참고로 요새 용이산다 찬희짤 왜 올리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난 요새가 아니라 이때부터 용이산다에 꽂혔었다.
히익.
그리고 이 다음으로 닉네임에 질려서 닉네임을 '종로3가역' 으로 바꿨다.
그러다 어떤 갤러가 먜갤러같다고 치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찾아보니 '가산점' 이다.
그때까진 정말 편하게 갤질했는데... 종로3가역으로 바꾸고 나서 악몽이 슬슬 다가왔다. 그 얘긴 좀있다.
웹갤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먜갤러는 '갓리스'였던 걸로 기억난다.
그때 먜갤이 뭔지도 몰라서 인터넷에 쳐본 기억도 나고.
이것도 있었고
이것도 있었다.
이걸 쓰긴 한다는 걸로 보아 최근에도 존나게 빨아재낀다.
내가 미쳤지 어쩌다가 이런거에 꽂히냐
윗 짤은 색깔 바꾼 거라 웹툰 내에선 찾을 수 없다.
암튼 그런 지적 후에 부랴부랴 이걸로 바꿨던 기억이 난다.
ㅋㅋㅋ
그 뒤로 난 똥글을 싸지르다가 갑자기 누가 내가 키로아로 같다고, 행동 패턴이 비슷하다고 그랬다.
난 정말 그게 누군지 몰랐다. 그래서 질문했다. 키로아로 사천료리 진호 그게 누구냐고.
돌아온 덧글은 단 하나였다. 'ㅂㅁㄱ'. 난 이게 뭔지 몰라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병신에게 먹이 금지라는 뜻인 걸 알았다.
요렇게 멘붕이 왔었다.
눈물도 났던 걸로 기억하네.
그런데도 계속 어떤 통피 하나가 시간대나 행적이 모두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갤 말아먹는 탈갤충한테 먹이나 주고. 난 이때까지 병먹금을 제대로 하질 못했다.
그리고 저 글에 멘탈이 정말 터졌다.
정말 슬펐다.
이런데도 아무도 덧글을 달지 않았다.
아, 한 놈 달긴 했는데 'ㅂㅁㄱ' 이었다.
나 이땐 내 신상 안 털릴라고 조용히 활동했던 기억이 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내 나이조차 털리기 싫었는데...
가산점 얘 존나 고마웠다. 내가 똥글 써도 하나하나 다 맞받아쳐주고 그랬다.
그래서 난 학생증도 안 꺼내고 그냥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탈갤 운동이 벌어지다가 마음 추스리고 다시 왔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얼마 후엔 공주역을 되게 혐오스러워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런 짤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디자인 개구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한 망상 중 하나.
신도림-홍대입구-종로3가-왕십리-잠실-고속터미널-사당-신도림 노선도에다가 찍찍 그엇던 게 제일 창피하긴 하나...
저거 서울역 확대도 안 해봤다.
내가 병신이었지 뭐
이때당시 나도 햏테를 내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퍼왔다;;
뭐 그 뒤로도 몇번 멘탈 터지고. 보니까 핑크돌고래는 나윤아네.
이땐 별 생각없었던 구일역으로 지금 열나게 활동하고 있고.
난 '종로3가역' 으로 활동할 때, 키로아로 때 멘탈이 약하다는걸 들통난 이후로 몇 번 탈갤저격을 받아왔다.
난 알지도 못하는 갤러 생각난다는 글도 있었고
나 쉴드치는 놈들을 전부 나랑 똑같이 평가한 것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땐 정말 나 관심받을라고 별 짓을 다 했다.
내가 여길 카페로 여겼다.
으으 창피하다 창피해..;;;
이런 772 저격글도 몇번 당했다.
이때 이후로 날 저격하는 이름이 좆노3가가 된 것 같다.
원래는 좆로3가였는데 누가 좆노3가라고 한 뒤로 좆노3가다.
이 다음으로 닉네임 변경한건 아마도 지축일거다.
참 엿같이도 업글했다.
더 있는데 원한다면 알아서 검색해보시길.
뭐 이때도 금방 들통났다.
저렇게 나 저격하는 두 명의 네글자 한자닉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저 사람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철마희망햏은 아니었다. 그때도 좋은 글만 올렸다.
이 때부터 나를 사칭하는 짭고닉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아이디가 jotsamdie 였을 것이다.
다음은... Yongsan 이다.. 으으 대체 닉을 몇 번째 바꾸는겨
아 중간에 Ecthyma도 있었다. 철갤이 아닌 웹갤에서 주로 활동했었다.
윾싀가 뭔 이벤트 한답시고 이런거 했던 기억도 나네
그 후로 철갤에 큰 활동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날 까는 글이 심심찮게 보이고, 그게 개념글 올라감.
(되가 아니라 돼야 이 멍청아)
호사라인이라는 햏이 있었는데, 괜찮은 사진을 올리다가 윾동들이 급식충이라고 저격해대서 탈갤한 기억이 난다.
그 다음은... 무안국제공항이다.
별 특징 없다.
광명국제공항 때 진짜 많이 까였다.
날 까던 사람들이 갑자기 엄청 늘어난 걸로 보였다.
내가 좆노3가로 불리는 이유는 키로아로 때 좆노3가로 불렸던 게 내가 닉변을 해도 XXX=좆노3가 이래서 그렇다.
사실상 좆명좆제공항으로 불려야 맞긴 하다.
어떤 병신이 나를 02년생 박용석이라고 불렀다. 왜일까.
아마 이런 글이 써진 계기는 봉은사역 때문이었을 것이다.
봉은사역이 봉은사역이어야 하는 이유를 참 좆같이도 썼을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때 많이 까였다.
이새끼는 나를 협박해서 탈갤 or 신상털이 를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난 이 때 기숙사생이었다.
그 다음엔 기억 안 난다...
아마 활동을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글은 계속 올라왔다. 왜지?
그 후로도 몇 번 병먹금을 안 하고 빼애액대서 그런가 다른 고닉들한테 차단먹었다.
미역파이한테도 차단당했고 그 외에도 웬만한 고닉들한테 다 차단먹었다.
생각해보니 이때가 광명국제공항때보다 더 까인 것 같다. 아마 활동 중 가장 많이 까인 듯..?
병먹금 풀어주세요 징징 제가 뭘 잘못했나요 징징 이런 글만 주구장창 쌌다.
도배도 했다. 그런데 그 도배 한번 가지고 엄청 까였다. 정말로. 내 일기장처럼 글을 20개나 마구마구 썼다.
그래놓고 정신승리한답시고 퇴갤 해놓고 내용은 아윌비백..
역전우체국도 날 싫어했다.
뭐 지금은 그때 미안하다고 했다.
근데 내가 욕먹을 만 하긴 했네 뭘... 고닉들까지 차단할 정도면 ㅋㅋ
이런 글도 썼다.
그리고 나중에 알아본 결과 스트레스성이 아니라 틱장애였다.
이거때매 현재 자퇴까지 했다.
난 이때까지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잘 몰랐다.
뭐 봐도 어마어마하게 잘못한건 없구만.. 그냥 좀 나댄거 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222.236님이 정말 고맙다. 저렇게 어려운 상황에 나를 변호해줬다.
누가 다른 철도 커뮤니티로 가라고 했는데,
이 뒤로도 난 철도 커뮤니티로 철갤 하나만을 방문했다 ㅋㅋㅋㅋㅋㅋ
진짜 감사했다.
아마 이 날에 내가 신상이 털렸던 것 같다.
그리고 뭐... 웹갤에서만 갤질하다가
웹갤 전용계정 '공주역', 철갤 전용계정 '성수행' 파서 활동하다가
급식충 까는 글에 쉴드 한번 쳤다고 급식충인거 들통나서 버린 정도?
그리고 무안국제공항에서 구일역으로 닉변해서 여기서 여태까지 쭈욱 활동하고 있다.
ㅜㅜ 드디어 이 글이 끝났다.
대전 갔었는데 통근열차 타보고 싶었다는 그 한줄 쓸라다가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렸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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